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07화
107.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2)
나의 부름에 황급히 따라붙은 박한별이 물었다.
“도윤 씨, 갑자기 어디 가세요?”
“중앙박물관이요.”
“갑자기 박물관은 왜…….”
박한별은 잘 보고 있던 물건들을 내려놓고 와서인지, 썩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재빨리 주머니를 뒤져, 조금 전 산 아이템들을 건네기 시작했다.
“어머!”
깜짝 놀란 박한별이 입가를 틀어막은 채 소리쳤다. 일전에 두고두고 봐 두었던 물건들이 눈앞에 있었으니, 오죽 신기할까.
“어떻게 사셨어요? 저희는 돈도 없잖아요.”
“세상엔 물물 교환이라는 게 있습니다.”
“아!”
박한별은 왜 그 방법을 몰랐지, 라고 말하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돈도 조금 남았으니, 이따가 드릴게요.”
기뻐하는 박한별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인 나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노점상이 말한 중앙도서관. 그곳에 정말 애커만의 나침반이 존재하는지 궁금했다. 가품이 전설급이라면 진품은 최소 신화급 아이템일 테니까. 거기에 노점상은 분명 생전 애커만이 사용했던 모든 물품이 그곳에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한낱 나침반이 전설급인데, 그가 사용했던 무기나 방어구들이 그보다 격이 떨어질 리가…… 나는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의 물건들이 어떤 위용을 뽐내고 있을지 가늠조차 하질 못한 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후회하진 않으실 겁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박한별을 바라본 나는 어느새 도착한 중앙박물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와!”
중앙박물관의 첫인상은 박한별의 반응처럼 감탄사가 터져 나올만한 곳이었다. 드높은 천장에, 화려한 진주로 만든 샹들리에. 고급스러운 건축 양식이 눈에 띄는 곳이었다.
나와 박한별 몫까지 총 사천 피스의 해저 도시 화폐를 지불한 나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인물을 살폈다.
중앙박물관의 정 가운데. 위풍당당한 위용을 뽐내며 서 있는 어인이 눈에 들어왔다.
망치 상어의 얼굴을 한 조각상은 특이하게도 한 손에는 망치를 한 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있었다.
가까이 가자, 그의 아래에 적힌 석판이 눈에 들어왔다.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생소한 언어. 그러나 확실히 시스템은 달라져 있었다.
곧이어 원래 사용하던 언어처럼 저절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허.”
작은 헛숨을 내뱉은 나는 그대로 뇌에 전해지는 정보를 읽어 내려갔다.
[불굴의 대장장이이자, 용맹한 전사 그리고 위대한 모험가였던 애커만의 조각상]
나는 그 아래 쓰여 있는 그의 약력들을 지나친 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자가……!”
머리 위로 보이는 조그만 모자가 펄럭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느낌뿐이었지만, 조각상은 비범한 그의 모습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빠르게 잡다한 물건들을 지나쳤다. 그러고는 애커만이 생전에 사용했다던 물건들이 전시된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엄청 유명한 자였나 봐요.”
“예, 이곳에서 영웅 취급을 받는 자인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래 보이네요.”
애커만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도 커서 훌륭한 모험가가 될 거라고 떠드는 어린 어인들이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이렇게 인기가 좋을까요?”
궁금함을 표하는 박한별에게 나는 한 곳을 가리켰다. 애커만의 일대기가 쓰여 있는 석판. 석판을 발견한 박한별은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는 천천히 그의 물건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애초에 내 관심은 그의 일대기가 아니었다. 그가 사용했던 무기와 아이템. 그리고 이 나침반의 진품 유무였다.
환하게 빛나는 그의 물품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애커만의 나침반을 봤을 때처럼 영험한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의 삼지창에서도, 그의 더럽게 커다란 망치에서도 심지어 그가 사용하던 망원경에서도…… 흘러나오는 기운으로 보아 분명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은 진품이 분명했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말이지…….”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물건 하나를 매만졌다.
‘이게 진짜다……!’
어이없게도, 내가 노점상에서 구매한 나침반이 진품이었다. 저 고급스러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진열된 나침반이 아니라.
도시의 어인들이 모두 우상처럼 우러러보는 자의 물건이 도떼기시장 바닥에 나뒹굴고 다니고 있던 것이다.
이 허탈하고도 어이없는 현상의 이유는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인물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도윤 씨!”
“네?”
허겁지겁 달려온 박한별이 고개를 들고는 애커만의 물건들을 바라보다 하나를 가리켰다.
“이 물건…… 가짜래요.”
나는 깜짝 놀라 박한별을 바라봤다.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저 멀리서 직원들이 쑥덕이는 소리를 엿들었다고 했다.
“자세히 좀 말해 봐요.”
“그게 그러니까…….”
박한별은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빠르게 전해 주었다.
2인 1조로 움직이는 경비원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들 역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던 정보였는데, 얼마 전 애커만의 나침반이 사라져 난리가 난 사건이 벌어졌다고 했다.
극비리에 모조품을 가져다 놓긴 했지만, 여전히 애커만의 나침반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나는 흥미롭지 않냐며 재잘대는 박한별을 바라보며 땀을 삐질 흘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저들이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는 물건이 바로 내 주머니에 들어 있었으니까.
‘대체 왜……?’
나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멍한 기분이 들었다. 왜 보물을 훔쳐 가 놓고 시장 바닥에 내놓았을까. 이런 의미 없는 짓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시지 않는 물음에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어? 도윤 씨!”
갑자기 나를 부르는 박한별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여기…….”
박한별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환한 빛을 발하는 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어?”
깜짝 놀라 새어 나오는 빛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워낙 강렬한 빛이라 그런지 조그만 틈 사이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나침반의 움직임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머니에 들어 있던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의 나침반이 공명하고 있었다.
동시에 망치, 삼지창, 모자, 돋보기, 망원경이 진동하며 새하얀 빛을 뿜기 시작했다.
나는 영문 모를 일에 그저 멍하니, 현 상황을 지켜봤다.
“대체 왜……?”
그러나 그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네놈이었냐?”
등 뒤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 * *
뒤를 돌아봤다.
애커만…… 그러니까 조금 전 봤던 동상과 똑같이 생긴 어인이 서 있었다.
“애커만?”
그러나 녀석은 대답 대신 뾰족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 뿐이었다.
“감히, 유물을 빼돌리다니!”
나는 녀석의 공격을 가볍게 피한 뒤 녀석을 노려봤다. 녀석의 눈에 당혹이 물들었다. 쉽게 피할 만한 공격이 아니었다고 생각한 모양.
“겁도 없이 애커만의 유물을 빼돌리다니, 누구냐 넌!”
그의 물음에 대답하기도 전에, 주위가 시끄러워졌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애커만의 유물들은 미친 듯이 빛을 뿜고 있었고, 돌연 나타난 어인이 관람객을 공격했으니까.
주변을 지키던 경비원들이 달려왔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관장님.”
“관장님?”
“흥, 범죄자 놈이 알 바 아니다!”
코웃음을 치며 나를 노려보는 망치상어 어인의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중앙도서관장 지테일.
그제야, 나는 나를 공격하는 어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또, 무엇인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것도.
“범인은 사건 현장을 꼭 다시 찾는다고들 하지.”
혐오와 싸늘함이 공존하는 녀석의 시선을 받은 나는 헛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내가 훔친 것이 아니다.”
“주머니 속에 유물을 넣어 두고도 말이냐? 뻔뻔하기 그지없는 녀석이군.”
녀석은 그렇게 계속해서 나를 범인처럼 몰아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대화를 들은 경비원들 역시 무기를 든 채 우리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도윤 씨, 정말이에요?”
얼추 상황 파악을 끝낸 박한별이 물었다.
그 어이없는 물음에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나침반이 사라진 건 오늘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맞다. 그렇지. 미안해요.”
박한별은 미안한 듯한 얼굴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가 나침반을 훔친 범인이다! 포박해라!”
도서관장 지테일의 명령이 떨어지고, 수많은 경비원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얌전히 잡혀라!”
“아 우리는 그냥 노점상에서 산 거라니까!”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믿을 것 같나?”
나라도 믿지 못할 변명밖에 할 수 없는 가운데, 우리는 선택해야만 했다. 이대로 억울하게 순순히 잡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저들을 모두 때려눕혀야 하는 것인지…….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들이 비록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이들은 다른 몬스터와는 다르게, 지성이 있고, 사회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그 점이 왠지 모를 찝찝함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인간을 잡아 온 노예 상인들이야 별생각이 없었지만.
이대로 모두 쓸어버려도 괜찮은 걸까? 라는 생각이 드는 가운데, 상황은 벌어졌다.
푹!
푸푹!
우리를 둘러싼 경비원들이 순식간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나는 당황한 가운데, 범인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등을 찌른 것은 지금껏 박물관을 돌아다니던 어인들이었다.
어린 어인부터 나이 지긋이 들어 보이는 늙은 어인까지. 상황을 구경하려 모인 관람객이 순식간에 눈빛을 바꾸어 경비원들을 공격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경비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도서관장 지테일 역시 긁힌 어깨를 감싸 쥔 채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네놈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해 보인 지테일이 우리와 관람객들을 번갈아 가며 노려봤다.
* * *
경기도.
그곳에서도 도심과는 꽤 떨어진 거리.
그곳에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조형집이 있었다.
“영감님,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국가 재난 상황입니다.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도움을 주시면…….”
윤식 조형에는 길드의 수장과 헌터 협회, 그리고 플레이어와 관련된 조직들의 대표가 매일같이 찾아왔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가 만든 조형이 그만큼 대단한 능력치를 발휘했기 때문. 박윤식 장인이 만든 조형은 하나같이 미친 버프를 자랑하는 귀한 아이템이었다.
떡하니 세워진 동상을 바라보기만 해도 힘이 올랐고, 마나 회복 속도가 올랐으며, 심지어는 일정 시간 방어막이 생기기도 했다.
하여, 빠르게 박윤식 영감에게 의뢰를 맡겼던 길드들은 승승장구하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뒤처진 길드들은 서둘러 예약을 걸기 바빴다. 하지만 박윤식 영감에게 예약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꺼져라!”
얼마 전부터 모든 예약을 받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화가 난 길드들은 영감을 납치하려고까지 했다. 야심한 밤을 틈타 영감의 집에 침투해 그를 잡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얄팍한 그들의 수는 모두 가로막힐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를 지키는 천가의 수호대 앞에!
“젠장 저 영감은 무슨 술수를 벌였길래, 천가를 뒷배로 삼아?”
“그러니까 말이야. 오늘까지 영감에게 예약하지 못하면 마스터에게 뒤지게 깨질 텐데…….”
“야야, 아서라. 이미 난 포기했다. 소문 못 들었어?”
“무슨 소문?”
“지금 천가에게 거액의 의뢰비를 받고 그 동상만 제작하고 있다잖아. 모든 예약을 일절 취소시키고 말이야. 위약금도 몇 배로 물었는데,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잖아.”
“당연히 천가에서 모든 비용을 지원해 줬겠지. 노친네, 돈독 제대로 올랐구만. 이거 중소길드는 서러워서 살겠나, 원.”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봤어?”
“뭐를?”
“아, 영감이 만들던 동상 있잖아.”
“아아, 당연히 봤지! 내 살다 살다 그렇게 잘 만든 동상은 처음 봤다니까. 진짜 살아 움직이는 것 몬스터인 줄 알고 공격할 뻔했어.”
“그치? 역시 괜히 명성이 자자한 게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아, 빨리 천가 놈들의 동상이나 완성됐으면 좋겠다. 우리 길드 동상 좀 맡기게.”
“우리가 먼저야.”
“지랄.”
문밖에서 투덕거리는 두 길드의 대화를 엿들은 박윤식 영감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 조잡한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박윤식 영감은 천가에게 의뢰받았다느니, 돈독이 올랐다느니 하는 거짓 소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뜬구름 잡는 소문에 마음이 동할 만큼 박윤식 영감이 살아온 세월은 적지 않았기에…….
요 몇 달간 그가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자식 같은 녀석에게 처음 들은 의미심장한 한마디. 그리고 녀석의 첫 의뢰.
고개를 들어 자신이 완성한 작품을 바라본 박윤식 영감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겨우 이딴 놈을 작품이랍시고 녀석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실패군.”
콰앙-!
박윤식 영감은 망설임 없이 한 달간 쏟아부은 작품을 박살 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 준비를 시작했다.
박윤식 영감의 얼굴에 미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자신의 몸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
점점 힘에 부치는 체력.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 될 듯하군…… 이번엔 꼭 성공해야 할 텐데…….”
눈을 형형하게 밝힌 박윤식 영감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