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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26화 (126/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26화

126. 팀(3)

“이럴 수가…….”

“상상 이상으로 심하네요.”

나와 박한별은 주변을 둘러보며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완전 폐허가 따로 없네요.”

“그러니까요. 유독 경남 지역은 피해가 크다더니.”

산화된 철근. 진하게 풍기는 피비린내. 흐느끼는 통곡의 목소리.

바라본 풍경은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한데 모아둔 느낌이었다. 나는 그동안 외면해 왔던 현실과 마주하자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더 빨리 왔어야 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러게요. 이렇게 심할 줄은…….”

그동안 해저 도시에 다녀오고 서현우를 훈련 시키느라 대한민국에 발생한 재해에 무심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예상보다 피해가 심하다.’

연신 뉴스에서 떠들어 대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본 실태는 더욱 참담했다.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강력해진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최소 A급 이상은 되어야 비교적 안전하게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었는데, 이 좁은 땅덩어리에 A급 이상이라고 해 봐야 채 2000이 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나라 곳곳에 터진 던전 브레이크를 막기에도 급급한 숫자라는 말이다.

하여 바깥출입을 잘 하지 않던 천가의 인원들도 모두 밖으로 나가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는 상태였다.

“등급이 낮은 플레이어들이 레벨을 올리면 조금 괜찮아지겠죠.”

“흐음. 그 전에 국가가 폐허가 되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박한별의 걱정스러운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서현우가 끼어들었다. 박한별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나는 그 표정을 보면서도, 위로의 말이나 희망적인 단어들을 내뱉을 수 없었다.

현실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참담했다. 게다가 머릿속에는 천지현이 천우진을 만나고 와 했던 말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녀석의 말.

지금보다 훨씬 강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거라는 저주에 가까운 예언.

나는 천우진의 말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폐허가 되어 버린 탈환지역을 벗어나, 아직 몬스터가 득실거리고 있는 위험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단단한 방벽으로 구축해 놓은 방어선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다가가자, 조그만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들이 칼을 빼 들었다.

“멈춰라!”

우리는 그의 말에 따라 순순히 멈춰 섰다.

여전히 날이 선 말투가 날아 들어왔다.

“여기는 출입 금지 구역이다. 돌아가.”

잔뜩 예민해진 경비병을 향해 나는 입을 열었다.

“천가의 천외천입니다.”

“……뭐라고?”

“천가의 천외천입니다. 저는 천가의 천도윤이고요. 위험지역 탈환을 위해 왔습니다.”

내 말을 들은 경비병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어 나갔다.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이야기 들은 게 없는데요.”

“예, 따로 연락을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 일단 거기 서 계십시오.”

잔뜩 긴장한 목소리의 경비병은 동료 한 명과 함께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진 경비병들은 이내 우리 얼굴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진짜 천외천이시군요!”

“천도윤 님!”

밝게 웃으며 한달음에 달려온 경비원들은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은 내 손까지 덥석 잡아가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이대로 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제발, 제발 저곳을 탈환해 주십시오. 아직 던전 브레이크로 쏟아져 나왔던 몬스터들이 한가득입니다.”

경비원들은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수척해 보이는 몰골이었다.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박한별이 말했다.

“저희가 왔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평소 확신은 독이 된다며, 몬스터가 관련된 일엔 확언을 하지 않던 박한별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당당히 말했다. 새삼스러운 모습에 나는 뒤를 돌아봤다.

박한별은 그간 고생한 경비병들은 안심시켜 줘야 하지 않느냐는 눈빛으로 나는 바라봤다.

살짝 미소 지은 나는 그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우리를 반기던 경비병들은 이내 정신이 돌아왔는지,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어서 경비대장님께 보고한 뒤, 들여보내 드리겠습니다. 야, 빨리 경비대장님 불러와!”

“네!”

처음 우리를 제지했던 경비병이 빠릿빠릿하게 대답한 뒤, 뛰어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경비대장이라는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매가 날카롭고 마른 체형의 남자였다. 그는 붉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우리에게 악수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방어선의 경비대장 정윤철입니다.”

“반갑습니다. 천외천의 천도윤입니다.”

손을 마주 잡자, 정윤철은 싱긋 웃는 미소로 말했다.

“귀한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도 영광입니다.”

가볍게 목례로 답하자, 경비대장이 말했다.

“경계선 밖 몬스터들을 소탕하고 싶으시다구요?”

“네, 많이 힘든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경비대장의 안색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그는 크게 상심한 말투로 말했다.

“예, 보셨다시피 저희가 살던 곳은 모두 폐허가 됐습니다. 협회에서 지원을 보내 겨우 방어선을 구축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상태이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절망스러운 상황입니다.”

경비 대장의 말을 들은 팀원들의 얼굴 또한 급격하게 굳어졌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저희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죄송하지만…… 곤란합니다.”

뜻밖의 대답에 팀원들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특히나,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서현우였다.

“엥? 잘못 들으셨나?”

서현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잔뜩 구긴 상태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서현우를 바라봤다.

“……알겠다.”

서현우는 대번에 내 눈빛을 읽고는 입을 다물었다.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이유가 뭡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경비대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의 말에 가장 발끈한 사람은 천지현이었다. 그녀는 오는 내내 서현우에게 시달렸던 스트레스를 풀기라도 하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저씨가, 우리가 누군지 몰라요? 천외천이라고요. 천외천!”

나는 조금만 긴장이 풀려도 미쳐 날뛰는 천지현을 진정시키기 위해 서현우를 바라봤다. 서현우는 그새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지현!”

“…….”

“조용히 해라.”

“……네.”

금세 시무룩해지는 천지현을 바라보며 피식 웃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경비대장을 바라봤다. 점점 굳어지는 내 얼굴을 본 정윤철은 흠칫 놀라는 모습이었다.

“제가 허락을 받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차가운 말투로 묻자, 경비 대장 정윤철은 미간을 와락 구기며 대답했다.

“아무리 천가의 사람이라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여긴 제 구역이고, 제가 통제하는 군사 시설입니다.”

어느새 눈빛을 고친 정윤철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너무 위험하다고요. 지금껏 저 밖으로 나가 살아 돌아온 자가 없습니다. 저 문밖으로 나간 이들 중에는 천가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절로 눈썹이 꿈틀거렸다.

반면, 정윤철은 미묘한 웃음을 숨기고 있었다.

티가 나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변화. 하지만 예리한 감각은 그 작은 움직임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저희 목숨은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단호하게 말하자, 정윤철이 받아쳤다.

“지금 대한민국은 혼란스럽습니다. 이곳은 저희가 잘 지키고 있을 테니, 다른 곳을 먼저 도와주십시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곳은 너무 위험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를 걱정해 주는 멋있는 군인의 태도라고 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저희가 위험한 겁니까? 아니면 저 안에 있는 존재들이 걱정되는 겁니까?”

“예?”

“아닙니다. 저희는 들어갈 겁니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보시지요.”

“무슨 이런 막무가내가…….”

나는 당황해하는 정윤철을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경비병들은 얼이 빠진 얼굴로 우리가 지나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문으로 향하는 우리를 보고 정윤철이 소리친 것은 몇 초가 지난 후였다.

“자, 잡아!!”

“……!”

“뭐 해!! 빨리 저 녀석들 잡으라고!!”

악을 쓰듯 내뱉는 경비대장의 말에 경비원들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걸음은 몇 발자국을 채 떼기도 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흑마를 탄 고고하고도 불길한 기사.

죽음의 군주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고오오오오.

흑운과 죽음의 군주 특유의 불길한 기운이 합쳐, 형용할 수 없는 날 선 살기가 피워 나왔다.

“히익……!”

“허억!”

우리를 제지하기 위해 다가오던 경비원들이 놀라 자빠졌다.

하지만 우리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문을 향해 다가갔다.

두꺼운 철문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콰앙-!

나는 귀찮다는 듯이 그 철문을 때려 부쉈다.

경계선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몬스터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접근해 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팀원들을 바라봤다.

“왜 안 물어?”

이상하게도 내 과격한 행보에 딴지를 거는 팀원이 없었다. 평소에는 다들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녀석들이었는데, 이번만큼은 너무 조용히 넘어가고 있었다.

특히나 힘을 과시하고, 그 힘을 이용해 남을 찍어 누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박한별조차 조용히 나를 따르고 있는 중이었다.

“왜 물어요? 딱 봐도 뒤가 구려 보이는 녀석인데. 표정만 봐도 알겠어요.”

“저는 그냥 첫 만남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요. 가식적이라.”

“난 그냥 너희들이 가니까…….”

각각 박한별, 천지현, 서현우 순으로 한마디씩 더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말을 모두 들은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하긴 내가 직접 뽑은 팀원들이다. 천외천의 팀원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누군가는 감으로 누군가는 어색한 그의 표정으로 정윤철을 파악했다. 한 명은 전혀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형은 아직 멀었네요.”

“이 자식이…… 내가 뭐!”

발끈하는 서현우를 향해 웃어 보인 나는 팀원들에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직 몬스터가 다가오려면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저 녀석, 어쩌면 천지훈과 같은 상황일지도 몰라요.”

일순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사실 내가 말한 것은 예상이 아닌 확신이었다. 경비 대장 정윤철의 상태창은 그가 나타났을 때부터 이미 훔쳐 본 상태였다.

상태창에 떡하니 자리 잡은 특성. [예속]과 [마기].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

아마 이곳이 마계와 관련된 곳일 테지.

갑작스러운 내 말에 팀원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박한별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

천지현은 침묵했으며.

“천지훈? 너희 형 아니야? 갑자기 세계적으로 현상수배가 걸린…….”

서현우는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에게 말했다.

“이따가 설명해 줄게요.”

서현우가 발끈하며 말했다.

“왜 이따 가야…… 왜 나만 모르는 것 같은데, 엉? 지금 설명해 주면……!”

“괜찮겠어요?”

나는 어느새 지척으로 다가온 몬스터 무리를 가리켰다.

“……이따가 말해 줘.”

어느새 우리를 둘러싸기 시작한 몬스터를 본 서현우는 빠르게 후방으로 이동했다. 훈련한 대로의 움직임이었다.

빠르게 마음을 다잡고 분노의 눈빛을 불태우는 서현우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나는 전투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조심해야 할 겁니다. 상상 이상으로 어려울 수 있어요.”

“저 못 믿어요?”

“내 수련의 성과를 보여 주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몬스터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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