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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94화 (94/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94화

94. 이매망량 (魑魅魍魎)(4)

“쥐새끼가 있구나!”

“히시시시. 아끼다 똥 된다. 못 들어 봤어?”

마고는 폭발하는 염비의 기운을 피해 물러난 후, 낄낄대기 시작했다.

“금방 끝내 주마.”

“그게 가능했으면, 지금 이렇게 진땀 빼고 있진 않겠지.”

“큭, 내가 정말 네놈을 죽이지 못해 이러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마고를 노려보던 염비의 기운이 다시 한번 폭발하기 시작했다. 한번 폭발했던 힘이 한 번 더 상승하자, 마고는 거리를 조금 더 벌릴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언덕을 넘어 하늘 위로 솟구치는 붉은 기운. 세상을 멸망이라도 시키려는 듯 솟아오르는 불길한 기운을 목격한 도깨비들과 오니들은 경악했다.

“저게 대체…….”

“금기를 어기고 얻은 힘이…….”

도깨비들은 경악하면서도 오니들의 왕을 바라보며 분노하기 시작했다. 눈을 이글거리는 다른 도깨비들을 향해 가비가 말했다.

“아니야.”

“아니라니 대체 뭐가…….”

“저 녀석은 금기를 완전히 어긴 게 아니야. 백의를 온전히 섭취한 게 아니란 말이다.”

“온전히가 아니라면……?”

“저 녀석의 움직임을 봐. 기운은 강한데 그에 비해 움직임은 더디다. 아마 백의의 피만 계속해서 섭취했던 거겠지.”

백의의 피는 요기를 끝없이 강해지게 만든다는 소문을 떠올린 젊은 도깨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고작 피만 마셨다는 게 저 정도라는 겁니까?”

“그래. 만약 백의를 모두 섭취했다면 고룡과도 대적이 가능하다.”

“원래 도마뱀들은 저희가 마음만 먹으면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까?”

비교적 상태가 온전한 젊은 도깨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가 이리도 건방진 말을 내뱉을 수 있었던 건, 도깨비가 용을 때려죽였다는 사실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어렸을 적부터 귀에 딱지가 박힐 듯 들어왔던 탓이었다.

“소문이 와전되었군.”

가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젊은 도깨비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도깨비가 드래곤을 때려죽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대결은 고대 도깨비가 어린 드래곤을 상대한 것이었지. 성체를 혼자서 때려죽이는 것은 아무리 고대 도깨비라도 힘들어.”

“그럼 도깨비는 드래곤을 이길 수 없는 겁니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고대 도깨비 다섯이 모이면 성체 드래곤 하나 정도는 어렵지 않게 잡아내겠지만, 고룡은 이야기가 다르다. 부족 전체가 덤벼도 안 돼.”

가비는 괜히 드래곤이 모든 종의 정점에 서는 것이 아니라며 젊은 도깨비들을 가르쳤다.

“그럼 백의를 먹으면 고룡도 상대할 수 있다는 소문은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닙니까?”

“아니! 사실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

“치명적인 단점이요? 그게 뭡니까?”

“그건…….”

말을 계속해서 이으려던 가비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넋을 놓고 염비의 강대한 기운을 바라보던 오니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도깨비불의 형태로 하늘에 떠 있는 도깨비들을 향해 방망이와 돌을 집어던지며 아우성 중이었다.

“내려와!!”

“찢어 죽여 주마!”

“너희 대장, 곧 죽을 텐데 너희가 먼저 죽는 게 어때?”

조롱과 아우성이 거세졌다.

이 모든 것은 말도 안 되는 힘을 발휘하는 저 오니들의 왕을 바라본 뒤 생긴 현상이었다. 과도한 자신감. 오니들은 절대 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처럼 보였다.

“저것 좀 보라고.”

킬킬대며 가리키는 오니의 손을 따라간 도깨비들은 경악했다.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딸릴 수밖에 없는 오니의 단점을 완벽하게 커버하고 있는 염비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오니들의 왕 염비는 넘치는 기운으로 도깨비불로 변해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마고의 경로를 따라 요기를 날려 대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위력.

한 번이라도 맞는다면, 치명상을 면치 못할 만한 공격이었다.

“빨리 끝났군. 다행이야.”

허공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리는 가비의 중얼거림을 들은 젊은 도깨비가 소리쳤다.

“대체 뭐가 다행이란 말입니까! 지금 이대로라면 다 죽습니다!”

하늘을 나는 데스 와이번을 타고 날아오른 오니들을 본 젊은 도깨비들이 소리쳤다.

“싸워야 합니다. 하나라도 숫자를 줄여야…….”

“모두 떠날 준비를 해라! 우리는 이곳을 빠져나간다.”

“잠깐만요! 지금 일족들의 원수를 내버려 두고 꽁무니를 빼자는 소리입니까? 그리고 지금 입구에는 분명 오니들이 쫙 깔려 있을 겁니다. 어떻게……?”

“목적은 이루었다. 길은 내가 뚫으마.”

가비는 젊은 도깨비들의 말을 모두 무시한 채, 사라졌다.

화륵.

황당한 눈으로 도깨비불을 쫓던 젊은 도깨비는 주변을 둘러봤다.

고대의 도깨비들 모두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젊은 도깨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러고는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고대의 도깨비들이여! 나이 들면 자존심도 바닥나는 겁니까? 저들은 우리 일족을 죽이고, 고문했습니다. 만약 저희가 이대로 물러난다면 도깨비들의 위신은 땅에 떨어질 겁니다. 마고가 당하기 전에 하나라도 더 많은 오니들을 죽여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장구?”

젊은 도깨비는 피할 때 피하더라도 적에게 피해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젊은 도깨비들의 왕 장구에게 동의를 구하기 시작했다.

호기롭고 호전적인 성격의 그라면 분명 자신의 생각에 동조해 줄 거라 믿으며…….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다. 떠나자.”

“대장!”

“서둘러야 한다.”

젊은 도깨비들의 왕 장구는 젊은 도깨비들을 타이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도깨비는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그의 서운함은 어떤 결과로도 이어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데스 와이번에 올라타 있는 오니를 처리한 외눈박이 도깨비 가비의 외침이 들려왔다.

“탈출한다!”

* * *

악마들의 송장으로 만든 언덕. 그 꼭대기에서 전장을 바라보던 나는 저 멀리 공중에 떠 있는 도깨비불을 향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흑운으로 감싼 만년설. 차디찬 얼음이 하늘로 쭉 올라가 꽃을 피웠다.

높이 올라간 만년설을 바라본 나는 그대로 흑운의 기운을 없앴다.

날아오른 데스 와이번보다 더 높게 올라간 만년설은 주의해서 보지 않는다면 절대 보이지 않을 만큼 아득한 높이에 떠 있었다.

“확인했겠지?”

이것은 미리 짜 두었던 신호였다. 나는 팔다리가 앙상한 김덕환을 안아 들었다.

걷기조차 힘들어하는 그에게 달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이편이 훨씬 수월했다.

“꽉 잡으십시오.”

김덕환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인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깨비불이 두둥실 모여 떠 있는 한 곳을.

도깨비불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신출귀몰한 불꽃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데스 와이번의 등 위.

순식간에 움직인 도깨비불은 펑 소리를 내며 거대한 육신을 토해 냈다.

순식간에 오니를 곤죽으로 만든 가비.

가비가 소리쳤다.

“탈출한다!”

탈출한다는 소리를 들은 나는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 작전은 속도가 생명이었다.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음에도 도깨비불을 이용하기 시작한 박한별은 무리 없이 따라오고 있었다.

왼쪽에서는 차마 눈으로 좇기도 힘든 레벨의 요괴 두 마리가 싸우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한곳을 바라보며 소리치고 있는 수천의 오니들이 존재했다.

그 어느 쪽도 장관이 아닌 곳이 없었다.

흑운과 박한별의 안개를 이용해 이중으로 몸을 숨긴 우리는 적들의 눈을 피해 49층으로 향하는 출구로 다다르는 것이 목표였다.

출구 근처에 도착해 도깨비들과 합류하는 것. 그들과 힘을 합쳐 김덕환과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바로 이번 작전의 마무리였다.

“서둘러야 합니다, 한별 씨.”

“저도 알아요.”

아무리 몸을 잘 숨겼다고 해도, 우리는 서둘러야 했다. 공중에 떠 있는 도깨비들은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반대편. 저 괴물과 싸우고 있는 마고는 언제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워 보이는 상태였으니까.

“좀 더 속력을 올리겠습니다.”

“예, 좋아요. 따라갈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의 달음박질은 오래가지 못했다.

빠른 속도로 나를 따라오던 박한별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온몸이 굳는 기분.

맹수 앞에 선 사슴처럼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뒤, 위를 바라봤다.

거대한 요괴가 우리 앞을 가로막아서고 있었다.

그의 몸으로부터 자연스레 뻗어 나오는 흉흉한 기운에 흑운과 안개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모습을 드러낸 나와 박한별을 본 붉은 요괴가 쇠를 긁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어디 가느냐? 내 영약을 들고!!”

거대한 방망이가 땅에 쿵 하고 떨어지자,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이 갈라졌다. 휘청거리는 나에게 염비의 거대한 손이 휘둘러졌다. 아니 사실 인지랄 것도 없었다. 그저, 오른손이 사라졌다고만 생각이 들 뿐이었다.

푸욱-!

살을 꿰뚫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죽었구나…….’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마감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찾아들어야 할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분수처럼 터져 나와야 할 피 또한 흐르지 않았다.

그저 그림자가 더욱 짙어졌을 뿐이었다.

고개를 들어 빛을 가리고 있는 존재를 바라봤다.

“시발…… 조심하라니까.”

그곳에는 가슴을 꿰뚫린 마고가 서 있었다.

그가 토하듯 뱉어 낸 혈흔이 나와 김덕환의 몸에 떨어졌다.

“마, 마고.”

나는 진하게 올라오는 피비린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의 이름을 불렀다.

“마고님!!”

놀라 다가온 박한별 역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두 달 동안 매일 봐 놓고 이제 와 반갑냐?”

“말하지 마세요. 지금…….”

박한별은 도깨비불을 이용해 그의 가슴께에 다가가 그의 상처를 압박했다.

“크하하하하! 지금껏 쥐새끼처럼 피해 다니더니, 찾아와 심장을 내주는구나!”

듣기 싫은 쇠 긁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마고는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우리에게 말했다.

“넌 어디 가서 내 제자라고 하고 다니지 마라. 기척을 이렇게나 못 숨겨서야 원. 아, 이쪽이 문젠가?”

마고는 계속해서 피를 토하면서도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말하지 마세요. 마고 씨! 제발.”

박한별은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며 마고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시발, 내가 죽으면 저 녀석들 다 뒈지겠지?”

그러나 마고는 그런 반응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한 곳을 바라봤다. 멀리서 이쪽으로 날아오는 여러 개의 도깨비불이었다.

“쿨럭, 그건…… 곤란한데…….”

다시 한번 피를 토한 마고는 품 안에서 한가지 물건을 꺼냈다.

거대한 자루였다.

일명 도깨비 보따리.

마고가 중얼거리자, 펑 소리와 함께 김수민이 튀어나왔다.

도깨비 보따리 밖으로 나온 김수민은 등 뒤에 있는 마고보다, 잔뜩 피를 뒤집어쓴 나와 김덕환을 먼저 발견하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천도윤, 너 지금 꼴이…….”

엄청난 양의 피에 놀란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김수민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한 손을 빼내 김덕환의 얼굴을 정성스레 닦아냈다.

피범벅의 얼굴이 걷히고, 거무죽죽하고 깡마른 김덕환의 얼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덕환의 얼굴을 확인한 김수민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인버스 타워에 들어온 이유이자, 인간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아, 아빠?”

김수민의 눈가에 물이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진짜, 아빠야?”

곧 꼭지가 고장 난 수도처럼 계속해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펑펑 눈물을 쏟아 내며 김수민이 다시 달려오기 시작했다. 간절하게 손을 뻗으며…… 단 일 초라도 빨리 아버지에게 닿기 위해서 달리고 또 달렸다.

“아빠! 드디어 아빠를…….”

“미안하다, 백의여.”

그러나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순식간에 김덕환의 육신이 내 손을 빠져나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깜짝 놀란 김수민이 하늘을 바라봤다.

그토록 찾아다녔던 아버지를 들어 올린 자를 바라봤다.

“일족의 존폐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말을 쏟아 낸 도깨비들의 왕 마고는 그대로 입을 쫙 벌렸다.

“안 돼!!”

김수민이 소리쳤다.

동시에, 한껏 여유를 부리던 염비의 육신이 사라졌다.

눈 깜짝할 새에 마고의 앞에 나타난 염비는 김덕환을 낚아채기 위해 손을 뻗었다.

“내 영약이다!!”

그러나 가장 빠른 것은 마고였다.

“…….”

“…….”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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