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36화
136. 대격변(3)
넋이 완전히 나가 있는 천승현이 천가에 도착했을 때, 모든 천가의 일원들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유인즉, 천승현으로부터 천태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소식을 듣지 못했던 가문의 사람들도 대부분 모여 있었는데, 전국으로 나갔던 레이드가 사실상 거의 다 마무리되어 쉬기 위해 들어온 일원들이었다.
사실상 천태백이 이끌던 팀원이 가장 약한 녀석들이었기에 대다수의 일원이 본가로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터벅터벅 들어오는 천승현에게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거대한 관을 조심스레 들고 오는 천태백 팀의 부단장 천승현.
천승현을 발견한 천가의 가주 천태산이 소리쳤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보기 드문 흥분한 목소리였다.
천태산 역시 천태백에 대한 죽음만 들었을 뿐,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한 상태였다.
“일단 확인해 보시지요.”
천승현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어, 무거운 표정으로 손에 들려 있던 관을 조심히 내려놨다. 모두의 시선이 작지도 크지도 않은 나무 상자에 몰렸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이었단 말인가?”
“전대 흑운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황이 없어, 제대로 된 관 하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천승현의 무거운 목소리가 내려앉고, 천태산은 조용히 관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관을 열어 안에 있는 친형을 확인했다.
“…….”
천가의 일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열지 못했다. 안에 들어 있는 천태백의 몰골을 봐서가 아니었다. 천가의 가주 천태산의 슬픔이 온전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천태산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말없이 친형의 주검을 살피던 천태산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
“레이드에 실패한 것이냐?”
천태산의 물음에 천승현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레이드는 제법 피해가 있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마친 상태였습니다.”
천승현의 대답에 천태산은 미간이 미약하게 구겨졌다.
“알아듣게 설명하라.”
일순 공기가 무거워지며 대기가 진동했다. 천태산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천승현은 털썩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천, 천지훈이 나타났습니다.”
돌연 기억하기 싫은 것을 기억한 사람처럼 천승현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천승현의 대답에 천가의 사람들은 경악했다.
천지훈이 돌아오다니…….
천지훈은 그동안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할 만큼 완전히 사라져 있던 상태였다.
유일하게 침착함을 유지하던 천태산이 말했다.
“자세히 말해 보거라.”
어두운 얼굴의 천승현이 설명을 시작했다. 레이드가 있었던 순간부터, 전대 흑운 천태백이 죽는 순간까지. 빠지지 않고 상황을 나열했다.
“……그렇게 된 겁니다.”
상황을 들은 천가의 원로들은 경악했다.
그중 하나가 천승현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말도 안 된다! 천지훈이 어찌 그런 무력을 가졌단 말이냐! 흑운이 아무리 몸이 쇠약해졌다고 하기로서니 절대 그렇게 당할 분이 아니다!!”
“저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나, 사실입니다.”
단호한 대답에 당황하면서도, 원로는 계속해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너는 어찌 살아 있는 것이냐! 천가의 이인자가 죽었다. 한데 너는 어찌 살아 있단 말이냐! 네놈이 뭔가 계략을 꾸민 것이 아니더냐!!”
그 누구도 내뱉지 않았던 물음. 질문을 받은 천승현의 얼굴이 빳빳이 굳어 갔다.
“그건…….”
잠시 뜸을 들이던 천승현은 눈을 질끈 감고는 아직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천지훈이 자신을 일부러 살려 두었고, 천가로 돌아가 이 사실을 천태산에게 말하라고 했던 이야기…….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벌인 치욕적이고 부끄러운 행동은 내뱉지 않았다.
그 당시의 상황을 떠올린 천승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공포가 그대로 느껴지는 그의 얼굴을 본 천가의 사람들은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허, 대체 그 녀석은 무슨 생각으로!!”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대부분 새어 나오는 분노를 꾹 참는 느낌이었다. 흑운을 죽인 자가 한때, 천가의 후계자를 다투던 천가의 유망주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천가의 주인이자, 천지훈의 아버지가 앞에 있었다.
천가의 일원들은 말을 가려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한참이나 말이 없던 천태산에게 다가간 원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겁게 침묵을 유지하던 천태산의 입이 천천히 떨어졌다.
“천가는 그 어느 가문보다 은원이 확실한 곳이다. 갚아 줘야지.”
“그 녀석은 가주의 아들입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천태산이 입을 열었다.
“이미 말했다. 녀석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라고. 그는 천가의 배신자이자, 세계적인 범죄자일 뿐이다.”
단호한 천태산의 대답에 원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천승현을 바라봤다. 천승현은 여전히 그 당시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온몸을 떠는 중이었다.
천승현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린 원로는 천승현을 향해 물었다.
“또, 다른 말은 없었느냐?”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일족에게 다그쳐 묻는 것은 가혹한 행위였지만, 지금은 중대한 사안이었다. 가문의 위기라고 볼 수도 있는 상황.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천승현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준비하다니 뭘 말이냐.”
채근하듯 몰아치는 원로에 잔뜩 움츠러든 천승현은 재빨리 대답했다.
“서, 선물을…….”
더듬거리는 천승현의 말을 단번에 알아들은 원로가 소리쳤다. 분노를 가득 담은 외침이었다.
“뭐라? 선물?! 설마, 선물이 이것이란 말이냐!!”
원로의 손이 천태백의 싸늘한 주검을 가리키고 있었다. 천지훈에게 커다란 능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원로는 날카로운 살기를 내비치며 물었다.
“정녕, 녀석이 그렇게 말했단 말이냐!! 가문 원로의 시신이 선물이라고!!”
단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목숨이 날아갈 것 같은 매서운 살기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이에 천승현은 황급히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이것이 선물이 아니라…….”
“똑바로 말하거라!!”
원로의 기운은 당장이라도 천승현을 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천지훈이 그랬습니다. 가문으로 도, 돌아가면 아, 알게 될 거라고. 이미 모두 준비해 두었다고…….”
“그게 무슨!!”
천승현의 대답을 들은 원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녀석은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 것인가. 또, 선물이라니…… 이런 상황에 선물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천지훈이 천가를 능욕하려고 하는 것이라고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감히!!”
원로의 분노가 절정에 달했다. 지금의 기세만 봐서는 당장이라도 천지훈을 찾아 나설 기세였다.
그러나…….
“내 그 녀석을 찾아, 천가를 욕보인 죄를 모두 갚아…….”
그때였다.
“원로님!!”
다급한 소리가 들려오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원로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 * *
애커만의 보물 지도에 나와 있던 장소는 놀랍게도 한국에 위치한 곳이었다.
“허, 이런 게 있었을 줄이야.”
나는 애커만의 보물을 찾고는 혀를 내둘렀다. 애커만의 마지막 유물은 정말 상상치도 못한 귀한 물건이었다.
“설마 혼자만 사용할 거 아니시죠?”
“그러니까요. 너 그거 혼자 사용하면 진짜 나쁜 놈인 거 알지?”
보물을 찾으러 같이 나서준 박한별과 천지현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그 모습에 어이없는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대답했다.
“위험한 물건이야.”
“어쩌라고.”
“상관없어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대답하는 천지현과 박한별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고는 애커만의 마지막 유물을 도깨비보따리에 고이 집어넣었다. 저들을 말릴 방법은 없었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두 명의 여성이었으니까. 모든 것을 포기한 나는 박수를 짝 치며 나를 바라보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제 다시 수련하러 떠날까요? 슬슬 레이드에 시간을 쏟아붓는 게…….”
그 순간이었다.
띠리리릭-!
지이이잉-!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주머니에 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내 것뿐만이 아니라, 천지현의 주머니에서도 진동이 울렸다.
나는 자연스레 천지현과 눈이 마주쳤다.
나와 천지현이 들고 있는 헌터 전용 전화기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울리지 않게 설정되어 있었다. 국가 재난 상황이거나, 가문에 위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에야, 이렇게 요란한 소리를 낼 리 없다는 소리.
나와 천지현은 황급히 휴대폰을 확인했다.
헌터 협회에서 보낸 것이 아닌, 천가에서 보낸 메시지였다. 그곳에는 딱 4글자의 텍스트 메시지만이 쓰여 있었다.
[전원 복귀.]
척 봐도 심상치 않은 느낌의 알림이었다.
“아무래도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천지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가다니, 어디를요?”
의아한 목소리로 묻는 박한별에게 내가 말했다.
“천가로요. 아무래도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한별씨는 잠시 혼자서…….”
“같이 가요.”
“네? 한별 씨가 왜……?”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딱 봐도 심각한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박한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나는 그 호의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러면 감사하죠.”
“나중에 갚으세요.”
싱긋 웃는 박한별에게 웃는 얼굴로 화답한 나는 뒤를 돌았다.
동시에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껏 이런 문자를 받아 본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그것도 현생이 아닌 전생의 기억.
그것은 가문이 완전히 몰락하기 직전, 받았던 메시지였다.
하여,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나는 다급한 심정을 숨길 수 없었다.
“속력을 낼 겁니다. 잘 따라오세요.”
“여기서 느린 사람 없거든. 빨리 가기나 해.”
천지현 역시 뭔가 불안함을 느꼈는지, 나를 재촉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후, 지면을 박차기 시작했다.
* * *
천가의 근방에 도착한 우리는 멀리서 올라오는 연기와 폭음을 목격했다.
콰앙-!
콰과과과광-!
“도윤 씨!”
“예, 저도 봤습니다.”
폭음과 연기가 올라오는 곳은 천가의 본가가 위치한 곳이었다. 속력을 더욱 올렸다.
가문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내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가까워질 수록 가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독하고도 처절한 전투가 가문 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불길하고도 강대한 기운 하나가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나와 우리 팀원들은 그 녀석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악마?”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악마는 혼자서 지구에 출현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얼마 전, 대악마 록스 대공이 현현할 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급이 높은 악마가 지구에 나타날 때는 수많은 재물을 바쳐야 했다.
그런데 그런 악마가 천가 내부에서 나타나다니…… 이것은 가문에 천지훈과 같은 배신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불길한 느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조금 더 속력을 높였다.
“조심하세요. 지금 느껴지는 이 기운…….”
“예, 록스보다 강한 녀석인 것 같아요.”
박한별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언젠가 천우진에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마계를 지배하는 72 악마에 대해서…….
우리가 처리했던 록스는 대악마긴 했지만, 72 악마에 속하는 녀석은 아니었다.
그 말은 즉, 녀석보다 강한 녀석이 72마리나 존재한다는 소리.
“…….”
불행하게도…… 지금 느껴지는 이 기운은 록스보다 몇 배는 강력해 보이는 기운이었다.
나와 박한별, 천지현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다들 전투 준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