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31화
131. 성장(2)
“진짜 후회 안 할 거죠?”
박한별의 물음이 날아오고.
“허, 참. 목숨 버리는 일도 가지가지다.”
천지현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한별과 천지현은 서로를 동시에 마주 봤다.
“그렇다면…….”
서로의 눈빛을 확인한 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앙-!
화륵-!
순식간에 급소를 노리는 공격이 매섭게 들어왔다. 나는 재빨리 몸을 날려 바닥을 굴렀다.
“이젠 그만하라고 해도 소용없어요.”
박한별이 거대한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며 경고했다. 특성 야차를 이용한 빠르고 맹렬한 움직임. 투박하긴 했지만, 그 누구보다 단단하고 신속한 몸짓이었다.
그러나 박한별은 여전히 많은 힘을 조절하고 있었다.
“제대로 하세요. 한별 씨.”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 일침에 박한별은 미간을 구겼다.
“진짜 기어이.”
그때였다.
“죽어!!”
나는 허리를 젖혀 차갑게 날아오는 살기를 피해 냈다. 내가 서 있던 자리로 오로치의 검이 위협적으로 날아왔다.
“이렇게요.”
천지현의 공격을 피한 나는 오로치의 검을 가리키며 박한별에게 말했다. 박한별은 죽일 듯 나를 공격하는 천지현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 알겠어요.”
그녀는 짧게 대답한 후,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변으로 수많은 도깨비불이 나타났다.
화륵-!
호롱불 하나에 각각 다른 존재들이 나타나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외뿔 도깨비부터, 사자, 여우, 심지어 오니의 형상까지. 박한별이 그토록 증오하는 존재까지 불러낸 것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진심으로 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를 악다문 채 그녀의 공격을 피해 냈다.
박한별이 만들어 낸 수많은 허상은 결코 허깨비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콰앙-!
엄청난 풍압에 머리가 흩날렸다.
모두 하나같이 괴물 같은 공격력을 자랑하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그 공격의 방법도 다양했다. 어떤 호롱불은 팔을 늘려 공격하기도 했고, 짐승의 형상을 한 호롱불은 사나운 이빨을 들이밀기도 했다.
에워싸듯 몰려와 공격하는 도깨비불을 모두 막아 내기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제라도 포기하는 게 어때요?”
박한별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여유로운 모습으로 나에게 물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박한별처럼 실존하는 허깨비들을 만들 수는 없지만, 나 역시 신화급 스킬 청화를 사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였다.
화륵!
도깨비불을 이용해 이동하여 포위망 밖을 빠져나갔다.
박한별의 눈에 당혹이 깃들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콰앙-!
내 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박한별에게서 왕의 권위로 가져온 전설급 특성까지 있었다.
신체 능력과 전투 감각을 극도로 높여 주는 특성.
야차(夜叉).
나는 맹렬한 기운으로 단숨에 박한별의 허깨비를 박살 냈다.
이를 본 박한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 어떻게?”
도깨비불에 어떻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하나하나가 일당백의 능력을 발휘하는 녀석들을 어떻게 이리 손쉽게 해치울 수 있냐는 말이었다.
나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도깨비불은 한별 씨만 사용하는 게 아니니까요. 게다가…….”
온몸을 덮고 있던 흑운의 기운을 거둬냈다.
화아악-!
숨겨 왔던 힘이 가감 없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맹수 같은 존재감을 뽐내는 야차의 특성에 더해 한국 대표 가문의 축복 천가의 피가 더해져 은은한 붉은빛의 기운을 자아내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전혀 제약 없이 내뿜는 기운에 박한별의 동공이 흔들렸다.
“언제 이런 힘을……!”
박한별은 내가 내뿜는 힘에 야차의 힘이 섞여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혼란스러워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시작했다.
나는 곳곳에 뿌려 놓은 도깨비불 중 하나를 선택해 이동했다. 박한별의 뒤에 있던 호롱불을 타고 나타나, 그녀의 등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크윽-!”
기감이 발달할 대로 발달한 박한별은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놀라운 속도로 반응했다.
그러나 준비하고 노린 기습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었다.
매서운 속도로 회전하는 흑운의 힘이 박한별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크윽-!
나는 당황하는 박한별이 평정을 찾기 전에 계속해서 공격을 쏟아부었다.
“명색의 수장입니다. 제가 그렇게 쉽게 당할 줄 알았습니까?”
파바바밧!
찰나의 순간에 수십 합의 공방이 오고 갔다. 도깨비불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이매망량의 칭호를 가진 박한별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물리적인 힘만 놓고 본다면 내가 월등했다.
야차와 천가의 피의 조합은 상상 이상의 시너지를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공방이 쌓여 가면 갈수록 박한별에게 데미지가 누적되고 있었다. 박한별은 입술을 짓씹으며 소리쳤다.
“지현 씨!”
박한별의 다급한 지원요청에 천지현의 대답이 이어졌다.
“잠깐만요! 언니! 금방 갈게요!!”
하지만 천지현의 목소리에서는 그 어떤 여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우마와 암살이 그리고 위대한 존재인 반 페르데이스를 동시에 상대해야만 했으니까.
지금은 아마 박한별보다 천지현 쪽이 더욱 다급한 상황이리라.
대충 상황 파악이 끝난 박한별은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고는 빠르게 뒤로 빠지며 거리를 벌렸다.
“이대로 당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각오를 다진 박한별은 청화의 불꽃으로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 * *
천지현은 시작부터 죽을 맛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천도윤의 소환수들이 다짜고짜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귀여운 펫들이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상대해 줄 생각이었다. 힘을 아끼고 있다가 어느 정도 정리를 한 뒤 천도윤에게 모든 힘을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녀석들을 상대하기 시작하니,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죽음의 군주 암살이는 보는 것만으로 죽음을 떠올리게 할 만큼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같은 팀일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싸늘한 기운이었다.
처음 암살이의 낫이 움직였을 때, 천지현은 생각했다.
‘죽는다!’
그녀는 찰나지만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암살이의 기운은 살벌했다.
“천도윤 개자식! 대체 뭐라고 명령을 내린 거야!!”
암살이의 낫에 깃든 기운은 분명 피비린내가 진하게 묻어 나오는 녹진한 살기였다.
천도윤의 명령을 1순위로 따르는 충성심 높은 암살이의 성격으로 봤을 때, 암살이의 행동은 천도윤의 명령에 의한 것이 분명했다.
십중팔구 ‘죽여라’라든가, ‘목을 베어라’라는 식의 명령을 내린 것이 분명했다.
조금 거리를 벌린 천지현은 자신의 무기를 고쳐 잡았다. 완전히 각성한 에고 소드 오로치의 검이 날카로운 독니를 보이며 암살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로치의 검과 암살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천지현은 욕지기를 내뱉었다. 암살이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뼈. 독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오로치의 검이 자랑하는 공격이 반감될 수밖에 없는 상황.
천지현은 하는 수 없이 힘을 사용하기로 했다.
“너희들을 다치게 하긴 싫었는데.”
그녀의 몸 주위로 붉은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그녀의 특성 광기의 도살자가 발현되려는 것이었다. 천지현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그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가 완전히 이성을 잃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천지현은 완전히 광기의 도살자를 발현시켰음에도 차분한 표정이었다. 천우진을 따라다니며 얻은 특성 ‘냉철한 이성’의 활용 덕이었다.
그녀의 가냘파 보이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촤악-!
동시에 검은 피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
암살이가 타고 있던 흑마의 옆구리에 깊은 상처가 생겨났다.
이를 확인한 암살이는 분노했다.
죽음의 기운을 폭발시킨 암살이는 흑운의 힘을 더욱 진하게 풍겨냈다. 죽음의 기운과 흑운의 힘이 만나, 더없이 불길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러나 천지현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검은 피를 바라보던 천지현의 눈이 더욱 붉게 물들기 시작했으니까.
‘광기의 도살자’의 특성이 더욱 짙게 발현된 것이다. 피를 보면 점점 더 이성을 잃고 마는 그녀의 특성은 광전사와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었다.
싸우면 싸울수록, 피를 보면 볼수록 강해지는 특성.
어떻게 보면 박한별의 야차보다 더욱 무자비하고 급진적인 특성이었다.
“주인을 잘못 만났다고 생각해.”
싸늘한 천지현의 목소리가 공간을 에웠다.
아직 이성을 잘 잡고 있던 천지현은 돌연 춤을 추듯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광기의 도살자와 완벽한 합을 이루는 그녀의 스킬 ‘피의 연회’였다.
거기에 천지현은 천우진과의 합숙을 통해 얻게 된 또 하나의 스킬을 더했다.
“신속(神速).”
천지현의 신형이 사라졌다.
촤아아악!!
까가가각!
끄극!
수십, 아니 수백 번의 마찰음과 파육음이 들려왔다. 암살이의 흑마의 몸에 수많은 상처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은 돌연 흑마에게만 생겨난 변화가 아니었다.
암살이 역시 수많은 자상이 생겨났다.
그뿐만 아니라, 천지현의 뒤를 잡고 있던 반 페르데이스의 몸에도 작은 상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만년설로 덮인 드래곤의 피부에 상처를 낸다는 것은 그녀가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였다. 눈으로 좇기도 힘든 천지현의 움직임에 암살이와 반 페르데이스는 당황했다.
쉽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상상 이상의 무위를 보이고 있었다.
상황을 가장 빨리 파악한 것은 다름 아닌 우마였다. 암살이의 머리 위에서 전격의 힘을 두른 채 빠르게 그녀의 공격을 피해 내던 우마가 소리쳤다.
“우마!! 우마마!!”
다소 화나 보이는 표정으로 소리치는 우마를 본 암살이와 반 페르데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마의 명령에 맞춰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반 페르데이스였다.
그는 만년설을 이용해 주위를 얼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몸에 새겨지는 작은 상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끊임없이 냉기를 발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 전체가 얼어붙었다. 동시에 천지현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반 페르데이스와 우마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반면 천지현은 당황한 모습이었다.
“무슨 소환수가……!”
머리를 써 대며 자신을 공략하고 있었다. 마치 레이드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천지현은 뒷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라면 정말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지현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우마였다. 암살이와 반 페르데이스는 엄청난 방어력과 공격력을 지녔기 때문에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우마는 달랐다. 전격을 몸에 둘러 전광석화와 같은 움직임을 자랑하긴 하지만, 녀석의 공격은 나름 버틸만한 수준이었다.
‘우마를 먼저 공략해야 해!’
우마는 낮은 무력을 가졌지만, 가장 까다로운 녀석 중 하나였다. 녀석은 모자란 무위 대신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몸을 둔하게 만든 것 역시 우마의 계획이리라. 천지현은 먼저 머리를 담당하는 우마를 공략하기로 했다.
‘하나하나 차분히 헤쳐 나가면 돼.’
천우진과의 동행으로 숱한 위기 상황을 겪었던 천지현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적을 공략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 *
어느 정도 생각을 마친 천지현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발이 얼어붙고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었지만, 아직 전력을 다한다면 우마 정도는 손쉽게 잡을 수 있었다.
문제는 우마의 발아래서 우마를 지키고 있는 암살이 녀석이겠지만…….
천지현은 신속을 이용해 전력으로 암살이를 공격했다. 오로치의 검과 암살이의 낫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맞부딪혔다.
낫과 검이 힘을 겨루듯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암살이는 지지 않겠다는 듯 모든 힘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됐어!”
그리고 그것은 천지현이 노리던 것이었다.
맞부딪힌 오로치의 검이 돌연 검신을 늘리기 시작했다. 뱀과 같이 변한 오로치의 검은 맹렬한 속도로 암살이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던 우마를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우마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허용하고 말았다.
“으…… 우마!!”
우마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동시에 천지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로치의 맹독은 고래도 단숨에 잠재우지.”
승리를 확신한 천지현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