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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40화 (140/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40화

    140. 새로운 구도(2)

    반 페르데이스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제발 [지젠]만은 부르지 마라!’

    사실상 주인이 지젠을 부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애커만이라는 모험가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지젠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반 페르데이스의 바람은 생각과 동시에 보기 좋게 어그러졌다.

    “지젠!”

    모든 선택지를 실패한 주인이 마지막 선택지로 결국 지젠을 부른 것이다. 반 페르데이스는 생각했다. 이번에도 분명히 실패할 것이라고.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백광이 번쩍이며 주위가 빛에 휩싸였다. 환한 빛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잠시 후 눈을 뜨니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정말 고향에 돌아왔다는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72 악마 중 하나인 아몬이 주인의 멱살을 잡은 채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주인의 목을 날려 버릴 것 같은 기세.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온 반 페르데이스는 안도했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던 지구보다는 현재가 훨씬 살아갈 확률이 높았으니까.

    “이계.”

    공중에 붕 들어 올려진 주인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그에 아몬의 인상이 구겨졌다.

    “이계라니 그게 무슨…….”

    아몬은 여전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힘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이계로 넘어온 모두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상황.

    아몬은 금세 여유를 되찾고는 말했다.

    “크큭. 지구를 지키기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겠다. 뭐 그런 건가?”

    아몬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주인을 향해 조소를 흘려보냈다. 멱살을 잡힌 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주인은 입매를 틀어 올리며 대답했다.

    “그래, 네놈이 우리 가문을 모두 죽이게 놔둘 수는 없잖아?”

    주인의 도발 아닌 도발에 아몬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아주 발악하는구나. 당장 나를 지구로 돌려놔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장 네 목을 취할 테니.”

    “할 수 있으면 해 봐.”

    주인은 들고 있던 책을 도깨비 보따리에 집어넣었다. 도깨비 보따리는 기본적으로 주인의 허락이 없으면 절대 열 수 없게 설계된 아공간 아이템.

    아무리 악마라고 하더라도 천덕꾸러기 종족인 도깨비의 보따리를 강제로 여는 것은 불가능했다.

    “크윽. 버러지들이 용을 쓰는구나. 오냐. 어차피 지구로 돌아갈 방법은 많다. 네놈을 죽이고 방법은 따로 찾아보마.”

    아몬은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기 귀찮았는지 손을 들어 올렸다. 단숨에 여기에 있는 존재들을 마무리한 채 홀로 차원 이동의 방법을 찾으려는 속셈 같았다.

    미련을 버린 아몬의 손은 가벼웠다.

    촤아아악!!

    다시 한번 주인의 가슴팍에 깊은 상처가 새겨졌다.

    “주인!!”

    “도윤 씨!!”

    피가 분수처럼 튀어 아몬의 얼굴을 적셨다.

    본인의 뺨 위로 흘러내리는 피를 탐욕스럽게 핥은 아몬은 고통스러워하는 주인을 음미하듯 쳐다봤다.

    “천천히 죽여 주마.”

    다시 한번 아몬의 손이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할 때였다.

    콰과과과광-!

    아몬의 육신이 앞으로 밀려났다. 그녀의 등 뒤로 작은 연기가 피어올라 왔다. 주인과 동시에 차원 이동을 한 박한별과 천지현 천태산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완전한 모습을 되찾은 아몬은 간지럽다는 듯 등을 긁으며 뒤돌아볼 뿐이었다.

    “오냐.”

    아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동시에.

    “끄아아아악!!”

    핏줄기가 사방에 퍼져 나갔다. 중상에 가까운 상처가 모두의 몸에 아로새겨졌다.

    압도적인 실력 차.

    아몬은 점점 더 힘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다음번에는 여기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지워 버릴 생각인지, 감당하기 힘든 기운을 내뿜었다.

    그녀의 주위로 검은 불꽃이 솟구쳤다. 동시에 모든 것을 녹일 듯한 열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만 죽어!! 이 버러지 새끼들아.”

    화아아악-!

    천도윤과 그의 일행들은 직감했다.

    저것에 닿는 순간 끝이라고!

    당장이라도 몸을 내뺄 준비를 할 때였다.

    “내 영역에서 미친 짓을 하는구나. 아몬이여.”

    “어떤 자식이 감히 내 이름을……!”

    뒤돌아보는 아몬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 * *

    ‘어떻게 된 거야?’

    [주인에게 말한 지역은 단순히 내가 살던 세계의 지형이 아니다.]

    ‘단순한 지역이 아니라니, 그럼?’

    잠시 머뭇거리던 반 페르데이스가 대답했다.

    [고룡들의 서식지.]

    나는 반 페르데이스의 말을 듣고는 헛숨을 들이켰다.

    나보다 한술 더 뜨는 소환수였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기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녀석의 선택은 탁월했으니까. 반 페르데이스는 상황을 모면하려고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격을 노린 것이다.

    ‘이 이쁜 자식!’

    당장이라도 녀석에게 뽀뽀해 주고 싶을 만큼 녀석이 기특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괜히 최상위 종이 아니라는 말인가? 나는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녀석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고룡의 서식지라니…….’

    다시 한번 감탄한 나는 갑자기 나타난 존재를 바라봤다. 아몬의 검은 불꽃을 꺼트린 존재가 고룡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겸손하게 굴어라, 아몬보다 더욱 무서운 존재니.]

    반 페르데이스의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의 눈가가 불안하게 떨리는 것을 보니 괜한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녀석의 몸은 과도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아몬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녀석은 우리는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다는 듯이 돌연 나타난 붉은 머리칼의 미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서, 설마! 테론 페르몬드?”

    아몬의 입이 떡 벌어졌다.

    “감히 내 이름을 부르다니 뭘 잘 못 먹어도 단단히 잘 못 먹은 것 같군.”

    많이 쳐줘 봐야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인상을 쓰자, 쿵, 아몬의 무릎이 땅에 닿았다.

    당황한 아몬의 사위가 불안하게 떨렸다.

    “이게 무슨…….”

    황당해하는 아몬의 손이 녹아내렸다.

    “끄아아아악!!”

    “시끄럽구나.”

    초연한 말투와 동시에 아몬의 왼손이 녹아내렸다.

    “으윽!”

    순식간에 양손을 잃은 아몬은 입을 꾹 다문 채 비명을 삼켰다.

    그 모습을 바라본 테론은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좀 낫군.”

    “끄으윽.”

    아몬은 충혈된 눈으로 테론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글지글 녹아내린 팔을 바라보면서도 입을 꾹 다문 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심한 듯 아몬을 내려다본 테론이 물었다.

    “사왕(死王)의 개가 여긴 무슨 볼일이지?”

    그때,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아몬의 입술이 거칠게 움직였다.

    “감히……!”

    “입까지 녹여 줄까?”

    테론 페르몬드의 물음에 아몬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아몬은 생각을 정리했는지 깊은 심호흡을 내뱉은 후 테론에게 말했다.

    “제가 잠시 흥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이곳에 온 것은 우연이자, 사고였습니다.”

    아몬의 태도는 한층 누그러진 상태였다. 아니 누그러지다 못해 한없이 정중한 예의를 차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의아한 얼굴로 반 페르데이스를 바라봤다.

    ‘원래 72 악마의 무력은 고룡과 맞먹는다고 하지 않았어?’

    내 물음을 들은 반 페르데이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분은 단순한 고룡이 아니다.]

    ‘그럼?’

    [저분은 지젠의 지배자이자 일족의 주인이지.]

    일족의 주인.

    한마디로 고룡중에서도 대장이라는 소리였다.

    녀석의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한 존재 중에서도 대장 격을 먹는 분이라고 하니 저 말도 안 되는 위압감과 아몬의 태도가 이해가 갔던 것이다.

    “그걸 지금 핑계라고 대는 건가?”

    싸늘한 음성이 주위를 메웠다.

    “정말입니다. 저는 지구에서 인간들과 전투 중이었고, 인간의 해괴한 꾀에 넘어가 이쪽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누가 악마 아니랄까 봐, 아몬은 순식간에 모든 사건의 원인을 우리에게로 넘겼다. 테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조금 전 일로 보아 심기가 불편한 게 분명해 보이는 모습.

    긴장감이 끓어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미쳤군. 아주 미쳐 돌아가고 있어.”

    테론의 냉소적인 음성이 공간을 울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저 미친 인간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사라지도록 하겠습니다.”

    아몬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표정을 밝히며 세 치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스윽.

    푸확-!

    그와 동시에 아몬의 혓바닥이 사라졌다.

    “끄…… 으…… 윽!”

    고통스러워하는 아몬은 ‘대체 왜?’라는 표정으로 테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테론이 입을 열었다.

    “그 모습으로 인간계에 있다는 말은 금기를 어겼다는 말 아닌가?”

    테론의 추궁에 아몬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젠의 지배자 테론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왕의 개여. 안타깝게도 널 살려 보낼 수는 없겠구나.”

    천근보다 무겁게 내리깔리는 테론의 말에 아몬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츠팟.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도망을 택한 것이다.

    양손을 잃고 말할 수 있는 혀마저 잃은 상태였지만, 아몬의 속도는 눈으로 좇기도 힘들 만큼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다.

    테론 페르몬드는 순식간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어진 아몬을 그저 바라봤다.

    멍하니 바라보다 입을 작게 벌리고는.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나는 두 눈에 힘을 집중시켜 상황을 지켜봤다.

    거의 보이지 않던 점 근처로 두 마리의 용이 달려들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반 페르데이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대한 기운.

    고룡이었다.

    두 마리의 고룡은 성치 않은 몸을 지닌 아몬을 농락하듯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녀석의 기운은 완전히 소멸했다. 차원이 다른 전투를 멍하니 지켜보던 우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타오르듯 출렁이는 붉은 머리칼을 가진 테론 페르몬드는 어느새 한곳에 모여 있는 우리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도 금기를 어긴 것인가?”

    웅혼한 목소리가 뇌리에 틀어박혔다. 절로 몸이 떨렸다. 조금 전 아몬을 처리하는 모습을 본 나는 황급히 애커만의 여행일지를 꺼내 보였다.

    “아닙니다. 저희는 단지 이것을 이용해서…….”

    애커만의 여행일지를 본 테론의 눈이 커졌다.

    “그건 설마! 애커만의 것이냐?”

    나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불쑥 내 앞에 다가온 테론은 고열의 입김을 내뿜으며 물었다.

    “애커만이 살아 있느냐? 너는 애커만이랑 무슨 관계의 인간인 것이냐!”

    궁금해 죽겠다는 듯 묻는 테론에게 나는 솔직하게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설명을 모두 들은 테론은 다소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어쨌든 금기를 어긴 것은 아니니 살려는 주겠다.”

    아몬에게 하는 것을 보아 테론은 인내심이 강하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참기보다는 주먹을 먼저 휘두르는 성격. 나는 테론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단!”

    테론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졌다.

    나 역시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저 녀석은 빼고.”

    테론의 손가락 끝에는 만년설의 비늘로 온몸을 채운 반 페르데이스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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