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28화
128. 대악마(1)
“크하하하하!!”
“…….”
“어리석은 인간들아, 곧 종말이 도래할 것이다!”
삼류만화에서나 들릴 법한 대사. 어느새 주문을 외우던 악마 녀석의 음성이 번역되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치하기 그지없는 말에도 나와 천외천의 일원들은 웃을 수 없었다.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마기. 그 강대한 기운은 정말 종말에 상응할 만한 기운이었다.
“미친.”
방망이를 어깨에 두른 박한별이 입술을 짓씹었다.
마법진에서 튀어나오는 마기는 신화 등급의 능력을 두 가지나 가진 그녀조차도 긴장하게 만드는 기운이었다.
“모두 전투 준비하세요!”
다급하게 외친 한마디에 천외천의 동료들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장 선두에는 박한별이 혀를 날름거리는 검을 든 천지현과 함께 서 있었고, 뒤에는 내가, 후방에는 서현우가 자리해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무기를 꺼내든 채 마법진을 주시했다.
쿠구구구구.
대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은 마기가 기둥처럼 솟구쳐 오르더니, 이내 한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젠장!”
나는 다급히 뇌전을 내리쳤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검은 마기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고, 마법진의 기운은 더욱 상승할 뿐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상황을 지켜보며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비하는 일뿐이었다.
나는 황급히 암살이와 우마를 불러들였다.
“우마!!”
우마는 자연스레 암살이의 머리 위에 올라가 적을 주시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구구구구.
마침내 검은 마기에 둘러싸여 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이 응축되어 만든 존재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많이 봐야 15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
천진한 얼굴을 한 존재였다.
“악마?”
천지현이 작게 읊조렸다.
악마의 모습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악마들의 특징인 뿔조차 지니지 않은 남자아이가 눈앞에 서 있었다.
남자아이는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듯 자신의 몸을 둘러보고 있었다.
우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마법진과 쓰러진 악마들 그리고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던 주술사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때였다.
천진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은 거친 언어가 튀어나온 것은.
“병신 같은 새끼가……!”
악귀처럼 표정을 일그러트린 아이가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주술사에게 다가갔다.
퍽.
주술사의 얼굴이 돌아갔다.
“그 쉬운 일을……!”
퍼억!
주술사가 복부를 잡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못해서 일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빠각!
어린아이는 주술사의 다리를 짓이겼다. 다리가 부러진 주술사는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잘못…… 잘못했습니다.”
“닥쳐!! 죽어 이 새끼야!”
한참이나 구타가 이어졌다. 우리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수명이 다한 주술사의 몸이 축 늘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정신이 돌아왔다. 후련하다는 듯 손을 털고는 바닥에 침을 뱉은 녀석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너희들은 뭐야?”
“…….”
이쪽을 향해 다가오다 멈칫한 녀석이 말했다.
“가만, 이거 설마 네놈들 짓이냐?”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어린아이는 마법진과 목숨을 잃은 악마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전히 무기를 꽉 잡은 채 아무 말도 없는 우리를 본 녀석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한 걸음 더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음식을 음미하듯 우리를 바라보던 녀석은 박한별과 천지현을 지나쳐 나와 서현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에게 시선이 고정된 것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후의 일이었다.
“허, 너는……!”
녀석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동시에 온몸이 저릿할 정도의 살기가 온몸을 덮쳐왔다.
“조심하세요, 도윤 씨!”
박한별은 찰나의 변화에 반응하며 자신의 힘을 크게 끌어 올렸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너를 여기서 만나다니.”
기괴하게 일그러진 어린아이의 얼굴은 반가움과 분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아무리 보더라도 불손한 느낌이 그득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물었다.
“누구지?”
“나를 몰라?”
녀석의 표정이 한층 더 사나워졌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저런 미소년을 본 적이 없었다. 천가는 능력과 외모를 모두 갖춘 집단이었지만, 천가 내에서도 저렇게 완벽한 외모는 본 적이 없었다.
녀석은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내 강림을 두 번이나 저지해 놓고 뻔뻔하게…….”
악귀처럼 돌변한 녀석의 말을 들은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악마 록스가 당신을 기억합니다.]
처음 인버스 타워를 떠나기 전 들려왔던 알림음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녀석에게 물었다.
“록스?”
“건방지게…… 이제야 기억하다니.”
녀석은 마치 자신이 쉽게 불리면 안 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 역시 기운을 최대로 끌어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마치 내가 오니들의 왕 염비를 처음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몸이 떨리는 강대한 존재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조금 다행인 점은 내가 염비를 봤을 때보다 강해졌다는 것과 눈앞의 존재가 염비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건 약간의 위로일 뿐, 현 상황에 도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눈앞의 존재는 여전히 강대했고, 팀원들이 모두 덤빈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지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아마 질 가능성이 크겠지.’
나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재생시키며 녀석을 바라봤다.
록스는 가만히 나를 노려보다가 이내 재밌다는 듯 킬킬 웃기 시작했다.
“네놈이 제 발로 찾아올 줄이야.”
“생각보다 뒤끝이 기네. 명색의 대악마라는 녀석이.”
“키키킥. 강림하나 막겠다고 그 악을 쓰던 애송이가.”
전혀 타격이 없어 보이는 록스가 비웃으며 말했다.
나는 인버스 타워를 탈출하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온 힘을 다해서 겨우 조금 밀어내는 것이 다였던 참담한 상황. 나약했던 그 당시를 떠올린 나는 점점 표정이 굳어 갔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 애송이 때문에 넘어오지 못한 너는 뭐지?”
다소 도발적인 물음에 녀석은 흥미롭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뭐?”
“크큭. 역시 미개한 인간이란…… 넘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고 넘어가지 않은 것이다.”
“그게 무슨…….”
알 수 없는 말을 해 대는 록스는 돌연 표정을 바꾼 채 나를 바라봤다.
“내 오랜 기다림을 방해한 죄는 크다.”
“인간의 영혼을 취하겠다는 놈을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막은 것뿐인데 뭐가 문제지?”
“그걸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럼……?”
“타워에서 현현을 막은 것은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네놈이 한 일은 선을 넘었어.”
녀석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화악-!
집어삼킬 듯한 살기가 공간을 에웠다.
삭풍이 불어치듯 공간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대악마에 어울리는 강대하고 날카로운 기운이었다.
“온전한 강림을 방해하다니.”
아무래도 직전에 마법진을 더럽힌 것과 악마를 죽인 것이 녀석의 강림을 방해한 모양이었다.
“네 목으로 그 죗값을 받아 내겠다.”
꾸득-!
안광을 빛낸 녹스의 뼈가 괴이하게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갈비뼈가 튀어나오고 무릎이 늘어나며 점점 거대해지더니, 이내 5M에 육박하는 거대한 악마가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쫙 펼쳐진 날개와 날카롭게 돋아난 송곳니가 흉흉한 그의 기운을 더욱 매섭게 만들고 있었다.
살이 저릿해질 정도의 살기를 느낀 팀원들은 모두 전력을 끌어냈다.
“크윽!”
“조심해요!!”
당장이라도 날아올 것 같은 공격에 나 역시 숨겨 놨던 비장의 패까지 꺼내 놓기 시작했다.
쿠워어어어어!
푸른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비늘을 뽐내는 용. 반 페르데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상황을 목걸이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반 페르데이스는 나오자마자 위압적인 이를 드러내며 브레스를 준비했다.
그 사이 완전히 모습을 바꾼 록스는 한껏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들!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스산한 그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방심하고 있을 때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흑운으로 몸을 감싼 채 뇌전을 일으켰다.
콰르릉!!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고, 내 손에서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만년설이 쏘아져 나갔다.
콰롸롸롹!
회심의 공격이 록스의 마기에 의해 허무하게 막혀 버렸다.
“크윽!”
천지현이 움직였다.
두 눈을 새빨갛게 물들인 그녀는 자아를 가진 오로치의 검과 함께 록스의 발 사이로 달려들었다.
박한별 역시 지체하지 않고 공격을 이어 나갔다. 도깨비 불꽃으로 사라진 박한별은 이내 록스의 머리 위로 올라가 거대한 도깨비방망이를 휘둘렀다.
콰앙-!
하얀 연기와 함께 거대한 굉음이 들여왔다.
어지간한 몬스터쯤은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는 강력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내 들려 오는 목소리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크큭.”
명백한 조소에 박한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전력을 다한 공격에도 록스는 여전히 웃으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박한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깨비의 후예도 있었구나.”
녀석은 흥미롭다는 듯 박한별을 바라보다, 무엇인가 생각났다는 듯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네가 쓰는 그 힘의 주인. 도깨비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나?”
일순 박한별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모를 리가…… 우리가 그곳에 있었는데.
박한별은 도깨비들의 왕 마고가 사라지고 가장 크게 울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마고는 분명한 박한별의 스승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지 신이 나서 지껄이기 시작했다.
“완전히 붕괴 직전이지. 왜냐면 도깨비들의 왕이 사라졌거든.”
박한별은 킬킬대는 록스를 그저 지켜보았다.
록스는 발아래에서 펼쳐지는 천지현의 공격을 마기로 방어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그들을 죽일 거야.”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뭐?”
“그 천진한 존재들이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꼴을 보고 싶거든. 철저하게 도륙당하는 녀석들의 얼굴을 보면…….”
록스는 마치 새로운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여 줄까? 네 힘의 원천이 어떻게 당하는지? 아, 선조라고 해 봐야, 만나 본 적이 없어서 별로 슬프지도 않으려나?”
생각 없이 내뱉은 녀석의 말은 나와 박한별에게는 비수로 날아와 꽂히는 말이었다.
박한별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마고는 스승 같은 존재였다. 머리의 끈이 툭 하고 끊겨 지는 기분이었다.
이쯤 되면 녀석이 일부러 이 말을 꺼낸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선을 넘은 건 너야…….”
달라진 박한별의 태도에 록스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가 사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한별의 스산한 음성이 대기를 움직였다.
“도깨비의 푸른 불은 세상을 뒤집고…….”
록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건……!”
동시에 박한별의 주위로 수백 개의 호롱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더없이 푸르고 영롱한 불빛이었다.
수백 개의 깜빡이는 호롱불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혼을 홀리는 도깨비의 장난은 난장을 만드노니…….”
“이건 분명……! 도깨비들의 왕이 사용하는…….”
록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차갑게 내려앉은 박한별은 끊임없이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매망량의 힘을 받아 밤낮으로 날뛰리라.”
화륵.
수백 개의 호롱불이 점멸하듯 사라졌다.
도깨비들의 왕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승’의 힘이 발현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