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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23화 (123/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23화

123. 전쟁 준비(7)

천지현은 충남 보령으로 향하기 전 천우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세상은 크게 변할 거야. 한 명이라도 더 강한 녀석들이 필요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 하지만 그간 천우진의 행보를 지켜본 입장에서는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말이었다.

어떻게 안 것인지, 천우진은 게이트 근처에서 천지를 만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에게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하기까지 했다.

이후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천진오를 자극해 내기를 유도하라고…….

이 이야기를 들은 천지현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속한 천외천의 리더 천도윤이 강력한 무력과 천가의 이인자라는 지휘를 지니고 있긴 했지만, 천진오 역시 가주의 후계자였다.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 아니 만만히 보기는커녕 가장 눈치를 봐야 하는 인물이었다. 언제 가주가 될지도 모르는 녀석이었다. 언제라도 자리가 뒤바뀔 수 있는 상황.

그런 자에게 도발을 하라니…… 자신이 아무리 싸움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천진오에게 대드는 것은 결코, 현명한 판단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천우진은 협박과 회유를 통해 끝끝내 자신의 요구를 실현시켰다.

“나쁜 놈.”

이를 바득 간 천지현은 저 멀리서 천진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천우진을 노려봤다.

-아마 이 산을 떠날 때쯤, 넌 혼자 내려가야 할 거야.

의미를 알 수 없던 천우진의 마지막 말.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혹시 보령 게이트 외에도 의뢰를 받은 곳이 있습니까?”

“제주도에 하나 남아 있긴 한데…….”

“언제 가실 생각이십니까?”

“내일.”

“그럼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천지현은 멍한 표정으로 천우진을 바라봤다. 정말로 녀석의 말은 모두 현실이 되었다. 같이 다니는 동안 항상 느끼고 있던 것이었지만, 녀석은 강하고 똑똑했으며, 소름 끼칠 정도로 예측에 능했다.

마치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하듯 일을 척척 진행해 나가는 데 그 꼴이 마치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드라마 속 악역 같았다.

“아무래도…….”

급격히 차가워진 천지현을 향해 천지와의 합류를 결정한 천우진이 다가왔다.

금세 마주 보게 된 둘 사이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천우진이었다.

“너는 이 길로 내려가 천외천에 합류해. 도윤이에게는 더 강해지라 일러 주고.”

“……진짜 네가 말한 대로 됐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알겠지?”

다시금 확인받고 싶어 하는 천우진을 빤히 바라본 천지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받은 게 있으니, 그 정도는 해 줄게. 그런데…… 말해도 돼?”

천지현은 당신과 있었던 일을 천도윤에게 모두 말해도 되는지 물어봤다. 천지현의 물음을 들은 천우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말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잖아.”

천우진의 대답에 천지현 역시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잘 아네.”

“…….”

“매번 말하지만, 너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서 오히려 믿음이 안 가거든.”

천지현은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내비쳤다.

천지현을 강하게 만들어 준 것은 분명 천우진이었지만, 천지현은 항상 천우진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주기적으로 그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출했다.

항상 지켜보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눈치 빠른 천우진은 익숙하다는 듯,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맘대로 해. 다 말해도 좋으니까, 강해지는데, 전념하기나 하라고 전해 줘.”

의심을 받는 것까지도 전혀 상관없다는 말투.

천우진의 대답에 천지현의 고개가 기울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조급해하는 이유가 뭐야? 정말 세상이 지금보다 더 미쳐 날뛸 거라고 생각해?”

천우진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소꿉놀이 정도일 거야. 빠르게 강해지지 않으면 다 죽을지도 몰라.”

천우진의 대답에 천지현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다시 봐도 진중한 얼굴이었다. 두려움이 강하게 묻어 나오는 그의 눈빛에 천지현은 당황했다. 천우진은 지금껏 항상 자신감 넘치던 녀석이었다. 또 그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지금 천우진의 표정은 맹수를 만난 사슴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천지현은 믿기 힘든 천우진의 말에 당황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천외천이 가진 무력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적이 몰려올 거라는 말이었으니까.

허탈해하는 천지현과는 달리, 자신이 할 말은 모두 끝낸 천우진은 고개를 돌려 천진오의 팀을 바라보았다.

“저들도 천가의 피를 타고났으니, 1인분은 할 수 있겠지.”

감히 천가의 대표 팀 천지에게 이리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한 천지현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오직 천우진만이 가능한 말이었다.

천우진이 천지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한가지였다. 우연을 가장해 그들의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당사자들이 들었더라면 코웃음을 치다 못해 죄를 물을 정도로 오만한 생각이었지만, 천우진을 옆에서 바라봤던 천지현은 그것이 결코 농담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진짜, 종말이라도 온다는 거야 뭐야.’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강한 사람은 천우진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토록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단단히 일어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천지현은 엄습하는 불안감에 엄지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후…….’

그러다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천우진이 말한, 재앙에 필요한 것은 오직 힘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향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천도윤이 흑운의 자리를 차지한 이후, 언제나 천지현의 목표는 한결같았다. 실력을 키워 아버지 천태백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 천가의 이인자 흑운이 되는 것. 그리고 그 목표에 가장 필요한 요소 역시 바로 힘이었다.

“그러니 너도…….”

“말하지 않아도 강해질 거야.”

천지현은 천우진의 말을 끊은 뒤 강력한 눈빛을 내비쳤다. 그 모습을 본 천우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더는 잔소리하지 않을게.”

“흥, 당연히 그래야지.”

천지현은 천우진을 말을 끊으며 그대로 돌아섰다. 그러고는 천진오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도련님.”

“아니다. 나도 재밌는 내기를 했으니, 그것이면 되었다.”

천진오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천진오가 내민 손을 마주 잡은 천지현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럼, 저는 내려가 보겠습니다.”

“같이 가지 않을 텐가?”

“네, 저는 이제 천외천에 다시 합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 그럼 도윤이에게 안부 전해 주게. 다음에 만나면 천지가 이길 거라는 말도 좀 해 주고.”

“……알겠습니다.”

자신에게 하는 것 같은 작은 도발을 애써 무시한 천지현은 짧은 대답을 끝으로 산에서 내려왔다.

* * *

콰앙-!

사방에 먼지가 일 정도로 무지막지한 공격이 서현우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러나 서현우는 마치 조금의 데미지도 입지 않았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크하하하! 더 때려 봐, 더!”

돌연 날아드는 광소. 그 모습에 잔뜩 열이 올라온 박한별은 공격하려다가 고개를 내저으며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는 방망이를 들지 않은 왼손을 쫙 편 뒤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다.

“3…… 2…… 1.”

찰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 지나자, 서현우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그녀의 손가락이 모두 접힌 것을 확인한 서현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시발, 이 스킬은 왜 삼 초밖에 안 되냐고!”

“맨날 그 소리. 이젠 좀 학습할 때도 됐을 텐데.”

열심히 내달리던 서현우는 금세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콰아앙-!

울컥 피를 토하는 서현우에게 또 한 번의 공격이 들어갔다. 서현우는 우월한 반사신경을 이용해 박한별의 공격을 간신히 피해 냈다.

“크윽. 하루에 세 번만 쓸 수 있어도.”

“하루에 한 번만 쓸 수 있는 스킬을 그렇게 쓰는 오빠도 참 대단하네요.”

고개를 내저은 박한별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조금 전 도발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는지, 평소보다 매서운 공격이 이어졌다.

“으악!”

곧이어, 서현우는 살기 위해 자신의 몸에 힐을 연발해야만 하는 샌드백 신세가 되어야만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래서야 훈련이 안 되잖아.”

한계치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 밀어붙이는 것과 아득히 높은 무력으로 두드려 패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잘 나가다가 간혹 저런다니까.”

조그만 도발에도 쉽게 이성을 놔버리는 박한별에게도 나름의 문제가 있었다.

나는 서현우를 죽일 듯 공격하는 박한별을 멈춰 세웠다.

“그만!!”

휘두르는 도깨비방망이를 우뚝 멈춰 선 박한별이 나를 돌아봤다.

“이리로.”

손짓하자 박한별과 서현우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 명은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이었고, 다른 한 명은 초주검이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서현우의 모습이 짠해 보이기까지 했다.

조금은 원망 섞인 눈빛을 보내는 서현우. 그 피폐해진 몰골을 마주 보며 말했다.

“이제 연습은 충분히 했으니, 실전으로 들어가자.”

일순 서현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왔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실전은 이보다 더 지독할 텐데…….’

울대까지 올라온 말은 애써 삼킨 채 물었다.

“훈련해 보니까 어때?”

내 물음에 서현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이게 정말 훈련 맞아? 맨날 맞기만 한 것 같은데…… 뭐, 맷집은 좋아졌겠지.”

투덜거린 서현우는 원망 섞인 눈빛으로 박한별을 노려보았다.

“뭐? 한 판 더 해?”

주먹을 불끈 쥐는 박한별의 태도 앞에 금방 무너지긴 했지만…….

나는 피식 웃은 뒤, 시무룩해 하는 서현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서현우는 어렵지 않게 내 주먹을 피해 냈다. 물론 전력을 다한 펀치는 아니었지만, 꽤 위협적일 수 있는 펀치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런 반응만 보더라도 서현우의 실력은 그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 있는 상태였다.

“무슨 짓이야!”

눈을 흘기는 서현우에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훈련을 시작하기 전 형이 이 공격을 피할 수 있었을까?”

서현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 둘의 간극을 가늠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충분히 그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확실히…… 강해진 것 같기도 하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서현우의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서현우는 훈련을 진행하는 한 달하고도 보름 동안 단 한 번도 박한별에게 공격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저 박한별에게 맞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닌 것이 다였다. 도망 다니다가 내가 몸에 상처를 내면 3초 내로 치료하는 것이 이 훈련의 전부였다.

매일 지루하리만큼 똑같은 훈련. 하지만 서현우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박한별이 똑같은 공격을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박한별은 매일 조금씩 공격의 강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 차이가 처음과 비교하면 3배 이상의 격차였다.

전과 후를 비교해 보면 눈에 띄게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서현우의 성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현우의 반사신경과 주변을 읽는 눈은 기대 이상이었다. 어느 새부턴가 내가 몸에 상처를 내기도 전에 힐을 준비하고 있었고,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부스럭거리는 작은 움직임조차 민감하게 잡아내고 있었다.

서현우는 이미 충분히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물론, 우리가 성에 찰 정도의 사냥터에 데려가는 것은 무리겠지만…….’

적당히 강한 수준의 던전에서는 충분히 활약을 펼칠 수 있으리라…….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젠 훈련을 이만 마칠 생각이었다. 상황상 마냥 서현우의 성장만 봐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와 박한별도 꾸준히 성장해야만 했다.

‘언제 천지훈 녀석이 쳐들어올지 몰라.’

그 전에 만만의 준비를 갖춰야 했다.

서현우를 끌고 다니며 실전 경험을 쌓게 하고 나도 레벨을 끌어 올려야 했다.

‘오류라고 뜨긴 하지만 레벨이 오르긴 하겠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이내 머릿속을 비운 뒤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현우에게 말했다.

“형, 폭업 하러 가자.”

서현우는 어느새 말끔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에이씨, 나도 모르겠다. 가자, 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목소리. 나는 빼기보단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그의 태도에 다시 한번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때.

“또 나 빼고 어딜 그렇게 가려고.”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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