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25화 (125/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25화

    125. 팀(2)

    천지현의 눈이 매섭게 내려앉았다. 척 보기에도 볼품없어 보이는 무력을 지닌 사내가 난데없이 도발하고 있는 모습이 실로 가당찮았기 때문이었다.

    “죽을 수도 있는데, 후회 안 하겠어요?”

    싸늘한 음성.

    어이가 없다는 듯 서현우를 바라보는 천지현은 서서히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천우진을 만나고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천지현. 그녀의 허리춤에 메어 있던 오로치의 검이 그녀의 기운에 반응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매서운 기세에 잠시 주춤한 서현우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입을 열었다.

    “전혀.”

    “하, 진짜 같잖아서.”

    천지현은 기가 차 헛숨을 내뱉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떤가 아가씨.”

    “말해 보세요.”

    “지는 사람이 이긴 사람 부하로 들어가는 걸로. 어때?”

    평소의 페이스를 찾은 서현우는 능글맞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천지현의 미간은 더욱 구겨지기 시작했다. 내기도 사람을 봐 가면서 해야지…… 저 녀석은 대체…….

    “더는 못 들어 주겠네요. 좋아요. 제가 이기면 죽었다고 복창하는 게 좋을 거예요.”

    천지현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서현우 역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세한 내기의 규칙을 정하기 시작했다.

    “기대하지. 공격은 단 한 번. 나는 피하지 않을 테니 내 몸에 피 한 방울이라도 나게 해 보게. 내가 이 원 밖으로 튕겨 나가거나, 조금이라도 다치면 당신이 이긴 거로 하지. 어떤가?”

    “허,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어처구니없는 내기 조건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천지현은 인상을 구겼다. 그러고는 맹렬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온몸이 저릿할 정도로 들끓는 에너지.

    형형한 눈빛을 머금은 그녀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쉬이이이.

    그리고 그녀의 몸을 따라 허리춤에서 작은 뱀 하나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보랏빛이 도는 매끈한 피부의 독사.

    얼핏 보면 귀엽기까지 한 그녀의 무기 ‘오로치의 검’은 그녀의 어깨에 도착하자마자 숨겨 왔던 강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실로 독살스럽고 불길하기 그지없는 살의였다.

    “허…….”

    이를 지켜보던 천도윤과 박한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들은 천지현의 성장에 놀라고 있었다. 동시에, 그동안 성장한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

    천지현은 저들의 반응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큰 성장을 한 것은 자신 역시 잘 느끼고 있는 점이었다. 그것은 주관적으로 보나 객관적으로 보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흥.”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생각보다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이 정도면 놀라 까무러칠 줄 알았는데.’

    역시 힘을 전부 내보이지 않은 탓이라 생각했다.

    잠시 서운했던 감정을 갈무리한 천지현의 머릿속에 또 다른 불만이 떠올랐다.

    팀원들의 반응은 그럴 수도 있다며 자위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의 상황은 문제가 많았다.

    지금은 동료로 받아들인다는 사람이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팀의 수장인 천도윤은 흥미롭다는 듯 웃고 있었고, 박한별은 아예 털썩 주저앉아 관람하듯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상황이었다. 천지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리 매정한 녀석들이 되었단 말인가? 그도 아니라면 설마 정말 저 녀석을 믿어서…….

    천지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감만은 천외천의 누구보다 예리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느껴지는 기운은 그저 그런 엉성한 플레이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저런 녀석이 숨겨 놓은 힘이 있어 봤자…….’

    천지현은 오른손에 힘을 그러모은 채 천도윤을 바라봤다. 오른손에는 어느새 오로치의 검이 얇은 검의 형태로 변해 들려 있었다.

    천도윤은 어깨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괜찮아.”

    천하 태평한 목소리에 천지현은 싸늘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죽이라는 거야?”

    “할 수 있으면.”

    천지현의 얼굴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혼란스러웠다. 정말 공격해도 되는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녀석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터럭만큼도 없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마음에 들지 않은 녀석이긴 했지만, 적은 아니었다.

    아무리 싸움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무의미한 살생을 즐기는 악귀는 아니었다. 천지현은 마음이 복잡했다.

    그에 따라 사납게 피어오르던 기운이 누그러지려 하고 있었다.

    “아, 졸려 죽겠네. 대체 언제 공격할 거요.”

    하품을 해 대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이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천지현은 서현우의 한마디에 마음을 굳혔다.

    “주제도 모르고 입을 놀렸으니, 팔 하나 떨어지는 것쯤은 감수해라.”

    혹한의 서리처럼 차갑게 내려앉은 그녀가 마음을 다잡은 채 검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광기의 도살자나, 피의 연회 같은 스킬조차 필요 없었다.

    그저 에고 소드인 오로치의 검에 힘을 주입한 뒤 내지르기만 하면 되었다. 저 순두부보다 연약한 육체는 종이처럼 찢겨 나가리라.

    ‘힐러라고 그랬으니, 팔 하나쯤은 스스로 붙일 수 있겠지.’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천지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뻗었다.

    쇄액-!

    주인의 의지를 담은 오로치의 검이 검신을 쭉 늘리며 맹렬하게 쇄도했다.

    아가리를 쫙 벌린 채, 오른쪽 어깨를 물어뜯기 위해 나아가는 오로치의 검.

    사악할 정도로 날 선 살기가 서현우의 오른팔을 우악스럽게 뜯어내기 위해 돌진했다.

    이제 곧, 피가 사방에 튀며 저 서현우의 어깨는 몸체와 분리되어 날아갈 것이 분명했다.

    “그러게, 실력이 없으면 입을 조심히 놀렸어야지.”

    천지현의 충고 아닌 충고가 장내에 나직이 울려 퍼졌다.

    콰직.

    오로치의 검이 녀석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천지현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신물이라 불릴 정도로 시전자의 힘을 증폭해 주는 오로치의 검이 너무나도 간단히 막혀 버린 탓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놀라는 건 에고 소드인 오로치의 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뱀처럼 휘기 시작한 오로치의 검은 자신의 공격이 이리 간단히 막힐 수는 없다며 분노하고 있었다.

    캬아아악!!

    천지현이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오로치의 검이 움직였다.

    자신의 공격을 간단히 막아버린 적으로부터 주인을 보호하기 위함인지 오로치의 검은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나갔다.

    찰나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시간에 수십 번의 공격이 행해졌다.

    늘어난 검의 끝에서 뱀의 머리가 돋아났다. 아가리를 쫙 벌린 오로치의 검은 몇 번이고 서현우를 공격했다.

    날카롭게 돋아난 송곳니 끝에서 독이 뚝뚝 떨어져 흘러내렸다.

    그러나!

    서현우는 그 어떤 공격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번뜩 정신을 차린 천지현이 오로치의 검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만!!”

    그러나 오로치의 검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주인의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눈이 돌아가 있었다. 이쯤 되면 주인의 안전을 지키기라기보다,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는 적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콰과과과!!

    1초가 지나고, 2초가 지나가고 있었다.

    쐐액-!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오로치의 검이 서현우의 얼굴을 물어뜯기 위해 다시금 돌진했다. 서현우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3초가 되었다.

    이젠 공격을 허용하는 순간, 치명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현우는 잔뜩 질린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끔찍한 고통이 찾아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캬악 대는 소리만 들릴 뿐, 얼굴에도, 얼굴을 막기 위해 들어 올렸던 팔에도 어떠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서현우는 한쪽 눈꺼풀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눈앞에 있었다.

    눈을 완전히 뜬 서현우는 그림자를 만들어 낸 물체를 확인했다.

    “형, 괜찮아요?”

    미쳐 날뛰고 있는 오로치의 검. 정신을 놓아 버린 검을 쥐고 있는 천도윤이 웃으며 서 있었다.

    * * *

    “이럴 수가…….”

    천지현은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 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천지현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 정도로 실력이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자신의 공격이 허무하게 막혀 버렸으니, 충격을 받을 만도 한 상황이었다.

    천지현은 넋 빠진 얼굴로 나와 박한별을 바라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면 어깨를 들썩였다.

    당장이라도 비밀을 말해 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둘의 불화를 끝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대화로 잘 풀어 가길 바라야지.’

    비밀이 유지되는 것은 아주 짧은 시간일 것이다. 당장에 레이드만 들어가도 들통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은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강제로라도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게다가…….

    ‘천지현은 자기가 한 말은 잘 지키는 타입이라…….’

    나중에 서현우가 쓴 스킬의 정체를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기에서 진 것을 부정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 생각은 박한별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 역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서현우와 천지현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의외로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합을 가장 잘 맞춰야 하는 관계니까요.”

    “맞아요. 광기의 도살자의 가장 큰 약점은 자신의 몸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는 점이니까요. 그 점만 개선되어도 지현이의 실력은 크게 올라갈 거예요.”

    정확한 분석이었다.

    박한별은 천지현에게 서현우라는 존재가 얼마나 커다란 빛이 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박한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마 저 둘이 합친다면 우리보다 더 빠르게 랩을 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저희도 지지 말아야겠네요.”

    “그래야죠.”

    짧은 대화를 마친 우리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

    “어떻게……?”

    천지현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나 보지?”

    반면 서현우는 편안한 표정으로 천지현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애초에 내기 내용이 진 쪽이 부하로 들어가는 것이기도 했거니와, 서현우가 천지현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천지현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궁금한 점을 묻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죠? 여러 능력을 봐 왔지만, 이런 방어 스킬은 본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데…….”

    “내가 왜 그런 것까지 알려 줘야 하지?”

    “그건…….”

    천지현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을 까발릴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팀원이라면 전략을 짜고 원활한 포지션을 정하기 위해 물을 수 있었지만, 먼저 그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천지현은 가만히 서서 입술을 깨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서현우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기의 내용은 잊지 않았겠지?”

    천지현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체념한 듯 천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제가…… 그쪽의 부…….”

    “응? 안 들리는데?”

    서현우는 악랄한 미소를 지으며 천지현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천지현은 입술을 꽉 깨문 채 말했다.

    “제가…… 당신의 부하가 되겠습니다.”

    흡족한 미소를 짓는 서현우.

    승자의 얼굴을 한 서현우는 악마 같은 미소를 유지한 채 천지현에게 첫 번째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흠흠, 목이 좀 마른 것 같은데……!”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외친 음성. 그러나 천지현이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까득.

    이빨이 부서질 정도로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지현이 홱 돌아서며 말했다.

    “물 가져다드리죠.”

    뒤돌아선 천지현의 눈에는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본 나와 박한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갈 길이 머네요.”

    “그러게요. 저 형도 참…….”

    어쩌면 처음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진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