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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22화 (122/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22화

    122. 전쟁 준비(6)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 봐!”

    천지의 주축 천설아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대장이랑 내기 한번 이겼다고 저게 미쳤네. 지금 이 자리에서 한 판 할까?”

    천지에서 근접 딜러 역할을 맡은 천요한 또한 끼어들었다.

    말린 것은 다름 아닌 천진오였다.

    자신의 패배를 깔끔히 인정한 천진오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만!!”

    “대장, 하지만 저 자식이 먼저…….”

    “그만하라고 했다.”

    싸늘하게 식은 천진오의 시선을 느낀 천설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삭히지 않은 분노를 천지현을 향해 쏟아 내고 있었다.

    ‘건방진 년…….’

    이를 바득 간 천설아는 천지현을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봤다.

    쥐새끼처럼 숨어 있다가 천도윤에 의해 이름을 알리게 된 천지현. 천지현은 평화롭던 가문에 돌연 나타난 흑운 천태백의 외동딸이었다.

    출신이 불분명해 방계 그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갔던 녀석이 천가의 성골인 자신들을 무시하고 있었으니, 여간 기분 나쁜 일이 아니었다.

    ‘굴러들어 온 년이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언젠가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천설아는 천진오를 바라봤다.

    천지의 리더 천진오는 속도 없이 웃으며 천지현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하하, 내가 대신 사과하지. 우리 팀원들이 너무 예의가 없었어.”

    “예, 뭐.”

    천지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천진오를 포함한 천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릇, 천가의 후계자가 먼저 손을 뻗었으면 정중하게 받고 먼저 도발을 시작한 자신도 사과를 건네야 정상이거늘, 천지현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릴 뿐이었다.

    도를 넘은 천지현의 행동에 천설아와 천요한이 다시금 끼어들 준비를 할 때였다.

    “죄송합니다. 사회성이 워낙 많이 부족한 녀석이라…….”

    불쑥 나타난 천우진이 푹 고개를 숙였다. 지금껏 천지현의 곁에서 모든 일을 방관하던 천우진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천지현은 그런 천우진을 빤히 쳐다봤다. 갑자기 왜 끼어드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천우진은 조금 가라앉은 눈빛으로 작게 말했다.

    “내가 말했지. 때와 장소를 가려 가면서 사람 긁으라고, 지금 사과 안 하면 일만 커져.”

    “그건…….”

    “상대는 천가의 가주 후보야, 이 등신아.”

    한숨을 푹 내쉰, 천우진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천지의 팀원들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본인은 물론, 부모님조차 특출난 게 없는 방계 출신.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떨어진 지위를 가진 천우진을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플레이어 특유의 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저 녀석은 무시해서는 안 될 존재라고…….

    ‘힘이 가늠이 안 돼.’

    천우진을 마주한 천설아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것은 천요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계에서 손꼽는 강자가 이토록 적의 힘을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는 두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월등한 힘을 가졌거나, 힘을 숨기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갖췄거나.

    뭐가 됐든 위험한 녀석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천지의 일원들은 동시에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천우진이라고? 도윤이와 막역한 사이라는 것은 들었는데.”

    천우진의 등장에 유일하게 눈빛을 빛내는 이는 천지의 리더 천진오뿐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으로 천우진을 살피고 있었다. 노골적인 시선이 불쾌할 법도 했건만, 천우진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현재 흑운과는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천우진은 예의를 갖춘 채 숨김없이 대답했다. 흑운이라는 단어에 천지현의 기세가 미세하게 올라간 것은 오직 천우진만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천진오는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네. 거절할 수도 있지. 다만…….”

    하지만 이어진 말에는 가시가 담겨 있었다.

    “우리 팀을 모욕한 것 같아 기분이 상한 것은 어쩔 수 없네만…….”

    천진오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했다. 얼핏 보면 살기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만한 냉담하고도 차가운 눈빛이었다. 천가의 위엄을 그대로 담은 시선을 받아 낸 천우진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녀석을 잘못 가르친 저의 탓입니다. 천가의 후계자께서 마음이 풀리실 일이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격식이 갖추어져 있었다. 물론, 천가의 후계자가 꼬투리를 잡는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지만, 천진오는 그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호오, 네가 흑운의 딸을 가르쳤단 말이냐?”

    모두가 놀랄 만한 일이었다. 천가 내 천외천의 유일한 팀원인 천지현이 일개 방계 녀석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천가는 물론 세계가 놀랄 일이었다.

    그러나 천우진은 덤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를 지켜보던 천지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변했다.

    “말도 안 돼.”

    “저 녀석이 뭐라고…….”

    천지의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받은 천지현 역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러자 천지 팀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당사자가 인정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천진오였다.

    “마음이 풀릴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

    “예, 제자의 잘못은 스승의 잘못이기도 하니까요.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단호한 대답에 천진오는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그거면 마음이 풀릴 만하지.”

    “뭐든 말씀하십시오.”

    잠시 뜸을 들인 천진오가 능구렁이 같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제자 대신 스승이 우리 팀에 들어오는 건 어떤가?”

    천진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욕심이 가득 담긴 얼굴로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뭐?”

    천진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내 미간을 찡그리더니, 왼손에 염화의 불꽃을 피워 냈다. 당장이라도 지휘를 내세워 벌을 내리기라도 할 기세였다.

    “나를 놀리는 건가?”

    그러나 당장 공격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천우진은 침착하기만 했다.

    “아닙니다. 저는 공식적인 일원은 아니지만, 곧 천외천에 들어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몸입니다.”

    “그건, 약속뿐이지 아직 들어간 건 아니지 않느냐.”

    천진오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천우진은 여전히 무표정인 채로 말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도윤이…… 아니 흑운에게 물어보시지요. 흑운이 들어가도 좋다고 한다면 당장이라도 들어가겠습니다.”

    천우진의 대답에 천진오는 말문이 턱 막혔다. 더 이상 천우진을 데려올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우진은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키며 자신을 소유한 장과 대화를 나누라 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천우진을 강제로 데려온다면 동생의 팀원을 대놓고 뺏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머리도 잘 돌아가는 편이군.”

    “그런 말 자주 듣습니다.”

    천우진의 대답에 천진오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너도 그렇고, 천지현도 그렇고…… 천외천은 겸손이라는 걸 모르나?”

    “겸손을 떨기엔 너무 잘난 이들이 많은 집단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천진오는 작게 감탄했다. 천진오가 보기에도 천지현은 훌륭함을 넘어 탐나는 플레이어였다. 그런데 그런 천지현을 가르쳤다는 천우진 또한 천외천 소속이 될 거란다. 그의 말은 결코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뭐, 경기권의 중형 길드장을 스카웃한 건 의외긴 하지만…….’

    박한별.

    우마 길드의 수장 박한별이 천외천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래도 뭐 쓸모가 있으니 뽑았겠지. 전략 전술을 잘 짠다든지, 경험이 풍부하다든지.’

    그리 생각한 천진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짜증 난다는 듯 미간을 구긴 채였다.

    “그럼 네놈이 뭘 줄 수 있다는 말이냐?”

    “뭐든 드리겠습니다. 말만 하시지요.”

    “조금 전도 네놈은 내 제안을 거절했다. 마음에 내키는 것만 받아들이려는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알고?”

    “아닙니다. 정말 원하는 것을 말씀하시면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거절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예.”

    단호한 대답에 천진오는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얼핏 보면 사악하다 싶을 정도로 욕심이 가득 보이는 미소였다.

    “내가 무엇을 말할지도 모르면서 당당하군.”

    “최선을 다해 들어드리겠습니다.”

    흡족한 대답을 들은 천진오는 턱을 괸 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합리적인 요구는 필요 없었다. 애초에 저 녀석이 내건 조건은 어떤 불합리한 요구도 들어준다는 것이었으니까. 녀석이 들어 줄 수 있으면서, 가장 무리한 요구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오랜 시간 생각을 한 천진오가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 팀에 들어오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완전히 들어오라는 게 아니야. 우리 팀에 들어와 레이드 10번만 하게.”

    “그거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천우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요구야 어렵지 않게 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천진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좋아할 게 아니야. 자네가 선봉에 서야 하네.”

    천진오의 제안에 듣고 있던 천지의 일원들이 경악했다.

    천지가 레이드 하는 곳은 항상 세계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곳들이었다. 그런 곳을 레이드 하는데 선두에 선다는 것은 세계 최고의 실력을 지닌 자들조차 위험한 일이었다.

    게다가 최근 몬스터들의 무력이 말도 안 되게 올라간 상황. 지금은 천지조차도 몸을 사려가며 조심스럽게 레이드를 하는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우진은 단번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무리 강해도 레이드 경험이 없으면 골로 가는 게 이 바닥인데 방계출신이 레이드 경험이 많을 리가…….”

    “그러게 말이야. 강해 보이긴 한다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들은 적이 있다. 천우진. 한때 방계의 유망주로 손꼽히던 녀석.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잠깐이었다. 녀석은 점점 유명세에서 멀어졌고, 이내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추락했다.

    ‘날개 잃은 새라고 했던가.’

    천요한은 누군가 녀석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 기억났다. 어떤 방식으로 강해졌는지는 몰라도 아직 부족한 게 많을 터였다. 모든 걸 들어 준다는 제안을 먼저 내건 것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했다.

    ‘던전에서는 힘만 있다고 살아남는 게 아니야.’

    레이드에 있어서는 베테랑인 천지의 눈에는 천진오의 제안은 죽으라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대장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맞아요. 오빠, 10번은 그대로 하더라도 차라리 후방에 세우는 게…….”

    “너희는 처음 본 녀석에게 등 뒤를 맡길 수 있나?”

    “아무리 그래도…… 선봉에 세우는 건.”

    “지켜봐라. 내 예상이 정확하다면 잃을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천지 팀원들의 만류에도 천진오의 의지는 꺾기지 않았다. 게다가 제안을 받아들인 천우진조차 승낙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깊게 한숨을 내쉰 천지 팀원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너, 죽거나 어디 병신 돼도 우리 팀원 탓하지 마라.”

    “그럴 일 없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천설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것은 다른 팀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에효, 애꿎은 송장 하나 치우게 생겼네.”

    “그러니까 말이야.”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탄식과 부정적 목소리들.

    그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던 천지현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경탄과 두려움이 뒤섞인 나직한 음성이었다.

    “천우진 저 녀석은 대체 어디까지 내다 보는 거야?”

    게이트 앞 우연을 가장한 조우. 천가 후계자와의 내기. 천진오의 무리한 요구.

    모두 천우진이 예상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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