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21화
121. 전쟁 준비(5)
암살이의 거대한 낫이 서현우를 향해 쇄도했다. 지금껏 힘을 극도로 제한했던 박한별과는 확연히 다른 속도였다.
쇄액-!
서현우는 특성 ‘우월한 반사신경’을 이용해 자리를 박차고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발을 딛고 일어선 곳에는 이미 암살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허억!”
서슬이 시퍼런 죽음의 군주의 낫이 서현우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얗게 질린 서현우의 얼굴과 굳어 버린 근육. 그는 단숨에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작게 읊조렸다.
“아직 초짜는 초짜네.”
그동안 박한별과의 대련으로 움직임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힘의 차이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쇄도하는 암살이의 낫을 회전하는 흑운의 힘으로 막아 냈다.
가가가각-!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주인이 자신의 공격을 막는 것을 본 암살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암살이를 향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만.”
암살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내 말을 거스를 생각은 없는지, 순식간에 기운을 죽이며 낫을 내려놨다.
“후…… 역시 실패인가?”
깊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죽음을 목전에 두면 각성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아무래도 착각인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서현우를 바라봤다.
“현우 형, 아무리 갑작스러운 공격이라지만 아무런 대비도 취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요! 다시 한번 바닥을 구르든지 해야…… 헐……!”
서현우를 향해 잔소리를 퍼부으려던 나는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서현우의 몸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은은한 빛을 내뿜는 그의 기운은 꽤 고강해 보였다.
“설마……!”
나는 그대로 손을 뻗었다. 확인해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없었다.
서현우가 죽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 녀석의 복부를 가격했다.
콰앙-!
엄청난 소리의 굉음이 들리고…… 멀쩡히 서 있는 서현우의 신체가 눈에 들어왔다.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서현우의 눈은 어느새 경악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바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도해 본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간단히 ‘잠김’ 상태를 풀어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반쯤 도박 수라 여겼는데…….
“허…….”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전생에 나는 그 고생을 해서도 풀지 못했는데…… 괜한 질투심이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감정을 애써 억누른 채 서현우에게 말했다.
“축하해요. 현우 형.”
“이게…….”
서현우는 아직 얼떨떨한 기분인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르고 있는 상황처럼 보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서현우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나를 공격한 게 그럼……?”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긴박한 상황에 놓이면 각성하지 않을까 싶어 해 본 건데 생각보다 잘 풀렸네요. 갑작스럽게 공격해서 미안해요.”
나는 곧장 서현우에게 사과를 건넸다. 아무리 서현우의 잠긴 기술을 풀기 위해서였다지만, 목숨을 위협한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서현우에게 말했다.
“형이 빨리 그 스킬을 얻기를 바랐어요. 그래야, 생존율이 극도로 올라갈 테니까…….”
“너…….”
서현우는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얼굴.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 서현우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기 시작했다.
“고맙다.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아니 뭐 그렇게까지는…….”
나는 전혀 예상외의 반응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잠시 생각하던 나는 서현우가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서현우는 친형 같던 김철민을 죽인 몬스터에게 하루빨리 복수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다소 무리한 훈련 일정도 군말 없이 따라오고 있었다.
위협적이긴 했어도, 자신의 성장을 위해 그랬다고 하니 화보다는 고마움이 앞선 것이겠지.
“잠금 상태는 완전히 풀린 건가요?”
“어? 잠시만…….”
나는 서현우에게 상태창을 확인하라 일렀다. 잠김 상태가 완전히 풀린 것이라면 서현우는 이제 어엿하게 천외천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을 터였다.
서현우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응, 풀렸어. 완전히.”
동시에 의욕 넘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몬스터를 쓸어버리러 가자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피식 웃은 나는 조만간 레이드를 하러 갈 것을 약속했다.
“진짜?”
“네.”
서현우는 몇 번이고 확인을 받은 뒤에야, 붙잡았던 손을 놓았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가온 박한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갑자기 현우 오빠를 공격한 거예요?”
미간을 찡그린 박한별에게 설명을 시작한 것은 서현우였다.
“아, 오해하지 않아도 돼! 도윤이가 내가 말한 새로운 스킬을 사용하게 해 주려고 공격을 한 건데,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설명을 모두 들은 박한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결국은 잘 해결된 거네요?”
“그렇지! 나는 새로운 스킬도 얻고 말이야. 이젠 레이드에 가서도…… 잠깐, 갑자기 왜 웃어? 무섭게?”
박한별은 서현우의 말처럼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억 안 나요?”
“뭐가?”
“새로운 스킬만 익히면 제 얼굴에 한 방 먹여 준다고 하셨잖아요.”
서현우는 조금 전 자신이 울컥해 내질렀던 말을 기억했는지, 말문이 턱 막힌 모습이었다.
“어? 그, 그건…….”
서현우의 표정과는 반대로 박한별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박한별은 도깨비처럼 웃기 시작하더니, 이내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크흐흐. 내일 훈련 기대할게요!”
서현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 * *
“허, 허억. 괴물이냐?”
충청남도 보령. 깊은 산골짜기에 생겨난 게이트를 클리어한 천진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여자를 바라봤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자는 어느새 호흡이 안정화되어 있었다.
“조금 더 노력해야겠네요, 오빠.”
“허, 이 천진오한테…….”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가문 천가의 가주 후보에게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는 여자는 전 세계를 따져 봐도 이 녀석이 유일했다. 천진오는 웃음을 터트리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동생이 괴물을 키우고 있었네.”
“누가 누굴 키워요. 저를 키운 건…….”
말을 잇던 복면을 쓴 여자는 멈칫했다. 그러고는 서둘러 대화의 주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흠흠, 어쨌든 내기는 제가 이긴 거죠?”
그러나, 눈치 빠른 천진오가 그 어색함을 놓칠 리 없었다.
복면을 쓴 여인은 흑운 천태백의 딸 천지현이었다. 천지현은 말을 멈추기 직전, 옆에 묵묵히 서 있던 천우진을 바라봤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천지현의 찰나의 눈짓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성장하게 한 건 천도윤이 아니라 천우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 저 녀석도 뭔가를 숨기고 있다, 이 말이지? 도윤이 녀석은 대체 어떻게…….’
막냇동생 천도윤의 사람 보는 눈은 보면 볼수록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조금 전 봤던 천지현의 무위는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는데, 그녀를 가르칠 실력을 지닌 녀석이 가문 내에 숨어 있었다니…….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다시 한번 동생을 만나 봐야겠어.’
결심한 천진오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언제든 내 도움이 필요하면 한 번은 도와주도록 하지.”
복잡한 표정과는 달리, 천진오는 깔끔히 패배를 인정했다. 그 모습을 본 천진오의 팀 천지(天地)는 경악했다.
“오빠!”
“마스터!”
천지의 주축 라인인 천설아와 천요한이 소리쳤다. 그러나 천진오는 손을 들어 가볍게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분명 봤을 텐데…… 천지현이 분명 나보다 더 많은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게이트 앞에서 우연히 만난 천지현과 천진오가 했던 내기는 몬스터를 누가 더 많이 죽이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건 오빠가 저 녀석을 다치지 않기 위해 공격 범위를 좁히는 바람에…….”
“아니.”
천설아의 변명에 천진오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분명 그랬지…… 하지만 웨이브 한번이 끝난 후에는 전력을 다했다.”
“말도 안 돼! 오빠는 분명…….”
천설아는 천진오의 말을 강하게 부정했다. 자신이 보기에 천진오는 본래 힘의 반의 반도 사용하지 않았다며 열변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러나 천진오는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공격 범위를 좁힌 게 아니라, 이미 죽어 있어서 공격하지 않은 것이다.”
“그게 무슨…….”
천설아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진오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공격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내 공격이 몬스터에게 닿기도 전에 녀석들은 죽을 것이 뻔했으니까.”
실제로 원거리에 특화된 천진오의 공격이 몬스터에게 닿기도 전에 천지현은 빠르게 몬스터들의 숨통을 끊어 냈다.
이러한 과정들이 몇 번 반복되자, 천진오는 천지현의 공격 범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공격하기보다, 멀리 떨어진 몬스터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곧 결과로 이어졌다.
천지현의 승리!
‘살다 살다,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몬스터를 죽이는 사람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생각한 천진오는 몸을 잘게 떨었다. 반쯤 눈이 돌아간 채, 몬스터 사이에 들어가 춤을 추듯 칼을 휘두르는 모습은 마치 게임 속 광전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같은 편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천진오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강한 이가 천가의 소속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아니, 자랑스러운 정도가 아니었다. 미친 듯이 고마웠다. 그리고…… 탐이 났다.
‘천우진의 실력은 아직 모르지만, 이 녀석은 확실히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한 실력이다.’
세계를 무대로 싸우는 천진오가 이런 보석 같은 인재를 놓치고 싶을 리 없었다.
‘앞으로 그 일을 대비하려면…….’
더욱 강한 동료들이 필요했다.
천진오는 망설임 없이 천지현에게 물었다.
“우리 팀 천지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오빠!”
“마스터!!”
뒤에서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있어!”
천진오가 소리쳤다. 지금은 천지가 한 발 더 도약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막냇동생이 보는 눈이 좋긴 하지만, 이렇게 천지현을 내버려 두고 다닌다는 것은 분명 그리 원만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었다.
자고로 소외된 팀원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법이다.
‘동생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아까운 곳에서 실력을 썩힐 바에야, 내가 데려와 잘 자랄 수 있도록 키워 주는 것이 낫지.’
천진오는 세 명뿐인 팀에서 소외된 천지현을 거둬들일 생각이었다.
천진오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천지현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우리 팀에 들어와라. 천지현. 도윤이한테는 내가 잘 말해 주마.”
천지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저, 천진오의 뒤에 서 있는 천지 멤버들을 천천히 훑어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천진오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천지의 맴버들은 하나같이 세계적인 실력을 지닌 플레이어였다. 그 유명세만 하더라도 탑급 연예인 뺨칠 정도.
일원들을 바라보는 천지현이 자신에게 넘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이리라.
“…….”
천지를 빤히 바라보던 천지현이 입을 연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였다.
“관둘래요.”
“그럼 그렇지. 천지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곳엔 싸울 만한 녀석이 없어서 들어가기 싫다고요.”
황당한 천지현의 말에 천진오의 입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