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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05화 (105/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05화

105. 해저 도시(3)

“그저 수상한 자처럼 보여서…… 제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야센은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야만 이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정말 그게 단가?”

“예.”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단호한 느낌을 통해 대답한 야센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어인들, 그러니까 사냥꾼이나 경비병을 모두 포함해도 자신의 뒤를 잡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필시 귀족이거나, 귀족을 지키는 기사일 가능성이 다분 하다는 이야기.

실력으로 보아, 결코 평범한 집안의 귀족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혹시 이상한 점을 못 느꼈나?”

그 순간, 야센의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 지지직거리며 존재 자체가 흔들리던 귀족의 행색이었다.

야센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사실은 봤어도 못 본 것이라고.

야센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봤군.”

차가운 목소리에 등골이 더욱 서늘해졌다.

동시에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야센은 소리쳤다.

“절대 발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내가 널 뭘 믿고.”

“저는 노예 유통상 야센입니다. 제가 아주 귀한 노예를 한 마리. 아니 전부를 드릴 테니 제발 목숨만은…….”

“……노예 유통상?”

“예, 예. 한 번쯤 들어 보셨을 만한 진젤 상단 소속입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노예에 관심이 없는데.”

여전히 싸늘한 목소리였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욱 싸늘해진 목소리였다. 야센으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귀족은 진젤 상단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듯한 반응이었다. 야센은 멀리서 온 변방의 귀족이라고 판단했다.

“들어 보시면 다를 겁니다. 이번 노예는 전설 속으로만 듣던 존재니까요.”

벼랑 끝에 몰린 야센은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으로 빠르게 말을 이었다. 만약 등 뒤에서 자신의 목숨을 쥐고 있는 자가 노예의 정체를 듣고도 흥미가 일지 않는다면 정말로 끝이었으니까. 순식간에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야센은 신중하게, 그리고 아주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인간! 인간입니다. 제가 전설 속에서나 듣던 인간을 잡아 왔습니다!”

“뭐?”

“귀족님께 잡아 온 15명의 인간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야센은 절절하게 소리쳤다. 15명의 인간을 모두 넘겨주는 것이 배 아프긴 했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빠르게 머리를 회전한 야센은 추가로 덧붙였다.

“제가 귀족님의 기현상을 목격한 것은 그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만약 그런 소문이 돌거든 저를 범인으로 생각하시고 찾아와 저의 혀를 자르십시오.”

애절한 마음이 통했던 걸까? 야센의 뒤를 잡은 귀족은 아무 말이 없었다.

“살아 있는 인간을 잡아 왔다고?”

“예, 경계 막이 사라져 지상이라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원하시면 확인시켜 드릴 수도 있습니다.”

“…….”

“……귀족님?”

“안내해라. 뒤돌아보지 말고. 자연스럽게.”

“예, 따라오시죠.”

야센은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인간들을 노예로 잡아 왔다는 말을 들은 박한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굳어 있었다.

“아주 젊고 싱싱한 인간들입니다.”

나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자랑하는 멍청한 어인에게 말했다.

“닥치고 가지.”

“……죄송합니다.”

우리는 거대한 광장을 가로질러,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아직 멀었나?”

“거의 다 왔습니다.”

식은땀을 삐질 흘리는 어인을 노려본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중간중간 수상한 움직임을 하지는 않는지, 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하지 않는지 끊임없이 주시했지만, 다행히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입니다.”

외진 골목길. 가장 구석을 가리킨 야센이 속력을 올려 다가가 문을 열기 시작했다.

“거짓말이면 죽는다.”

“그럴 리가요.”

자신감 있게 대답하는 야센의 말에 우리는 점점 더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가 인간을 노예로 부리려 한다.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지구와 이세계와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녀석의 말대로 해저 도시는 처음부터 지구에 있었고, 결계로 인해 양측 간에 교류가 없었던 상황이라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정말 낭패였다.

나는 조금씩 열리는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어두컴컴한 실내였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아주 미약한 기운이.

‘일반인을 잡아 온 거였어?’

화들짝 놀란 나는 옆에서 묵묵히 서 있던 박한별을 바라봤다.

박한별 역시 플레이어라고 부르기 힘든 미약한 기운을 여럿 느꼈는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분노에 차 있고, 살의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그 고요한 분노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팔을 들어 그녀를 진정시켰다.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줄 테니, 지금은 살기를 숨기라고,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그리 말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박한별은 야센이 불을 밝히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후, 불이 켜졌다.

뒤에 있던 문은 절로 닫혔고, 눈앞에는 수십 마리의 어인이 무기를 든 채 서 있었다.

이 역시 느끼고 있던 터라, 별로 당황하진 않았다.

“귀족 나으리. 감히 노예 상단을 건드리시다니 미치셨습니까?”

순식간에 돌변한 야센이 뒤를 돌았다.

처음 보는 녀석의 거만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뒤로 있는 수십의 병사들이 자신을 구해 줄 영웅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뒤돌아보면 죽는다고.”

“흥,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얘들아!”

야센의 외침에, 숨어 있던 어인들이 추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가 무려 삼십이었다.

노예 유통업자 야센의 얼굴에 짙고, 비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

“다시 지껄여 봐! 못 하겠지?”

킬킬 웃는 야센을 바라보다 박한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줄곧 침묵을 지키던 박한별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어디 있지?”

“큭, 많은 걸 바라는군. 내가 알려 줄 것 같나?”

“…….”

“너희들은 사람 잘못 건드렸어. 이 새끼들아! 우리가 매달 대영주님께 바치는 돈이 얼만데, 어디 얼굴도 안 알려진 귀족 따위가!”

야센은 그간의 서러움을 토로하기라도 하듯, 우리에게 소리쳤다.

그 모습이 꼭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악역의 마지막 대사 같았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귀족이 아니야.”

잠깐의 정적이 일었다.

“너희들……! 일개 평민이란 말이냐? 이, 이!! 겁대가리를 상실한 새끼들이! 내 너희를 잔인하게 죽여 상어 밥으로 던져 주마!”

그동안 당한 것이 몹시나 억울했는지, 녀석은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우리를 최대한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죽일 의지를! 그 모습을 바라본 박한별이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다.

“어인도 아니지.”

“그게 무슨……!?”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는 야센을 노려보던 박한별은 천천히 자신의 감투를 벗어던졌다.

야센을 포함한 어인들의 눈이 한순간에 커졌다.

“인간!?”

화들짝 놀라는 어인들을 바라보며 나 역시 박한별의 도깨비불을 밀어냈다.

“뭘 그렇게 놀래. 인간 처음 봐?”

놀리듯 묻는 나의 물음에 야센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러고는 싸늘해진 목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숨만 붙여 놔라.”

야센의 명령에 어인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부동의 자세로 서 있는 박한별을 향해 말했다.

“한별 씨, 끝났습니다. 마음껏 날뛰세요.”

표정이 굳을 대로 굳어 있는 박한별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화륵-!

도깨비불이 점멸하듯 사라지고, 다시 나타날 때마다 어인이 한 마리씩 절명하고 있었다.

투쾅-!

바닥에 처박히고, 벽을 뚫고 나가고.

난장판이 따로 없었지만, 박한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흑운으로 건물 전체를 둘러쌌기 때문이었다.

안에서 아무리 난장을 피운다고 할지라도 외부에서 듣고 찾아올 일은 없었다.

“볼 때마다 새롭네.”

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박한별을 바라봤다.

도깨비를 만난 이후로, 박한별의 전투 스타일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예측할 수 없었고,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신출귀몰(神出鬼沒).

인간의 범위를 아득히 뛰어넘은 괴력과 도깨비불을 이용한 순간이동은 가히 최상의 조합이라 불릴 만한 것이었다.

한참을 그녀의 무위에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야센이 등 뒤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도 가만히 서 있었다. 녀석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구경하기 위함이었다. 역시나, 녀석은 내 예상과 조금도 빗나가지 않는 짓을 저질렀다.

“움직이지 마.”

녀석은 짧은 단도를 내 목에 겨누며 말했다.

“아까부터 가만히 있었는데…….”

“너 말고 저년! 너! 동료를 죽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멈춰!!”

야센의 외침에 박한별이 우뚝 섰다. 한 손에는 축 늘어진 어인이 들려 있었다.

“소용없을 텐데.”

“닥쳐라, 넌.”

나를 향해 작게 으르렁거린 야센은 계속해서 소리쳤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놈은 죽는다.”

당장이라도 목을 찌를 듯 힘을 주는 야센의 손끝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박한별은 휙 고개를 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륵!

형체가 사라지고.

투쾅-!

전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박한별은 쉬지 않고 남은 어인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야센은 당황했다.

“저 미친년이! 일단, 너라도 죽어라!”

당황한 야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잡이가 부서질 듯 그러쥔 그의 손이 움직였다.

몇 번의 사냥으로 벌써 인간의 급소를 파악했는지 빠르고 날카롭게, 경동맥이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화륵.

그러나 신화급 도깨비불. 청화(靑火)는 그녀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크아악…….”

“내 모습을 보면 죽게 될 거라 했지?”

순식간에 그의 뒤를 잡은 나는 그대로 녀석의 목숨을 취했다.

축 늘어진 야센을 바닥에 눕힌 나는 박한별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 역시 마무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어인이 명을 달리하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일단 치워야겠죠?”

내 물음에 박한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층에서 공포에 떨고 있을 사람들이 이 현장을 목격한다면 다시 한번 충격에 빠질 것이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대충 현장을 수습하기로 한 나와 박한별은 어인들의 시체를 한곳에 모았다. 그러고는 바닥과 벽에 튄 흔적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정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물속이라 그런지, 벽에 튄 피도 얼마 없었을 뿐더러, 애초에 피가 나지 않는 어인도 있었던 탓이었다.

“얼추 끝난 것 같은데, 이건 어떡하죠?”

박한별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인들이 쌓여 있는 곳. 마치 염비가 살던 곳의 축소판 같은 느낌의 시체 더미는 한마디로 처치 곤란이었다.

조금씩 처리하기에는 밖으로 옮길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어찌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박한별의 표정을 바라본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크큭.”

“왜 웃으세요?”

“생각해 보니, 꼭 치워야 하는 것만은 아니잖아요.”

“네? 그게 무슨…….”

어인들이 몰려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은 나는 흑운을 시전 했다.

검은 안개가 그들을 덮기 시작하자, 이내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는 모습이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박한별을 향해 다시 한번 웃어 보인 나는 미약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지하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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