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30화
130. 성장(1)
한차례 전투를 마친 우리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후우. 죽겠네요.”
땀을 훔치며 한숨을 깊게 내쉬는 박한별을 바라봤다.
“언제 그런 기술을 익히셨어요?”
“신화급 칭호에 이런 기술 하나 없을까 봐요?”
박한별은 지친 몸을 일으킨 채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조금 놀랐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도윤 씨도 장난 아니던데요?”
“제가 했나요, 이 녀석이 다 했지.”
나는 아직 불러들이지 않은 반 페르데이스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푸른 비늘을 빛내는 반 페르데이스가 그릉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녀석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우와!!”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반 페르데이스를 면밀하게 살피는 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서현우는 처음 보는 생명체에 입을 떡 벌리고 서 있었다.
“드래곤이라니……!”
서현우는 반 페르데이스의 몸을 훑으며 여기저기 찔러보기 시작했다. 이어 계속해서 녀석을 만지기 시작했다.
[주인…….]
귀찮아하는 반 페르데이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반 페르데이스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디 갔어!”
갑자기 사라진 반 페르데이스를 찾는 서현우. 녀석은 내가 반 페르데이스를 불러들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나에게 다가오며 소리쳤다.
“아, 왜!! 좀만 구경한다니까!”
“그게 구경이냐? 괴롭히지 말고 쉬기나 해. 피곤할 텐데.”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젓자, 서현우는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한탄하듯 말을 내뱉었다.
“난 한 것도 없어서 피곤하지도 않다.”
한 것이라고는 스킬 하나 쓴 게 다라며 한숨을 내뱉는 서현우. 나는 녀석이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좀 들지?”
“아니, 오히려 맥이 빠지는데?”
서현우는 우리를 조금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풀이 잔뜩 죽은 모습.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봐도 박한별의 무위와 성장한 드래곤 반 페르데이스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천외천의 전력은 예상치보다 훨씬 강하다.’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밸런스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서현우가 분명 우리 팀에 도움이 될 만한 존재는 맞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열심히 어르고 달래 레벨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후, 갈 길이 머네.’
조금 전 발견한 사실에 의하면 너무 수준 차이가 많은 적을 해치울 경우 오히려 경험치가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현우의 레벨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박한별과 천지현이 얻은 경험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즉, 아직 녀석은 경험치조차 온전히 받아먹지 못하는 쪼렙이라는 소리다.
‘우리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녀석이 빨리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해!’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팀을 꾸려야 할지, 또 어떤 방식의 성장을 해야 녀석이 우리의 움직임에 맞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한참을 생각하던 나의 뇌리에 번개가 친 것은 그때였다.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생각해 보니, 나는 그 어디보다 레벨을 빨리 올릴 수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현실보다 훨씬 길고 응축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끝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차례차례 격파해 나가야만 살아나갈 수 있는 곳. 더해, 영혼의 탈피를 통해 격의 상승을 노려봄 직한 곳.
인버스 타워!
나는 재빨리 헌터 전용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는 가문으로 전화를 걸었다.
* * *
실행은 정확하고도 신속했다. 나는 서현우를 한국을 대표하는 가문 천가로 내려보냈다.
녀석은 영문도 모른 채 내 명령을 따라야만 했다.
“거기에 다녀오면 지금보다 몇 배는 강해져 있을 거예요.”
내 말을 들은 서현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지를 다지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서현우.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녀석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리 말했다.
“하긴, 천가의 교육 시스템이라면 분명…….”
아마도 천가에서 누군가의 교육을 받는다고 생각했던 모양. 그러나 지금 녀석이 가는 곳은 결코 가르침을 받거나, 기술을 익히는 곳이 아니었다.
‘인생은 실전이에요, 형.’
나는 속에 있던 말을 간신히 삼킨 채 서현우에게 아이템 하나를 건넸다.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져가세요. 형.”
내 손에 들린 것은 냄새나고 허름해 보이는 망토였다. 일명 사념의 망토. ‘망령화’를 통해 일정 층 이하로 내려갈 수 있게끔 해 주는 귀한 아이템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면 돼요. 아, 그리고!”
나는 돌아서려는 서현우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보를 말하기 시작했다.
“만약, 김수민이라는 자를 만나면 제가 보냈다고 해 주세요. 알아서 잘해 드릴 겁니다.”
“김수민…….”
서현우는 몇 번이고 이름을 곱씹은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선생님쯤 되는 사람이라 생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은 채 서현우를 내려보냈다. 아마 녀석이 인버스 타워에 들어갔다 나왔을 땐, 지금보다 몇 배는 강해져 있으리라.
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몇 층까지 내려갈 수 있으려나?”
문득, 힐러의 몸으로 녀석이 과연 몇 층까지 내려갈 수 있나 궁금해졌다. 힐러치고는 반사신경도 좋고 움직임도 괜찮은 편이었으나, 그것은 평범한 플레이어와 비교해서였다.
천외천의 기준으로는 녀석은 한참이나 부족한 상태. 그 차이를 메워야 하는 것이 숙제였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레벨 업과 실전 경험이었다.
만약 이 두 가지만 잘 갖춰진다면 녀석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리는 없을 터. 아마, 그 부근부터는 서현우는 천외천의 거대한 전력이 되어 있을 터였다.
나는 녀석의 바뀐 모습을 기대하며 다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박한별과 천지현 그리고 우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박한별의 품에 안겨 있던 우마는 손을 쫙 펼친 채 나에게 점프했다.
“우마!!”
단숨에 내 품에 안긴 우마는 베시시 웃으며 내 머리 위로 올라갔다.
유독 머리 위를 좋아하는 녀석은 내 머리칼을 약손에 잡은 뒤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우마, 너무해!”
“우마!!”
자신의 품을 떠난 우마를 향해 서운한 감정을 내비친 박한별은 세상을 모두 잃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허, 언니는 보면 볼수록 이상한 거 알아요?”
서현우가 사라지고 나자 한결 표정이 밝아진 천지현이 헛숨을 내뱉었다. 그에 박한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는 천지현을 향해 물었다.
“네? 뭐 가요?”
“몬스터를 쓸어버릴 때는 그렇게 무지막지하더니…… 지금은…….”
천지현은 박한별이 몬스터를 상대할 때와 우마를 대할 때의 온도 차이가 영 적응되지 않는 눈치였다.
이에 박한별은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그치만, 우마는 너무 귀엽잖아요. 무엇보다 저희 길드의 상징이기도 하고.”
박한별의 조금 붉어진 얼굴은 꼭 사춘기 소녀 같은 분위기였다. 그 모습에 천지현은 혀를 내둘렀다.
“언니, 진짜 안 어울리는 거 알죠?”
“…….”
박한별은 부끄러운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나저나 두 사람…… 진짜 뭐예요?”
“갑자기 난 왜, 또 뭐가?”
갑자기 튄 불똥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천지현은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얼굴로 말했다.
“왜 이렇게 강해진 거예요?”
아,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단지 이 타이밍에 나올 줄은 몰랐지만.
먼저 입을 연 것은 박한별이었다.
“아, 그건 지현 씨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저는 그 악마 새끼한테 흠집 하나 못 냈는데요?”
이번에는 천지현이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질투심이 잔뜩 묻어 나오는 표정.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한별은 피식 웃어 보였다.
“그건, 지현 씨가 전력을 다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에요?”
박한별의 물음에 천지현은 놀란 표정을 해 보였다.
“……눈치챘어요?”
“네, 아마 모르고 있던 사람은 없었을걸요?”
박한별은 그렇지 않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서현우는 천지현의 무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겠지만, 나는 이미 천지현의 달라진 상태를 알고 있었다.
천지현의 상태창은 나와 떨어질 때와는 많은 변화를 겪은 상태였다.
스킬이 추가되었고, 특성이 추가되었으며 심지어 꽤 그럴듯한 호칭까지 얻은 상태였다.
이전과 비교해 보면 놀라울 정도의 성장.
‘이번 기회에 천지현의 실력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럴 기회조차 없이 전투가 끝나버린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누가 들었다면 대악마를 상대로 미친 소리라 했겠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천외천이었다.
나는 조금 전의 상황을 되뇌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밀릴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내 생각 이상으로 우리 팀원들은 강했고, 상상 이상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매망량의 힘과 반 페르데이스의 힘.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로 대단한 힘이었다.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 지레 겁부터 먹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오히려 전에 겪었던 경험이 발목을 잡을 뻔한 상황.
나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여,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천지현의 숨겨진 힘을!
나는 놀라고 있는 천지현과 여전히 우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박한별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 * *
“뭐? 너 미쳤어?”
“도윤 씨!!”
당연하게도, 박한별과 천지현은 반발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며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료의 전력을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건 그렇지만…….”
“아군을 알아야 쓸데없는 도움이나, 움직임을 피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곧 승패를 좌우하기도 할 겁니다.”
내 단호한 음성에 박한별과 천지현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하나, 둘이 싸운다는 것은 영 찜찜한 모양이었다.
먼저 입을 뗀 것은 천지현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어? 아무리 그래도 동료끼리 싸우라니.”
“처음 날 봤을 때는 단검부터 들이밀어 놓고는…….”
“그때는…….”
천지현은 그 당시가 생각났는지, 말문이 막힌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천지현이 싸움광이기는 했으나, 어째서인지 옛날부터 박한별은 어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아마 박한별과 싸우기를 꺼려 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약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좋아요.”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박한별이었다.
“그런 이유라면 동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상대가 잘못된 거 아닌가요?”
박한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박한별의 낮은 음성이 이어졌다.
“조금 전이 제 전력이었어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박한별의 전력은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눈앞에서 펼쳐졌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천지현이었다. 박한별은 이 사실을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말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확인해야 할 것은 지현 씨의 전력이죠. 그리고…….”
박한별의 눈이 나를 향했다. 박한별의 섬섬옥수 같은 손이 나를 가리켰다.
“도윤 씨도요. 저는 매일 도윤 씨와 붙어 다녔지만, 아직도 도윤 씨의 전력을 몰라요.”
박한별의 말에 천지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암, 내 패를 보고 싶으면 네 패도 까는 게 예의지.”
그녀 역시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나 역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러면 이렇게 하죠.”
나는 천지현과 박한별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들은 조용히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두 분 다 동시에 덤비세요. 상대해 드릴 테니까.”
“허, 뭐라고요?”
“미쳤네. 천도윤…….”
어이없어하는 동료들을 향해 나는 썩은 미소를 날리며 말했다.
“설마 겁먹은 건 아니시죠?”
“저게 미쳤나!!”
“도윤 씨!!”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두 여성의 분노가 공간을 메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