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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19화 (119/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19화

119. 전쟁 준비(3)

서현우는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가 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중저음의 젊은 목소리는 분명 기억의 그 목소리가 맞았다. 긴장한 서현우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저기…….”

“네, 누구십니까?”

“저번에 명함 주신 그…….”

“아 서현우 씨?”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네. 어떻게 기억하시네요?”

서현우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잠시 스쳐 지나간 게 다인 자신의 이름을 기억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제가 명함을 준 게 처음이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네? 처음이라고요?”

이어진 대답 또한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가문 천가의 후계자가 처음 명함을 준 것이 바로 자신이라니…… 서현우는 다시금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네. 뭐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저를 왜……?”

“서현우 씨, 지금 어디 십니까?”

“저는 지금 집에…….”

“후…… 다행이네요. 지금 집으로 찾아봬도 되겠습니까? 불편하시면 장소와 시간을 정해 주셔도 좋습니다.”

불쑥 찾아오겠다는 천가의 이인자. 다소 예의 없어 보이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어딘가 거부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서현우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집 근처에 조용한 카페가 있습니다. 이 번호로 주소 찍어 놓겠습니다.”

“네,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지금…… 예, 예 알겠습니다.”

저돌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천도윤의 태도에 서현우는 당황했다.

전화를 끊은 서현우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한참을 서 있었다. 자신이 먼저 전화를 걸긴 했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탓이었다. 천가라니…….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그 가문의 도련님이 먼저 스카웃 제의를 한다니…….

인맥도 실력도 없는 서현우 입장에서는 믿는 것이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내가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는 건가?”

세상에는 다양한 능력자들이 있었다. 전투뿐만 아니라, 정신을 혼란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자도 있었고, 외모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녀석도 있었다.

서현우는 방금 전화를 건 사람이 그런 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요즘 부쩍 사기가 많이 늘었다고는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하던 서현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명동 던전 브레이크에서 봤던 실력은 분명…….”

진짜였다. B급 플레이어였던 김철민을 일격에 살해했던 트롤은 최소 A급 이상의 무력을 지닌 몬스터였다. 그런 몬스터를 천도윤은 어렵지 않게 잡아냈다.

천가의 천도윤이 아니라면 그 어느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천가의 도련님을 사칭할 정도로 간 큰 녀석이 있을 리도 만무하고…….”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지금 자신을 만나기 위해 오고 있는 사람은 천도윤이 분명했다.

무슨 이유로 자신을 스카웃하려고 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가 진짜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일단 나가자. 만나 보면 알겠지.”

한숨을 깊게 내뱉은 서현우는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연과 우연이 겹쳐 믿을 수 없는 기연을 만난 것이라면…….

김철민의 넋을 기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 * *

서현우의 인상은 그 당시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독기가 가득 차 있는 얼굴.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이쪽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짧게 자른 머리에 다부진 몸을 가진 서현우는 한적한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한참 침묵을 지키던 서현우가 입을 열었다.

“저의 뭘 보고 팀에 들어오라는 겁니까?”

“재능이 있으니까요.”

짧은 대답에 서현우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러니까 대체 뭘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빤히 바라보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상황은 나라도 이해가 가지 않을 상황이었다.

“음…… 당황스러운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황스럽네요. 분명 초면이었던 것 같은데 제 이름을 알고 있던 것도 뭔가 의심스럽고요…….”

서현우는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을 가감 없이 보였다. 서현우를 처음 만났을 당시 나는 서현우의 이름을 불렀던 적이 있다. 그가 자신을 소개하기 전부터 말이다. 그 당시 당황하던 서현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음…… 그건 제 능력의 일종입니다. 저는 플레이어의 잠재력을 얼추 내다볼 수 있거든요.”

“상대방의 상태창이라도 훔쳐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비슷합니다.”

정확한 서현우의 추리에 움찔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아직 그는 우리 팀에 합류한 것이 아니었다. 같은 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에게 모든 패를 내비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서현우 역시 플레이어 간 능력을 묻는 것은 실례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더는 캐묻지 않는 모습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당황스러운 상황이라.”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천도윤 씨는 제가 잠재력이 뛰어나 보여서 팀에 합류시키고 싶다. 뭐, 이런 뜻인가요?”

“네, 정확합니다.”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나를 본 서현우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저도 모르는 잠재력을 알고 있다니 기분이 묘하네요. 실례가 안 된다면 제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서현우 씨는 각성하기 전까지 플레이어에 전혀 관심이 없으셨죠?”

“네, 근데 그게 지금 이거랑 무슨 상관이…….”

“조금만 관심이 있었더라도 등급시험을 그렇게 보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서현우의 인상이 구겨졌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는 것이 분명했다.

“지금 뭐라고…… 저는 그 당시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봤습니다만.”

언성이 높아진 서현우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역시 아직도 초짜 플레이어라는 것이 티가 났던 탓이다.

“그 말이 아닙니다. 시험을 열심히 보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시험장을 잘못 찾았다는 말입니다.”

“그게 무슨…….”

서현우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서현우 씨는 일반 헌터 시험이 아니라 특수보직 시험을 치렀어야 했단 말입니다.”

“특수보직?”

서현우는 그제야 구겨 있던 표정을 풀었다. 그러고는 생전 처음 들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가 왜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서현우를 만나러 오기 전 나는 협회에 요청해 그에 대한 정보를 열람한 적이 있었다.

레이드 경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각성한 지도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플레이어.

한마디로 뉴비 중의 뉴비라는 말이었다.

거기에 생전 플레이어에 관심이 조금도 없었다고 했으니, 기본적인 상식이 조금 모자를 수도 있으리라.

‘확실히 그날도 움직임이 어색하기 그지없었지.’

동료를 잃었던 그의 움직임은 완전히 얼어 있었다. 그것만 하더라도 초보 중의 초보라는 증거.

나는 당황해하는 그에게 말했다.

“서현우 씨는 특수보직 시험으로 등급판정을 받았더라면 A급은 거뜬했을 겁니다.”

“네?”

놀란 서현우가 들고 있던 컵을 떨어트렸다.

“신청란에 특수보직 시험을 묻는 신청란이 있을 텐데 못 보셨습니까?”

“저는 대부분 일반시험으로 체크하면 된다고 하길래…….”

당황해하는 서현우의 얼굴이 꽤 볼만했다. 얼핏 보기에는 강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술한 부분이 많아 보이는 녀석이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정정신청을 하면 되니까요.”

“어, 음.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레이드 경험은 없으십니까?”

이미 그가 레이드 경험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헌터 협회에 신고 되지 않은 불법 레이드도 종종 발생되었기에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아니요. 그날 처음 레이드를 하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철민이 형이랑 점심을 먹은 뒤, 출발하려고 했거든요.”

일순 서현우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가까운 사이였습니까?”

“친형제나 다름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빨리 갔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제 목숨을 구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서현우는 내가 무안하지 않게 재빨리 김철민에 대한 이야기를 갈무리했다.

“아닙니다. 저도 마침 헌터 협회로 가는 중이라 우연히 발견한 겁니다.”

“저는 운이 좋네요.”

애써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서현우의 표정은 몬스터를 향한 은은한 분노를 내비치고 있었다.

그 눈빛을 읽은 나는 조용히 운을 뗐다.

“요즘 몬스터의 흉폭함이 도를 넘어섰습니다.”

서현우는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플레이어가 죽은 적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서현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세계가 페이즈 2로 돌입하면서 몬스터의 무위는 상상 이상으로 강해졌다. 여기저기서 레이드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도 이제는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네, 헌터 한 명 한 명이 귀중한 상황입니다. 빠르게 레벨을 키워야, 그나마 몬스터에게 대적할 수 있을 겁니다.”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몬스터에게 친형 같은 존재를 잃은 서현우의 분노가 계속해서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서현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

“천외천에 들어가면 정말 몬스터들을…… 아니 철민이 형을 죽인 그 개자식들을 모조리 때려죽일 수 있는 겁니까?”

핏발 선 서현우의 목이 꿈틀댔다. 충혈된 눈이 나를 삼킬 듯 덮쳐오고 있었다.

아직 일신의 무력으로는 절대 상대가 되지 않는 녀석이었지만, 분노를 담은 그의 눈빛은 내 몸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불가능합니다.”

서현우의 원망스러운 눈빛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저 눈빛을 마주하고도 거짓말을 말한다면 그것은 서현우를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나는 있는 그대로 솔직히 녀석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서현우 님의 포지션.”

그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당신의 역할은 뒤에서 사람들을 살리는 일입니다.”

“친형 같은 사람 하나 지키지 못한 내가 무슨…….”

“그러니 더더욱 해야죠.”

“뭐라고요?”

“철민 씨 같은 플레이어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만들어야 할 것 아닙니까!”

싸늘한 시선이 날아왔다.

“그런다고 철민이 형이 살아오진 않아.”

“당신 같은 사람도 만들어서는 안 되겠죠.”

서현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 당신 아무리 천가라지만 말이 너무 심한 거…….”

“당신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건…….”

나는 덤덤히 그의 분노어린 시선을 받아들이며 말했다.

“저의 팀에 들어와 팀원들을 살리십시오. 그러면 저희가 당신의 원수를 죽이겠습니다.”

“…….”

“그 누구보다 빠르게 녀석들의 배를 가르고.”

“…….”

“그 누구보다 많이 녀석들의 목을 취하겠습니다.”

“당신…….”

“그것으로는 부족하시겠습니까?”

침묵이 흘렀다.

곧이어 작은 소음이 들리고.

흐느끼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 흐윽.”

그의 울음은 멈출 줄 몰랐다. 철민이라 불리는 플레이어에 대한 애정을 모두 쏟아붓는 듯한 울음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울던 서현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결심을 굳힌 듯, 단호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들어가겠습니다. 천외천에.”

훗날 전장의 지휘관이라 불리는 신의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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