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37화
137. 대격변(4)
콰앙-!
지축을 흔드는 강대한 기운을 느낀 우리는 달리던 걸음을 멈춰 세웠다.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껏 단 한 번. 그것도 전생에서 경험했던 심각한 문자.
가문이 괴멸 위기에 놓였을 때나 날아오던 전원 소집 명령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나는 걸음을 멈춘 뒤 박한별에게 소리쳤다.
“일단 상황 파악이 먼저입니다. 한별 씨!”
“네.”
박한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청화의 불꽃을 사용했다. 화륵. 하늘 위로 여러 개의 도깨비불이 나타나고…… 박한별은 도깨비불을 하늘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가 사라졌다.
위를 바라보자, 그녀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공중에 떠올라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오묘한 기술을 사용하는 그녀에게 소리쳤다.
“괜찮습니까?”
좋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요. 빨리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어느새 지상으로 내려온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나와 천지현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은 모양이었다.
천지현 역시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느껴지는 저 녀석 외에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빨리 가자.”
“그래.”
그녀의 눈빛에는 불길함이 가득 차 있었다. 단순한 불길함이 아닌 무언가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질 것만 같은 엄청난 불길함. 그 눈빛을 마주한 나는 당황했지만, 전혀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녀의 감정에 동화된 순간, 나 역시 불행한 일을 겪을 것 같았기에…….
애써 감정을 떨쳐 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쉬지 않고 달려 어느새 정문 앞에 도착했다. 평소라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어야 할 경비병조차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정말 긴박한 상황인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단숨에 철벽같이 우뚝 솟은 정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이, 이게 어떻게?”
우리는 참담한 현장에 말을 잇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수많은 가문의 일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피를 흘리고, 신체를 잃고, 눈을 까뒤집은 채로 목숨을 잃은 모습. 하나같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어딘가 기이하게 꺾이고 부러져 있는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결코 평범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그러나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살아 있는 녀석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었지만, 주변에 멀쩡한 사람은 없었다. 간간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마저도 곧 생명의 불씨를 다할 것 같은 상태였다.
“어떤 개자식이!!”
상황을 지켜보던 천지현이 소리쳤다. 그녀의 눈동자에 새빨간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특성 광기의 도살자가 발동하려 하는 것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눈빛이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그간의 노력을 통해 그녀는 의식을 잃지 않고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특성이 특성인지라, 그녀는 당장이라도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를 기세였다.
“당장 가자. 그 녀석 죽여 버릴 거야.”
화악-!
나는 터져 나오는 그녀의 살기를 온몸으로 느꼈다.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터져 나오는 날 선 살기. 평소라면 말렸을 테지만, 지금은 나 역시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미친놈.”
이건 마치 살육을 즐기는 미친놈이 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 전생의 그 날을 보는 것 같았다. 천지훈에 의해 가문이 멸망하던 날.
그날을 떠올린 나는 이를 바득 갈며 기감을 넓혔다.
사실 가문을 공격하고 있는 그 녀석은 집중하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로 강대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지만, 내가 찾으려는 것은 녀석의 기운이 아니었다.
강대한 힘에 숨어 다른 기회를 노리고 있는 녀석의 부하가 존재하지는 않나 살펴본 것이었다.
“저 녀석뿐이야. 더 이상 느껴지는 기운은 없어.”
확신할 순 없지만, 익숙하지 않은 기운은 하나뿐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나는 삭풍처럼 차가운 기운을 풍기는 천지현과 박한별에게 말했다.
“가자.”
“네.”
짧지만 의지가 느껴지는 대답이 들려왔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녀석에 분노한 그녀들은 기운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 * *
“꺄하하하! 역시 지구는 재밌어!”
즐거운 듯 웃고 있는 붉은 악마는 짧은 날개를 펼쳐 보이며 공중을 회전하고 있었다.
끄득-!
“끄아아아악!!”
공중에 떠올라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간을 바라본 악마는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어떻게 죽일까나?”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공중에 매달린 인간을 향해 손짓하던 그녀는 엄지와 검지를 접촉시켰다.
그러자.
퍼엉-!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인간을 바라본 녀석은 다시 한번 꺄르르 웃기 시작했다.
“재밌어. 재밌어! 너무 재밌어!!”
160cm 정도의 작은 키.
붉은 피부.
이마 양쪽에 커다란 뿔을 지닌 이 악마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 공중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이 악랄하고도 잔인한 악마의 이름은 불의 후작 ‘아몬’이었다.
“아, 또 재밌는 것들이 오고 있네.”
그녀는 황홀하다는 듯 혀를 내밀며 눈앞의 사내를 바라봤다.
사내는 다친 어깨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몬은 다가오는 사내를 보며 히죽 웃어 보였다.
그러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
“천가를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해 주지.”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비치며 발걸음을 떼는 사내는 다름 아닌 천가의 주인 천태산이었다.
그가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거대한 압력이 아몬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는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맹렬한 살기를 내뿜으며 아몬을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아몬은 조금 놀란 눈으로 천태산을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흥, 너랑은 안 싸워! 약한 녀석이 성가시기만 할 것 같단 말이야. 으~ 완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
그녀는 손을 휘휘 저으며 사내를 무시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승현은 놀란 눈으로 악마를 바라봤다.
감히 누가 천가의 주인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천승현은 놀란 눈으로 아몬을 바라봤지만, 아몬과 천태산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뿐이었다.
후욱-!
매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파앙-!!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아몬이 밀려났다.
시간과 공간을 무시하는 듯한 엄청난 공격. 그러나 아몬은 작은 날개를 펴 그 자리에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입은 상처라고는 뺨에 2cm가량 되는 작은 생채기뿐이었다.
“아프잖아!!”
아몬이 천태산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단순한 소리에도 주변에서 전투태세를 준비하고 있던 가문의 정예들은 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크윽! 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다들 긴장해!! 또 아까 같은 공격이 들어오면 우린 다 끝장이야!”
귀를 틀어막은 정예들은 조금 전 끔찍한 광경을 떠올렸다.
단순한 손짓 한 번에 수많은 천가의 일원들이 몸이 뒤틀려 죽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그 일은 엄청난 훈련에 익숙해져 있던 정예들에게도 두려운 장면이었다.
잠시 머뭇거리기를 반복하던 한 녀석이 조용히 읊조렸다.
“그전에 가주님이 저 녀석을 처리해야 할 텐데…….”
이에 가문의 정예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제각기 한마디씩 내뱉으며 자신의 두려움을 떨치려 노력 중이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전투를 벌이는 두 존재는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무지막지한 공격을 표정 변화도 없이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파바바밧!
“아, 귀찮게 진짜!”
“아몬이라고 했나? 왜 이곳에 온 거지? 너의 목표는 무엇이냐!!”
천태산은 끊임없이 엄청난 살의가 담긴 주먹을 날리며 물었다.
날 선 천태산의 물음에 아몬은 귀찮다는 듯 귀를 후비며 대답했다.
“말했잖아. 친구의 부탁으로 왔다고.”
“친구라니 그게 무슨…….”
천태산은 여전히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모습을 본 아몬은 실실 웃으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궁금해?”
음흉한 미소를 짓는 아몬은 자신이 악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천태산을 놀리고 있었다.
그러나 천가의 가주 천태산은 그런 저급한 도발에 넘어갈 인물이 아니었다.
“대답은 되었다. 가족의 목숨을 빼앗은 복수만 하면 될 뿐.”
냉랭한 대답에 김이 팍 식어 버린 아몬은 미간을 왈칵 구기며 말했다.
“거, 더럽게 무게 잡네.”
아몬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천태산의 공격을 가볍게 흘리며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네 아들.”
천태산의 공격이 우뚝 멈춰 섰다.
일순 침묵이 흘렀다. 잠시간의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천태산이었다.
“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아몬은 재밌다는 듯 킬킬 웃으며 대답했다.
“내 친구가 네 아들이라고.”
천태산의 눈이 부릅떠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니 예상은 하긴 했지만 부정하고 싶었던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천지훈…….”
만족한 듯 큭큭대며 고개를 끄덕인 아몬은 계속해서 말을 잇기 시작했다.
“크큭. 그래, 그 녀석이 나한테 그러더라고. 자신의 가문 애들을 몰살시켜 주면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말이야.”
아몬의 말에 천태산은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를 바득 갈았다. 동시에 슬픔이 깃든 눈동자를 잠시 내비쳤다.
순식간에 감춰버리긴 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을 최고의 오락거리로 생각하는 아몬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어머, 우리 천가의 주인께서는 아직도 아들이 그리운가 봐? 내가 그 녀석 근황 좀 이야기 좀 해 줘?”
“일없다.”
“아니 그러지 말고 들어 봐 굉장히 재밌는 이야기니까.”
아몬은 킬킬거리며 천가의 천태산을 흔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계획은 성공할 수 없었다.
“일없으시다잖아.”
투쾅-!
갑자기 날아온 공격 때문에.
순식간에 건물이 무너졌다. 웅대한 자태를 자랑하던 천가의 가주전이 허무하게 완파되었다. 거대한 돌부리가 그녀의 육신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후두두둑.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위로 떨어진 물건의 잔해들을 날려 버리며 외쳤다.
“누구야!!”
“나다.”
짧고 무성의한 대답. 아몬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의 주인을 찾은 아몬은 벌떡 일어나 목소리의 주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그녀가 이곳에 침입한 후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린 것은.
입 주위를 닦은 그녀는 분노한 얼굴로 천천히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강대한 힘을 내뿜기 시작했다.
“네놈이 죽으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아몬은 자신을 도발한 녀석과 그의 양옆으로 서 있는 두 명의 여자를 차례로 바라봤다.
하나같이 평범해 보이지 않는 인간들이었다.
아몬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그러나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몬은 한낱 인간 따위에게 잠시나마 위기감을 느꼈던 자신이 창피했다. 그녀는 이를 바득 간 채 말했다.
“천지훈이 그러더군.”
난데없는 이야기에 모두의 시선이 단번에 쏠렸다.
잠시 뜸을 들인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하찮은 미물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죽여달라고 말이야.”
굳어지는 인간들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미소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