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08화
108.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3)
황당한 일이었다.
갑자기 도둑놈으로 몰리질 않나, 나를 잡으려던 녀석들이 죽질 않나. 여전히 이해가 가질 않는 상황뿐이었다.
“네놈…… 어디까지 침투를!”
이 상황에서도 여전히 나를 의심하는 지테일을 한심하게 바라본 나는 고개를 돌려 시민으로 위장한 어인들을 바라봤다.
“흠, 확실히……!”
평범한 어인이 아니다. 그들의 기운은 오랜 시간 단련을 통해 이루어진 것처럼 정돈되어 있었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강함과 단련으로 이루어진 무위. 일반적인 어인들이 당해 낼 만한 수준이 결코 아니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저 꼬마겠죠?”
“아마도요.”
해맑게 웃고 있는 꼬마 어인이었다.
박한별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킬킬대고 있는 꼬마 어인을 바라봤다.
“설마 하고 내버려 두었는데, 진짜로 걸려 들 줄이야…… 크큭.”
꼬마 어인은 나를 장난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기분이 더러워졌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내가 애커만의 나침반을 얻게 된 경위는 모두 저 녀석의 계획이 분명해 보였으니까. 나를 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나침반을 사 가는 것을 내버려 둔 것이다.
어린 어인은 조그마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며 재밌어 죽겠다는 듯 뒹굴기 시작했다.
“무식한 것들. 이러니 우리한테 당하지. 크하하하.”
그 모습을 본 중앙박물관장 지테일은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것이냐!”
“왜냐고? 당연히 이것 때문이지.”
어린 어인의 손에서 농축된 힘이 발사되었다. 작은 물방울 모양에, 빠르고 위력적인 공격.
애커만의 물품이 전시되어 있던 유리막이 순식간에 박살 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테일은 놀란 표정으로 애커만의 물품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애커만의 유물을 등진 채 그들을 향해 삼지창을 내밀기 시작했다.
“선조의 유물을 빼앗길듯싶으냐!”
우렁차고 날카로운 외침이었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그 모습을 본 나는 작게 감탄했다. 박물관에 들어오고 처음 본 애커만의 동상. 그것과 너무나도 닮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녀석은 애커만의 자손이 분명해 보였다.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본 나는 조금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비록, 다짜고짜 나를 공격한 이력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선조의 유물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걸려고 하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도와줄까?”
“닥쳐라! 더러운 녀석!”
단단한 오해를 한 녀석은 여전히 의심을 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혀를 쯧 차며 녀석에게 말했다.
“나 이쪽 편 아닌데…….”
“뭐?”
“아니라고.”
“…….”
그리 말하며 옆에 서 있던 어인 하나를 쓰러트리자, 녀석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것도 정말 노점상에게 산 게 맞고.”
나침반은 꺼내 흔들었다. 그와 비례해 흔들리는 녀석의 동공.
“개소리!”
“못 들었어? 나도 당한 거라니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지테일은 여전히 미덥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의심이 풀리기 시작했는지 나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도 기분 더럽다고 지금. 그리고…… 저 녀석들 혼자 상대할 수 있어?”
“어차피 곧, 영주의 기사들이 올 거다. 조금만 버티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어린 어인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크큭, 크하하하하! 우리가 중앙박물관을 터는데 그것도 생각을 안 했을까 봐?”
“…….”
“이렇게 소식통이 늦어서야…….”
지테일을 보고 혀를 찬 어린 어인은 우리에게 한 발짝 더 다가오며 말했다.
“영주는 죽었다. 한계를 뛰어넘은 우리의 걸림돌이라 죽여 버렸지.”
지테일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녀석을 노려봤다. 그러나 그 표정이 일변하는 데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툭.
“여기.”
“……어?”
바닥에 툭 떨어진 물체. 아니 물체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는 것은 분명 지테일이 아는 것이었다. 다름 아닌 영주의 머리. 해저 도시 아틀리안을 지배하는 영주의 떨어진 머리가 해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이제 이곳의 주인은 이놈이 아니라 션님이다!”
당당하게 외치는 어인에게 삼지창이 날아들었다.
쐐액-!
그러나 날카롭게 날아간 삼지창은 어린 어인 앞에 우뚝 멈춰 섰다.
“겨우 이 정도 공격으로 박물관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냐?”
너무나도 쉽게 막혀 버린 자신의 공격을 목격한 지테일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동시에 휘몰아치는 분노를 가감 없이 표출하는 중이었다.
“찢어 죽일 자식들! 대체 왜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말했잖아. 우리는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세상은 변했다!”
“그게 무슨…….”
“우리를 가로막던 결계가 사라졌다.”
어린 어인의 말에 지테일의 동공이 흔들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
“뭐?”
“이제 우리 용맹한 어인들이 이런 좁은 도시에 갇혀 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영역을 넓히고, 육지까지 모두 차지할 거다! 그리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영주의 처치는 불가피한 것이었지. 나약한 녀석은 필요 없으니까 말이야. 크큭.”
죽은 영주를 능욕하며, 킬킬 웃어 대는 어인을 보면서도, 지테일은 여전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우리 선조의 유물은 왜…….”
“당연한 것 아닌가? 애커만의 신물은 어인에게 더없이 귀한 보물이다. 어인들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물건들이란 말이다!”
당연한 것을 뭘 묻느냐는 어린 어인을 바라보며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녀석의 궤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육지까지 침공한다는 발언이 썩 거슬리게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허황한 꿈을 꾸는군.”
돌연 끼어든 내 말에 어린 어인이 미간을 찡그렸다.
“넌 뭐냐!”
“나?”
나는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그러고는 입매를 비틀어 올리며 대답했다.
“네놈들이 없애 버리려고 하는 존재.”
“그게 무슨…….”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박한별의 도깨비불을 내몰았다. 청화의 불꽃이 걷히며 나의 본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박한별도 자신의 도깨비감투를 머리 위로 올렸다.
모습을 드러낸 우리에게 꽂히는 시선은 하나같이 경악을 담고 있었다.
“이, 인간!?”
“그래, 인간이다. 네놈들…… 육지까지 차지할 거라고? 할 수 있으면 해 봐.”
투쾅!
동시에 내 왼편에 서 있던 어인들이 명을 달리했다.
일격에 10마리에 가까운 어인이 절명하는 모습을 본 우두머리는 입을 쩍 벌린 채 나를 바라봤다.
“인간이 어떻게 이곳에…….”
“있으면 안 되나요?”
이번에는 박한별이 껴들었다. 그녀 역시 어인들이 말한 대화 내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거대한 방망이를 어깨에 턱 걸친 박한별이 말했다.
“저희를 공격한다는데 그 전에 쓸어버리는 게 좋겠죠?”
화끈한 그녀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륵!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도깨비불은 꺼지지 않았다. 애초에 불꽃 개념보다는 허깨비 혹은 불빛에 가까운 능력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콰직-!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박한별의 신출귀몰한 움직임 덕에, 적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어린 어인이 어어, 하는 순간에 그의 편은 모두 사라졌다. 박한별이 우두머리 어인을 제외한 모든 어인들을 제거한 순간이었다. 어린 어인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곧이어 몸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몸이 불어났다. 어린아이의 크기에서 성인의 몸 크기로. 성인의 몸 크기에서 오크. 오크의 크기에서 트롤의 크기로.
순식간에 몸집을 불린 녀석이 날카로운 이를 들이밀며 포효하기 시작했다.
크롸라락!!
귓가를 찢을듯한 진동에 모두가 귀를 틀어막았다. 커진 것은 돌연 그의 몸집만이 아니었다.
쥐 죽은 듯 조용하고 잔잔하게 흐르고 있던 그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범상치 않은 기운이었다.
손쉽게 쓰러뜨렸던 어인들과는 달리, 차원이 다른 강함을 내비치고 있었다.
흘러넘치는 살기를 우리를 향해 쏘아붙이던 녀석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인간은 나약하다 들었는데, 다 그런 것 같지는 않군.”
“그래, 헛소문이야.”
나는 녀석의 물음에 차갑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서서히 힘을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힘이 모였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거슬리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저 녀석이 충돌하는 순간, 이곳 중앙박물관은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 뻔했다. 가능성은 적지만, 애커만의 유물 또한 상처 입거나 망가질 수도 있을 터. 이 점이 내가 가장 우려하는 점이었다.
또, 걱정되는 것은 박물관장 지테일의 안위였다. 박한별이야 걱정이 없었지만, 지테일은 당장이라도 싸움에 휘말려 크게 다칠 가능성이 있었다.
내가 그를 구할 이유는 없었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가능하면 살려 두고 싶은데 말이지…….’
그를 잠시 돌아본 나는 모습을 바꾼 녀석을 향해 말했다.
“나가서 싸우자고 하면…….”
“…….”
“아니다. 내가 뭔 기대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나는 박한별에게 말했다.
“한별 씨, 박물관의 물건 중 중요해 보이는 것만 수거해 와 주세요.”
“네?”
박한별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나에게 되물었지만, 나는 시간이 없다며 그녀를 재촉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화륵,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재빨리 흑운의 힘을 펼쳐 괴물의 모습으로 변한 어인들의 우두머리와 나를 가두었다. 그러고는 우마를 불러 인어의 아가미를 붙인 뒤, 흑운 밖으로 내보냈다.
“박한별이 보물을 모두 회수하면 신호해. 알겠지?”
“우마!!”
해맑게 대답한 우마를 보고 씩 웃어 보인 나는 고개를 돌려 적을 바라봤다.
거인처럼 변한 어인은 주위가 검게 물든 것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뭐 하는 짓이지?”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대화 좀 하자고.”
“웃기지도 않는군. 시간을 끌려는 속셈을 내가 모를 것 같나?”
낮게 으르렁거리는 녀석에게 나는 말했다.
“시간을 끌면 너희에게 더 유리한 거 아니야? 너희 편 엄청나게 몰려오고 있잖아, 지금.”
“……인간, 그것까지 눈치챈 건가?”
“모를 리가, 네놈이 소리치니까 쏜살같이 몰려들기 시작하던데…….”
“크큭. 알고 있다면 얌전히 죽어라!”
녀석의 비열한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러긴 싫고. 한 가지만 물어…… 아니다. 됐다. 벌써 준비가 끝났다네.”
“갑자기 그게 무슨…….”
녀석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싸늘해진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까, 쉽게 갈 방법이 있더라고.”
“그게 무슨…….”
“그냥 죽으란 소리야!”
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서걱-!
녀석의 목도 동시에 떨어졌다.
쿠웅-!
거대한 육신이 내리깔리고 흙먼지가 일었다. 차츰 가라앉는 흙먼지를 바라보며…… 나는 작게 웃어 보였다.
반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이야, 암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