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24화
124. 팀(1)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돌아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천지현!”
“지현 씨!”
나와 박한별은 반가운 표정으로 천지현에게 달려갔다. 반면 천지현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됐거든요.”
고개를 팩 돌리는 천지현. 우리는 천지현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있었다.
‘한 팀인데 너무 오랫동안 방치하긴 했지.’
도깨비들을 만날 때도, 어인들이 사는 해저 도시에 갔을 때도, 천지현은 팀에 합류하지 않은 채 홀로 다니는 중이었다.
‘천우진 녀석에게 천지현의 실력을 키워 달라고 부탁하긴 했지만…….’
그녀를 방치해 둔 것만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흑운의 딸에게 천우진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왠지 모르게 밀려드는 미안함에 나는 천지현에게 어색한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동안 너무 신경을 못 썼지? 미안.”
“됐거든.”
천지현은 여전히 토라진 모습이었다.
이어 박한별의 사과가 이어졌다.
“지현 씨. 저희가 미안해요. 갑자기 일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바람에…….”
“언니! 다 봤거든요. 멀리서 보니까 하하호호 웃으면서 스트레스까지 잘 풀고 있었으면서.”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건 훈련이었어요.”
“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천지에 들어오라고 할 때 들어가는 건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내뱉은 천지현의 말은 우리 둘을 당황 시키기 충분한 말이었다.
“천지? 형을 만났어?”
뜬금없는 소리였다. 갑자기 형을 만나다니…….
“그래.”
짧은 대답.
그러나 나는 더욱 캐물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무슨 일 있던 건 아니지?”
“일이야 많았지.”
무심하고도 성의 없는 대답. 천지현은 작정이라도 한 듯 뜸 들이며 음흉한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재촉했다.
“아, 장난치지 말고!! 빨리 말해 봐! 무슨 일인데?”
“왜 신경질이야. 죽을래?”
주먹을 내미는 천지현은 흠흠, 거리며 목을 가다듬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기를 했어.”
“뭐?”
“물론, 내가 이겼지만.”
“무슨 소리야. 좀 알아듣게 이야기해 봐.”
끊임없는 재촉에 천지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미간을 구기며 그간 있었던 일을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천지현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나와 박한별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천지현이 천진오와의 대결에서 이겼다는 것도 놀라웠고, 천우진이 모든 판을 만들어 형을 포함한 천지 녀석들을 모두 훈련시킬 계획을 세웠다는 것도 놀라웠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천지현을 압도할 만한 무력을 지녔다고? 그 천우진이?’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물론, 천우진은 타고난 플레이어였다. 힘을 숨기기 전만 하더라도 가문에서도 손꼽히는 영재였다. 하지만 천지현 또한 역대급 재능을 타고난 녀석이었다. 특성 ‘광기의 도살자’와 스킬 ‘피의 연회’의 조합은 그 누가 오더라도 쉬이 막을 수 있을 만한 공격력이 아니었다. 그런데 천우진은 너무나도 쉽게 천지현을 상대했다고 했다.
만약 천지현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천우진은 나와 박한별 이상의 무력을 가졌을 확률이 높았다.
“그 녀석이 언제…….”
녀석의 가장 친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녀석은 힘을 키울 만한 시간이 부족했다. 녀석은 내가 지시하고 준비해 달라고 하는 것을 빠짐없이 챙기고 있었다. 하나만 하기에도 벅찬 상황. 그 사이에 믿기 힘들 정도로 성장하기까지 했다.
상상치도 못한 방법을 쓰고 있지 않은 이상에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짐짓 심각해진 내 표정을 바라본 천지현은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틀림없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긴 한데, 숨기는 게 너무 많아 보여, 그 녀석.”
“그게 무슨 소리야?”
“마치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니까? 마치 한 번 살았던 인생을 다시 사는 것처럼 말이야.”
천지현의 대답에 나는 말문이 턱하고 막혀 버렸다. 그녀의 예리함에 놀란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잠시 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녀의 말처럼 인생을 다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천우진처럼 모든 일을 아는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미래가 완전히 틀어지다 못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까.
가문의 멸망은 막았지만, 천지훈은 전혀 다른 형태로 배신자가 되어 있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지…….’
어찌 보면 더욱 끔찍한 비극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천우진조차 겪어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더욱 이상했다.
‘어떻게 알고 그 많은 곳을…….’
천지현에게 들었을 때, 천우진은 마치 모든 히든 피스를 알고 있다는 듯 움직였다고 했다. 몇 번이고 겪어 봤던 일이 아니었다면 행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순간 한가지 가설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 녀석 조심해. 뭔가 불안하니까.”
천지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애써 살짝 미소 지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음흉한 녀석이기는 해도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을 거야.”
천지현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조금 꺼림칙한 감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천우진만큼은 믿고 싶었다. 그 녀석만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싶었다.
‘천우진을 한번 만나 봐야겠어.’
결심을 마친 나는 화제를 돌리기 시작했다. 알 수도 없는 녀석의 능력을 아무리 추리해 본다 한들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 *
나는 어느새 다가와 있는 서현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서로 초면이지? 인사해 여기는 새로운 천외천의 멤버야.”
천지현은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서현우를 바라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서현우였다. 서현우는 넉살 좋게 다가가며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하하, 반갑습니다. 선배님. 저는 서현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천지현이라고 합니다.”
서현우의 손을 마주 잡은 천지현의 고개가 갸웃했다.
“응?”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천지현의 눈빛을 마주한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 힐러야. 힐러. 전투 능력은 조금 떨어져도 앞으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어 주실 분.”
“아, 아!”
천지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서현우의 몸을 유심하게 살핀 천지현은 맥이 탁 풀려 버렸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다소 예의 없어 보이는 행동.
그 모습에 나와 박한별은 잠시 벙 찌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야 떠올렸다. 천지현은 첫 만남 때부터 나에게 칼을 들이밀던 정신 나간 여인이라는 것을. 천지현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강함’에 있었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일반인 기준에서 그녀의 행동은 예의에 어긋난 것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나는 서현우에게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수줍음이 많은 친구라 그래요. 신경 쓰지 마세요. 형.”
“그냥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데.”
서현우는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무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완벽히 파악한 모양이었다.
서현우는 내가 말릴 새도 없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천지현이 돌아섰다.
“뭐죠?”
“혹시,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습니까?”
사용하는 언어 자체는 공손했지만, 말투에서는 가시가 날카롭게 돋아나 있었다.
예리한 감각으로는 나를 뛰어넘는 천지현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천지현의 눈빛이 혹한의 서리처럼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아니요. 없는데요?”
“그럼 됐습니다.”
차갑게 대답한 서현우는 일을 키울 생각은 없는지 미련 없이 돌아섰다. 하지만 그 부분이 천지현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허, 잘못은 없지만, 불만은 있는데요?”
서현우의 몸이 다시 돌아섰다.
“불만이요? 뭐죠?”
“천외천은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무슨 생각으로 들어오신 거죠?”
천지현 정도의 실력을 지닌 플레이어라면 어느 정도 상대의 무력이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상대방의 걸음걸이, 호흡, 근육량, 마나 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천지현의 기준에서 서현우는 중간에서 조금 높은 수준의 플레이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일 터였다.
“천도윤 님께 물어보시죠. 저를 왜 스카웃했는지.”
천지현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설명하라는 눈빛이었다.
“우리 팀에 가장 필요한 포지션이었어.”
대답을 들은 천지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상위 게이트로 올라갈수록 힐러들의 사망률이 급증한다는 거 몰라? 차라리 비싼 포션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는 게…….”
“너를 위해서야.”
천지현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실제로 서현우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바로 천지현이었다.
나를 포함 세 명의 팀원 중 가장 다치거나 죽을 확률이 높은 것은 천지현이었다. 나는 원거리 딜러의 포지션이라, 다칠 확률이 애초에 적었고 박한별은 딜탱의 포지션이지만 도깨비불이라는 사기급 스킬이 있어 다칠 확률이 적었다. 하지만, 천지현은 아니었다. 전형적인 근거리 딜러 스타일. 광기의 도살자와 피의 연회를 통해 몸을 돌보지 않고 적을 쓸어버리는 데에 특화된 녀석이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서현우가 팀에 합류했을 때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 것은 다름 아닌 천지현이었다.
나는 이점을 녀석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천지현은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었다.
“힐을 몇 번이나 받는다고.”
천지현은 대부분의 힐러들이 금방 마나 고갈로 퍼진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부분에서는 걱정 안 해도 돼.”
“그게 무슨 소리야?”
“현우 형의 마나 통은 보통 힐러들의 몇 배는 되니까.”
서현우는 밸런스가 완벽하게 잡힌 힐러였다. 높은 등급의 힐은 물론이요. 약하게 훼손된 신체는 금방 이어붙일 수 있는 ‘신체 복구’에다가, 힐러들이 가장 스트레스받는 마나까지 완벽하게 커버할 수 있는 ‘마나 하트’까지.
힐러의 자질로 본다면 서현우는 최상위 클래스였다.
이 부분을 설명하자, 천지현의 기세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나는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처음부터 팀의 불화를 만들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첫 이미지를 바꿔 화목을 도모해둘 필요가 있었다.
“어때? 이 정도면 쓸만하지 않아? 네가 적진 한가운데서 미친 듯이 날뛰어도 다치지 않는다고 생각해 봐.”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썩 괜찮은 모습인지, 천지현의 고개가 미세하게 끄덕거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젓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또, 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하지만 결국 저렇게 약한 몸뚱이로는 짐밖에 되지 않아. 우리가 계속해서 지켜 줘야 한다고. 그런 리스크를 갖고 갈 필요가 있어?”
“죽지 않아.”
“그걸 어떻게 장담해. 척 보기에도 나약해 보이는 고만. 규격 외 던전에서는 눈먼 공격에도 죽고 말걸?”
천지현은 당사자 앞이라는 것을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의 생각을 내뱉었다.
레이드는 목숨이 걸려 있기에 어느 정도 과격한 발언은 어느 정도 허용 가능한 부분이었다.
‘그래도…… 처음부터 이 정도로 어긋날 줄은 몰랐는데…….’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확인해 봐.”
“뭐를.”
“현우 형이 눈먼 공격에 정말로 죽을 정도인지 말이야.”
“그걸 어떻게 확인하라는…….”
“기다려 봐.”
천지현의 말을 끊은 나는 바닥에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원. 그 안에 다소 화나 보이는 서현우를 세워 넣었다.
천지현은 의문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공격해 봐. 전력으로! 만약 현우형이 네 전력을 다한 공격을 막아 낸다면 동료로 인정하는 거야. 어때?”
천지현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분을 죽일 셈이야?”
천지현은 자신의 공격에 서현우가 당할 것이 분명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리 생각하는 사람은 천지현뿐이었다.
의도를 파악한 박한별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현우도 마찬가지였다.
“어이, 아가씨. 공격해 봐!”
거만한 미소를 지은 서현우의 도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