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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20화 (120/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20화

    120. 전쟁 준비(4)

    서현우는 생각보다 친화력이 좋았다. 천외천에 합류하기로 한 서현우는 금세 박한별과 친해졌다.

    “헉, 허억. 너무한 거 아니냐?”

    “너무하다뇨.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어림도 없다는 듯 대답한 박한별은 천가 소유의 대련장에서 서현우의 성장을 도와주고 있었다.

    “이 괴물들…….”

    천외천의 최고령인 서현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박한별의 공격을 피해 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소리쳤다.

    “크윽! 여기!”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작작해! 천도윤!”

    그러나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짜증 섞인 음성이 들려오자,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크흐흐. 빨리!”

    나는 손등에 작은 상처를 낸 뒤 서현우에게 흔들고 있었다. 죽일 듯 나를 노려보던 서현우는 박한별의 공격을 피해 가며 나에게 힐을 시전 했다.

    “힐!”

    붉게 올라오던 피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따끔거리던 상처가 완벽히 아문 것을 본 나는 쉬지 않고 다시 한번 팔뚝에 상처를 냈다.

    “어머나, 또 다쳐 버렸네?”

    “저 개자식이 진짜!”

    피가 조금 흐르는 정도였고 그마저도 특성 ‘천가의 피’ 덕분에 금세 멎어가는 중이었지만, 어김없이 서현우를 재촉했다.

    “으악. 피가 너무 많이나. 이러다 죽어 버리겠는걸?”

    어색하기 그지없는 말투가 서현우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 상처로 죽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땅을 구른 서현우는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상처가 말끔히 사라졌다. 군더더기 없이 정확한 힐. 서현우는 타고난 힐러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박한별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콰앙-!

    다시 벽에 처박힌 서현우는 피를 울컥 토하며 나와 박한별을 노려봤다.

    “쿨럭. 으윽. 진짜 나를 죽일 셈이야?”

    자신에게 힐을 시전하고 있는 서현우는 못마땅하다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피식 웃으며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서현우를 다시 공격하려던 박한별을 멈춰 세웠다.

    “잠시 쉬었다 하죠.”

    “후…… 네.”

    우뚝 멈춰 선 박한별이 조용히 대답했다.

    박한별 역시 꽤 지쳐 보이는 기색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흐뭇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이 훈련은 서현우뿐만 아니라, 박한별까지 성장시킬 수 있는 훈련이었다.

    “힘들죠?”

    수건을 건네받은 박한별은 땀을 훔치며 대답했다.

    “네, 생각보다 힘 조절하는 게 쉽지 않네요.”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도깨비의 힘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니까요.”

    “그래야죠. 그래야 오래 싸울 수 있을 테니까요.”

    굳은 의지를 내비치는 박한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조절이라는 개념은 그녀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그녀가 지금껏 상대한 것은 항상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손속에 사정을 둘만큼 불쌍한 존재들이 아니라,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었다.

    엄청난 기세와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르는 방식.

    그녀가 자랑하는 싸움이었지만 여기에는 호쾌한 전투방식에 비례한 커다란 단점이 있었다.

    바로 에너지 소모.

    그녀가 아무리 도깨비의 후예라고는 하지만, 온전한 도깨비는 아니었다.

    도깨비들은 타고난 힘과 체력이 받쳐주어서 연비가 그리 좋지 않은 그들의 기술을 밥 먹듯이 펼칠 수 있었지만, 박한별은 아니었다.

    레벨도 떨어지고, 타고난 체력과 마나도 떨어졌다.

    하여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힘을 조절하는 방법뿐이었다.

    “상대방의 실력을 파악하고 딱 필요한 만큼의 힘만 사용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나는 몇 번이고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방법을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네, 생각보다 죽지 않을 정도로 팬다는 게 쉽지 않네요.”

    “그렇죠. 차라리 몬스터를 죽이는 게 더 편할 거예요. 그래도 해야 하는 거 알죠?”

    “네, 서현우 씨를 죽일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는 마주 보며 큭큭대기 시작했다.

    “뭐라고?”

    기분이 상한 것은 서현우뿐이었다.

    어느새 몸을 모두 치료한 서현우가 다가왔다. 그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나와 박한별을 번갈아 가며 노려봤다.

    “이것들이 진짜……! 내가 아직 각성하지 못한 스킬을 마스터하기만 하면 네놈들 얼굴에 한 번씩 꽂고야 만다.”

    의지를 다진 서현우는 오른손 주먹을 쭉 내밀며 말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는 다시 한번 피식 웃고 말았다. 우리가 얼마나 봐주고 있는 줄 알면 부끄러워서 잠도 못 잘 텐데…….

    “어머, 각성하지 못한 기술이 있어요? 오빠는 힐이랑 신체 복구 스킬만 있는 거 아니었어요?”

    서현우는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한 능력치를 우리에게 공개한 상태였다. 나는 이미 그의 상태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박한별은 아니었다. 그녀는 궁금한 얼굴로 서현우에게 물었다.

    “흠흠. 당연하지. 내가 모든 기술을 공개했을까 봐? 이것만 완성되면 네 공격쯤은 거뜬히 막을 수 있다고. 흐흐.”

    가슴을 편 채 당당히 말하는 서현우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 박한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어휴, 허세는.”

    “어어? 이게 못 믿네?”

    “아무리 그래도 오빠가 절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거든요.”

    “허, 나 참 이걸 빨리 배우든가 해야지.”

    “예, 예. 빨리 배워서 제발 좀 보여 주세요.”

    며칠 사이 부쩍 가까워진 둘은 이제 자연스럽게 장난을 칠 수 있는 사이로 발전했다.

    무시하는 박한별을 억울하다는 듯 바라본 서현우는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와. 좀만 기다려라, 너!”

    굳은 의지를 다지는 서현우. 박한별은 조금도 믿지 않고 있었지만, 서현우가 말한 것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 기술만 익힌다면 서현우의 말대로 박한별의 공격쯤은 거뜬히 막아 낼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와 박한별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일은 무리겠지만…….

    나는 답답해하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서현우를 빤히 바라봤다.

    [서현우]

    레벨: 15

    호칭: 없음

    특성: 우월한 반사신경 – 유니크, 마나 하트 - 유니크

    스킬: 3초 무적 (잠금) – 유니크, 신체 복구 - 유니크, 힐 - 유니크

    눈앞에 떠오른 서현우의 상태창.

    상태창을 바라본 나는 작게 감탄했다.

    “크으.”

    서현우의 상태창은 가장 이상적인 힐러의 표본이었다.

    높은 등급의 힐과 신체 복구 스킬만 있더라도 어느 길드에서나 상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서현우가 가진 능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의 첫 번째 특성인 우월한 반사신경은 적들의 공격을 손쉽게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힐러들의 취약한 생존력을 극도로 올려 줬다. 게다가 마나 하트를 가지고 있어 힐과 신체 복구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한두 번 동료들을 고치고 퍼질러지는 여느 힐러 와는 차원이 다른 효율을 자랑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래도 가장 탐나는 것은…….’

    서현우가 기다리고 있는 스킬이었다.

    사기급 스킬 3초 무적.

    우월한 반사신경에 이은 3초 무적의 콤보는 그를 죽지 않는 좀비로 만들어 줄 가능성이 컸다.

    ‘때에 따라선 몸빵으로 내세워도 되겠지.’

    위기의 상황 때, 일격필살의 까다로운 기술 또한 막아 낼 수 있으리라.

    “진짜 부럽네.”

    여러 가지로 서현우의 스킬과 특성 조합은 부러울 정도로 합이 잘 맞는 느낌이었다. 힐러라는 직업에 최적화되어 있는 느낌.

    ‘천지현이 여기에 반만 닮았었으면…….’

    아쉬움에 입맛을 쩝 다셨다.

    천지현의 스킬 조합이 생각난 탓이었다.

    기척을 감쪽같이 죽이는 흑운과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상대방을 얼어붙게 만드는 광기의 도살자는 그야말로 최악의 조합이었다.

    엄청난 재능 대신, 최악의 능력 조합을 갖춘 천지현과 조화로운 능력 조합으로 최강의 시너지를 자랑하는 서현우. 이 둘은 완전히 상반되는 이미지를 내비치고 있었다.

    싸움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자와 싸움에 미쳐 버린 여자. 의외로 말이 많고 친화력이 좋은 녀석과 말수가 적은 음침한 녀석.

    둘의 이미지를 생각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둘이 잘 맞을 수 있을까는 나중에 고민해 보도록 하고…….’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저 능력을 깨울까 하는 것이었다.

    “잠긴 능력을 푸는 방법은 다양한 시도를 하는 수밖에 없어요.”

    나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서현우에게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것까지 알고 있었어?”

    “네.”

    나는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서현우가 천외천에 들어온 이상 그를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했다. 레벨, 경험, 재능이 모두 떨어지는 그가 당장 전투에 투입되기 위해서는 3초 무적이 필수였다.

    “어떻게……?”

    “말했잖아요. 저는 상대방의 잠재력을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다고.”

    “이건 알아내는 정도가 아닌데…… 아예 상태창을 다 들여다보는 느낌이라고.”

    서현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나는 시치미를 뚝 뗀 채 서현우에게 말했다. 서현우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런 능력이 있으면 개사기긴 하겠다. 그치?”

    “그러니까요. 저도 그런 능력 좀 있었으면 좋겠네요.”

    멀리서 바라보던 박한별이 어이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녀는 내 능력을 아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박한별은 내가 어디까지 거짓말을 하나 지켜보겠다는 표정으로 멀리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해야 이 능력이 풀릴까?”

    “음…… 그건 아무도 모르죠. 무언가 계기가 필요한 건 분명해 보이는데…….”

    나는 능력이 잠길 때 느끼는 답답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도 안 해 본 짓이 없었지.’

    잠긴 ‘천가의 피’와 ‘활력’ 스킬을 풀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해 봤었다. 몸에 좋은 영약을 찾아 먹어도 봤고, 마정석으로 둘러싸인 방안에 몇 달을 살아 보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소용없는 짓이었다.

    ‘한번 죽고 나서야, 잠김이 풀렸지.’

    어이없게도 내 능력은 죽고 난 뒤에야 풀렸다. 천우진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난 나는 혹시 죽음이 잠김의 해제 조건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어차피 확인할 수도 없는 방법이다.

    그러나 마냥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3초 무적이라는 스킬을 버리기에는 그 활용도가 너무나도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왜 그래? 벌써 휴식 시간 끝이야?”

    서현우는 피곤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응? 뭐라는 거야……?”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서현우에게 내가 말했다.

    “죽어 보세요.”

    “뭐?”

    “죽어 보라고요. 혹시 알아요? 저처럼 능력이 깨어날지?”

    “너 그게 대체 무슨…….”

    일그러지는 서현우의 표정을 외면한 나는 암살이를 불러들였다.

    “나와!”

    고오오오오.

    불길한 기운을 잔뜩 내비치는 죽음의 군주 암살이가 흑마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당장이라도 명령을 내려 달라는 표정으로 흑마 위에서 위풍당당하게 앉아 서현우를 내려다봤다.

    칠흑같이 어두운 낫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암살이를 본 서현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저, 저게 대체……!”

    마치 저승사자라도 본 듯한 얼굴. 미세하게 떨리는 서현우의 몸을 무심하게 내려다본 나는 암살이에게 말했다.

    “죽여!”

    암살이의 거대한 낫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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