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32화
132. 성장(3)
천지현은 알지 못했다.
우마는 어떠한 독도 막아 낼 수 있는 만독불침이라는 사실을.
“우마!!”
“어떻게……?”
당황한 천지현의 얼굴을 내려 보는 우마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동시에 황소 모양의 뇌전이 빠르게 천지현을 향해 쇄도했다.
파지지지직-!
재빨리 몸을 날린 천지현은 식은땀을 닦아냈다.
“천도윤은 대체 뭘 키우고 있는 거야!”
웬만한 몬스터는 한방에 비명횡사시킬 정도의 맹독을 지닌 오로치의 검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다.
“허.”
천지현은 헛숨을 들이켰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껏 긴장감을 끌어 올리는 천지현. 반면 천도윤의 소환수들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천지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들이……!”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천지현은 무기를 고쳐 잡았다.
“해 보자 이거지?”
이를 바득 간 천지현은 붉게 올라오는 기운을 한 차례 더 폭발시켰다. 더해 아껴뒀던 스킬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비장의 수로 꽁꽁, 숨겨 두었던 새로운 스킬 ‘페브니르의 망치질’을 시전했다.
“신속 강화!”
자신이 지닌 특성이나 스킬을 일정 시간 동안 강화할 수 있는 스킬인 ‘페브니르의 망치질’은 천지현이 숨겨 둔 필살기였다.
스킬 신속을 강화한 천지현은 신속의 이름이 바뀐 것을 확인하고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천지현의 상태창에 떡 하니 아로새겨진 새로운 스킬.
초신속(超迅速)
“반격 시작이다. 이것들아!”
소리친 천지현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마!!”
“크르르르.”
천도윤의 소환수들은 당황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위를 모두 베어 버릴 것 같은 흉흉한 살기를 내뿜던 천지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붉은 기운조차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리 빠른 움직임이라도 천도윤의 소환수가 천지현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살기 어린 기운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떤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붉은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더해, 속도까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우마를 포함한 천도윤의 소환수들은 모두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광기의 도살자를 버리고 상성이 극악이었던 흑운의 힘을 사용한 것이다.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서걱-!
“히이이이잉!”
평소 소리조차 잘 내지 않던 암살이의 흑마가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내뱉었다.
“내가 미친년처럼 날뛰기만 할 줄 알았어?”
그와 동시에 암살이의 낫이 매섭게 쇄도했다.
같은 힘을 느낀 암살이는 흑운의 기운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암살이의 낫이 공간을 갈랐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서걱-!
다시 한번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위대한 종족 반 페르데이스 쪽이었다.
그는 날개에 새겨진 깊은 상흔을 보며 신음을 내뱉었다.
“크롸라라락.”
분노 섞인 음성. 반 페르데이스는 보이지 않는 적을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느려!”
아무도 없는 허공에 작은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소환수들의 눈에 당혹이 깃들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치 자존심이 상한 질투의 화신처럼 폭풍 같은 공격을 쏟아 냈다. 점점 소환수들의 상처는 늘어 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소환수들의 눈에 두려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년설과 드래곤의 비늘로 이루어진 반 페르데이스의 신체마저 갈기갈기 찢어지는 중이었으니까.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반 페르데이스는 우마와 암살이를 거대한 날개로 감싼 채 힘을 방출했다.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무적의 스킬을 무제한 사용할 순 없을 터.
반 페르데이스는 시간을 끌기로 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만년설이 주변의 모든 것을 얼리기 시작했다. 곧 반 페르데이스의 주위로 거대한 얼음이 생겨났다.
그들의 신체 외부를 완벽히 차단하는 거대한 외벽은 그 무엇도 뚫을 수 없는 요새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카가가각.
가가각-!
천지현의 검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만년설을 두부처럼 잘라 내고 있었다. 절삭력을 극도로 높인 검신의 형태로 전환한 오로치의 검이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당황한 반 페르데이스는 계속해서 냉기를 내뿜었다.
만년설이 생성되는 속도보다, 잘려 나가는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
이대로라면 곧 다시 공격을 허용할 수도 있는 상황. 반 페르데이스는 있는 힘을 다해 만년설을 만들어 냈다.
“우마!!”
상황을 지켜보던 우마가 소리쳤다.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는 상태였지만, 우마는 어째서인지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알았다, 대장.]
우마의 외침에 짧게 대답한 반 페르데이스의 냉기가 더욱 강해졌다.
이젠 거의 만년설이 잘려 나가는 속도와 다시 만들어지는 속도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크윽!”
초신속을 사용하고 처음으로 천지현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비한 새끼들!”
천지현의 원망 섞인 질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 페르데이스는 얼음을 쏟아 냈다.
콰과과과과!!
얼마 지나지 않아, 천지현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젠장!”
그녀의 힘이 다했음을 확인한 반 페르데이스는 거대한 입을 들어 올리며 만년설로 만든 방벽을 사라지게 했다.
어울리지 않게 많이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녀석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까다로운 스킬이 이제는 사라졌으니까. 역전의 발판이 마련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간 고생했던 것을 모두 돌려줄 생각인지, 천도윤의 소환수들은 하나같이 형형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우마!!”
“크르르르.”
소환수들의 대장격인 우마는 암살이의 머리 위에 올라가 천지현을 가리켰다.
‘당장 돌격해 저 녀석을 해치워라!’라고 말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남들이 보았다면 귀여워 보일지 모르는 행동이었지만, 그들의 기세를 정면으로 받은 천지현은 결코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없었다.
우마, 암살이, 반 페르데이스는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자신의 몸에 상처를 아로새길 기세였다. 저릿한 살기를 온몸으로 느낀 천지현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오소소 닭살이 올라오는 기분. 오랜만에 전력을 다할 수 있는 호적수를 만난 느낌이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천지현의 음성이 나직이 깔렸다.
“아직 강화할 수 있는 스킬은 많이 남았거든?”
천지현의 몸을 감싸고 있던 흑운의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 * *
상황은 생각보다 어렵게 흘러가고 있었다. 무력 면에서는 내가 박한별을 압도하고 있었지만, 박한별은 좀처럼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도깨비불을 이용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내 빈틈을 집요하게 노려댔다.
“크윽.”
게다가 싸움의 열기는 점점 더 과열되고 있었다. 누가 다쳐도 단단히 다칠 수 있는 상황.
서현우가 없는 지금 팀원이 다쳐서 좋을 일은 없었다.
나는 허공에서 나와 머리 위로 방망이를 내리치는 박한별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까지만 하죠. 이러다 누구 하나 잡겠네요.”
“전 아직 더 할 수 있는데요?”
“제가 다칠 것 같아서 그래요.”
자존심 강한 그녀를 위해 내가 한발 물러나자, 그제야 그녀는 도깨비방망이를 내려놨다.
“그럼 승부는……?”
“한별 씨가 이겼습니다.”
못 말리겠다며 두 손을 들어 보이자, 박한별은 만족스러운 얼굴을 지어 보였다.
“그럼 이제 리더 교체인가요?”
박한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장난을 걸어 왔다.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저는 소환수도 사용하지 않았는데요?”
무심한 듯 말하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왠지 자존심이 상한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반대편을 바라봤다.
사실 나와 박한별의 전투는 의미 없는 것이었다. 내가 진짜 보길 원했던 것은 다름 아닌 천지현의 전력! 천지현은 내 소환수를 상대로 꽤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어느새 내 옆에 자리를 잡고 털썩 주저앉은 박한별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이길 것 같으세요?”
“제 소환수들이요.”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천지현의 새로운 스킬 ‘신속’은 가공할 만한 위력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나와의 대련으로 단련된 녀석들의 눈을 완전히 속일 수는 없었다.
나는 광기의 도살자와 함께 신속을 사용하는 천지현을 바라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차라리 광기의 도살자와 피의 연회를 버리고 흑운과 조합했다면 더 승률이 올라갔을 텐데.”
하지만 그것도 조금뿐이었다. 내 소환수 중에는 그녀와 같은 힘을 사용하는 암살이가 있었다. 같은 힘을 사용하는 존재들끼리는 그 효과가 반감되는 법이다. 결국 천지현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이게 끝이라면 실망인데…….”
나와 박한별이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부분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천지현의 성장은 조금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그녀의 성장에 욕을 하다니…… 남들이 봤다면 욕을 하며 경악할 만한 수준이었지만, 내 기준에서는 아직 한참이나 모자란 상태였다. 그녀가 말한 천우진의 실력이 사실이라면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치고는 너무 낮은 성장력이었다.
하여, 기다렸다.
그녀가 남겨진 패를 모두 사용할 때까지.
그때까지 그녀를 몰아붙이라고 소환수들에게 명령했다.
한참을 고전하던 천지현이 우마를 노리기 시작했다. 이는 전략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방법이었다. 우마는 다른 소환수들에 비해 낮은 전투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우마가 가진 능력치를 모르고 있었다. 만독불침. 그녀가 애용하는 에고소드는 우마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위험한데요?”
“그러게요.”
우마를 공격하는 것을 보고 움찔했던 박한별은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천지현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천지현은 점점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몰아붙여!”
내 명령에 소환수들은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천지현의 진정한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신속 강화!”
그동안 궁금했던 그녀의 새로운 스킬이 발동됐다.
그리고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효용 앞에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페브니르의 망치질’ 이름만 봐서는 장비 강화나 무두질에 사용될 만한 스킬처럼 보였지만, 이는 내 착각이었다. 나는 활력의 숨은 능력을 이용해 상대방의 상태창을 훔쳐볼 수 있었지만, 상세 내용까지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름과 등급으로 그 가능성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었다.
사실 내가 박한별과 천지현에게 싸움을 건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다. 천지현이 얻게 된 새로운 특성과 스킬들의 잠재력을 활용하기 위해!
“반격 시작이다. 이것들아!!”
소리치는 천지현의 목소리가 그리 사랑스러워 보일 수 없었다. 그녀의 신형이 사라지고, 매섭게 내 소환수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을 때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더 고민됐다.
그녀의 스킬 중 탐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신속? 페브니르의 망치질? 아니면 피의 연회?”
광기의 도살자를 제외하고는 준수한 스킬들이 널려 있었다. 고민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스킬 쿨타임이 끝나고, 다른 스킬에 ‘페브니르의 망치질’을 사용했을 때, 나는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완전 개사기잖아?”
천지현이 사라졌다. 같은 흑운의 사용자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은밀한 힘을 띠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