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58화
158. 전쟁(3)
“여기입니까?”
“네.”
서현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박한별은 거대한 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도깨비들의 왕 마고에게 전해 받은 그녀의 방망이는 그녀의 의지에 따라 크기가 변화했다.
방망이를 약 2m까지 늘어뜨린 박한별은 양손으로 방망이를 잡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자, 그럼 다들 준비하시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박한별은 하늘 위로 높게 방망이를 들어 올렸다.
“쏘세요!”
콰아아앙-!
바닥을 향해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른 박한별은 단숨에 위로 뛰어올랐다.
쿠구구구.
엄청난 굉음이 일면서 대지가 진동했다. 동시에 바닥에 부서지며 망원역 안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허, 이게 무슨…….”
어느새 멀찍이 떨어진 서현우는 허탈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무식하게 지하철역을 박살 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허탈한 그의 시선이 나와 천지현에게 향했다.
나와 천지현 역시 각자 자리를 잡은 뒤 바닥을 향해 공격을 퍼부은 뒤였다.
쿠구구구.
당연히 우리의 공격으로도 바닥은 순식간에 꺼졌다. 거대한 돌덩이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역사 안에 있던 악마들은 하나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순식간에 안식처를 잃은 악마들은 눈에 쌍심지를 켠 채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루가 된 돌덩이를 머리 위에 묻히며 나오는 악마들은 나오는 족족 박한별과 천지현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뒤져. 이것들아!”
천지현은 광룡 제프리에게 배운 기술들을 미친 듯이 난사하고 있었다.
콰과광!
그녀의 화풀이 대상이 된 악마들은 순식간에 몸이 피로 물들었다. 검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악마들의 숫자는 엄청난 속도로 불어났다. 순식간에 쌓여 버린 악마들의 시체. 악취가 지독한 악마들을 발로 찬 천지현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야? 왜 아직도 안 보여?”
“몰라, 확실히 아직 남아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런데 왜 안 나오냐고!”
당장 72 악마를 대령이라도 하라는 듯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 그녀는 뻥 뚫린 지하철 안을 바라보았다.
두꺼운 콘크리트 바닥이 그대로 내려앉은지라, 내부의 모습은 온전히 확인할 수 없었다. 천지현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손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그녀의 주위로 불길하고도 광포한 기운이 모여들었다. 위세 좋은 그 기운은 단숨에 지하철역을 날려 버릴 듯한 기세였다.
“그래, 그냥 나오지 말고 있어.”
천지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72 악마에게 욕을 퍼부으며 손을 뻗었다. 모든 것을 찢어발길 듯한 가공할 만한 힘. 장대한 힘이 쏘아져 나갔다.
콰과과과과!
더 이상 흑운이라 부를 수 없는 검은 기운은 공격에 닿는 순간 재조차 남지 않을 것만 같은 파멸적인 힘이었다. 검은 힘은 역동적인 움직임을 그리며 땅을 향해 쇄도했다.
콰앙-!
부서진 콘크리트 파편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흩날렸다. 동시에 무엇인가가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체를 가장 먼저 발견한 박한별이 소리쳤다.
“도윤 씨! 저기!”
“네, 보고 있습니다.”
강대한 천지현의 힘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동그랗고 견고한 원은 고고히 떠 있었다. 공중에 둥둥 뜬 채, 무엇인가를 머금고 있는 모습.
반투명의 원 안으로 내비치는 것은 다름 아닌 두 마리의 악마와 하나의 거대한 알이었다.
그들을 발견한 우리는 단숨에 전투 태세를 취했다.
기다리던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다들 전투준비!”
내 명령에 따라 힘을 끌어올린 천외천의 멤버들은 주변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악마들을 향해 쏘아져 나갈 것 같은 준비를 하는 우리에게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짓이냐?”
“…….”
“감히……! 내 너희들을 찢어 죽여 주마!”
분노가 가득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마르바스가 아닌 또 다른 72 악마 중 하나였다. 녀석은 죽일 듯이 천지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녀석이군.”
자신이 지키고 있던 알에 위협을 가한 힘과 비슷한 힘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이에 천지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나 맞는데? 어쩌라고?”
일그러진 얼굴을 한 악마가 마르바스를 바라봤다.
마르바스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졌음을 확인한 악마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 반투명의 원 밖으로 악마 하나가 나왔다.
다른 악마들에 비해 거대한 날개를 지닌 검은 악마였다. 천지현을 조용히 응시하던 외뿔의 악마는 검은 구체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몸을 감췄다. 아니 더욱 정확히 표현하면 사라졌다.
콰앙-!
바닥에 먼지가 일고.
모습을 나타낸 악마는 웃고 있었다.
순식간에 바닥에 처박힌 천지현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천지현은 입가에 묻은 피를 쓱 닦고는 위를 바라봤다.
악마는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얼굴로 천지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가 좋다고 웃을까? 팔도 한 짝 없는 놈이.”
“뭔 개소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악마에게 다시 한번 웃어 보인 그녀는 오른손을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쭉 펴지더니 이내 동시에 접혔다. 꽉-! 그 순간!
퍼버벙-!
“끄아아아아악!!”
고막을 괴롭히는 끔찍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른손을 감싸 쥔 악마는 고통에 찬 목소리로 하늘 위를 뒹굴고 있었다.
“내 손…… 내 손이……!”
악마의 붉게 충혈된 눈이 천지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를 죽이고 싶어 하는 진득한 살의가 묻어 나오는 눈빛이었다.
“그러게, 웃지 말랬잖아.”
천지현의 싸늘한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 냉혈한 목소리에 72 악마는 움찔거렸다. 천지현이 내뿜는 살기 역시 악마보다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끄아아아! 넌, 넌 내가 죽인다!!”
“해 보든가!”
냉담한 천지현의 반응에 악마는 완전히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눈이 완전히 뒤집힌 채 그녀를 향해 날카로운 살기를 발산했다.
그럼에도 천지현은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마치 전투를 즐기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 모습에 나의 스승 천태백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천지현! 혼자 할 수 있지?”
“맥 빠지는데 당연한 소리 좀 그만하면 안 될까?”
“믿는다.”
“그러던가.”
시크하게 대답한 천지현은 천천히 자신의 무기 오로치의 검을 빼 들었다.
“개 같은 새끼들이 잘도……!”
분노한 악마는 맹목적인 살의를 내비치며 거대한 날개를 쭉 펴 보였다.
“뼈째로 씹어먹어 주마.”
순식간에 사라진 악마는 지상에 있는 천지현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날카로운 그의 손톱이 천지현의 목을 향했다.
그러나…….
악마의 회심의 공격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천지현은 순식간에 몸을 낮추며 공격을 피해 냈다. 천지현의 엄청난 움직임에 악마의 눈이 커졌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왜? 너만 빠른 줄 알았어?”
냉소적인 비웃음이 들려온 것은 악마의 등 뒤였다.
악마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그 사이로 날카롭게 회전하는 검은 힘이 공간을 갈랐다.
콰아아앙!!
“호오.”
천지현은 실패한 자신의 공격을 바라보며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악마를 바라봤다. 그 모습은 마치 악마 같았다.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싸늘한 눈빛.
일순 72 악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게 어떻게?”
악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여전히 흔들리는 눈빛과 불안함을 가득 담은 얼굴은 악마 녀석이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그녀가 충분히 72 악마를 상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눈을 돌렸다.
너무 많은 시간을 뺏겼다.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는 저 녀석이 아니었다.
바로 저 녀석…….
나는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흥미롭게 관망하는 마르바스를 바라봤다. 마르바스는 거대한 원에 둘러싸여 한가롭게 전투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나는 문득 며칠 전 전투가 생각났다. 맥없이 당해 버린 그때의 내가 창피했다.
‘방심하면 무조건 당한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은 나는 마르바스를 주시했다. 자연스레 그 뒤에서 태동하는 거대한 알도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인지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 커진 느낌이었다. 일순 불안감이 엄습했다.
“겁나는가, 인간이여.”
마르바스는 어느샌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로.”
짧게 대답한 나는 곧장 힘을 끌어 올렸다. 마르바스는 절대 쉽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계속 주시하고 있어야만 공격이 들어오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은밀하고 무서운 공격을 하는 녀석이었다.
‘한 번 감염되는 순간 끝이다.’
조용히 생각한 나는 박한별과 서현우를 바라보았다. 박한별 역시 마르바스에게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은 채 경계하는 중이었고, 서현우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부릅뜬 채 마르바스를 주시하고 있었다.
“크큭.”
주위를 둘러본 마르바스는 웃기 시작했다.
“왜 웃지?”
“어리석은 인간이여 동료가 걱정도 되지 않는가.”
나는 마르바스가 왜 웃고 있으며 이런 말을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저번과 수법이 똑같은데 통할 리가…….
“이젠 그런 저열한 수법은 통하지 않는다!”
나는 염화의 불꽃을 이용해 은밀하게 이동하고 있는 바이러스를 태우기 시작했다.
이에 마르바스의 미소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제법이긴 하다만, 너희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게 무슨 소리지?”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이번에도 역시 그의 주위로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무엇인가 퍼져 나가는 느낌은 없었다. 이 말은 곧 녀석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계속해서 녀석을 주시하자, 마르바스가 입을 열었다.
“너희는 내가 아닌 저 녀석에게 달려들었어야 해.”
무심한 얼굴을 지은 마르바스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는 녀석을 한껏 비웃으며 말했다.
“설마 내 동료가 설마 저 녀석에게 지기라도 할까 봐? 벌써 팔 한 짝 날아간 거 못 봤어? 불안한가 보지?”
그때였다.
“크큭. 크하하하하!”
마르바스가 배를 제치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무슨 속셈인지 도무지 파악이 가질 않았다.
아무리봐도 마르바스에 비해 압도적으로 약한 것은 저 녀석이었다. 그런데 저 녀석을 주의했어야 한다니……. 정말 저 녀석의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공격을 성공시키려는 얕은 수인지 도무지 파악이 가질 않았다.
“도윤 씨! 휘말리지 마세요. 그냥 우리를 혼란시키려는 속셈이에요.”
박한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녀에게 곁눈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저희 작전 기억하시죠?”
“그럼요. 저를 뭐로 보고.”
빨리 정신을 차려 다행이라는 듯 나를 바라본 박한별은 씨익 웃어 보인 후 전력을 끌어 올렸다.
나 역시 빠르게 힘을 끌어 올렸다.
단숨에 마르바스와 알을 파괴시켜야 했다. 그래야 빠르게 서울을 안정시킬 수 있다.
나는 암살이와 우마 그리고 반페르데이스를 소환한 다음 소리쳤다.
“좋습니다. 그럼 저부터 갑니…….”
마르바스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려던 우리는 공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비명.
“꺄아아악!!”
그것은 분명 천지현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