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34화
134. 대격변(1)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천가의 일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눈앞에 들어오는 광경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일원들은 하나같이 같은 표정이었다.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
얼이 빠져 있는 천가의 일원들에게 천둥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전원, 물러나라!”
흑운의 말에 따라 정신을 차린 천가의 일원들은 천태백의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물러난 그들이었지만, 일원들은 여전히 현 상황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허, 이게 무슨!”
급조된 팀의 부단장을 맡게 된 천승현은 작게 헛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평소 표정이 없기로 유명한 그였지만, 지금은 도무지 평정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본 풍경은 멸망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끔찍한 광경이었다. 어둠을 집어삼킬 듯한 검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거대한 해일이 들이닥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돌연 하늘뿐만이 아니었다.
지상 역시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괴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낙뢰가 미친 듯이 내리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용암이 들끓고 있었으며, 또 다른 한쪽에서는 혹한의 냉기가 불어닥치며 땅을 얼리고 있었다.
도무지 같은 장소라고 느낄 수 없을 만큼 기이한 현상이었다.
넋이 나간 천승현이 물었다.
“단장님, 정말 세상이 멸망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이곳은 게이트 안. 그럴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은 그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범상치 않은 이 현상은 척 보기에도 범상찮은 일이었다.
“괜찮을까요?”
천승현은 천태백을 바라보며 물었다. 타개할 자신이 있냐고 단장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천승현의 질문을 받은 천태백은 조용히 대답했다.
“아무래도 모두 살아가긴 힘들 것 같구나.”
평소 자신감이 과하다 못해 오만해 보이기까지 한 천태백의 발언에 일원들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
“그럴 수가.”
동시에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 했던 생각을 후회했다.
뭐가 천가고 뭐가 천태백이라는 말인가.
얼이 빠져 버린 일원들은 고개를 돌려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몬스터들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천태백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천지를 개벽하듯 몰아치는 혼돈 속에서 고고하게 서 있는 저 녀석들을 보고 있자면 도무지 살아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녀석들…….”
놀랍게도 각기 다른 기후의 땅에는 각각 한 마리의 몬스터들이 지엄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마치 제집이라도 되는 듯 벼락을 맞으면서도 평온해 보이는 녀석도 있었고, 용암 속에서 목욕하고 있는 작은 악마도 있었으며, 혹한의 설원 속에서도 전혀 춥지 않은 다는 듯 낮잠을 청하는 녀석도 있었다.
“모두, 전투준비!”
흑운 천태백이 단원들을 향해 외쳤다.
나이 든 노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그 패기 넘치는 외침에 모든 단원이 일제히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 기세가 마치 하늘을 뚫을 듯 강대했다. 아무리 당황했다고 치더라도 천가는 천가였다. 하나같이 괴물 같은 전투력을 자랑하는 녀석들.
일원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엘리트들답게 빈틈없는 공격 태세를 유지했다.
“다행히 저곳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녀석들은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몬스터들을 바라보던 천태백이 조용히 외쳤다.
실제로 각자의 영역에서 천태백의 단원들을 바라보는 몬스터들은 딱히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 딱히 관심 밖이라는 표정.
천가의 입장에선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꿀꺽.
침 넘기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려왔다.
확실히 저 3마리의 몬스터 중 만만해 보이는 녀석은 없었다.
가장 선두에 있던 천태백이 전방을 응시하다, 뒤를 돌았다.
그의 형형한 눈빛을 마주한 단원들 역시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
비장한 그의 목소리가 무겁게 떨어졌다.
“많이 죽을 게다. 각자의 목숨은 각자 알아서 지키도록!”
무겁게 내리깔린 노인의 음성.
천태백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이는 모든 단원이 똑같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단장의 말을 들은 단원들은 일제히 자신의 능력을 개방했다.
누군가는 천가의 피를 통해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를 공중으로 들어 올렸고 또 누군가는 몸 주위로 활활 타오르는 불을 머금기도 했다.
하나같이 초연하고도 결연한 모습.
가장 먼저 발걸음을 뗀 것은 역시 천태백이었다.
“저 녀석부터 가지.”
작은 음성과 함께, 천태백은 벼락이 미친 듯이 내리치고 있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어, 천가의 일원들 역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악!!”
“가자!!”
칠흑 같은 어둠이 일행의 머리 위를 덮기 시작했다.
공간을 단절시키고 기척을 지우는 힘.
흑운이었다.
흑운을 넓게 펼친 천태백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낙뢰를 모두 막아 내기 시작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뒤에서 따라오는 일원들을 모두 감쌀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넓이었다.
머리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를 확인한 천가의 일원들은 망설임 없이 몬스터에게 뛰어들었다.
“죽어!!”
이마에 거대한 뿔을 단 공룡 모양의 몬스터가 포효하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억!”
목숨을 건 처절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허억. 허억.”
“끄아아악!!”
“조심하라니까. 병신들.”
숨을 몰아쉬는 천승현은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러고는 완전히 날아간 왼쪽 어깨를 감싸 안으며 뒤를 돌아봤다.
멀쩡해 보이는 인간들이 없었다. 모두 하나같이 다치고 신체 일부를 잃은 모습.
천태백을 포함 남은 일원이라고는 채 10명이 되지 않아 보였다. 눈으로 빠르게 셈을 마친 천승현은 절망스러운 눈빛을 지었다.
“사, 살아남은 건 6명뿐인가?”
스무 명이 넘었던 단원의 숫자가 고작 6명으로 줄어 버린 것이다. 천승현은 충혈된 눈을 한 채 이를 까득 갈았다.
험난한 기후에 고고히 서 있던 몬스터는 그만큼 강한 녀석들이었다. 사실 6명이 살아남은 것만 해도 기적이라 볼 수 있었다.
‘흑운이 아니었다면…….’
모두 죽었으리라.
천승현은 조금 전 전투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절망과 절망이 계속해서 이어지던 처절한 전투였다. 동료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공격을 퍼부어야만 했던 긴박한 전투.
평생 해 왔던 레이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난이도의 녀석들이었다.
‘단장이 아니었다면 다 죽었겠지…….’
천승현은 살았다는 기쁨과 동료를 잃었다는 슬픔이 뒤섞여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표정 풀거라. 어쨌든 살아남지 않았느냐?”
천태백은 천승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복잡한 얼굴의 천승현이 뒤를 돌아봤다.
다섯 명의 동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처럼 신체 일부를 잃은 녀석도 있었고 비교적 상태가 멀쩡한 녀석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암울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같이 싸운 동료이자 가족을 이렇게 많이 잃었으니…….
게다가 미친 날씨로 인해 시신을 수습할 수도 없었다. 그 점이 가장 속이 쓰린 부분이었다. 죽은 녀석들의 신체는 모두 용암에 녹아 버리고 낙뢰에 그을렸으며, 얼음에 파묻혀 버렸다. 사실상 되찾을 수 없는 시신들이었다.
“젠장!”
“내가 좀만 더 강했더라면.”
“개 같은 몬스터 새끼들!!”
동료들은 하나같이 분노를 터트렸다.
“그래, 강해지자꾸나. 더는 가족을 잃지 않게.”
천태백의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지지 않을 겁니다.”
“몬스터들의 씨를 말릴 거예요.”
“이번 레이드가 끝나도 쉬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붉은 눈으로 자신의 의지를 내비쳤다. 이를 똑바로 바라보던 천태백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마음이면 된다. 이제, 나가자꾸나.”
짧게 말한 천태백은 이번에도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망연자실하고 절망하던 단원들이 하나, 둘 따라붙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천지가 개벽하며 들끓고, 내리치며, 휘몰아치는 소리가 고막을 울리고 있었지만, 오직 발걸음 소리만이 던전 안을 울리는 느낌이었다. 천태백은 평소보다 유독 느리게 걸었다.
계속해서 동료들이 파묻힌 자리를 응시하며 뒤돌아보는 단원들을 향한 배려였다. 하지만 그의 단원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 * *
“흑.”
“흐윽.”
흐느끼는 소리에도 천태백은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앞을 보고 걸을 뿐이었다.
그의 배려를 눈치챈 것은 부단장인 천승현뿐이었다. 그는 어느새 천태백의 옆에서 묵묵히 걷고 있었다.
한참을 걷던 천승현이 힐끗 옆을 바라봤다. 천태백의 얼굴이 온전히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바라본 천승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태백의 얼굴은 마치 ‘절대 잊지 않으마!’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내비치고 있었으니까.
이에 천승현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천태백은 결코 냉혈한이 아니었다. 오히려…….
천승현의 가슴에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리더…….’
이것이 진정한 리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천승현은 그 순간 다짐했다.
본가로 들어가는 즉시 천태백에게 부탁하겠노라고.
자신을 제자로 삼아 달라고. 자신을 거두어 달라고. 몇 날 며칠이든 매달릴 생각이었다.
‘방계인 나도 강해질 수 있어!’
천승현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가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천도윤 역시 천태백의 제자였다. 능력이 없어 쫓겨난 녀석마저 가문의 이인자로 만들어 버린 천태백의 능력이라면 분명 자신도 엄청난 실력자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강해지는 거야!’
천승현은 더 이상 약한 인간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동료를 지키고 싶었다. 지키고 지켜서 소중한 사람들과 오랜 기간 함께하고 싶었다.
그 작은 바람이 천승현을 간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은 곧장 실행력으로 이어졌다.
“저…… 대장님.”
그 순간, 천태백이 우뚝 멈춰 섰다.
천승현은 그런 천태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문으로 돌아가면 저를…….”
가문에 돌아가서 말할 생각이었지만,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천승현은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말을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저를 제자로…….”
“안 돼!!”
벼락 같은 천태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연 날아든 호통. 천승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벌써 예상하고 있던 것일까? 이렇게 빠른 거절이라니…….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어쨌든 천태백은 팀원의 목숨을 모두 구한 은인이었으니.
잠시 실망했던 표정을 숨긴 천승현은 재빨리 표정을 수습한 뒤, 천태백을 바라봤다. 그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천태백은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벗어난 것이다. 천승현은 그의 기척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경악하고 말았다.
자신이 스승으로 모시려고 했던 천가의 전설적인 존재. 천태백의 가슴이 무엇인가에 의해 꿰뚫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왜 갑자기 큰아버지가 튀어나와서 뒤지고 그러세요? 재수 없게.”
그곳에는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