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27화
127. 팀(4)
캬아아아악!!
붉은 털의 늑대, 거대한 트롤, 검은 피부의 좀비들.
한곳에 모여 있기 힘든 조합의 몬스터들이 무리 지어 달려들고 있었다.
빠르고 날카로우며 맹렬한 공격이 우레처럼 쏟아졌다.
겁에 질린 서현우는 재빨리 뒤쪽으로 거리를 벌렸다.
호들갑 스러운 그의 반응과는 달리, 나와 박한별, 천지현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그럼 진짜 실력 좀 볼까?”
박한별의 무력은 그간의 여행을 통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천지현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떨어져 있던 시간이 길었고, 천우진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 변화가 궁금했다.
나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들어 올린 천지현이 대답했다.
“놀라 자빠질 준비나 하라고.”
피식 웃은 천지현은 허리춤에 찬 오로치의 검을 빼 들더니, 밀려드는 몬스터 무리의 한가운데로 몸을 날렸다.
자살 행위라고 보일 정도로 천지현은 무모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보는 자신감에 기인한 것이었다.
거대한 몬스터의 몸집에 가려 그녀가 보이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녀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곳에 붉은 기운이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기운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미쳐 날뛰겠군.”
크아아아악!!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스산한 파육음과 피가 조화를 이루며 흩날렸다.
이에 박한별 역시 질 수 없다며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화륵!
퍼엉!
신출귀몰한 움직임을 자랑하는 박한별 역시 빠른 속도로 몬스터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괴물 같은 두 여인의 무력을 잠시 감상하던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손을 뻗었다.
단거리 공격이 주를 이루는 그녀들의 공격 범위를 한참 벗어난 곳을 향한 것이었다.
대기가 진동하더니, 날씨가 어두워졌다.
쿠르르릉
검은 먹구름이 사납게 울어댔다.
하늘 위에서 전격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곧, 뇌전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여의주를 문 용의 형상.
뇌룡 두 마리가 몬스터 무리를 사납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커진 뇌룡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은 나는 천지현과 박한별이 싸우고 있는 반대편의 몬스터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뇌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순식간에 몬스터 수십이 명을 달리했다.
이어 공격을 준비했다.
한 손에는 염화의 불꽃이, 다른 한 손에는 만년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진짜 괴물들이네.”
입을 쩍 벌린 서현우가 우리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진짜 내가 필요 없겠는데?”
서현우는 멍하니 바닥에 널브러진 몬스터의 사체를 바라봤다. 순식간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몬스터가 쓰러지는 시간은 짧았다.
서현우는 눈으로 좇기 힘들었던 전투를 복귀하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여기에 껴 있어도 될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그런 서현우를 무심하게 바라보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긴장해야 할 거예요. 앞에 있는 녀석들은 상대하기 쉬워 보이지 않으니.”
서현우는 풀어지려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넋이 나간 표정을 돌려놓는 동시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한차례 전투가 끝난 현장.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죽은 몬스터들과 울창한 산림을 형성하고 있는 나무들밖에 없던 탓이었다.
“뭔가 느껴지는 거야?”
“네.”
서현우는 믿기 힘들다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아무리 내가 강하다 한들 이렇게 조용한 산에서 보이지도 않는 적을 가늠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전투가 끝난 직후라 그런지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한바탕 소란에 놀라 몸을 숨긴 짐승부터, 저 멀리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들까지.
마치 산 전체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새삼 강해졌음을 느낀 나는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잠시 기다리죠.”
박한별과 천지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느낀 것이 분명했다. 산 중턱에서 전해져오는 흉흉한 기운을.
“어쩔 셈이에요?”
박한별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나보다 먼저 대답한 것은 천지현이었다.
“어쩌긴요. 당장 쳐들어가야지. 안 그래, 대장?”
박한별은 신중한 태도였고, 천지현은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전투의 흥분감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한 그녀의 광기를 바라봤다. 눈에 깃든 살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리기를 몇 분. 얕은 붉은빛을 돌던 광망이 흑색을 띠었다.
‘이제 됐군.’
안심하기 시작한 나는 조용히 말했다.
“당장 가고 싶긴 하지만, 아직 안 와서.”
“아!”
“맞네.”
“응? 대체 뭐가?”
모두 알아듣는 눈치였지만, 이번에도 역시 서현우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자, 기다리던 녀석이 나타났다.
흑운으로 몸을 감싼 채 은밀히 다가온 암살이는 내 앞에 이르러서야, 흑운의 힘을 풀었다.
고오오오.
죽음의 기운을 흩날리는 어둠의 기사는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한쪽 무릎을 굽혔다.
“으아, 깜짝이야. 이 녀석은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네. 기다리던 녀석이 이 녀석이야?”
서현우는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은 표정으로 화들짝 놀라며 뒤로 자빠졌다.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어 보인 나는 대답했다.
“응.”
그러고는 이어 암살이에게 다가가 웃기 시작했다.
“잘했어.”
녀석은 기쁘다는 듯이 이빨을 딱딱거렸다.
내가 암살이에게 시킨 일은 한가지였다. 경비대장 정윤철을 죽이는 것.
그래도 꽤 고전할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금방 처리한 모양이었다.
나는 새삼 나뿐만이 아니라, 소환수들도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갈 길은 멀겠지만 말이야.’
아직 고대의 도깨비들에 비하면 내 소환수들은 나약한 존재였다.
나 역시 오니들의 대장 염비와 도깨비들의 왕 마고가 싸우는 장면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무력이었다.
‘성급해하지 말자. 지금은…….’
정윤철을 떠올렸다.
경비대장 정윤철은 확실히 악마에 물든 인간이었다. 영혼을 팔았고, 그들의 부하가 되기를 자처했으며, 이곳에서 무엇인가 구린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경비원들은 잘 속여 왔겠지만…….’
나를 속일 수는 없었다. 내 눈에는 뻔히 보였다. 그 녀석의 상태창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상황.
나는 후에 닥칠 위험을 줄이기 위해 녀석을 죽이기로 했다.
암살이의 낫에서 굳어가는 피가 녀석의 목숨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의 증거였다.
나는 내 명령을 완벽히 소화한 암살이를 한 번 쓰담고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제 출발하죠.”
암살이도 돌아왔고, 천지현의 눈빛도 돌아왔으며 충분한 휴식도 취했다. 이제는 정말 저 산 중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울창한 숲의 중턱에는 메마른 나무와 죽어 있는 풀이 가득했다.
지나가던 짐승들조차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곳. 이곳은 악마들이 서식하기 시작한 곳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악마들이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는 곳이었다. 양쪽 이마에 거대한 뿔이 달린 작은 악마는 무엇에 홀린 듯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한 손에는 조악한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에는 새빨간 피를 묻힌 악마는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동그란 원과 네모,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괴이한 언어가 오와 열을 맞춰 바닥 위에 아로새겨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악마들은 점점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돌연 고개뿐만이 아니었다. 오만하고 욕심 그득한 얼굴을 지닌 악마들이 차례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위대한 존재라도 마주하는 것인지, 그들은 납작 엎드린 채 주술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악마들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외치는 주술사의 눈이 까뒤집히기 시작했다. 작은 악마의 주술이 더욱 빨라졌다.
툭.
투욱.
그에 따라 악마들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엎드린 악마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기다리며 천천히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어느새 스무 마리에 달하는 악마의 숫자가 열로 줄었다.
그러나 주술사는 결코 주술을 멈추지 않았다.
코피를 쏟아 내면서도 열렬하게 주문을 외워댔다.
그 사이 또 하나의 악마가 목숨을 잃었다. 픽 쓰러진 육신이 스르르 녹아내리며 산화했다.
허물어진 육신이 흩날리며 바닥의 원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크아악!
남은 악마들은 그것이 마치 축복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눈물을 흘리며 희생되기를 갈구했다.
흡사 광신도와 비슷한 그 기괴한 모습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열에서 아홉 아홉에서 여덟. 그리고 마침내 다섯 마리의 악마가 남았을 때,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한참 주문을 외우고 있던 주술사의 미간이 꿈틀댔다. 멈추지 않고 이곳으로 향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꽤 빠르게 다가오는 느낌이었지만, 주술사는 멈출 수 없었다.
고지가 눈앞이었다.
이 모든 주술만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주술사의 영창이 빨라졌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그때였다.
“소환술이라도 하려나 봐?”
생소한 언어였다.
주술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분명 멀리서 느껴지던 기운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코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가장 놀라운 것은 그 존재의 종족이었다.
인간!
나약하기 그지없는 종족이 인지할 수도 없는 속도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주술사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주술에 정신이 팔려 기운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정신을 차린 주술사는 마음을 다잡은 채 주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하면 완성이었다.
만약 인간이 우리를 훼방하러 온다 해도 상관없었다. 악마의 질긴 가죽은 인간의 공격으로 쉽게 뚫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몸 전체에 방어전용 주술을 두르고 다녔다. 인간의 공격에 당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인간이 엄청난 힘으로 주술진에 걸린 마법을 깨뜨리거나, 납작 엎드린 악마를 다짜고짜 죽이지 않는 이상에야 걱정할 것은 없었다.
주술사는 주문이 모두 끝난 뒤 위대한 의식을 방해하는 인간들을 모조리 해치우겠다고 생각한 뒤, 주문을 외웠다.
점점 인간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불안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주문을 외쳤다.
한 마리의 악마가 흩날리고, 또 다른 악마가 흩날려, 이젠 3마리의 악마만이 남았을 때였다.
콰직-!
주술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머리를 길게 길은 인간이 주문진을 망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짧은 인간은 바짝 엎드려 공격 의사가 없는 악마를 도륙하고 있었다.
실로 황당한 상황.
오랜 기간 준비한 역사적인 상황이 단숨에 물거품이 되고 있었다.
주술사는 진노했다.
당장이라도 주술을 취소하고 인간들을 모조리 씹어먹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에게는 숭고한 임무가 있었다.
얼굴을 잔뜩 구긴 주술사는 인간들이 더는 주술을 망치지 못하게 재빨리 주술을 시행했다.
오랜 베테랑인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망가진 주술진과 부족한 악마의 피는 자신의 걸로 대체했다.
순식간에 노화가 된 악마는 당장이라도 몸이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기괴한 얼굴을 마주한 인간들의 얼굴이 딱딱히 굳어지고 있었다.
“크크크크.”
당연한 일이었다.
이 기운을 느끼고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으면 인간이 아니었다.
지금 행한 주술은…….
‘미약하고 천박한 인간들이여. 모두 죽어라!!’
대악마를 지구에 강림시키는 주술이었으니까.
마법진에서 검은빛이 무서운 기세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