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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06화 (106/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06화

106.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1)

계단을 내려가자 철창에 갇힌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파리해진 몰골, 수척해진 얼굴을 한 이들은 하나같이 몸을 떨고 있었다. 우리가 내려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어둠 속에 파묻힌 그들은 더욱 무서운 속도로 떨기 시작했다.

“사, 살려 주세요!”

“닥쳐!! 좀! 소리치면 더 위험하다고 말했잖아!”

아직 어둑한 실내 때문인지 우리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은 우리를 어인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불 켜세요.”

“네.”

탁-!

어느새 실내를 밝히는 장치를 찾은 박한별이 스위치를 눌렀다.

환하게 들어오는 빛.

밝혀지는 실내.

우리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 사람?”

“어머, 세상에!”

“사, 살려 주세요! 저희도 모두 인간입니다. 갑자기 몬스터에게 납치당해서…… 흐윽.”

사람들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구세주를 만났다는 듯이 나와 박한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누군가는 소리쳤고, 누군가는 울었다.

나는 그들을 유심히 살폈다.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노예로 팔 생각이었다고 했으니, 상품이 상하지 않게 노력한 탓이리라.

나는 잡혀 온 사람들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구하러 온 겁니다.”

잡혀 들어온 사람들의 눈이 감동으로 물들기도 전에, 나와 박한별은 그들을 가두고 있던 철창을 모두 깨부쉈다.

콰앙!

그러고는 그들이 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저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나는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맙다 인사해 대는 사람들을 빤히 바라봤다.

미안한 말이지만, 아직 기뻐하기에는 이른 타이밍이었다.

“아직 안심하긴 이릅니다.”

“그게 무슨……?”

“우리는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니까요.”

막 결박에서 풀려난 사람들의 눈이 절망으로 물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믿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돌리는 이도 있었고, 화를 내려다가 참는 이도 있었다.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들을 향해 차분히 이야기했다.

“이곳은 아직 해저 도시입니다.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한 소리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유독 과도하게 떨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너무 걱정 마시죠. 괜찮을 겁니다.”

“어, 어인들이 사람들을 모두 죽였어요. 제 아내도…… 아들도…… 그리고 저도 곧…….”

절망에 빠진 듯한 사내의 떨림. 자신도 곧 가족을 따라갈 거라는 생각을 하는 그에게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확신에 찬 음성을 들어서였을까? 사내의 떨림이 조금 잦아드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어떻게요? 밖에 나가면 어인들이 우글거릴 텐데…….”

“당신들이 온 길이 있지 않습니까? 당신들을 몰래 들여오려면 어인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한적한 곳을 이용해서 왔을 텐데, 그곳을 저에게 알려 주시죠.”

“거긴 안 돼요!”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던 젊은 여자가 소리쳤다.

그녀는 자신들이 왔던 통로가 은밀하게 이어진 곳이기는 했지만, 어인 없이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했다.

경비가 삼엄했고, 길이 미로처럼 엮여 있어, 한번 발을 잘못 딛는 순간 되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그리 말하며 그녀는 절규했다.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박한별이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까 더 궁금한데요?”

나 역시 조금 호기심이 일긴 했지만, 대다수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 있으니 안심하라며 그쪽 길로 강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고민했다.

해저 도시가 원래 지구상에 존재해 있었던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은 어느 정도 풀린 상태였다. 어인들이 말하길, 지구와 해저 도시를 가로막는 경계는 지금껏 꾸준히 존재해 왔다고 했으니까.

문제는 지금 이들을 구하는 방법이었다.

속 편하게 당당히 나가 어인들을 쓸어버리고 나가면 편하겠지만, 우리가 구해 낸 사람들은 모두 일반인들이었다.

만약 싸움이 벌어질 경우, 약간만 휘말려도 죽거나, 크게 다칠 터.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은밀하고 조용히 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

나는 돌연 생각난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손뼉을 짝 쳤다.

“왜 그래요?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세요?”

깜짝 놀란 박한별이 황급히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에게 생각했던 바를 말했다.

“이거요.”

품속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든 나는 박한별을 향해 흔들었다.

그녀는 물건의 정체를 확인하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요? 만약 일반인도 가능하다면요.”

“한번 해 보면 되죠, 뭐.”

밝게 미소 지은 내가 꺼내든 물건은 다름 아닌 도깨비 보따리였다. 인버스 타워에서 박한별이 들어가 있던 경험을 떠올려 생각한 묘안이었다.

도깨비 보따리 안은 상상 이상으로 방대했다. 고작 인간 15명 정도야 넣고도 티도 안 날 정도로.

만약 성공한다면 사람들을 안정적으로 옮길 수 있으리라.

나는 도깨비 보따리의 입구를 열어 사람들에게 내밀었다.

“들어가세요. 제가 신호하기 전까지는 절대 나오지 마시고요.”

우리의 예상은 적중했다.

보따리 안으로 발을 내민 사람이 쏙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처음에는 나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바라보던 사람들이 한 명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시선을 바꾸기 시작했다.

“안전한 거죠?”

“네, 나오지만 않는다면요.”

“……알겠습니다.”

간혹, 의심을 내비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여기에 있으면 죽기밖에 더 하겠냐고 생각했는지 이내 모든 인원이 도깨비 보따리 안에 들어갔다.

“이제 움직이기 편해지겠어요.”

“그러게요.”

짧게 대답하자, 박한별이 나를 향해 다시 한번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녀가 무슨 짓을 할지 알고 있었기에, 나는 피하지 않았다.

곧이어 몸 주변으로 박한별의 도깨비불이 흐르기 시작했다.

“가시죠.”

도깨비감투를 내려 쓴 박한별은 어인의 모습으로 외형을 변화시킨 뒤 창고를 나섰다.

* * *

다시 광장으로 향하는 길.

나는 근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하고 결국 박한별에게 뱉어 냈다.

“한별 씨, 이대로 돌아가기 아쉽지 않아요?”

“아쉽죠. 하지만…….”

박한별은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도깨비 보따리 안에서 안전하잖아요. 게다가 어차피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출입증이나 허가 장치가 필요한 것 같은데, 조금 더 이곳을 물색해 보는 게 어때요? 대책도 세울 겸.”

“그건 그러네요. 무작정 도시 밖으로 나가면 정찰병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던데.”

“예, 나름대로 끈끈한 조직력을 갖춘 녀석들 같아 보였습니다. 한 마리라도 신호를 보내면 득달같이 달려오겠죠.”

“어떻게 할 생각이신데요?”

“일단 광장으로 가 보죠.”

나는 박한별을 광장으로 이끌었다.

* * *

“얼씨구?”

그래도 빨리 가야 하지 않겠냐며 나를 닦달하던 박한별은 광장에 들어오는 순간 돌변했다.

상점마다 들려 아이템을 구경했고, 조금만 신기한 물건이 있으면 눈을 빛내기 바빴다.

“저런 걸 보면 천상 도깨비란 말이야.”

보물을 좋아하고 모으기 좋아하는 도깨비의 특성이 박한별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아이쇼핑을 즐기던 박한별은 이내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어인들이 사용하는 화폐가 없는 거냐고. 당장이라도 쓸 수 있는 돈을 좀 마련하고 싶다고. 그리 투덜댔다.

그녀를 바라보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나의 눈에 한 가지 아이템이 눈에 띈 건 그때였다.

홀린 듯 그 아이템을 향해 다가갔다.

“이건……!”

“잘 보셨습니다, 손님. 이것은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이 생전에 사용하던 나침반 모형이지요.”

“모형? 이것이?”

“예. 진품은 중앙박물관에 걸려 있지 않습니까?”

실실 웃으며 양손을 비비는 상인을 바라보며 나는 헛웃음을 내비쳤다.

‘이게 어딜 봐서…….’

모형일까…… 이렇게 시전자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채 발광하고 있는 물건이.

나는 최대한 황급한 마음을 숨긴 채, 근엄한 목소리를 내며 물었다.

“얼마지?”

“오천피스입니다요. 워낙 정교하게 만든 녀석이라 진품과 조금의 다름도 없을 겁니다요, 나리.”

“지금 현금이 없는데, 혹시 이걸로 가능하겠나?”

나는 녀석에게 금으로 만든 작은 금화를 건넸다. 플레이어 간 거래를 할 때 돈 대신 자주 사용되는 녀석이었다. 화폐의 기능과 보물의 기능을 동시에 하는 금화는 천만 원 상당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이건…….”

물건이 생소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노점상에게 설명을 깃들었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화폐의 단위라는 소문이 있네. 잘 믿기지는 않지만, 금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할 것이니 한 번 확인해 보게.”

“금?”

놀라 까무러치는 노점상은 얼른 금화를 받아 든 채 돋보기를 들어 올렸다.

다행히 이곳에서도 금이 귀한 존재인 모양이었다.

한참을 살펴보던 노점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이 확실합니다.”

“그렇지?”

내가 되묻자, 노점상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 갔다. 왜 그러냐 묻자, 녀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송구하오나, 저에게는 이렇게 큰 금액을 거슬러 드릴 수 있는 돈이 없습니다.”

아, 난 또 뭐라고.

괜히 긴장하게 만든 어인을 한 번 노려본 나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것과 이것. 이것도 가져가겠네. 거스름돈은 삼만 피스만 주게.”

“저, 정말입니까?”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계산해 주게.”

“아, 알겠습니다! 잠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깜짝 놀라 황급히 행동하는 상인을 바라보며 나는 쾌재를 불렀다. 노점상의 표정과 반응으로 보아, 대충 금의 가치를 파악한 것이었는데 나름 잘 맞아떨어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약간의 손해 보는 느낌은 있었지만, 얻은 것을 생각하면 그리 손해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득이었다.

일단 순식간에 현금이 생겼다는 점. 이제 여유롭게 광장을 돌아다닐 수 있는 여유 자금이 생겼다는 것을 뜻했다. 게다가 박한별이 눈독을 들이던 아이템과 비슷한 것들도 몇 가지 얻어 냈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것이었다.

[위대한 모험가 애커만의 나침반] - 전설

무려 전설급 아이템을 푼돈에 얻어 냈기 때문이었다. 전설 아이템은 지구의 돈으로 최소 100억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푼돈으로 살 수 있다니…….

대박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게 안 보이나?’

나는 여전히 발광하고 있는 애커만의 나침반을 바라봤다. 은은한 금빛을 내뿜는 그의 나침반은 영험한 기운을 뽐내듯 내뿜고 있었다.

“허, 이게 가품이라고?”

어림없는 소리! 이것은 확실한 진품이었다. 만약 이렇게 귀한 물건이 가품이라면 진품은 최소 신화급이라는 소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질 않았다.

“……아니겠지. 설마…….”

그래도 조금은 불안하여, 노점상이 말한 중앙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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