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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54화 (154/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54화

    154. 귀환(5)

    소름이 끼치는 악마의 웃음에 서현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72 악마가 더 와 있다니, 대체 무슨 소리지?”

    “크큭. 그게 무슨 소리냐면…….”

    음흉하게 웃은 악마는 천천히 손가락을 펴 보였다.

    한 손에 4개의 손가락밖에 지니지 않은 악마는 한쪽 손을 다 펴 보이고도 모자랐는지 남은 손까지 들어 보였다.

    “…….”

    기어이 두 개의 손가락을 더 들어 보이고 나서야, 악마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여섯. 이게 너희들이 말하는 여섯 맞지?”

    여섯 개의 손가락을 자랑스럽게 내민 악마는 파리하게 질려 버린 길드장들을 장난기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길드장들은 믿지 못할 사실을 듣고는 영혼이 나간 것처럼 입을 떡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여, 여섯?”

    “저런 녀석이 다섯이나 더 있다는 소리야?”

    “마, 말도 안 돼!!”

    절망스러운 목소리만이 회의장을 채우고 있었다.

    서현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던 여느 헌터들도 눈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을 내밀고 있는 악마를 직접 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서현우, 저자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다 죽는 거잖아……!”

    처음 느껴 보는 압도적이고 패악적인 살기. 그것은 맹금류 앞에 놓인 지렁이로 전락한 느낌이었다.

    ‘움직이면…… 정말 죽는다!’

    모두가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아무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끔찍한 침묵.

    온몸이 터져 나갈 것 같은 고요 속에서 유일하게 입을 여는 자는 서현우뿐이었다.

    절망을 똑바로 마주한 서현우가 불안한 사위를 감추며 입을 열었다.

    “지금 한국에 72 악마가 여섯 마리나 와 있다고?”

    “오? 생각보다 별로 안 놀라네? 우리의 존재를 하도 심각하게 말하길래 오줌이라도 쌀 줄 알았는데 말이야.”

    “닥치고 말해! 그게 사실이냐!!”

    “크큭. 그래. 어떤 녀석이 한국은 만만치 않을 거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말이야.”

    악마의 말에 서현우의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천지훈?”

    경악스러운 물음에 악마는 조용히 입꼬리를 들어 올려 보였다.

    “크크큭. 알고 있네? 녀석이 몇 번이나 말하더라고. 자신의 가문이 있는 한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천가의 대표로 나온 너를 보면 영…….”

    악마는 서현우의 실력을 가늠하듯 위아래로 훑더니, 이내 재미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치 시험관이 탈락을 외치는 듯한 태도였다.

    차악-!

    그러나 서현우는 그런 악마의 도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투를 준비했다. 그의 몸 주위에서 숨겨져 있던 신성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강대한 신성력에 악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호오?”

    극상성인 신성력을 마주하고도 악마는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한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악마의 시선은 여전히 서현우의 주위로 일렁이는 하얀빛을 향하고 있었다.

    “크큭. 생각보다…….”

    “까다로워 보이지?”

    콰앙-!

    악마와 서현우의 힘이 맞부딪혔다.

    주위에 있던 길드장들은 대부분 그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아니? 재밌어 보이는데?”

    천진한 얼굴.

    그러나 악마가 발하는 힘은 결코 천진하지 않았다. 가볍게 휘두른 꼬리에 다섯의 플레이어가 나가떨어졌다. 개중에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녀석들도 있었다.

    “크윽!”

    덜렁거리는 다리를 움켜쥔 중소형 길드장이 기듯이 자리를 벗어났다.

    조금만 충격을 가하면 떨어져 나갈 듯한 다리를 고정하려 할 때였다.

    “어?”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순식간에 다리가 멀쩡해진 것이다. 상처 주위로 하얀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니 누군가 힐을 쓴 것이 분명했다.

    척 보기에도 상당한 격의 힐이었다.

    그리고 힐의 주인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해 뻗은 서현우의 손이 보였으니까. 감사함을 전하기도 전에…….

    “빨리 거리를 벌리세요.”

    벼락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신을 깨우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길드장들은 서둘러 간격을 벌렸다.

    “감히……!”

    악마는 자신의 앞에서 여유롭게 환자를 치료하는 서현우가 아니꼬웠는지, 자존심이 상했다는 얼굴로 서현우를 노려봤다. 그리고 이내 맹렬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서현우가 조금씩 밀려났다. 고개를 숙인 서현우는 악마의 공격을 피한 뒤 하얀빛을 두른 주먹을 내질렀다. 인버스 타워 안으로 들어가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봐야 할 정도로 엄청난 움직임이었다.

    신성력이 가득 담긴 공격에 놀란 악마는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생각보다…….”

    “까다롭지?”

    악마는 마침내 인정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여전히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내가 저 지하에서 얼마나 굴렀는데. 너 하나 때려죽이기에는 넘치는 힘이지.”

    서현우의 도발에 악마는 잔뜩 미간을 구겼다.

    “조금 인정해 주었다고 선을 넘는구나.”

    작은 날개를 펄럭인 검은 악마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순식간에 검은 구체를 만든 악마는 서현우를 향해 마력을 쏘아 댔다.

    콰과과광-!

    신성력을 이용해 악마의 힘을 상쇄시킨 서현우는 뒤를 돌았다. 수십 발의 마탄. 아무리 서현우라도 난사하는 마탄을 모두 막아 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서현우의 뒤쪽으로 물러났던 길드장들을 향해 몇 발의 마탄이 날아갔다.

    “젠장!!”

    콰과과광!!

    일대를 삭제하듯 엄청난 위력이었다.

    소리친 서현우는 재빨리 초토화된 명동 한복판을 향해 달려갔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다.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플레이어의 신음이었다.

    서현우는 인상을 구기며 속력을 높였다.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은 신성력으로 방어했다. 한 번쯤 돌아볼 법도 하건만, 서현우는 절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계약의 내용.

    -갑은 을이 상처 입었을 경우 최선을 다해 치료해야 한다.

    을이 상처를 입었을 경우 최선을 다해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기 때문이었다.

    “병신 같은 페널티…….”

    내뱉듯 읊조린 서현우는 부상자들을 향해 광역 힐을 시전했다.

    “마음 같아선 더 멀리 도망치라 하고 싶지만…….”

    계약의 내용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을은 ‘악마’와의 대결에서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을에게 부여된 버프 효과는 모두 사라진다.

    ‘을은 악마와의 대결에서 도망치지 않는다.’가 계약의 내용이었으니까. 을이 버프 능력을 잃는 순간,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하, 조금만 시간이 있으면…….’

    다시 악마를 향해 몸을 돌린 서현우는 곁눈질로 부상자들을 바라봤다.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길드장들이 보였다. 죽은 자들도 꽤 보였지만 다행히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너 지금 나를…….”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분개한 목소리.

    악마는 순식간에 길드장들을 쓸어버릴 듯한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현우는 흥분한 악마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지랄. 녀석들을 치료할 시간을 벌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잠시 말이 없던 서현우는 멋쩍게 웃으며 물었다.

    “눈치챘어?”

    “아주 죽여 달라고 발악을 하는구나! 정말 나를 상대로 저것들을 지키며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악마는 빨개진 눈으로 가당치도 않다는 듯 물었다.

    서현우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능하지.”

    “그걸 아는 새끼가!”

    “조금 전까지는 말이야.”

    “뭐?”

    “네가 내 계약자들에게 부상을 워낙 많이 입혀놔서 말이야.”

    “뭔 개소리를…… 죽어!!”

    서현우를 향해 마지막 공격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고 했다. 그러나 악마는 공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던 인간의 기운이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자신과 맞먹을 정도로…… 아니 전력을 다해도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은 막대한 기운으로. 인간의 힘은 폭발하듯 터져 나가고 있었다.

    “이게 무슨……!”

    하얀 빛무리가 눈부시게 인간을 에워싸고 있었다.

    “내가 괜히 불공정계약을 맺은 게 아니거든…….”

    “뭐라는 거냐!!”

    “그러니까…… 너는 이제 절대로 날 못 이긴다는 소리야.”

    콰아아앙-!

    “커, 커억!”

    “일단 자리부터 옮기자.”

    싸늘한 서현우의 목소리에 악마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 * *

    “꺄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저리 가! 저리 가라고!!”

    도착한 한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 하급 악마들이 돌아다니며 인간들을 유린하고 있었고, 폐허가 된 도시들이 즐비했다.

    “고작 3개월 만에…….”

    내가 이계에 머물렀던 시간은 3년이지만 지구의 시간은 고작 3개월뿐이었다. 그런데 벌써 이렇게 망가져 버리다니…… 나는 조금 더 서두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설마 가문이 잘못된 건 아니겠지?”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악마를 처리하고도 숨조차 몰아쉬지 않는 천지현의 것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묻는 와중에도 변경된 흑운의 힘으로 악마들을 처치했다.

    “괜찮을 거야. 아마도…….”

    자신감 없는 대답 때문이었을까? 천지현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졌다.

    우리는 애커만의 여행일지를 통해 이동한 터라, 서울이 아닌 지방에 도착한 상태였다. 현재로서는 서울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여긴 통신장비가 전부 먹통이에요.”

    악마 퇴치보다는 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나섰던 박한별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소리쳤다.

    “어쩔 수 없군요. 일단 빨리 서울 쪽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정말 가문이 엉망이 됐을 수도 있으니까.”

    천지현은 재빠르게 대답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알겠어. 빨리 가자.”

    하지만 박한별은 발걸음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해 걸음을 멈춘 채 그녀를 바라봤다.

    “왜요? 한별 씨?”

    “저…….”

    불안해 보이는 박한별의 얼굴을 본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은빛 드래곤들에게 특훈을 받아 자신감 넘치던 그녀가 이렇게 불안해하는 이유에 대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가족조차 없는 그녀가 불안해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아, 올라가는 길에 우마 길드 지역에 들리죠. 이왕이면 모두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 정말요?”

    단숨에 표정이 바뀐 박한별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뭐, 이 정도로…… 미안해하지 않고 요구하셔도 됩니다. 누가 뭐라 해도 한별 씨는 제가 직접 뽑은 천외천의 멤버니까요.”

    “그래도…… 지금 상황이…….”

    “한별 씨. 저희는 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강해진 겁니다.”

    박한별은 내 말에 감동이라도 받았는지 눈물을 그렁거리는 모습이었다.

    이에 천지현이 딴지를 걸어왔다.

    “언니! 저희가 그렇게 매정한 사람처럼 보여요?”

    “그건 아니지만…….”

    “어휴, 답답해. 빨리 움직이기나 해요. 꾸물거리다가 길드원들 다 죽이게 생겼네.”

    “천지현!!”

    “아, 알았어. 알았다고. 빨리 가자는 소리지 뭐…….”

    억울한 듯 볼을 부풀린 천지현은 애꿎은 땅바닥의 돌멩이를 발로 찼다.

    순식간에 가루가 된 돌멩이.

    그 모습을 본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큭.”

    “뭐야! 왜 웃어!”

    “그냥.”

    “죽을래?”

    이제는 말뿐이 아니라 정말로 고룡과 맞먹을 정도로 격을 갖춘 그녀들이 저런 대화를 나누는 꼴을 보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가시지 않는 미소를 유지한 채 박한별과 천지현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속도 좀 내죠. 가문은 그 녀석이 잘 막아 냈을 테지만, 불안한 건 사실이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동료들을 훑은 나는 지면을 강하게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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