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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95화 (95/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95화

95. 이매망량 (魑魅魍魎)(5)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 넘김이었다.

“아……!”

김수민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완전히 영혼이 나가 버린 모습.

그 누구도 그녀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한 줌의 위로라도 건네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죽음으로 갚으마.”

스스로 다짐이라도 하듯 비장한 말투를 내뱉은 마고는 나를 본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를 안아 든 채 달리기 시작했다.

넋이 완전히 나간 그녀는 종이 인형처럼 내 품에 안겨 있었다.

“뭐, 뭐 하는…… 짓이야.”

“도망가야 해.”

나는 타이르듯 그녀에게 말하고 더욱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 했다.

다시금 드래곤에 필적하는 두 존재가 싸우기 시작할 테니까.

“……놔!”

힘없는 그녀의 저항이 계속되었다.

“안 돼.”

“놓으라고!”

가슴팍을 치는 그녀의 손은 한없이 가벼웠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다시금 눈물이 터지기 시작한 그녀는 새빨간 피가 묻은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미 축축했던 앞섶이 물기를 더해 젖어 갔다.

그럼에도 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쿠구구구구.

콰앙-!

두 괴물의 싸움이 시작됐음으로.

어느새 꿰뚫린 상처를 수복한 마고는 염비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미 전투에 휘말린 오니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비명이 꽤 가까이서 들리는 것을 보면, 그들의 주위에 있던 오니들은 소리 한번 질러 보지 못하고 절명한 것이 분명했다.

입구 쪽을 향해 다가오던 도깨비불도 어느새 반대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재앙이라도 마주친 듯 모두가 싸움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오니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도망쳐!”

“다 뒈진다고!!”

“비켜!!”

나는 다시 흑운을 둘러싼 채 박한별의 옆에 붙어섰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내 품 안에 안긴 김수민을 바라보다 이내 안개를 불러일으켰다.

몸을 완전히 숨긴 우리는 말없이 달리고 있었다.

* * *

“가, 감히! 내 영약을!!”

분노한 염비의 기운이 폭발했다.

그러나, 마고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이 힘…… 확실히 대단하군.”

마고는 손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내 힘이다. 그것은 내 힘이었어야…….”

“닥쳐.”

싸늘하게 날아온 음성.

“뭐?”

염비는 움찔거렸다.

“네놈은 왜 도깨비들이 백의를 호의적으로 대하는지 아나?”

염비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마고를 바라봤다.

“뭔 개소리야!”

“……알지 못하나 보군. 그렇다면 오니와 도깨비들이 왜 백의를 먹지 않기로 약속했는지도 모른다는 말인데…….”

마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악귀보다 더 악귀처럼 변한 그의 얼굴이 매섭게 염비를 노려보고 있었다.

염비는 자신보다 몇 배나 강력해진 마고를 보고는 잘게 몸을 떨었다.

“백의는 우리의 은인이자, 선조다.”

“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냐! 백의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도깨비나 오니가 아니라는 말이다!”

“최초의 도깨비는 원래 인간이었지. 백의는 최초의 도깨비가 인간 시절 낳았던 혈육이다.”

“무슨…….”

“너는 선조를 죽인 것이다. 그리고 나와 네가 얻은 힘은 축복이 아니라 선조를 해친 대가로 받은 저주지.”

염비는 도통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 필요 없어. 넌 곧 죽을 테니까.”

콰앙-!

일순 대지가 갈라졌다.

땅을 내리친 마고의 방망이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 나왔다.

“끄아아악!!”

“엄살떨지 마.”

다시 한번 방망이를 휘둘렀다.

염비의 날카롭고 거친 방망이가 막아섰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고룡과도 맞먹는 힘을 내기 시작한 마고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상태였다.

염비의 방망이가 맥없이 부러졌다.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방망이었지만, 마고는 이제는 상관없다며 무심하게 떨어져 나간 파편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그만 죽어.”

다시 한번 도깨비들의 왕 마고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공간이 갈라지며 염비를 베었고 나아가 뒤에서 도망치던 수백의 오니들을 해치웠다.

“끄아아아악!!”

비명이 난무했다.

그러나 표정이 없어진 마고의 방망이질은 멈추지 않았다. 대악마 록스마저 두려워하던 오니들의 왕은 마고의 방망이질 몇 번에 빈사 상태가 되고 말았다.

“끄…… 억.”

악귀 중의 악귀. 악마보다 더한 악랄함을 자랑하던 오니들의 왕 염비의 끝은 허무하리만큼 볼품없는 것이었다.

퍼억-!

마지막 파육음을 끝으로 축 늘어진 염비. 그의 육신을 거칠게 들어 올린 마고가 소리쳤다.

“도깨비들이여!! 이리 오라!!”

빠르게 거리를 벌리던 도깨비불들이 우뚝 멈춰 섰다.

* * *

가공할 만한 기운을 흩뿌리는 마고의 주변으로 다가가는 것은 오직 도깨비들 뿐이었다.

오니들은 그저 멍하니 선 채, 자신들의 왕이 죽은 모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마고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곁으로 다가갈수록 김수민의 몸은 바르르 떨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저곳보다 안전한 곳은 없을 테니.

흑운과 안개로 몸을 감쌌음에도 마고는 옆을 지나가는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눈에 훤히 보인다는 듯 우리를 바라보던 마고는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내 결심이라도 했다는 듯 그 형형한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모든 도깨비가 자신의 등 뒤로 왔음을 확인한 마고는 거대한 도깨비방망이를 치켜들었다.

“도깨비들의 왕으로서 선언한다.”

모두의 시선이 마고에게 쏠렸다. 그것은 비단 도깨비뿐만이 아니었다.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는 오니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마고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이어 마고의 입이 떨어졌다.

오니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말이었다.

“오늘 저 악귀들을 모두 멸하리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고의 도깨비방망이가 휘둘러졌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의 오니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갔다.

처참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전장에 침묵이 찾아든 건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짧은 침묵.

그 뒤에 환호가 공간을 에웠다.

“이겼다!!”

“오니 새끼들을 모조리 죽였다고! 크하하하!”

젊은 도깨비들은 좋아했고, 고대의 도깨비들은 술부터 꺼내기 시작했다.

가장 선두에 우뚝 선 마고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리는 고대의 도깨비도 있었다.

“잘했다, 마고.”

평소 마고와 반목하기를 일삼던 디로스였다. 그 흔치 않은 위로에도 마고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도깨비들은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었다.

고대의 도깨비 중에서도 유독 나이가 많은 외눈박이 도깨비 가비와 거대한 방망이의 주인 다로만이 슬픈 얼굴로 마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고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간 가비가 말했다.

“쉽지 않은 결정을 했군.”

꼿꼿이 서 있던 마고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나…… 잘한 거냐?”

“그래, 덕분에 살았다. 나도, 그리고 우리 일족 모두.”

“금기를 어기고 백의의 앞에서 백의를 먹었는데도 말이냐?”

“그래, 잘한 거다.”

가비의 대답은 전혀 망설임이 없었고 단호했다. 이에 마고의 고개가 돌아갔다.

원망 섞인 눈빛이었다.

“비난했어야지. 천하의 개새끼라며 욕을 했어야지. 마지막까지 냉정하네. 죽마고우라는 놈이.”

“왕이란 그런 자가 맡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을 해라.”

냉정한 말을 쏟아 내는 가비의 거대한 눈동자는 어쩐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그 눈빛을 봐서였을까? 마고는 이전과 같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천진하고 장난기 넘치는 얼굴.

“히시시시시. 못된 놈.”

“너만 할까.”

피식 웃으며 가비를 바라보던 마고의 표정이 다시 굳기 시작했다.

“맞다. 나 죽기 전에 할 일이 있는데.”

마고는 완전히 뒤를 돌았다.

그러고는 나와 박한별 그리고 김수민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쿵.

그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미안하다, 백의여.”

겨우 진정된 김수민의 눈에서 다시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원망 섞인 표정으로 마고에게 비난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나를 삼켰어야지. 아빠가 아닌 나를 죽였어야지!!”

갑자기 일어난 소란에 도깨비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러나 마고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김수민에게 거대한 보따리를 내밀었다.

“위로가 될 순 없겠지만, 받아둬라. 내가 그동안 모아둔 보물들이다.”

“필요 없어. 이딴 거.”

김수민은 작아진 도깨비 보따리를 거칠게 내팽개치며 마고를 노려봤다.

“약속은 지키마.”

“무슨 약속!”

미간을 찡그리던 김수민의 눈동자가 이내 커다랗게 떠졌다. 전장을 벗어나기 전 마지막 마고가 했던 말이 기억난 탓이었다.

-죽음으로 갚으마.

마고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한마디가 뇌리를 스쳤는지, 김수민은 고개를 저었다.

“살아! 살아서 갚아. 이 못된 새끼야!”

“어차피 백의를 섭취한 자는 죽는다.”

“뭐?”

그 사실까지는 백의인 김수민조차도 알지 못했는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술판을 준비하며 대화를 엿듣던 도깨비들도 마찬가지였다.

“죽는다고? 마고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백의는 영약이 아니었던가……?”

깜짝 놀라 마고에게 다가가려던 도깨비들을 막아선 것은 가비와 다로였다.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검지를 입으로 가져갔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

조용해진 공기를 뚫고 다시 마고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백의여.”

“…….”

김수민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한참 만에 고개를 작게 끄덕일 뿐이었다.

“이러면 나는 누구를 원망하라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나를 원망하거라. 어린 인간이여. 사죄의 의미로 내 모든 것은 너와 너의 동료에게 나누어 주고 가겠다.”

“그게 무슨…….”

벌떡 일어난 마고는 고개를 돌려 박한별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도깨비방망이를 뽑아 그녀에게 겨눴다.

“이매망량의 칭호를 후대에 넘기노니…….”

“전승?”

놀란 도깨비들이 벌떡 일어났다.

“도깨비의 푸른 불은 세상을 뒤집고, 영혼을 홀리는 도깨비의 장난은 난장을 만드니…….”

“안 돼!”

젊은 도깨비들의 왕 장구가 소리쳤다. 당연히 자신이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전승이 다른 이에게 옮겨지고 있었으니 다급해질 만도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고의 외침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적합자는 이매망량의 힘을 받아 밤낮으로 날뛰리라.”

마침내 모든 언령이 끝이 나고, 푸른빛이 벼락처럼 내리쳤다.

푸른빛을 전통으로 내리받은 박한별의 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더없이 푸른 불꽃.

청화의 불꽃은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푸른 불꽃은 가까이 있던 나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따스한 온도를 유지하며 타오르고 있었다.

전승을 마친 마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너에게는 이미 선물을 주었다’라고 말하며 휙 뒤돌아섰다.

“……눈치챘나?”

나의 작은 중얼거림을 무시한 마고는 그대로 거대한 술병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넋이 나간 도깨비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술병을 단숨에 비워 낸 마고는 새로운 술병을 들었다. 이전보다 두 배는 거대한 술병.

그마저도 단숨에 비워 낸 마고는 채근하듯 떠들어댔다.

“뭐 해, 마시지 않고!”

그제야, 도깨비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금세 태도를 바꿔 웃기 시작했다.

“그가가가가!!”

“부어라!”

“나도 모르겠다. 일단 마셔!”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의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웃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대체 저놈들은…….

“술 없이는 못 지새울 밤이네. 나도 한 잔 줘.”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수민이 도깨비 보따리를 집어 든 채 앞으로 나가며 말했다.

어느새 눈물을 완벽히 훔친 그녀는 거대한 술잔을 집어 들고는 도깨비들의 사이에 털썩 자리를 잡고 주저앉았다.

“그가가가! 빨리 와라! 후예여.”

도깨비들은 양손을 벌린 채 김수민을 환대했다.

어느새 푸른 불꽃을 모두 소화한 박한별 역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늦으면 술이 없을 텐데.”

엄숙함과 중재를 담당하던 외눈박이 도깨비 역시 내 등을 툭 친 뒤, 자리를 잡았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잔치라도 열 듯 떠들어 대는 저 도깨비들의 감정을…… 애써 웃으며 술잔을 부딪치는 도깨비들의 속마음을!

우스운 몸집과 덜떨어진 농담이 오가는 술판은 자신들의 왕을 떠나보내는 추모식이자, 전장에서 목숨을 다한 도깨비들에 대한 추모곡이었다.

“크큭.”

“크하하하.”

“병신 같은 놈.”

그들은 늦은 밤을 지나 아침이 될 때까지.

새벽녘, 딱딱히 굳은 도깨비들의 왕 마고가 가루가 되어 산화할 때까지도…….

쉬지 않고 술잔을 부딪쳤다.

즐겁다는 듯 낄낄거리는 장난기 넘치는 입매와 그렇지 못한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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