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10화
110.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5)
“역시.”
내 예상은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암살이의 참격을 막은 것은 션이었고, 그의 뒤로 따라붙었던 어인들은 결코 상대하기 버거운 상대가 아니었다.
저들의 상태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나와 우마의 전격으로 박물관 안에 들어온 대부분의 어인들은 기절하거나, 목숨을 잃은 상태.
“이, 이게!”
멀쩡한 것은 오직 션뿐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육체는 멀쩡해 보였으나, 순식간에 동료들을 잃은 충격이 남아 있는 듯했다.
“어떻게 할까? 계속할래?”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녀석을 몰아붙였다. 아쉽지만 전격을 쏘는 와중에도 녀석의 능력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툭 하고 가로막힌 느낌.
그것의 정체를 파악해야만 했다.
“…….”
“왜 말이 없어?”
“네놈…… 네놈이……!”
한참을 나를 노려보며 뇌까리던 녀석은 이내 큭 하고 웃어 보였다.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에 실성한 것이 아닌가, 녀석을 자세히 보았지만, 그런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녀석은 나와 우마 그리고 암살이를 자세히 살피더니 이내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량한 재주 따위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
“웃기지 마라! 해저 도시 아틀리안은 이미 내 손에 들어왔다. 고작 너희 셋이 이 해일 같은 파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단 말이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뭐, 뭣!?”
“하나 묻지. 이곳에 온 이유는 애커만의 유물을 갖기 위해서인가?”
“……크큭. 그렇다! 애커만의 유물은 모든 어인들이 따를 만한 상징성을 부여하지, 비록 쿠데타로 이루어진 왕국일지라도 말이야.”
나는 이제야, 녀석이 이곳에 직접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애커만의 유물들은 값비싼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나는 천천히 머리를 굴린 후, 녀석에게 말했다.
“그다음은? 해저 도시를 지배하면 곧장 지상으로 침투할 건가?”
“크큭, 두렵나?”
“별로.”
예상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녀석의 계획에 나는 눈빛을 바꿨다.
지상이나, 해저 도시나, 세상을 좀먹으려 하는 녀석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부류의 것들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였다.
“가볍게 구경이나 하고 가려고 했는데 말이야.”
나를 녀석을 보며 인상을 구기기 시작했다.
“인간을 노예로 잡아 오질 않나, 해변가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질 않나. 선을 넘어도 너무 넘더라고.”
나 역시 눈빛이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왜 몇몇 쓰레기 같은 것들 때문에 잘살고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탓이었다.
“원래 세상은 약육강식이다.”
녀석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약육강식…… 그래, 약한 자는 먹히는 법이지. 바로 너처럼.”
“애송이가 뭐라는……?”
촤악-!
피가 튀기 시작했다.
서슬이 시퍼런 암살이의 낫이 션의 어깨를 찢은 탓이었다. 흑운의 기운으로 온몸을 숨긴 채 움직인 암살이의 일격에 녀석은 당황했다.
뒤를 돌아보는 녀석의 등 뒤로 뇌룡을 날렸다. 물속이라 그런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곧 사방으로 흩날렸지만, 상관없었다.
녀석을 맞추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크아아악!”
녀석은 고통스러운 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순식간에 녀석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고는 더 이상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툭 끊기는 듯한 이질적인 감각이 다시금 느껴졌다. 마치 세상과 세상을 단절시키는 듯한 느낌. 그 후로 가한 공격은 너무나도 손쉽게 막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나는 웃을 수 있었다. 그토록 궁금했던 녀석의 비밀을 알아냈으니까.
“그런 거였군.”
나는 녀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녀석의 목덜미에 걸린 목걸이가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내가 잘 아는 느낌이었다. 조금 전, 유물에서 보았던 빛과 같은 느낌.
저것은 차마 회수하지 못했던 애커만의 유물이 분명했다.
“탐낼 만했군.”
션이 왜 이리도 애커만의 유물들을 노리는지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목걸이 하나가 이 정도의 방어막을 생성할 수 있는 수준이라니…… 놀라움을 넘어 경악할 만한 수준이었다.
‘만약 애커만의 유물이 모두 모여 있었다면…….’
어떤 능력치를 낼지 감히 상상조차 가질 않았다.
“최강의 방어막이라…….”
그러나 내 목걸이에 들어 있는 녀석은 저것이 조금은 다른 개념이라며 잔소리를 해 대고 있었다.
-주인, 저것은 방어막이 아니다.
‘그럼?’
-일시적으로 공간을 분리하는 개념이지. 쉽게 말하자면…….
이어지는 반 페르데이스의 설명. 그것을 모두 듣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 오는 느낌이었다. 반 페르데이스의 설명을 애써 무시한 나는 션을 노려봤다.
지금은 교육 영상이나 듣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쇄액-!
나는 날아오는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어인들이 모두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녀석은 물의 흐름을 어느 정도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마치 천가에서 사용하는 염동력처럼. 계속해서 작은 삼지창이 날아왔다.
나는 옛 생각에 잠겨 천천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그것들을 피하며 다가가기 시작했다.
스승님께 가장 먼저 배웠던 균형 잡기.
그 기본기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션이 날린 삼지창은 미세한 차이로 나를 피해 가고 있었다.
기초를 다진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녀석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하자, 녀석은 점점 사색이 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역시 녀석이 내세울 것은 애커만의 유물이 다인 것 같았다.
다른 어인들에 비해 크고 강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공격 속도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고, 공격력 또한 그저 그랬다. 거슬리는 것은 오직 녀석의 방어 능력이었다.
“그래도 뭐 언젠간 부서지지 않겠어?”
암살이의 공격과 전격 공격이 한 번씩 통했던 것을 보면, 녀석의 기술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터.
나는 점점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자, 잠깐!”
당황한 녀석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앙-!
부서질 듯 묵직한 감각이 주먹에 울렸지만, 녀석은 멀쩡했다. 션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막이 존재했다. 그 상황을 지켜본 션은 웃기 시작했다.
“크큭. 네놈이 아무리 강해 봐야, 나를 죽이진 못한다.”
“그건 해 봐야 아는 거고.”
나는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흑운을 회전시켜 높은 살상력을 추가하기도 했고, 만 년설을 이용해 막을 얼리려 노력하기도 했다.
“크크큭.”
그러나 모두 소용없는 짓이었다.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뿐이었다.
그 간악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머릿속 무언가 툭 끊기는 느낌이었다.
번번이 막히는 공격에 화가 난 나는 주먹에 모든 힘을 그러모았다.
그러고는 우마와 암살이에게 명령했다. 내가 가리킨 한점을 향해 전력을 쏟아부어 공격하라고.
-소용없는 짓이다, 주인. 내가 설명하지 않았나, 저건 애초에 방어막의 개념이 아니라…….
‘좀 닥쳐라.’
-지금 뭐라고…….
‘닥치라고!’
쫑알쫑알 말이 많은 반 페르데이스는 무시한 채, 우리는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구오오오오.”
“우마!!”
“크흑.”
나와 우마 그리고 암살이가 힘을 모두 충전시킨 것은 거의 동시였다.
“흥, 그런다고 나에게 공격이 닿을 리가…….”
“지금!”
콰과과과광!!
고막을 때리는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고…….
쩌적-!
쩌저저저적-!
무엇인가 갈라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말은 돼.”
나는 우마와 암살이에게 한 번 더 공격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즉각 대답한 우마와 암살이는 다시 한번 힘을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미, 미친놈들!”
경악과 공포에 사로잡힌 션은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박물관 바닥을 부수기 시작하더니, 이내 드러난 흙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녀석은 땅을 파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땅굴을 만들어 내고, 움직이는 녀석이 느껴졌다. 나는 그 움직임에 따라 땅을 향해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콰앙-!
투쾅-!
콰앙-!
그러나 소득을 낼 수는 없었다. 녀석의 방어막에 번번이 막혔기 때문. 녀석은 점점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결국 녀석을 잡는 것을 포기한 나는 눈을 감고 앉아 기감을 넓혔다.
“…….”
녀석이 어디로 향하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계속해서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가던 녀석은 이내 공격이 없어졌음을 확인하고는 내가 지나왔던 광장 쪽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 * *
녀석의 동선을 파악한 나는 박한별과 지테일을 불러들였다.
“도윤 씨!!”
나에게 화를 내려는 박한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뀐 지테일의 모습이었다.
“허, 장비빨 진짜…….”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의 동상과 완전히 일치하는 모습. 지테일은 그전에 봤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뀐 것은 겉모습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입은 장비의 능력인지, 지테일에게 잠재되어 있던 능력이 개화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둘 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테일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 싸워도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테일이 풍기는 기운은 강대하고 위협적이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군요.”
“그저 잠시 빌린 힘일 뿐입니다.”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지테일의 눈빛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탁해 보였던 눈동자는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고, 흑색의 눈동자는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하는 벽안이 되어 있었다.
나는 놀라운 변화를 보인 그와 박한별에게 조금 전의 상황을 전했다.
반란군의 대표 션이 애커만의 유물로 추정되는 아이템을 갖고 있다고. 또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해저 도시 아틀리안을 빠르게 점령 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리 말하자, 박한별과 지테일의 안색이 굳기 시작했다.
“도와야 합니다. 아직 그들과 항전을 벌이고 있는 어인들이 있을 겁니다.”
“맞아요. 그들을 내버려 두면 당하고 말 거예요.”
그들의 다급한 발언에 나는 그들을 진정시켰다. 현재 상황은 당장이라도 끼어들어 그들을 말리고 진정시켜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아직 적의 숫자와 규모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자칫 잘못하다가 함정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그런 시시껄렁한 것이나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해저 도시 전체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테일의 태도는 완강했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혼자라도 달려가 반란군들을 제압하고 아틀리안의 평화를 지킬 거라고, 그리 말했다. 그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니까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반란이 왜 일어났는지, 왜 션의 사상에 동화된 녀석들이 이리도 많은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중요한 건…….”
“평소 수백이 넘는 어인들을 보는 당신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사상이 퍼졌다면, 분명 어떠한 수를 쓴 것이 분명합니다. 만에 하나 애커만의 유물을 가지고 있는 당신이 녀석들의 술수에 빠진다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내 말을 듣던 지테일은 이내 입을 벙끗거렸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만에 하나라는 가정이 그의 마음을 붙잡은 탓일 터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는 그를 향해 말했다.
“다시 들어가세요. 당신은 가장 중요한 때에, 완벽한 타이밍에 나와 어인들을 단숨에 사로잡아야 합니다.”
여전히 망설이던 지테일이 입을 연 건 조금 뒤의 일이었다.
“믿어도 되겠소?”
“션이 해저의 도시를 장악하면 가장 위험해지는 것은 인간들입니다. 걱정하지 마시죠.”
“그렇다면…… 염치없지만 부탁하겠소.”
작게 대답한 지테일은 제 발로 보따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나는 너무 염려 말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나와 박한별은 빠르게 박물관 밖을 나섰다. 뜸 들일 시간이 없었다.
광장에 도착하자.
“반역자다! 죽여!”
“도시를 좀먹는 낡은 사상을 파괴해라!”
혈투를 벌이고 있는 어인들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