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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97화 (97/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97화

97. 페이즈(2)

오로치의 독이 아가리를 쫙 벌린 오로치의 검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가리라 불릴 입도, 그렇다고 게걸스럽다 표현할 수 있을 만한 얼굴을 지닌 것도 아니었지만, 오로치의 검은 분명 탐욕스럽게 오로치의 독을 갈구하고 있었다.

스스스.

순식간에 바뀌기 시작한 외형.

얇고 긴 은색 검신은 검은색 물질로 뒤덮인 채 날뛰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악!!”

돌연 날아든 소음에 천지현은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그사이 탐욕을 주체하지 못한 오로치의 검은 독을 삼키고 있었다.

천지현은 식은땀을 죽 흘린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당황스러웠다.

평소에도 말을 잘 안 듣는 녀석이긴 했지만, 이토록 자신의 욕망을 표출한 적은 없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지금 녀석의 행동은 꼭 살아 움직이는 생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아가 있다는 에고 소드. 그 귀한 아이템이 원래의 모습을 찾기라도 하듯 널뛰고 있었다.

“모두 원하는 것 같은데 다 주는 게 어떨까요?”

천우진은 싱긋 웃는 표정을 유지한 채 독이 든 병을 쳐다보고 있었다. 천지현은 눈살을 한 번 찌푸리고는 천우진에게 물었다.

“당신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고 있죠?”

“비밀입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천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짜증이 난 천지현은 인상을 구기며 오로치의 독이 든 병뚜껑을 열었다.

“땅에 떨어뜨리세요. 가까이서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당신…….”

“그리고 조심해야 할 겁니다.”

땅에 독을 떨어뜨리던 천지현의 손이 멈칫했다.

“조심하라니 무슨……?”

“거리를 벌리세요!”

천우진의 경고를 들은 천지현은 반사적으로 발을 디뎠다.

콰앙-!

그 순간, 바닥이 먼지를 일으켰다.

바닥에 떨어진 독을 모조리 먹어치운 오로치의 검이 천지현을 노려봤다.

노려보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노려보고 있었다. 갑자기 생겨난 눈으로! 검은 뱀의 모양으로 완전히 외형을 변화시킨 오로치의 검이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시작됐나 보군요.”

천우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지현의 머릿속에 알림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오로치의 검이 온전한 형태를 되찾습니다.]

[오로치의 검의 능력이 대폭 향상됩니다.]

[오로치의 검이 주인의 자격을 의심합니다.]

“뭐, 뭣!”

콰앙-!!

완전히 모습을 뒤바꾼 오로치의 검이 천지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로치의 검에게 인정받으십시오.]

천지현은 어이없는 알림음을 마주하고는 넋이 나간 채 서 있었다.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완전한 형태를 갖춘 오로치의 검은 강하거든요.”

“당신……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천지현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천우진은 표정이 없는 얼굴로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천지현은 배신감에 천우진을 노려보면서도, 모든 신경은 정면을 향해 있었다.

오로치의 검이 당장이라도 주인을 집어삼킬 듯 쇄도하고 있었으니까.

천가의 피를 개방한 천지현이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곧, 그녀의 두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광기의 도살자’의 특성이 발동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눈이 반쯤 뒤집힌 채 형형한 기운을 내뿜던 천지현은 이빨을 들이미는 오로치의 검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콰아아앙-!

굉음을 내며 나가떨어진 오로치의 검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듯, 다시 쇄도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통각이 있긴 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섭게 몰아치는 오로치의 검을 상대하는 천지현은 식은땀을 삐죽 흘렸다.

오로치의 검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스피드와 파워면에서는 자신이 월등했지만, 오로치의 검은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들어올지 궤도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했고,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오로치의 독을 머금은 녀석의 이빨은 한 번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일 정도의 맹독을 품은 공격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특성 광기의 도살자는 오로치의 검을 상대하는 데 최악의 상성을 가진 특성이었다.

웬만한 공격은 맞아가며 더 큰 타격을 입히는 방식.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식의 전투 스타일을 자랑하는 광기의 도살자는 결코 회피에 특화된 특성이 아니었으니까.

“캬아아아악!”

뱀의 모양으로 변화한 오로치의 검은 천지현의 목덜미를 노리고 들어왔다.

광기의 도살자의 특성대로 팔을 올려 목 대신 왼손을 내주고는, 치명적인 공격을 내지를까 생각했던 천지현은 고개를 세차게 저은 뒤 뒤로 물러났다.

특성 덕분에 반쯤 날아간 이성을 간신히 잡은 천지현은 안간힘을 썼다.

저 주인도 못 알아보는 배은망덕한 검을 피하는 것보다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 더욱 많은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젠장.”

천지현은 특성을 괜히 발동시켰다고 생각했다. 싸움이 일어나면 자연스레 발동을 걸기 시작하는 특성이긴 했으나, 제대로 발동되기 전에 억눌렀다면 지금과 같은 고생은 하지 않았어도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얼굴을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을 간신히 피한 천지현의 눈에 천우진이 들어왔다. 고생하는 모습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녀석. 천지현은 당장이라도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로치의 검의 공격을 피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었다.

“끝나고 보자!”

* * *

작은 절벽 위.

천지현의 모습을 보는 천우진은 조금 놀라고 있었다. 천지현의 실력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천지현이 보여 주고 있는 무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 그림을 바라고 온 거긴 하지만…… 대단하긴 하네.”

천우진은 미리 준비해 둔 해독제가 든 병을 던졌다 받기를 반복하며 천지현을 바라봤다.

천우진이 바란 그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오로치의 검이 진정한 모습을 되찾고 천지현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 과정에서 천지현이 ‘광기의 도살자’ 특성을 어느 정도 이성을 유지한 채 컨트롤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도 몇 번은 긁힐 줄 알았는데.”

천지현은 위태롭게 움직이면서도 단 한 번의 공격조차 허용하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모조리 피해 버리네…… 역시 흑운의 딸이라는 건가?”

구경거리로 느껴지는 흥미로운 점은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운이 짙어지는 것 또한 광기의 도살자의 특징. 그러나, 천지현은 강해진 특성의 영향에도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가공할 만한 정신력이었다.

“도윤이가 보면 깜짝 놀라서 까무러치겠네.”

흡족한 미소를 짓던 천우진은 이내 미간을 팍 구겼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인버스 타워에서 나올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천도윤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인버스 타워에서 나와 어디에 처박혀 매일 수련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놀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매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면 강해져서 돌아오긴 한다만…… 말은 해야 할 거 아니야, 말은! 생각보다 미래의 정보가 많이 어그러진 것만 해도 머리 아픈데 지금…….”

확실히 미래에 대한 정보는 많은 부분 바뀌고 있었다. 천도윤이 알지 못하는, 자신만이 아는 미래에 대한 부분들마저도…… 천우진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이대로 가다간 겪었던 정보들을 모두 활용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다가올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천지훈 녀석이야, 이젠 어렵지 않게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녀석의 배경이 문제였다.

마계의 악마들.

천도윤과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약간의 낌새만 있었을 뿐, 활발한 움직임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달랐다.

악마들은 자신의 수하가 될 인간들을 부지런히 물색하는 중이었고, 이미 많은 플레이어가 넘어간 상태였다.

어디까지 들어왔는지, 또 얼마나 깊이 침투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

“일단, 내 능력으로 웬만한 녀석들은 잡을 수 있겠지만, 도윤이는 아직 약한데…….”

천우진은 천도윤이 들었다면 놀라 까무러쳤을 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레닌이 말한 예언인데…….”

천우진은 품속에서 작은 쪽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대격변이 시작되고, 숨겨져 있던 힘이 눈을 뜨리라. 새로운 힘을 얻게 된 이들은 피 흘려 싸우고, 잠재된 유물이 빛을 발하리라.”

쪽지의 내용을 웅얼거린 천우진은 나직이 예언의 내용을 읊조렸다.

“대격변이라…….”

아마도 악마들이 지구에 강림하는 날이 아닐까 싶었다.

“숨겨져 있던 힘…… 잠재된 유물…….”

아마도 시스템은 그에 맞춰 인간들에게 미약하지만, 희망을 엿볼 수 있을 만한 정도의 힘을 추가로 제공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아닐 수도 있긴 하지만…….”

가능성이 농후했다. 지금 당장 보이는 징후는 다름 아닌 악마들에 의한 것들이었으니까.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인 천우진은 아래를 바라봤다.

한참 전투를 펼치던 천지현은 우뚝 선 채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오로치의 검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천지현도, 오로치의 검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새 몇 번의 공격을 허용했는지, 천지현의 왼쪽 어깨와 오른팔이 거뭇하게 변색 되어 있었다.

심각한 독에 중독됐음을 확인했음에도, 천우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하는 일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천지현이 손을 쭉 뻗었다.

“캬아아아악!”

카악대는 소리를 내며 오로치의 검이 천지현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천지현은 피하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우뚝 선 채 가만히 녀석이 하는 짓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녀가 뻗은 손, 지척에 다다른 오로치의 검은 천천히 천지현의 손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내 스며들기 시작한 오로치의 검. 그녀의 몸을 훑은 오로치의 검은 그녀의 팔목에 작은 문신을 아로새겼다.

거대한 독사가 똬리를 튼 모습.

마침내 오로치의 검이 그녀를 주인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녀의 몸속에 오로치의 검이 흡수되자마자, 그녀의 새까맣던 피부가 돌아왔다.

“……!”

그녀는 신기한 듯 자신의 몸을 이곳저곳 살피는 중이었다. 맹독에 당한 피부는 모두 수복되어 있었고, 에너지는 전보다 더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붉은 안광마저 모두 거두어 드리고 나서야, 천우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오로치의 주인이 되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미리 이야기해 주시면 어디가 덧나나요?”

“하하. 그건 아닌데, 그쪽을 설득하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거든요. 아무래도 직접 겪어 보게 하는 게…….”

“알겠어요, 알겠어.”

천지현은 강해진 오로치의 검과 그의 주인이 된 것이 기뻤는지, 손을 흔들며 상황을 넘겼다.

강해진 자신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흡족한 미소를 지은 천지현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면 천도윤 그놈이랑 싸워 볼 만도 할 것 같은데…….”

금세 투지를 끌어 올리며 안광을 빛내는 천지현의 모습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천우진이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도윤이는 아마 이 순간에도…….”

[인간의 가능성을 초월한 자가 나타났습니다.]

돌연 날아든 알림음에 천우진과 천지현은 모든 행동을 멈췄다.

[‘신화’등급을 가진 플레이어가 다섯을 넘어섰습니다.]

[등급 조정 중입니다.]

[일부 유물의 해금이 풀립니다.]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대거 생성됩니다.]

[상태창의 구성이 일부 조정됩니다.]

[몬스터의 전투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세계선의 경계가 옅어집니다.]

…….

수많은 알림창이 우수수 쏟아져 내려오고…….

마지막 알림창을 들은 천우진의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2 페이즈로 돌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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