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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09화 (109/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09화

    109.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4)

    흑운을 걷고 나온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위장한 어인들의 주검이었다. 그사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작은 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우마가 흑운의 장막을 나가기 전, 내가 건네준 도깨비 보따리. 이 안에 박한별과 우마 그리고 박물관장인 지테일이 박물관의 유물들과 함께 들어 있을 터였다.

    고개를 숙여 도깨비 보따리를 집어 든 뒤, 조심스레 입구를 벌렸다.

    내 의지에 반응해 푸른빛이 일더니, 박한별과 지테일 그리고 우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마!!”

    그리고 나는 나타난 그들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뭐 하세요, 다들?”

    박한별은 우마를 짓뭉개듯이 끌어안고 있었고, 지테일은 애커만의 유물들을 아기 다루듯이 감싸 안고 있었다.

    지테일은 상황이 민망했는지, 연신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크흠.”

    “빨리 다시 집어넣으세요.”

    나는 지테일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건 우리 선조의…… 히익!!”

    암살이보고 볼썽사납게 뒤로 나자빠진 지테일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쉰 뒤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여린 아이입니다.”

    “그럼 저 불길한…… 아니, 저 녀석이 당신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나와 암살이를 번갈아 보던 박물관장 지테일은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것들 빨리 다시 집어넣으시라고요.”

    내 말을 들은 지테일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건 우리 선조의 유물…….”

    “저 녀석들에게 뺏길래요?”

    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박물관 내부로 들어오는 이들을 가리켰다. 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그 뒤로 죽 늘어선 어인들. 이를 확인한 지테일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요? 제 말 들으실래요? 아니면 싸우다가 다 뺏기실래요?”

    기회를 주는 것처럼 물었지만, 사실상 지테일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가 끌어안고 있는 물건들은 지테일이 목숨만큼이나 아끼는 물건들일 테니까.

    “정 불안하면 유물과 함께 다시 들어가도 좋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내 말에 화들짝 놀란 지테일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거냐고…… 설마 저 많은 어인들을 상대로 싸울 거냐 묻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지테일은 조금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왜 아무 상관 없는 인간들이 중앙박물관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느냐 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라고 대답했다.

    영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지테일에게 싱긋 웃어 보인 나는 도깨비 보따리를 열어 그에게 내밀었다.

    “선조의 유물을 지키고 싶다면 다시 들어가세요.”

    잠시 망설이던 지테일이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실랑이할 시간 없습니다.”

    “나는 이곳의 주인이자, 애커만의 자손입니다. 외부의 사람에게 박물관…… 아니, 도시의 운명을 맡길 수만은 없습니다!”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그의 눈빛을 본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이 어느 것 하나 틀린 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나와 박한별은 외부인일 뿐이었다. 그것도 환영받지 못할 외부인.

    지테일은 우리에게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오기를 부려 댔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당사자들이 결정할 일이라고…… 곧, 저들을 진압할 귀족들과 기사들이 몰아닥칠 거라 믿는 눈치였다.

    “그러시죠. 그럼.”

    “도윤 씨!!”

    대화를 듣고 있던 박한별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저 말이 맞지 않습니까? 자기 집은 자기 손으로 지켜야지.”

    “이분이 할 수 있을 리가…….”

    나는 박한별의 입을 재빨리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지테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와는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지키는 건 당신이 하시죠.”

    박한별은 내가 너무 매정하다며 나무랐고, 지테일은 굳은 결심을 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생결단을 각오한 눈빛. 썩 괜찮은 눈빛을 한 그의 모습에 나는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게 도움이 될 겁니다.”

    나는 중앙광장 잡상인에게서 샀던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의 나침반을 지테일에게 건넸다.

    여전히 환한 빛을 내뿜고 있는 애커만의 나침반을 건네받은 지테일의 동공이 흔들렸다.

    “대체 왜 이걸…….”

    “아무리 봐도 내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무심하게 툭 내뱉고 나서는 뒤를 돌았다. 이미 많은 어인들이 무기를 든 채 중앙박물관 안으로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시간을 끌 테니 착용하세요.”

    “이건…….”

    “당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위대한 모험가의 유물입니다. 잠깐 사용한다고 흠집 하나 나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나는 쓰린 마음을 애써서 달랜 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머리 위로 우마를 태운 박한별 역시 지테일의 모습을 가리며 내 옆에 섰다.

    그러고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귀한 걸 왜 주셨어요?”

    “말했잖아요. 아무리 봐도 내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그러자, 박한별이 조금 달라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눈치였지만, 애써 변명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이쪽이 이미지상 더 유리해 보였으니까.

    “크흠, 집중하시죠.”

    “네.”

    사실 나라고 전설급 아이템을 넘기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의 나침반은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상태창에는 오직 한마디만 덩그러니 쓰여 있을 뿐이었다.

    -적합자가 아닙니다.

    즉, 아이템이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이템도 자신에게 맞는 주인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엔 그 아이템에 적합한 인물은 단 한 명뿐이었다.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의 자손이자, 중앙박물관장인 지테일.

    이보다 더한 적합자는 없어 보였다. 일례로, 그가 다가가자 유물들이 공명했다.

    “설마…… 인간? 혹시 네놈들이 토나를 죽인 것이냐!!”

    가장 선두. 분노에 찬 들끓는 외침을 지른 어인이 나와 박한별을 죽일 듯 노려보며 다가왔다.

    “아, 이놈 이름이 토나였어?”

    나는 방바닥에 굴러떨어진 녀석의 목을 태평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에 우두머리 어인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감히……! 내 네놈을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주마!”

    그의 분노와 함께, 삼지창 수십 자루가 공중에 떠올랐다. 일반적인 삼지창보다 짧고 작은 무기. 지구에서 사용하는 단검과 비슷한 형태였다.

    쇄액-!

    두둥실 떠오른 수십 개의 날카로운 삼지창이 나와 박한별을 향해 쇄도했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 강대한 위력을 담은 삼지창들이 우리의 몸을 모두 꿰뚫을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암살아!”

    고오오오.

    한 번의 부름에 암살이 역시 자신의 분노를 숨기지 않은 채 낫을 휘둘렀다.

    채채채챙-!

    단 일격에 날아오던 삼지창이 우후죽순 떨어져 나갔다. 그뿐만 아니라, 날아간 검격에 어인 몇 명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가공할 만한 위력을 체감한 우두머리 어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 죽음의 기사가…….”

    “뭐? 저 아저씨 선 넘네…… 암살아, 너보고 죽음의 ‘기사’라는데?”

    내 설명에 암살이가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주인인 내가 별로 불러 주지 않아, 심기가 불편한 상황에, 망발까지 들었으니 그 기분이 오죽할까.

    암살이는 순식간에 죽음의 기운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 오싹한 힘이 흑운과 만나 칠흑같이 아득한 불길함을 내비쳤다.

    이 전보다 더욱 깊고, 정돈된 기운이었다.

    반지 안에서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는 가히 ‘군주’다운 모습.

    자랑스럽게 미소 지은 나는 암살이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쓸어버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흑마에 올라탄 암살이는 거대한 낫을 미친 듯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지워 버리기라도 할 기세로 수십 발의 참격이 동시에 날아갔다.

    물속을 가르고 나아감에도, 위력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우직하고 묵묵한 그의 성장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반응은 오래가지 못했다.

    눈을 끔뻑이며 상황을 바라봤다.

    못해도 절반은 쓸어버릴 줄 알았던 공격이 조금의 피해도 입히지 못한 것이 아닌가!

    흙먼지가 가라앉고 멀쩡히 서 있는 어인 군단을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암살이를 쳐다봤다.

    암살이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하며 뒷머리를 긁고 있었다.

    “겨우 그런 공격이 통할 줄 알았나, 죽음의 기사여!”

    선두에 서 있는 어인의 말을 들은 암살이는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한 모양이었다. 자신은 기사가 아닌 군주라며 해명을 하고 싶어 하는 암살이를 애써 무시한 채, 정면을 바라봤다.

    긴장이 감돌았다.

    조금 전 일격은 결코 이리도 쉽게 막을 수 있을 만한 공격이 아니었다.

    평범한 어인이었다면, 절반 이상은 명을 달리했을 공격. 암살이의 공격을 모두 막아 낸 것은 아마, 선두에 있는 저 어인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어린 어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토나의 발언을 기억해 냈다. 해저 도시의 주인이 될 거라 말했던 녀석의 이름이 떠올랐다.

    “당신이 션인가?”

    “인간이 어찌 내 이름을 알지? 해저 도시에서는 인간과 교류할 수단이 없었는데 말이야.”

    “나도 조금 전에 들었어, 이 녀석한테.”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거인과 같은 몸을 툭 찼다.

    그러자, 션의 얼굴이 다시 한번 일그러졌다.

    “스스로 묏자리를 까는군.”

    “그건 두고 봐야 아는 거고.”

    나는 조소를 흘리며 녀석을 도발했다.

    내가 예정에도 없던 도발을 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적의 실력을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느껴지는 기운은 암살이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만한 기운이었다. 그런데, 공격을 막은 것을 보면 또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아득한 실력자로 추정됐다.

    그 인지와 현상 사이의 간극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서든 그 차이를 좁혀야 했다.

    그 와중 내가 생각한 가장 저렴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상대방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일이었다.

    “아끼는 부하였나 보지?”

    나는 괜히 쓰러져 있는 토나의 육신을 발로 툭툭 건들이며 말했다.

    “진짜 죽고 싶어 용을 쓰는군.”

    션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천천히 다가오는 그의 모습을 본 나는 빠르게 움직였다. 애커만의 유물을 하나하나 착용하고 있는 지테일을 도깨비 보따리 안에 강제로 쑤셔 넣었고, 박한별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윤 씨, 갑자기 왜……!”

    “잠시만 있어요.”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박한별이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미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녀석의 힘도 모르고, 능력도 모른다.

    괜히 그녀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그러고 무엇보다 앞으로 사용할 전략에 그녀는 크나큰 방해 요소였다.

    그 와중에 뜬금없는 나의 행동을 바라본 션은 눈을 밝히고 있었다. 나의 도깨비 보따리가 무척이나 탐나는 모양이었다. 재빨리 도깨비 보따리를 숨긴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참격을 어떻게 막은 거지?”

    “흥, 내가 알려 줄 것 같나?”

    션의 콧방귀에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사악해 보이는 웃음에 션은 다시 한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왜 웃지?”

    불쾌하다는 듯한 그의 물음에 나는 더욱 짙은 주름을 내비쳤다. 그러고는…….

    화륵.

    나는 도깨비불 청화를 이용해 션과 그의 부하 사이로 이동했다. 그리곤 우마를 불러들였다.

    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이것도 막아 보라고.”

    “뭐, 뭣!”

    당황한 녀석의 반응은 무시한 채, 우마는 전격을 날려 대기 시작했다.

    “우마!!”

    물을 촉매 삼아 엄청난 전격이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널뛰었다.

    파직-!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파지지직!

    뇌전을 사방으로 미친 듯이 쏘아 대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깊은 해저가 태양 볕 아래 있는 것처럼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암살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무대는 우마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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