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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14화 (114/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14화

    114. 변화(4)

    허락을 받은 지테일은 광장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나는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의 후손이자 중앙박물관을 운영하는 지테일이다!”

    애커만의 환생이 돌아왔다는 망상을 펼치던 어인들의 실망 섞인 눈빛이 날아들었다. ‘그럼 그렇지’라며 고개를 돌리는 어인들도 있었고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어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테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내가 누군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너희들은 지금 누군가의 아비를 죽이고 자식을 해했다!”

    지테일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광장에 서 있던 어인들이 얼어붙었다.

    일순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지테일의 외침에 어인들은 조금씩 자신이 조금 전 했던 짓을 떠올렸다.

    “……!”

    머릿속에 가득했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기분이 든 어인들이 표정을 굳기 시작했다.

    “내, 내가, 대체 내가 왜……!”

    “머릿속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나도…… 뭐에 홀려서 그랬던 거라고!!”

    끔찍한 악몽을 기억해 낸 어인들의 절규하듯 외치는 소음 속에, 지테일이 소리쳤다.

    “죽인 건 너희들이다. 그 사실은 바뀌지 않아!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지테일은 다시 한번 어인들이 한 행동을 되짚었다.

    지테일의 말을 들은 어인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창백해진 얼굴의 어인들과 여전히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 어인들이 섞여 부산스러운 느낌을 풍겨 냈다. 지테일은 천천히…… 그리고 정확한 말투로 관중들에게 외쳤다.

    “가슴속에 묻고 살아라. 평생 사죄해라. 너희들의 멍청함에 아틀리안을 뺏길 뻔했던 이 아찔한 순간을 기억해라.”

    웅장한 지테일의 연설에 정신을 뺏겨 있던 어인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 잠깐! 아틀리안을 뺏겨?”

    “누구한테…….”

    어인들이 내비치는 의문에 지테일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 리테일이라는 어인의 최면에 놀아난 것이다.”

    “뭐?”

    놀라움, 경악 그리고 의심이 관중들의 얼굴에 내비쳤다. 하지만 지테일이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일까? 의심하는 어인보다는 지테일의 말을 믿는 어인들이 더 많았다.

    관중들을 훑어본 지테일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은 션이라는 어인이다.”

    모든 것의 배후가 밝혀지는 순간.

    여기저기서 분노가 터져 나왔다.

    “션? 리테일? 그게 누구야?”

    “누가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션이라면 그 녀석이잖아. 중앙지부에서 일하던 놈.”

    “예전부터 알아봤어. 그 권력에 눈이 먼 미친놈이……!”

    내분으로 혼란스럽던 전장의 열기가 다시 붙기라도 한 것인지, 장내가 후끈거렸다. 당장이라도 타오를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달아오른 전장에 찬물을 끼얹은 것 또한 지테일이었다.

    “전쟁은 아직 끝이 아니다.”

    어리둥절한 관중들을 바라본 지테일은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이 사건의 배후이자, 너희를 그렇게 만든 범인이 있다!”

    우뚝 솟은 첨탑 위. 누군가와 혈투를 벌이는 어인 둘을 가리켰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과 죽음의 군주의 공격을 막기 바쁜 어인 둘을! 그러나 어인들은 이 부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저 개자식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대가를 톡톡히 받아 주마!”

    한마디씩 쏘아붙이는 어인들을 향해 지테일이 말했다.

    “아직이다! 너희들이 저 녀석의 근처로 가면 또다시 당할 것이다.”

    지테일의 말에 어인들이 움찔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 들려왔던 끔찍한 경험. 그 형언할 수 없는 더러운 감정을 떠올린 어인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무게감 있는 목소리를 내뱉은 지테일이 날아올랐다.

    사파이어처럼 푸르른 피부를 가진 드래곤이 순식간에 솟아오른 것이다. 하늘 위로 올라간 드래곤은 자신의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날개를 쫙 펼쳤다.

    그 웅장한 자태에 어인들은 감탄을 터트렸다.

    “와!”

    작게 그릉거린 드래곤이 무심한 표정으로 광장의 어인들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한 곳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

    어인들은 눈으로 좇기도 힘든 드래곤을 열심히 바라봤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전설의 드래곤 위에 당당히 서 있는 지테일을 바라봤다.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한순간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어린아이들처럼.

    어인들의 눈에, 지테일은 더 이상 중앙박물관장이 아니었다.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의 후예이자, 해저 도시 아틀리안을 지킨 영웅이었다.

    “가라, 용기사여!”

    “죽여 버려!”

    “지테일!!”

    어인들의 외침이 응원가처럼 깔리고…….

    션과 라미르를 향해 돌진하던 드래곤이 아가리를 쫙 벌렸다.

    콰과과과광-!

    길게 벌어진 반 페르데이스의 입에서 만년설이 쏟아져 나왔다. 모든 것을 얼려 버릴 것처럼 맹렬하게 쏘아져 가는 만년설은 실제로 바닷물을 빠르게 얼리고 있었다.

    길게 이어진 만년설이 션이 만든 방어막과 충돌했다.

    콰아아앙-!

    고막을 찢을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고. 거리를 벌린 인간과 죽음의 군주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쩌적.

    쩌저적-!

    그토록 통하지 않던 공격이 통하기 시작했다.

    브레스를 맞은 방어막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지테일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의 유물. 거대한 망치를 든 지테일이 도약했다. 드래곤의 머리 위에서 뛰어올라 자신의 키만큼이나 거대한 망치를 등 뒤로 활짝 젖힌 모습.

    그 용맹한 모습을 본 어인들은 넋이 나가 있었다.

    “으아악!”

    모든 힘을 실은 공격. 지테일의 망치가 얼어붙기 시작한 션의 방어막을 강타했다.

    콰아앙-!

    션의 방어막이 산산이 조각났다.

    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테일을 바라봤다.

    “이럴 수가……!”

    위기를 느낀 라미르가 재빨리 최면을 시전했다. 하지만…….

    지테일은 고개를 돌려 라미르를 노려볼 뿐이었다.

    자신의 최면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을 알게 된 라미르는 사색이 되었다.

    “자, 잠깐! 내가 다 설명을…….”

    푹.

    말을 잇기도 전에, 라미르의 목이 꿰뚫렸다.

    애커만의 또 다른 유물이 움직인 탓이었다.

    최면술사 라미르의 목을 꿰뚫은 지테일은 무심한 표정으로 션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네놈이…… 감히……!”

    푹.

    “듣기 싫군.”

    반란군의 대장 션 역시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목숨을 잃었다. 축 늘어진 션의 목숨을 취한 지테일은 애커만의 삼지창으로 션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빼냈다.

    “드디어 모두 모았군.”

    애커만의 유물을 모두 모은 지테일이 마지막 유물을 착용할 때였다.

    화악-!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빛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강렬한 황금빛 줄기가 해저 도시를 환하게 비추었다. 휘황찬란한 지테일은 그 어느 때보다 위엄 넘치는 모습을 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어인들은 잠시 넋을 놓았다가, 이내 소리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영웅의 탄생이다!”

    “지테일!! 지테일!!”

    환호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나와 박한별 그리고 나의 소환수들은 그 모습을 뿌듯하게 쳐다보았다.

    조금 돌아오긴 했지만, 이편이 내가 가장 바라 마지않는 결과였다.

    살생은 최대한 줄이고 가장 좋은 결과를 뽑아냈으니 대만족이라 할 수 있었다.

    “녀석들이 말을 바꿔 지상에 쳐들어오지는 않겠죠?”

    박한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쉴 틈 없이 올라오고 있는 알림음이 내 믿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해저 도시 아틀리안의 쇠퇴를 막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인의 호감을 얻기 쉬워집니다.]

    [해저 도시 아틀리안의 운명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어인들이 이름 모를 당신을 기억합니다.]

    [어인들이 인간에게 호감을 갖습니다.]

    [어인들이 인간사냥을 금합니다.]

    [칭호 ‘운명을 바꾼 자’를 획득합니다.]

    [스킬 ‘왕의 권위’를 획득합니다.]

    …….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알림창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렇게 일을 키울 생각은 없었다. 단순히 상황이 흘러가다 보니, 저런 썩어빠진 어인에게 아틀리안을 맡길 바에 지테일이 맡는 것이 인간에게 훨씬 유리할 것이라 생각해서 실행한 결과였다.

    단순히 인간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막고, 주권을 잡은 지테일에게 희귀한 물건이나 얻어 내려고 했던 짓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결과물이 터져 나왔다.

    천천히 새로 얻은 칭호와 스킬을 살펴보려 상태창을 열었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

    “고맙다.”

    한순간에 영웅이 된 지테일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웃으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물컹하고 미끌거리는 이상한 감촉에 미간이 구겨지려 하는 것을 간신히 참아 냈다.

    ‘이런 상황에 표정을 구기는 건 예의가 아니지.’

    잡은 손에 힘을 꽉 쥔 지테일이 말했다.

    “얼떨결에 영웅행세를 하게 돼 민망스럽군.”

    “그래도 썩 잘 어울린다.”

    내 말에 박한별이 맞장구쳤다.

    “맞아요. 진짜 전설 속에 나오는 영웅 같아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박한별의 칭찬에 지테일의 얼굴이 붉어졌다.

    “고맙다, 너희가 아니었으면 아틀리안은 크게 망가졌을 거다.”

    “알고 있으면 됐어. 앞으로 지상에는 올라오지 마라.”

    “알았다. 내 목숨을 걸고, 그 약속은 반드시 지키지. 아마 다른 어인들도 잘 따라 줄 거다.”

    어느새 왕과 같은 위엄을 풍기기 시작한 지테일을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마치 네가 왕인 것처럼 말하네? 고리타분한 박물관이나 운영하던 녀석이 말이야.”

    다소 도발적인 멘트에도 지테일은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웃었다.

    “아틀리안을 지배하던 녀석이 죽었다. 이제 누굴 왕으로 떠받들 것 같나?”

    자신감 넘치는 지테일의 모습에 나는 허, 하고 웃어 보였다. 녀석은 자신의 위치를 생각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네놈이겠지.”

    대답을 들은 지테일은 흡족한 미소를 지은 뒤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대화하기 좀 그렇군. 나를 기다리는 녀석들이 있어서 말이야. 조금 이따 대화하지.”

    “이야, 사람이…… 아니 어인이 한순간에 바뀌면 죽는 법인데.”

    “어쩔 수 있나? 저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지테일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려 보이며 첨탑 아래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어인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목이 터져라 지테일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최면에 걸려 동족을 죽인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건지, 정말 영웅의 탄생을 축하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해저 도시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래야겠군. 가 봐라. 어인들 목 빠지겠다.”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라. 도시를 지킨 영웅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잠시 둘러본 뒤에 박물관으로 찾아가지.”

    “좋다.”

    흡족한 미소를 지은 우리 둘은 다시 한번 악수를 한 뒤 헤어졌다.

    등 뒤로 우레와 같은 함성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우렁찬 함성을 들으며 걷던 나는 조용히 상태창을 열려다가 멈칫했다. 나란히 걷고 있던 박한별이 의식되었다.

    나는 조용히 걷고 있는 박한별에게 물었다.

    “한별 씨도 보상 얻으셨어요?”

    당장 활력을 이용해 박한별의 상태창을 훔쳐볼 수도 있었지만, 그냥 묻기로 했다.

    박한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모를 구원자’라는 칭호 하나요. 그런데…… 별로 쓸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이미 상태창을 확인했는지, 박한별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내비쳤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왠지 모를 안도감에 휩싸였다가 흠칫했다.

    ‘동료가 강해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런데 왜…….’

    곰곰이 생각한 나는 결국 마음속에 들어찼던 못된 생각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보다 강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그득 차올라 있었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이기심을 내몰았다.

    ‘찌질한 생각하지 말자.’

    몇 번이고 다짐한 나는 조용히 상태창을 열어 봤다.

    새롭게 생긴 칭호와 스킬.

    그 사랑스러운 이름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자연스레 먼저 눈이 가는 것은 당연히 스킬이었다. 나에게 스킬이라고는 활력밖에 없던 탓이었다. 물론 드래인이라는 좋은 스킬도 있긴 했지만, 아이템에 붙어 있는 반쪽짜리 스킬이었다. 내 고유 스킬이 생겼다는 생각에 나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제발 좋은 거……. 제발……!’

    몇 번이고 기도한 나는 실눈을 뜨며 조용히 상태창을 살폈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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