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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57화 (157/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57화

    157. 전쟁(2)

    나와 박한별 천지현은 아버지가 나간 서쪽의 반대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마음 같아서는 가장 많은 악마가 출현한다는 서쪽으로 나가 아버지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를 믿기로 했다. 아버지 역시 푸른 고룡들에게 3년 가까이 수련을 한 몸이었다. 결코 악마 따위에게 당할 분이 아니었다.

    나는 괜한 걱정을 떨쳐 낸 뒤, 앞으로의 할 일을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현우까지 끌고 나오고 싶었는데…….’

    가문 안에 부상자들이 즐비한 상황이라 차마 데리고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쉬움에 입맛을 쩝 다시고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현 씨,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언니.”

    박한별은 초췌해진 천지현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천지현은 애써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언제든 힘들면 말해요. 제가 두 배로 뛰어다닐 테니까.”

    “괜찮아요. 언니도 무리하지 마세요. 몸도 안 좋으시면서.”

    서로 토닥이며 미소 지은 그들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들 역시 나를 조금 다른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 왜!”

    당황한 나는 조금 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악마들이 몰려올 수도 있으니 최대한 조용히 하라는 조금 전의 말을 까맣게 잊은 행동이었다. 나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그 모습을 본 천지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어휴, 저런 것도 리더라고…….”

    “그러니까 말이에요. 지현 씨. 우리 이번 일 끝나면 새로 팀 하나 만드는 거 어때요?”

    “오우, 너무 좋죠. 언니가 리더하세요. 저는 그런 쪽에 영 잼병이라.”

    “호호호. 그럴까요?”

    둘은 어느새 장단이 잘 맞는 자매처럼 나를 놀려 대기 시작했다. 나는 둘을 빤히 바라보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사실 알고 있었다.

    저렇게라도 천지현의 기분을 풀어 주려는 박한별의 마음과…… 애써 괜찮은 척하려는 천지현의 마음. 그들의 선한 마음 씀씀이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괜히 억울한 척, 불만을 토로했다.

    “이거 리더가 서러워서 살겠나.”

    “허, 맨날 굴리기만 하면서 무슨…….”

    “내가 언제!”

    우리는 한참을 티격태격하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와 박한별이 마르바스에게 당했던 망원역 근처에 다다랐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요?”

    어느새 주변을 정리한 박한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악마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분해 하면서도 다시 당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넓고 밝은 공간에서 싸운다면 전과 같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확언에 가까운 대답에도 박한별은 걱정의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솔직히 전 피를 토하기 전까지는 당했는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박한별의 눈에 두려움이 깃든다.

    나는 그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는 중이었다. 망원역에 가까워질수록 마른 이마에 땀이 맺히고 있었으니까. 나 역시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내 감정이 느껴진 탓일까? 박한별은 조금 더 불안한 감정을 토해 냈다.

    “솔직히 은빛 고룡들과 3년간 훈련을 하고 나서는 누구든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침울해 하는 박한별을 본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린 뒤 입을 열었다. 지금과 같은 상태면 사기에 좋을 게 전혀 없다.

    “마르바스는 고룡들의 왕들조차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까다로운 악마입니다. 너무 기죽을 필요 없어요.”

    “그래도…….”

    “잡을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 대답에 그나마 위안을 받았는지 박한별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마르바스.

    사자의 외형에 갖가지 세공품들을 몸에 두른 그로테스크한 악마였다. 그가 흩뿌리는 바이러스는 육안과 감각으로 느끼기엔 지나치게 작고 은밀했다.

    박한별 같은 실력자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당한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강력한 악마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의 대화를 듣던 천지현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렇게 강해요?”

    “응.”

    박한별 대신 대답한 나는 품속에 손을 넣었다.

    “얼마나?”

    “상상 이상으로.”

    품 안으로 거친 질감이 느껴졌다. 질기고 투박하기 그지없는 주머니. 그 안에는 고룡들의 왕과 몇 마리의 고룡들이 숨어 있었다.

    “흠, 그렇단 말이지. 72 악마라…….”

    “…….”

    마음 같아서는 이들을 모두 풀어 악마들의 씨를 말리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이 보따리 밖으로 풀려나는 순간, 세계선의 금이 더욱 벌어질 테고 그 사실을 눈치챈 악마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지구로 쏟아질 테니까…….

    사실상 보따리를 푸는 것은 가장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만 했다.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실 때였다. 나는 급격히 말수가 적어진 천지현을 바라봤다.

    “야, 야!! 너 갑자기 뭐 해!!”

    그녀는 미친 듯이 힘을 모으고 있었다. 흉포하고 악랄한 검은 기운이 그녀의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뭐 하긴? 넓은 곳에서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며 그 녀석들, 이 아래 있는 거 아니야?”

    그녀는 당장이라도 바닥을 뚫을 것 같은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나는 천지현을 향해 소리쳤다.

    “안 돼!!”

    “왜?”

    떨떠름하게 묻는 천지현의 음성에는 짙은 살의가 묻어 있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천지현은 괜찮아진 게 아니라고. 애써 괜찮아진 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저리도 조급해하는 이유는 아마도 친아버지를 죽인 72 악마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리라.

    나는 조심스레 손을 들고는 말했다.

    “지금 싸우면 이 중 한 명은 반드시 죽어.”

    천지현의 손이 멈칫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넌 아직 내 실력도 못 봤잖아. 어떻게 장담해?”

    흥분한 천지현은 강해진 자신을 과도하게 믿고 있었다. 물론 그럴 만한 성장이 뒷받침되긴 했지만, 마르바스는 그리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질병과 역병의 왕 마르바스. 그의 앞에서는 숨 쉬는 것조차 제한되었다.

    “네 실력이 뛰어난 건 알아. 하지만 녀석이 전력을 다하면 우리 중 한 명은 반드시 죽을 거야.”

    “그걸 어떻게 확신해?”

    불신 가득한 천지현의 물음에 박한별이 대답했다.

    “저도 도윤 씨 생각에 동의해요. 저희가 본 마르바스는 정말 강력한 악마였어요. 도윤 씨 말대로 아마 넓은 공간에서 싸운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을 거예요. 녀석의 공격은 한 번만 허용해도 치명적이니까요.”

    박한별의 추가 설명에 천지현은 서서히 힘을 거두었다. 모든 힘이 갈무리된 것을 확인한 나는 천지현에게 말했다.

    “금방 싸우게 해 줄게.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오늘은 일단 주변만 정리해. 후에 믿을 만한 힐러를 데려와 싸울 거야.”

    “믿을 만한 힐러라면…….”

    “한 명밖에 더 있냐?”

    “현우 오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천지현은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서현우가 아무리 성장했다 한들, 위대한 존재들에게 3년간 수련받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탓이었다. 그러나 서현우의 치료를 직접 받았던 나와 박한별은 강하게 부정했다.

    “현우형은 이미 72 악마를 하나 잡았어.”

    “뭐?”

    천지현의 눈동자가 몰라보게 커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야. 이미 마르바스의 바이러스를 치료한 전력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 팀이잖아. 부족해?”

    내 물음에 천지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진짜야?”

    “그래.”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천지현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없는 사이에 현우 오빠도 많이 발전했나 보네. 그러니까 너는 우리 팀이 모두 모이면 그때 레이드 하자 이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그녀가 한 말을 곱씹었다.

    ‘레이드라…….’

    천지현은 마르바스를 잡는 행위를 레이드라 표현했다. 몬스터들을 잡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하겠다는 그녀만의 표현이었다. 수심에 빠져 있던 그녀가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 것 같은 느낌에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맞아. 같은 천외천인데 현우 형만 빼면 섭섭하잖아.”

    그리 대답한 나는 서둘러 서현우를 데려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천지현의 성화에 못 이겨서가 아니었다. 치료가 끝난 후부터.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계속해서 신경 쓰이던 것이 있었다.

    질병의 왕 마르바스가 아니었다. 마계에서도 손꼽히는 그가 목숨처럼 지키고 있는 물건. 망원역 역사 안에 있는 거대한 알이 계속해서 신경 자극하고 있었다.

    * * *

    “괜찮으십니까?”

    날아오는 악마들을 모두 태워 버린 천진오는 한 노인을 부축했다. 기력이 많이 쇠한 노인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마를 마주한 공포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 쓰임으로 인해 단순히 망가져 버린 탓일까? 잠시 고민하던 노인은 복잡한 심경으로 자신의 양손을 바라봤다.

    “늙어서 그런가? 이젠 이 짓도 할 수 없겠구먼.”

    망치를 축 늘어뜨린 노인의 자조적 태도에 천진오는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그리 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천진오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천가 안에서는 도통 내보인 적 없는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 주는 미소를 목도한 노인은 잔잔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완성은 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 조금만 늦었으면 영영 만들지 못할뻔했어. 자네 덕분이네 고맙네.”

    “아닙니다. 어르신. 도윤이 녀석이 어찌나 강조해서 말하던지. 어르신을 지키지 못했으면 저는 그 녀석에게 아마 죽었을 겁니다.”

    “……아무리 장난이어도 천가의 후계자를 죽인다니 내 그 녀석을 만나면 따끔히 혼내야겠구먼.”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그 녀석이 저한테 얼마나 잘하는데요.”

    “에잉. 잘하기는 내가 그 녀석이랑 지낸 시간이 얼만데. 척하면 척이지.”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젓는 노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박윤식 영감이었다. 박윤식 영감은 저 멀리 타고 있는 검은 악마의 시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맙네. 자네가 지켜 주지 않았다면 이 작품은 완성되지 못했을 거야.”

    “아닙니다. 도윤이가 신신당부했는걸요. 영감님의 작품이 세계의 미래라고요.”

    “허허. 이 노인을 놀리는 겐가?”

    “아닙니다. 정말 도윤이가 그랬습니다.”

    천진오는 다소 오버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은 눈살을 좁히더니 이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뭐, 썩 기분이 나쁘진 않구먼.”

    “하하. 믿어 주십시오.”

    “알겠네. 흠…… 내 작품은 완성되었네. 자네는 이제 도윤이만 불러 오면 되네.”

    “알겠습니다. 주변 악마들이 정리되는 대로 병력을 보내 데려오겠습니다.”

    천진오는 천가의 주인 천태산을 대하는 것과 같이 깍듯이 노인을 대했다. 동생에게 부모 같은 스승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순수한 동경심과 존경 때문이었다.

    사실 처음 천도윤의 부탁을 받았을 때는 동생이 미친 줄 알았다. 위기의 상황이 닥치면 가문보다 이 영감을 지키라니.

    핏줄보다 밖에서 잠깐 만난 인연을 먼저 챙기라는 부탁을 다른 누구도 아닌 가문을 이을 가주 후보에게 하다니…… 지능이 딸리지 않는 이상에야, 절대 할 수 없는 요구였다. 그러나 동생의 능력을 정확히 듣고 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이어 박윤식 영감을 만나고 나서는 완전히 천도윤의 말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박윤식 영감을 지키는 것이 곧 가문을 지키는 일이라는 허무맹랑한 소리.

    동생의 말은 어이없게도 사실이었다.

    천진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박윤식 영감이 완성한 마스터 피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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