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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39화 (139/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39화

    139. 새로운 구도(1)

    “브레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은 녀석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인 나는 입을 쫙 벌렸다. 그 사이로 검은 기운이 용솟음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과!

    날카로운 날을 세운 후 맹렬히 회전하던 흑운은 울대를 통해 미친 듯 쏘아져 나갔다. 처음이었다. 내 목구멍에서 저런 무지막지한 힘이 쏘아져 나가는 것은. 지척에서 맞이하는 브레스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죽어!!”

    나는 두 손에 힘을 꽉 주며 녀석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페브니르의 망치질을 다른 곳에 사용해 힘이 빠져 있긴 했지만, 녀석의 움직임을 방해하기에는 충분한 힘이었다.

    “끄아아아악!!”

    녀석의 새된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목구멍을 통해 빠져나온 맹렬한 힘이 아몬을 찢어발길 듯 훑고 지나갔다.

    “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끝없이 이어졌다. 마침내 비명이 잦아들고 나자, 녀석의 몰골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의 상체는 완전히 곤죽이 되어 있었다. 하나 남아 있는 오른쪽 팔은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한 걸레짝이 되어 있었고, 얼굴과 가슴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진 모습이었다.

    녀석은 검은 피를 그륵거리며 뱉어 내고 있었다.

    “끄으윽.”

    검은 피를 쏟아 내는 아몬은 만신창이의 몸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러나 녀석은 더 이상 움직일 힘조차 없는지 반쯤 감긴 눈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윽, 그그극.”

    생명의 불씨를 다해 가는 모습.

    아몬으로부터 거리를 벌린 나는 주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암살이, 우마, 반 페르데이스가 동시에 움직였다.

    더해 아버지와 박한별 그리고 천지현까지 합류해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회복하기 전에 빨리 끝내야 합니다!”

    내가 소리쳤다.

    “네.”

    “알겠다.”

    동시에 대답이 들려왔다.

    “흐읍!”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반 페르데이스는 다시 브레스를 준비했고, 암살이는 거대한 낫에 죽음의 기운을 불어넣었으며 박한별은 푸른 도깨비불을 공중에 만들어 냈다.

    나 역시 온 힘을 담아 손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마무리할 차례였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녀석을 향해 공격을…….

    “너희는 내가 죽인다.”

    일순 또렷하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미친!”

    “이럴 수가!”

    순식간이었다. 녀석이 외형을 바꾼 건. 그곳에는 상처를 순식간에 회복한 아몬이 분노한 표정으로 있었다. 우리는 당황한 표정을 애써 수습한 채 서둘러 공격을 날렸다.

    회복할 시간을 더 주었다가는 정말 위험할지 몰랐다.

    [전력을 다해야 한다. 주인!]

    반 페르데이스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나를 다그쳤다.

    “나도 안다고!”

    소리친 나는 아몬을 향해 전력을 다한 공격을 맹렬하게 퍼붓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브레스가 쏟아지고, 죽음의 군주의 서슬 퍼런 낫이 휘둘러졌다.

    “버러지들이 발악을 하는구나! 금기 때문에 참고 있었는데 누굴 병신으로 아나!!”

    악에 받친 아몬의 비명이 들려오고…… 우리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강대한 기운을 맞닥뜨렸다.

    “말도 안 돼! 분명 회복할 시간이…….”

    나와 같은 쪽으로 자리를 옮긴 박한별은 놀란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상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한다는 브레스를 정면으로 세 번이나 맞고도 형체를 유지할 수 있다니…… 말이 안 되는 괴물이었다.

    아니 이것은 단순히 형태를 유지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나와 반 페르데이스가 날린 브레스는 브레스도 아니라는 듯 멀쩡한 모습이었다.

    “괜히 72 악마가 아니라는 건가.”

    읊조리듯 외친 나의 말에 대답한 것은 박한별이 아니었다.

    “감히 그 더러운 입으로 누굴 입에 담는 것이냐!!”

    아몬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인지하기도 전에…….

    눈앞이 흐려졌다.

    엄청난 격통이 온몸을 덮치더니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갑자기 나타난 기현상에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가슴이 길게 찢어진 나는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 냈다.

    “크윽, 이게 무슨…….”

    시야가 조금 돌아오자, 눈앞에는 날카로운 손톱을 세운 아몬이 서 있었다.

    왼손이 날아가고 오른손마저 너덜너덜했던 그 송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였다. 완전히 재생한 왼팔과 모든 상처를 회복한 아몬은 일전보다도 더욱 강대해진 모습이었다. 마치 강철로 피부를 몇 겹이나 덧댄 듯 조금의 약점도 보이지 않는 육신.

    [저게 진짜 아몬의 모습이다.]

    반 페르데이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웅혼하기 그지없던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어리다고는 하지만 모든 종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 그런 존재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돌연 드래곤만이 겪는 현상이 아니었다.

    “도, 도윤 씨. 저 죽나요?”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박한별이었다. 이내 암살이와 우마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나 역시 죽음을 목전에 둔 사형수의 느낌처럼 몸이 떨려 왔다. 의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엄청난 부상과 아득한 공포감이 내 정신을 빠짐없이 갉아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붙잡았다.

    조금이라도 살아남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살아남는 쪽이 설령 내가 아니더라도, 최대한 많은 인원을 살려 보내야 했다.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가슴을 부여잡은 뒤 소리쳤다.

    “도망쳐!!”

    각혈이 튀어나올 정도로 악에 받친 음성이었다. 주변에 있던 천지현과 아버지의 판단은 빨랐다. 아무런 대꾸도 없이, 스프링이 튀어 나가듯 몸을 튕기며 자리를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이거 왜 이래!!”

    “젠장!”

    하지만 그들은 일정 범위 밖으로 나아 가지 못했다.

    “공간이 가로막혔어요!”

    천지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하,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나?”

    아몬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검은 구 모양의 결계에 갇힌 우리는 완전한 외형변화를 마친 아몬을 바라봤다.

    뿔은 더욱더 자라나 있었고 피부는 검붉은색으로, 아름답다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매끈하게 회복되어 있었다. 더해 일전에는 보지 못했던 검붉은 화염이 그녀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내가 지금 기분이 굉장히 더럽거든? 설마 금기를 깨는 버러지가 내가 될 줄이야…….”

    아몬은 알지 못하는 말을 짜증이 난 듯한 모습으로 지껄이고 있었다.

    그러나 여유 넘치는 그녀의 태도에도 우리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우리는 목숨을 잃을 테니까.

    오싹.

    각성한 도깨비들의 왕 마고와 맞먹을 정도의 힘이 온전히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우선은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야 복수를 하든 가문을 지키든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수백 번의 상황을 돌려 봐도 살아나갈 수 있을 만한 상황이 떠올려지지 않았다.

    어느 선택을 하든 허무하게 죽는 것밖에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확정된 죽음을 느끼는 것은 태어난 이래로 처음이었다.

    바늘구멍조차 없어 보이는 희망.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꼭 모두를 죽여야겠나?”

    “지랄하네. 이제 와 살려 달라고?”

    아몬은 여전히 화가 가시지 않은 생각인지 나를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눈빛에서 나는 그녀의 마음이 절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푸라기처럼 남은 희망은 하나뿐이었다.

    “저자는 우리 가문이 아니다.”

    나는 검지를 펴, 한 곳을 가리켰다.

    “도윤 씨!”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박한별은 왠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나는 전혀 요동하지 않은 채 아몬을 똑바로 응시했다.

    “큭. 크하하하하. 그래서 뭐? 저년만 살려 달라 이거냐?”

    “너의 의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여자다.”

    “싫은데?”

    그녀의 단호한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입을 벌리려다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입을 놀린다고 하더라도 저 녀석의 선택이 바뀌지는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주인!]

    오른쪽에서 은밀히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왜!’

    [그걸 사용해라.]

    ‘그거라니, 시간도 없는데 돌리지 말고 정확하게 말해!’

    채근하듯 외치는 나의 말에 반 페르데이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외쳤다.

    [얼마 전 얻은 애커만의 마지막 유물 말이다!!]

    반 페르데이스의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

    나는 망설임 없이 애커만의 마지막 유물을 빼 들었다.

    “뭐냐, 그 다 낡아빠진 책은.”

    아몬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애커만의 유물은 다름 아닌 이 책이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낡은 모험일지.

    그곳에는 그가 모험한 수많은 도시와 인종. 그리고 그가 모험한 수많은 에피소드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위대하다면 위대하고 보잘것없다면 보잘것없는 물건. 하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유물에는 숨겨진 한 가지 숨겨진 능력이 있었다.

    [애커만의 여행일지]

    -위대한 여행가 애커만의 여행일지.

    -애커만의 여행 일지에 담긴 장소를 선정해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동 범위와 인구수는 시전자의 능력에 의해 결정됩니다.

    애커만의 여행일지에 적힌 설명을 다시 한번 읽은 나는 천지현과 박한별을 바라봤다.

    그녀들은 내가 든 책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템의 능력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

    ‘위대한 모험가’라는 수식어는 그냥 붙는 것이 아닌 모양인지 그는 지구만 여행했던 것이 아니었다.

    지구보다 그가 더욱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은 중간계, 그러니까 ‘이계’라 불리는 반 페르데이스의 고향이었다.

    [주인!! 엘레움이나 디센트, 페로노프중 하나를 외쳐라. 그것도 없다면 지젠을 외쳐!]

    다급한 반 페르데이스의 음성은 고향의 지명을 줄줄이 읊어 대기 시작했다. 녀석은 유일한 이계 출신.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반 페르데이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녀석과 지구를 분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나는 책 내용을 살펴보지도 않은 상태로 빠르게 외쳤다.

    “엘레움!”

    [삑! 이동 불가 지역입니다.]

    “디센트!”

    [삑! 이동 불가 지역입니다.]

    “페로노프!”

    [삑! 이동 불가 지역입니다.]

    상황이 워낙 급박한지라 빠르게 외쳤지만, 가능한 지역이 없었다.

    일순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모든 지역이 이동 불가능한 지역이라면 우리는 이곳에서 당하고 지구 또한 위험에 처하고 만다.

    초조함이 극에 달하였다.

    그리고 내 행동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몬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죽을 위기에 놓였더니 아주, 실성했군.”

    더해 아몬은 흥미를 잃었는지 당장이라도 움직일 기세였다.

    나는 황급히 마지막 남은 지역 이름을 외쳤다.

    “지젠!”

    동시에 아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미없다. 이제, 그만 죽어!!”

    [이동 가능 지역입니다. 이동하시겠습니까?]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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