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03화
103. 해저 도시(1)
“지금 어인을 따라가자고요?”
박한별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디 문제 있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듯한 태도였지만, 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도깨비 보따리를 꺼내 들었다.
“도윤 씨, 지금 대체 뭐 하는…….”
나는 박한별의 물음을 무시한 채, 김수민에게 받은 도깨비 보따리 안으로 손을 푹 집어넣었다.
거대한 허공에 손을 뒤적거리자, 원하던 물건이 자석처럼 딸려 들어왔다.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는 박한별에게 나는 도깨비 보따리 안에서 꺼낸 아이템 두 쌍을 흔들었다.
[인어의 아가미]
마고가 넘겼던 도깨비 보따리 안에 있던 아이템으로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은 물론, 비교적 자유로운 움직임을 취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물건이었다.
“받으세요. 귀 아래 붙이시면 됩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박한별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다가도, 내 말에 순순히 따라 주었다.
귀와 목 사이에 인어의 아가미를 붙인 박한별은 이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질적인 호흡 방식이 그녀의 신경을 자극한 탓이었다.
갑자기 생겨난 아가미.
그것은 박한별에게만 생겨난 현상이 아니었다.
나 역시 호흡을 할 때마다, 코와 입이 아닌 귀 아래로도 공기가 드나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번의 호흡을 통해 적응을 마친 나는 박한별에게 말했다.
“가죠. 따라잡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박한별을 재촉한 나는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뒤이어, 풍덩 소리와 함께 박한별 역시 물속으로 들어왔다.
* * *
어인은 역시 어인이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상어 어인은 저 멀리 끝자락에서 헤엄치는 중이었다.
나는 뒤를 돌아, 박한별을 재촉했다.
박한별은 아직 아가미가 익숙지 않은지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후…….’
속으로 한숨을 내뱉은 나는 그녀가 적응하기까지 천천히 기다려 주었다. 상어 어인은 그새 멀리 도망가 보이지도 않겠지만, 걱정이 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녀석을 일으키며 겨드랑이 쪽에 붙여 놓았던 아이템이 제 활약을 해 줄 테니까.
‘참 신기한 아이템이 많단 말이야.’
나는 다시 한번 마고의 도깨비 보따리에 감탄했다.
은밀한 추적 밴드.
이것 역시 마고의 도깨비 보따리에서 꺼낸 아이템이었다. 아직 다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도깨비 왕의 주머니에는 진귀한 아이템들이 차고 넘치도록 쌓여 있었다.
아직 방대한 도깨비 보따리 안, 초입밖에 살펴보지 않은 상황에서도 말이다.
천천히 기다리자, 박한별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모든 적응이 끝났으니 움직여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트인 시야로 본 물속을 신기해하면서도, 사라져 버린 상어 어인을 놓친 것에 미안함을 표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내 저은 뒤, 박한별을 잡아끌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다 방법이 있다고 눈으로 말하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우리의 이동 시간은 꽤 길었다.
약 한 시간 반 정도를 헤엄친 뒤, 해저 깊은 곳으로 삼십 분 정도를 더 들어가고 나서야, 원하던 세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네요.”
이제는 정말 익숙해진 아가미를 이용해 말한 나는 박한별에게 한 곳을 가리켰다.
그녀는 놀란 눈빛으로 아래쪽을 바라봤다.
“해저 도시가 정말 있었다니…….”
정말로 있었다.
던전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속이 너무나도 훤히 보이는 또 다른 세계가.
“어떻게 할까요? 더 내려가면, 저 녀석들에게 걸릴 것 같은데.”
“일단 잠시 지켜보죠.”
우리는 각각 흑운과 안개를 이용해 몸을 숨긴 상태였다. 은밀하게 모습을 감춘 나와 박한별은 조용히 사태를 관망했다.
어인들이 빠른 속도로 해저 도시 주변을 배회하며 순찰을 돌고 있었다.
“오늘 부식은 참치라는데…….”
“으, 또? 배에 기름 껴 죽겠다, 죽겠어.”
2인 1조로 움직이는 정찰병들을 바라보며 나는 머리를 굴렸다.
해저 도시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거대했다. 왕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웅장했고, 체계가 잘 갖추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욱 고민이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쳐들어갔다가는 위험에 빠질지도 몰랐기에…….
‘지상이라면 전혀 상관이 없겠지만…….’
이곳은 해저였다.
아무리 인어의 아가미를 통해 움직임과 호흡이 수월해졌다고 한들, 어인만큼은 아니었다. 물속에서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어인을 따라잡을 수 없다.
“아, 이러면 어때요?”
그때, 박한별이 무엇인가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짝 쳤다.
나는 그녀에게 시선을 두고서 물었다.
“어떤 방법이요?”
“음, 이런 식으로요.”
잠시 뜸을 들인 박한별은 자신의 도깨비감투를 얼굴에 뒤집어썼다.
스스스슥.
순식간에 그녀의 외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피부는 점점 반들반들해졌고, 얼굴은 기괴하게 일그러지더니, 이내 물고기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큭.”
나는 바뀐 박한별의 모습을 보고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요?”
박한별은 물고기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감정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 나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려서요.”
“…….”
그때였다. 갑자기 오한이 느껴진 건. 나는 박한별의 살기를 느끼고 나서야, 조금 남아 있던 입가의 웃음기마저 거둘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저는 어떻게 하죠?”
박한별이야 도깨비감투를 이용해 외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박한별이 웃으며 대답했다.
“도깨비장난 같다는 말이 왜 나온 줄 아세요?”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더욱 짙게 웃음을 내뱉은 박한별이 도깨비방망이를 휘둘렀다.
정확히 나에게로.
아무런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 공격이었기에 가만히 박한별의 도깨비방망이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화륵-!
푸른 도깨비불이 내 몸 전체를 덮었다. 전혀 뜨겁지 않은 미온의 불꽃.
따스한 느낌마저 드는 도깨비불이 마치 내 신체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됐어요.”
“뭐가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박한별을 바라봤다. 박한별은 싱긋 웃으며 나에게 설명했다.
“도윤 씨, 지금 어인처럼 보여요. 그 누구보다.”
그제야, 나는 박한별이 한 짓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박한별이 도깨비불을 이용해 내 모습을 어인처럼 보이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최근 도깨비들과 먹고 자며 지내 온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다만 답답한 점은 내 눈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은 평범한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원.’
하지만 박한별은 그 누구보다 믿을 만한 사람이었으니 이 부분은 크게 신경 쓸 만한 것이 아니었다.
‘요술이 풀리면 바로 나에게 말해 주겠지, 뭐.’
가장 큰 문젯거리가 사라진 나는 싱긋 웃으며 박한별에게 말했다.
“그럼 가 볼까요?”
“푸흐, 네.”
“왜 웃으세요?”
“흐흐흐, 아니에요.”
분명 믿는데…… 이 알 수 없는 찝찝함은 무엇 때문일까? 잠시 멈칫한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거기, 잠깐!”
해저 도시로 향하고 있는 우리를 막아선 것은 일전에 목격했던 정찰병들이었다.
해저 도시에서는 칼처럼 흔히 사용되는 무기가 삼지창인지, 그들 역시 삼지창을 들고 있었다.
나와 박한별은 긴장한 모습으로 멈춰 선 뒤, 뒤를 돌아봤다.
“무슨 일이시죠?”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그야…… 해저 도시로…….”
“행색을 보니 남루하기 그지없는데, 밀입국자는 아니겠지?”
문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어인이 손에 쥔 여러 개의 삼지창 중 하나를 쭉 내밀며 물었다.
의심 가득한 표정. 대놓고 들이미는 적의에 우리는 당황했다.
해저 도시의 특성을 모르는 우리로서는 자연스레 행동하기가 영 불편한 게 아니었다. 무엇이 자연스러운 행동인지도 몰랐고. 하여 이 상황이 썩 난감하기까지 했다.
‘어떡하죠?’
‘몰라요. 저도.’
눈빛을 주고받은 나와 박한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밀입국하면 어떤 벌이 내려지는지 뻔히 알고 있는데요. 저희는 그냥 해저 도시의 주민일 뿐입니다.”
“해저 도시는 아무나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무슨 용무로 나왔다 들어가는 거지?”
“그건…….”
“출입증을 내놔라.”
머뭇거리는 우리의 태도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문어 어인의 옆에 있던 정찰병마저 삼지창을 고쳐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
“역시, 너희는 부랑자들이군. 어디서 감히……!”
그때였다.
짜악-!
바닷속을 울리는 거대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감히?”
나는 놀란 눈으로 박한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박한별은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정찰병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쯤 하면 알아먹어야지, 지금 누구 앞이라고……!”
갑작스러운 박한별의 돌발행동에 나는 당장이라도 전투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대체, 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작정하고 상황을 악화시키기로 마음먹기라도 한 듯, 박한별은 정신 나간 짓을 망설임 없이 저질렀다.
그러나, 상황은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뺨을 맞고, 고개가 돌아간 문어 어인은 무슨 이유에서 인지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복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혹시 귀족이셨습니까?”
“그렇다. 이분은……!”
“그만!!”
나는 박한별에게 소리쳤다.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취했는지 단번에 깨달은 탓이었다.
나는 일단 그녀의 작전에 동조해 주기로 했다.
“도시를 지키는 정찰병일세. 우리가 먼저 잘못한 것 아닌가.”
“주인님! 아무리 그래도 목숨을 건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귀족에게 말하는 꼬라지가…….”
“그만하면 됐네.”
나는 애써 진지한 척을 하며 문어 어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어깨 부근에 손을 올린 채 말했다.
“무례를 용서하게.”
“아닙니다.”
문어 어인과 그 옆에 있던 정찰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이게 통하네?’라는 생각과 함께 웃음을 꾹 참아 냈다.
“내 출입증을 잃어버려 가지고 있지 않으니, 연행해도 좋네.”
“아닙니다. 저희가 어찌 감히 귀족에게…… 그동안의 결례를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닐세. 우리가 미안하지.”
나는 근엄한 태도를 유지하며, 다시 한번 문어 어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에 정찰병은 자애로운 귀족에게 감동하기라도 한 듯, 눈을 글썽거렸다.
“아닙니다. 이렇게 자비로운 귀족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닐세. 이리 용맹한 정찰병을 본 내가 영광이지.”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저기 귀족님…….”
잠시 뜸을 들이는 문어 어인의 모습에 나는 자애로운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말하게.”
내 허락에 밝은 미소를 띤 문어 어인이 말했다.
“아마 출입증이 없으면 도시 안으로 들어가기 힘들 겁니다. 저희가 모셔 드려도 되겠습니까?”
문어 어인은 우리에게 길 안내까지 자처했다. 나는 문어 어인을 빤히 바라봤다. 귀족과 인연을 만들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속셈이 뻔히 보이는 얼굴.
그 간사한 얼굴을 마주 보면서도 나는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우리는 진짜 귀족도 아닐뿐더러, 이곳을 한 번에 뚫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주면 고맙지. 내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을 걸세.”
대답을 들은 문어 어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영광입니다, 귀족님. 그럼, 이리 오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