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56화
156. 전쟁(1)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날아와서는…….”
당황한 천가의 직원은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돌아온 천도윤과 박한별을 번갈아 바라봤다.
“심각해 보입니다.”
얼핏 보이는 그들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검은 각혈과 천가로 오면서 심각한 전투를 치렀는지 여기저기 난 상처까지. 척 보기에도 그들은 목숨이 간당간당해 보이는 상태였다.
미어터질 정도로 우글거리는 천가 본가 안에 퍼질러진 천도윤은 있는 힘을 다해 작은 소리를 뱉어 냈다.
“서, 서현…….”
“네?”
“서, 서현우 불러와.”
“서현우…… 아, 알겠습니다.”
용케 알아들은 직원은 당장 서현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의 소식을 들은 서현우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들의 상태를 본 서현우는 깜짝 놀라 천도윤에게 물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치료할 수 있겠어?”
“치료? 자, 잠깐.”
그들의 상태를 유심히 살펴본 서현우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쉽진 않은 것 같긴 한데……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빨리 부탁해.”
고개를 끄덕인 서현우는 천도윤과 박한별을 눕힌 뒤 그 사이로 들어가 앉았다.
양쪽 손을 뻗어 각각의 배에 손을 올린 서현우는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뭐 하는 짓이야! 한별 씨부터!”
“닥치고 있어. 지금 빨리 치료 안 하면 둘 중 하나는 죽거나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니까.”
“그게 무…… 하, 아니다. 할 수 있겠어?”
“가능하니까 하지. 새끼야. 말 시키지 마, 집중력 떨어지니까.”
“……알겠다.”
금세 좋아지고 있는 몸을 느낀 천도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장한 서현우의 실력에 놀랐는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서현우를 바라봤다.
안색을 되찾은 천도윤을 확인한 서현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보다 령수를 두 배는 더 빨아들였거든.”
서현우의 말에 천도윤은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말했다.
“령수는 분명…….”
“김수민 그 할망구가 자신의 성에 넘쳐 나는 영혼들을 갈아 새로 만들었다더라.”
천도윤은 그의 성 내부에 있는 작은 박물관을 떠올렸다. 전대 지배자가 희귀한 생물들의 영혼을 모아두었던 전시장. 그곳에 있는 아버지의 영혼을 빼 오느라 고생했던 일을 생각한 천도윤은 미간을 찡그렸다.
“너희 아버지처럼 살아 있는 영혼은 없어, 차라리 령수로 만드는 게 그들을 위한 일이라고 하더라.”
천도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여전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쉴 새 없이 질 좋은 힐을 퍼붓던 서현우가 다시 한번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어떻게 령수를 그렇게 많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는 영업비밀이고.”
“그게 아니라…….”
“아! 아무리 령수를 미친 듯이 흡수했어도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천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니들의 둥지.”
짧은 서현우의 말에 천도윤은 와락 인상을 구겼다. 그 처절하고 비극적이었던 전투가 눈앞에 그려지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잠시 뜸을 들인 서현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곳보다 더 아래 있던 마지막 층까지 도달했거든.”
“마지막 층?”
“그래. 그곳에서 미친 듯이 수련한 결과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서현우를 바라보던 천도윤은 문득 그의 손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천도윤의 상상 이상으로 성장한 서현우의 손에는 온갖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르바스의 바이러스까지 손쉽게 해결하고 있는 녀석의 손에 남아 있는 흉터라니…….
어지간히 지독한 상처가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힐러들은 기본적으로 자체 치유력 또한 월등한 존재였으니까.
천도윤은 인버스 타워 안에서 서현우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매일 같이 지옥을 살아가는 기분이었겠지.’
천도윤은 몰려오는 온갖 생각에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뜨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 어! 안 돼! 아직 안정을 취하는 게 좋은데…….”
“그럴 시간 없다는 거 알잖아.”
잠시 멈칫한 서현우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후, 그래도 당분간은 조심해라.”
“알겠어.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야?”
천도윤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천가 안에는 수많은 일반인이 수용되어 있었다. 게다가 기와와 부서진 콘크리트 바닥으로 보았을 때 이곳 안에서 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것처럼 보였다.
“오면서 봤을 것 아니야. 여기 완전히 고립됐다.”
서현우의 침울한 대답에 천도윤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나 많은 악마가 침투했다는 말인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잠시 고민하던 천도윤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천가로 오는 길. 많은 악마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하나, 그 험난했던 길이 이미 누군가의 손에 의해 정리가 되었던 길이라면?
먼저 길을 떠났던 아버지와 천지현을 떠올린 천도윤은 온몸에 닭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악마가 넘어온 거야…….”
“지방은 손쓸 새도 없이 모두 당해 버린 것 같더라. 각 지방에 퍼져 있던 플레이어들을 모을 새도 없었어. 능력자들을 이용해 생존자들을 서울로 불러들이고 있긴 하지만 과연 몇 명이나 올라올지는…….”
뒷말을 흐리는 서현우의 말에 불안감이 잔뜩 실려 있었다.
“일단 72 악마 하나는 잡았어. 그런데…….”
“왜 말을 하다 말아.”
불길함이 엄습하는 느낌에 천도윤은 서현우를 재촉했다.
잠시 뜸을 들인 서현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72 악마가 하는 말이…… 이미 한국에는 다섯의 72 악마가 더 존재한다고 했어.”
“뭐?”
“나도 믿기지 않더라, 목숨을 건 리스크를 지고 나서야 겨우 상대할 수 있었던 녀석인데 그런 녀석이 다섯이나 더 있다니…… 게다가 그 녀석이 죽기 전에 한 말이 뭔지 알아?”
“…….”
“자기가 이곳에 온 악마 귀족 중에 제일 약하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서현우의 옆으로 작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일어선 박한별이었다.
박한별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몇 번 고개를 흔들더니 잠긴 목소리를 토하듯 내뱉었다.
“이미 두 마리는 만났어요.”
“네? 그럼…….”
“예, 저희는 그중 한 마리에게 당한 겁니다.”
박한별은 분하다는 감정을 가감 없이 내비쳤다.
천도윤과 박한별이 풍기는 기운만으로 그들의 실력을 가늠한 서현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두 분이 계셨는데도 말입니까? 두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에게?”
박한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만나면 절대 안 질 거예요.”
의지를 다지는 그녀에게…… 천도윤은 찬물을 끼얹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원망 섞인 눈빛이 찾아들었다. 그러나 천도윤은 힐난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한 종족의 왕인 테론 페르몬드조차 마르바스와의 충돌은 피하라고 할 정도였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 상대해도 마르바스는 쉽지 않은 존재라고…….
고룡들의 기술을 전부 습득해 버린 천도윤이었지만, 좁은 역사 안에서 순식간에 당해 버렸던 얼마 전 상황을 생각하면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일단 상황부터 정리하죠.”
낮게 깔린 천도윤의 음성에 박한별은 입을 뻐끔거리다 이내 다물었다.
* * *
가주전 근처로 이동한 나는 우렁차게 들려오는 곡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저 녀석 지금까지 저러는 거예요?”
어느새 나와 박한별 근처로 다가온 직원에게 한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예, 오신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저런 상태입니다.”
“하아, 네 알겠습니다.”
한숨을 깊게 쉰 나는 천지현을 바라봤다. 천태백 그러니까 나의 스승님이 담긴 관을 끌어안은 채 펑펑 울고 있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세상에 모든 것을 잃은 듯 오열하는 그녀에게 다가가려던 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잠시 내버려 둬요.”
나를 막아선 손길.
그것은 다름 아닌 박한별이었다.
그녀는 천지현의 슬픔을 크게 공감하듯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지금 울고 싶은 게 누군지도 모르고.”
“네?”
“아닙니다. 녀석이 슬픈 것은 이해하지만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나는 망설이는 박한별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놓으세요. 이러다 정말 다 죽습니다.”
서현우에게 들은 정보에 의하면 전국 각국에 출현한 악마들은 서서히 서울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즉, 천가 주위를 둘러싼 악마들은 더욱 많아진다는 뜻이었고, 천가가 함락될 위기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인원을 모아 주변의 악마들을 처치하고 안전지대를 넓혀 방어선을 구축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어디 있지?”
“도착하시자마자 남아 있는 원로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다행이군.”
“네?”
“아니다. 현재 가문 안에 남아 있는 천가의 병력은?”
내 짧은 물음에 직원은 대답했다.
“현재 가주님과 함께 나가 있는 원로 다섯을 제외하면 가문 내에 남아 있는 원로는 총 10명입니다. 방계의 인원들은 총 470명. 생도 및 직원들은 총 382명입니다. 그리고 천진오 도련님의 팀 천지는……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직원은 마치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철용은 어디 있지?”
“가문 내의 행정 일을 도맡아 하다가, 가주님과 함께 떠났습니다.”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잠시 생각했다.
1,000명도 안 되는 조악한 병력. 지켜야 하는 수많은 민간인. 게다가…… 말도 안 되게 강력한 무력을 지닌 적들.
상황은 암담하기 그지없는 상태였다.
전력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
“끄윽. 끄.”
나는 여전히 깊은 상심에 빠져 있는 천지현을 바라봤다.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은 뒤, 같은 모습으로 목놓아 울고 싶었다. 울컥거리는 감정이 계속해서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고, 갈 길은 아직 멀고도 험난했으므로.
폐를 통해 무거운 숨이 토해져 나왔다.
어쩔 수 없이, 때로는 잔인한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바로 지금처럼.
“야.”
“끄흑. 끄.”
“야, 천지현.”
천지현의 고개가 조금씩 돌아간다.
그녀는 애절한 눈빛으로 나에게 구원을 바라고 있었다. 눈앞에 놓인 비극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달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통탄에 잠긴 그녀를 위로할 수 없었다. 그녀를 달래기는커녕…… 그 슬픔을 이용해야만 했다.
“스승님은 돌아가셨어.”
듣는 이의 목이 먹먹해질 정도로 커다란 통곡이 천가 안을 울렸다. 구슬프고, 애절한 목소리였다.
그녀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떨려오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킨 채 천천히 말을 뱉어 냈다.
“일어나.”
“…….”
“복수하러 가야지.”
“끄윽.”
“스승님을 이렇게 만든 악마들을 이대로 내버려 둘 거야? 그러려고 그 미친 용 아래서 그 고생을 한 거냐고!”
원망 섞인 눈초리가 날아든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일어나서 싸워.”
“너, 너……!”
천지현의 눈이 벌겋게 아니,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당장이라도 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 같은 살기가 몸을 옥죄었다.
그럼에도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부터 네가 흑운이야.”
천지현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뭐?”
“네가 천외천에 들어올 때 내가 분명 말했잖아. 언젠가 돌려주겠다고.”
나는 천지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너…….”
그녀의 눈에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돌려줄게. 돌려줄 테니까…….”
“너…….”
“일어나서 싸워. 스승님이 너를 한심하게 생각하기 전에.”
손을 맞잡은 천지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