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55화
155. 귀환(6)
끼긱-!
끄그그그.
귓가를 어지럽히는 소리.
“끄아아악!!”
“사, 살려 줘!!”
황망한 비명.
비극과 참상의 기운이 풍기는 서울은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던 곳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주변을 둘러본 나는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서울은 현대문명의 이기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황폐화가 진행된 상태였다.
“완전 엉망이네.”
서울은 지나쳐 온 그 어느 도시보다 빠르게 황폐해진 상태였다.
“도윤 씨!”
박한별의 부름에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서울로 오는 길에 구해 온 우마 길드의 일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헉. 허억.”
“그, 그…….”
그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한차례 전투가 끝난 뒤 다가온 그들은 온몸에 흑색 피를 묻힌 채 다급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왜 그러시죠? 무슨 일 있었어요?”
“저, 저기 이상한 게 있어요!”
굉장한 실력 상승으로 인해 어지간한 일에는 끄떡도 안 할듯한 그녀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한 곳을 가리켰다.
“이상한 거라뇨?”
“저희가 숨어든 악마를 처치하기 위해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어지는 박한별의 말에 그녀의 주변에 있던 우마 길드의 단원 하나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포식자 앞에 놓인 사슴처럼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침착하고 말해 보세요. 그곳에 뭐가 있었는데요.”
“거기에…… 커다란 알이…….”
박한별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는 반응이었다. 그깟 알이 뭐라고…… 지금껏 수많은 악마와 싸우며 나아왔으면서 저렇게 공포에 질린 박한별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나는 그녀가 잠시 진정을 찾기를 기다린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악마의 알이었습니까?”
“모르겠어요.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심상치 않아 보였어요.”
“심상치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일단 가 봐요. 보셔야 할 것 같아요.”
황급한 박한별의 재촉에 나는 뒤를 돌아봤다. 천지현과 아버지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는 확인해 보고 갈 테니 두 분은 먼저 천가로 돌아가 있으세요.”
“알겠다.”
“그래.”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의 위치는 망원. 홍대에 위치한 가문과 크게 멀지 않은 거리라, 둘만 보낸다고 해도 큰 위험은 없어 보였다.
“그럼, 먼저 가 있을게. 아버지의 뒷수습도 해야 하고 가문이 무사한지도 봐야 하니까.”
“그래, 잘 부탁한다. 아버지도요.”
“알겠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거라.”
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뒤돌아섰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 역시 돌아섰다.
* * *
이동하는 동안 박한별은 내내 초조해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지라, 괜히 긴장감이 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사실 그 거대한 알보다 그 주위에 있는 것들이 마음에 걸려서요.”
“주변에요?”
“네. 알의 주위로 악마 두 마리가 있었는데 아마도…… 72 악마인 것 같아요.”
진지한 박한별의 대답에 나는 표정이 굳고 말았다.
72 악마가 두 마리라니. 그것도 한곳에.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에 대체 몇 마리의 악마가 들어왔단 말인가. 나는 심각해진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알겠습니다. 일단 확인해 보죠.”
부서진 역사의 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천천히 깨진 계단을 밟으며 내려갔다.
투둑.
지독한 악취와 어두컴컴한 주변. 나는 핸드폰을 들어 불빛을 비추었다. 조금의 빛만으로도 사물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눈은 갖춘 상태였지만, 이편이 훨씬 이동하기 수월했다.
눈이 편안해진 우리는 막힘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끼에에에엑!!”
한차례 우리를 발견한 악마들이 달려들었지만, 별문제 없이 해치울 수 있었다.
“흠.”
나는 예상외의 낮은 난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72 악마의 주위로는 당연히 수준 높은 악마들이 호위하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달려드는 악마들을 보면 그다지 수준이 높아 보이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나는 조금씩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박한별이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아니야. 그럴 리가…….’
짙어지는 의문을 애써 떨쳐 낸 채 이동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녀의 심장 박동이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반응을 봤을 때는 전혀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신중히 발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왜 이렇게 겁먹으셨어요?”
“그게…….”
머뭇거리는 그녀의 대답을 듣기도 전, 나는 그녀의 두려움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사 안.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지하철로 중간에 거대한 알이 떡하니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두 마리의 악마가 기운을 죽인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을 발견한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왜 박한별이 그토록 겁먹어 한 것인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정말 72 악마였다. 그것도 단순히 72 악마에 속하는 녀석들이 아닌 꽤 순위가 높아 보이는 녀석들.
기척을 숨긴 그들을 내가 이제야 느낄 수 있는 것만 보더라도 상당한 능력자임이 틀림없었다.
“고룡들이 말한 존재들이 맞죠?”
조심스러운 박한별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아 보이네요.”
고룡들이 말하길 마계의 72 악마 중에서도 계급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가장 순위가 높은 1~10위까지의 악마들은 각종족 드래곤의 왕들과 대결해도 결코 밀리지 않는 무위를 지녔다고…….
“저 왼쪽에 서 있는 녀석은 틀림없이 10위 안에 드는 녀석일 겁니다.”
풍기는 마기 자체가 격을 달리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마주했다면 정신이 나가는 것은 물론이요, 심각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강대한 기운이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짧은 박한별의 대답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왜 그녀가 이리도 겁먹었으며 다급히 나에게 왔는지. 나는 엄청난 마기를 풍기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사자의 얼굴에 손가락에 여러 개의 반지를 낀 외형. 나는 이러한 외형을 한 악마를 이미 알고 있었다. 테론 페르몬드와 훈련하면서 숱하게 들은 상위 10 악마들의 왕과 외형이 완전히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질병의 왕 마르바스…….”
순간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던 악마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갔다.
“……나를 알고 있는가, 인간이여.”
소름 돋는 그 모습에 나는 반걸음 물러났다.
거대한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핥고 있는 악마의 모습은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숨을 죽인 채 물었다.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거지?”
두 마리의 72 악마는 어째서인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저 뒤의 알이 무엇보다 소중해 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당연하게도 저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과 지구에게는 재앙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컸다.
“가라. 지금이라면 목숨만은 살려줄 테니.”
음험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한 번만 자비를 베푼다는 내용. 하지만 나는 그 안에 담긴 진한 살기를 고스란히 느끼는 중이었다.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그럴 생각 없잖아.”
콰앙-!
나는 땅을 향해 강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동시에 박한별의 뒷덜미를 잡고 강하게 뒤로 던졌다.
“꺄악! 이게 무슨 짓이에요!”
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대답할 시간은 없었다.
화륵-!
이어 천장에 불을 붙여야 했으니까.
위력을 극도로 낮춘 염화의 불꽃이 천장을 태우기 시작했다.
“제법이구나. 인간이여.”
녀석의 바이러스를 태워 버린 나에게 듣기 거북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건너편을 노려보며 말했다.
“역시 악마답게 말과 행동이 다르군.”
“크큭. 그래야 악마답지 않은가.”
나는 가라앉은 표정으로 마르바스와 그의 주변을 살폈다.
마르바스와 또 하나의 72 악마는 여전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는 것은 곧, 저 알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저 알의 주위를 벗어나면 안 되는 강력한 이유가 있다거나. 뭐가 되었든…….
‘부숴야 한다!’
저 알에서는 엄청난 양의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필시 72 악마에 준하는 녀석일 터.
적이 늘어나기 전에 빠르게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여유 부리지 마, 유리한 건 우리니까.”
“크큭. 과연 그럴까?”
질병의 왕 마르바스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즐겁다는 듯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비친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질병의 왕이다.”
“그게 뭐!”
“크큭 여전히 눈치채지 못했군. 이곳이 어디인가!”
오만한 물음에 나는 소름이 쫙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병신같이.”
이를 악물며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렸다.
붉은 용들의 왕 테론이 스치듯 했던 말.
-10 악마 중 가장 무력이 약한 왕은 마르바스다. 하지만 그 녀석이 가장 까다로운 적이야.
-왜요? 앞뒤가 안 맞는데…….
-그는 마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악마다. 녀석의 질병과 바이러스는 드래곤의 피부조차 간단히 녹인다. 절대 녀석과 좁은 공간에서 싸우지 마.
그 말이 떠오른 나는 식은땀이 흘렀다.
“크큭. 이미 늦었어.”
마르바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코와 입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참지 못하고 내뱉은 그것은 피였다. 새빨간 피가 아닌 검은색의 오염된 피.
나는 깜짝 놀라 박한별을 바라봤다. 그녀 역시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반응이었다.
“아까 인간 녀석들을 잡아 두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말이야. 제 발로 찾아오다니.”
입을 틀어막은 우리는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머리가 어지럽혀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멈출 순 없었다.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맞서는 것은 불가능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나와 박한별은 도깨비불을 이용해 빠르게 이동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녀석들을 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입장이었다.
-좁은 곳에서 싸우면 안 된다. 절대! 녀석과 싸우려면 바람용을 데려가든지, 능력이 뛰어난 힐러를 데려가!
테론의 음성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빨리 떠올리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운 순간이었다. 장기가 비틀어지고 정신이 혼미했다.
우리는 기를 쓰고 역사를 빠져나간 뒤 깊게 숨을 들이켰다.
폐허와 황폐화로 인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많은 공기를 빨아들였다. 온몸에 공기를 순화시켜 약간의 독성을 몰아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빠른 치료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점점 희미해지는 시점.
나는 품속에서 최고급 포션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박한별 역시 내가 준 포션을 따 황급히 들이켜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마르바스의 바이러스는 생각보다도 더 독한 것이었다.
체내의 독성 물질조차 순화를 통해 내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바람용이 내 보따리 안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였다. 유능한 힐러.
힐러…….
내가 아는 힐러는 단 한 명뿐이었다.
힐러의 능력만 따졌을 때는 유능한지 알 수 없으나, 내 지시대로 인버스 타워에 다녀왔다면 제 한 몸 건사할 능력은 지녔을 만한 녀석. 아니 건사하다 못해 전력에 큰 도움이 될 만한 녀석.
“나와야 했을 텐데…….”
“쿨럭. 네?”
“아, 아닙니다. 지금 당장 저희 가문으로 이동하죠. 우선 치료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크윽. 네.”
나는 천외천의 네 번째 멤버 서현우가 인버스 타워 밖으로 나왔기를 바라면서 가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