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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93화 (93/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93화

    93. 이매망량(魑魅魍魎)(3)

    오니의 강점 중 하나는 동료가 죽어 나가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장이 시작된 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 쓸려나간 오니의 숫자만 물경 500에 달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도깨비들을 향한 집착. 도깨비들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광기. 그 용암과도 같은 열기가 고대의 도깨비들마저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캬하하하하! 잡았다!”

    마고에 의해 자유의 몸이 된 젊은 도깨비 중 하나가 오니들에게 사로잡혔다. 그동안 겪었던 멸시와 끔찍하리만큼 고통스러웠던 고문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며 앞뒤 가리지 않고 날뛴 결과였다.

    “자, 잠깐만!”

    “잠깐은 시발. 전쟁 중에 잠깐이 어디 있어.”

    오니는 곧장 사로잡은 도깨비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끄아아아악!!”

    연이어 다른 오니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명을 달리한 젊은 도깨비. 안개 속에 몸을 숨기고 이를 바라보던 도깨비들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개새끼들이!”

    “진정해라 장구. 네가 흔들리면 젊은 도깨비들이 동요한다.”

    “……크윽!”

    젊은 도깨비들의 왕 장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분하다는 듯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화를 식히지 못한 장구는 다그치듯 고대의 도깨비에게 물었다.

    “우리의 목적은 시간을 끄는 것이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공중을 떠도는 도깨비 불꽃이 일렁였다. 장구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요동치는 도깨비불을 바라본 가비가 대답했다.

    “말 그대로다. 우리는 목적을 이루는 순간, 붉은 안개 언덕을 빠져나갈 것이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들을 모조리 없애고…….”

    “장구!!”

    시종일관 침착함을 유지하던 외눈박이 도깨비 가비가 소리쳤다.

    일그러진 가비의 모습을 확인한 장구는 입을 벙끗거렸다. 고대의 도깨비들 중에서도 일그러진 가비의 얼굴을 본 자는 흔치 않았다. 종족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원로격인 가비가 이토록 성을 낸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하면 되지 않았느냐! 너희 부족 도깨비 대부분이 다치거나 죽었다. 이걸로 부족하느냐?”

    “그건……!”

    “닥쳐라! 네가 아무리 젊은 도깨비들의 왕이라 한들 너는 지금 애송이에 불과하다.”

    “…….”

    “게다가 넌 왕이지 않느냐? 천둥벌거숭이 마고조차도 부족을 사지로 내모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너희 부족을 사지로 내몰 셈이냐!”

    벼락처럼 날아드는 소리에 장구는 입술을 빠득 갈며 입을 다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 많은 오니들을 갈아 마시고 싶었지만, 가비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젊은 도깨비들은 모두 상처 입었다. 모두 자신의 탓이었다. 게다가 적의 숫자는 수천. 아무리 고대의 도깨비들이 강하다 한들, 저 많은 숫자를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 숫자였다.

    길게 심호흡을 내뱉은 장구가 물었다.

    “알겠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하죠. 그런데 대체 계획이 뭡니까?”

    * * *

    “저게 아닐까요?”

    나와 박한별은 악취가 진동하는 언덕을 넘어 하나의 생명체를 발견했다.

    거대한 문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생명체는 척 보더라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고 있는 생물이었다.

    흑갈색 피부에 개의 머리를 지닌 존재. 그 거대한 존재는 거대한 창을 들고 있었다.

    “생김새를 보니 맞는 것 같네요.”

    -창고의 문을 지키는 개새끼를 쓰러뜨리면 절반은 성공이야.

    마고의 말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저 녀석을 잡고, 안에 숨겨진 물건을 가져오면 된다는 거죠?”

    “네.”

    나는 숨을 죽인 채 작게 대답했다. 그러자 박한별은 한 발 더 다가와 나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런데 왜 수민 씨를 이쪽에 붙이지 않았을까요?”

    마고의 요청으로 김수민은 마고의 도깨비보따리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아마도 박한별은 우리가 맡은 임무의 내막까지는 자세히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어차피 곧 알게 될 사실이라 생각하고 그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오니들의 왕이 어겼다는 금기는 백의, 아니 김수민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연관이요?”

    “네, 저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아마도…….”

    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돌연 날아든 창. 공기를 미친 듯이 가르며 날아온 창이 우리를 두 동강 낼 기세로 쇄도하고 있었다.

    “피해요!”

    “피하세요!”

    나와 동시에 반응한 박한별은 단숨에 몸을 날려 공격의 범위 밖으로 벗어났다.

    몸을 굴러 착지한 박한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족보행을 하는 거대한 개를 바라봤다.

    “벌써 들키다니……!”

    “저 녀석은 후각에 예민한 것 같습니다.”

    녀석은 코를 유난히 킁킁거리고 있었다. 모든 기척을 지웠음에도 냄새의 잔향이 남아 있었는지, 녀석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우리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또다시 창을 날려 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창을 피한 나는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 뒤 녀석에게 달려갔다.

    그것은 박한별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화륵!

    도깨비불을 이용해 나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박한별은 어느새 녀석의 뒤통수에 나타나 거대한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두 달 동안의 성과.

    박한별은 몰라보도록 강해져 있었다.

    질투가 느껴질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룬 박한별은 제법 도깨비처럼 싸울 수 있게 되었다. 한껏 자신감이 오른 모습.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잘 차려입은 느낌이었다. 박한별은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두 달간 지겹게 부대낀 도깨비들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일순 소름이 돋는 것을 조용히 넘긴 나는 암살이와 우마 그리고 반 페르데이스를 불러냈다.

    조금도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늦어지면 질 수록 저쪽에서 죽는 도깨비들이 많아질 테니까.

    쿠오오오오!!

    도깨비감투를 이용해 문지기의 정신을 혼란시킨 박한별은 그대로 방망이를 내리쳤다.

    혼란은 잠시, 금세 정신 차린 문지기는 그녀의 공격을 막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박한별이 원하는 것이었다.

    반 페르데이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녀석의 발목을 얼렸다. 만년설을 통한 냉각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무엇도 쉽게 깨뜨릴 수 없는 얼음.

    녀석의 발 부분을 확실히 제압한 나는 나의 소환수들과 함께 녀석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매섭게 돌아가는 흑운의 힘으로 적의 살갗을 찢었고, 번뜩이는 전격으로 녀석의 몸을 경직시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쿠웅-!”

    육중한 문지기가 맥없이 꼬꾸라지고, 이상한 소리가 공간을 메우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이-!!

    고막을 어지럽히는 달갑지 않은 소리. 언덕 너머 전투를 펼치고 있는 도깨비들과 오니들에게까지 들릴 만한 거대한 소음이었다.

    “경고음인가?”

    “으윽! 빨리 들어가요, 도윤 씨.”

    “네, 그러죠.”

    고막을 찢을 듯 울려 대는 소음을 피해 거대한 문 안으로 들어가려던 때, 우리의 등 뒤로 또 다른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경고음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소리. 무엇인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였다. 뒤를 돌아본 우리는 소음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기둥처럼 우뚝 솟은 불길한 기운. 거대한 언덕 위로 솟구친 붉은 기운은 멀리서도 살이 저릿할 만한 살기였다.

    나는 불길하고도 흉흉한 저 기운이 결코 도깨비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가장 기운이 거친 마고조차도, 정제되지 않은 느낌일 뿐, 이토록 살기 어린 기운을 갖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이것은 아마도…….

    “저희 들킨 거 아니에요?”

    “……서둘러야 할 것 같네요.”

    나는 불안한 감정을 떨쳐 낼 수 없었다.

    * * *

    불안감을 떨치기도 전에 우리가 마주한 것은 목숨을 위협하는 함정이었다. 한 발자국을 떼기도 전에 날카로운 철 화살이 날아왔고,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땅이 꺼지기도 했다.

    예측할 수 없는 위태로운 함정. 그러나 창고 안, 모든 함정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숨겨져 있었다.

    “한별 씨, 모든 힘을 풀어 보세요. 아니, 아예 도깨비에 관련된 아이템을 모두 벗어 보세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의아함을 보이는 박한별을 한 번 바라본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박한별은 위험하다며 나를 말리려다, 우뚝 멈춰 섰다. 내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함정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 모습을 본 박한별은 눈을 밝혔다.

    단번에 내가 한 말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요기를 감지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네요. 이곳을 침입할 생각을 하는 것은 도깨비나 같은 종족인 오니밖에 없을 테니까요.”

    나는 도깨비방망이와 감투, 거적을 모두 벗어던진 박한별의 몸에 흑운을 둘러 주었다. 아무리 아이템을 모두 벗어던진다 한들 그녀는 후예. 함정들이 모두 민감한 감지에 의해 작동한다면 함정이 발동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흑운을 두른 박한별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채 함정들을 모두 통과할 수 있었다.

    “도윤 씨…….”

    “예, 보고 있습니다.”

    죽지도 그렇다고 살아 있지도 않은, 죽어 있는 눈을 하고 있는 노인이 눈앞에 있었다.

    우리를 발견하고는 놀랄 법도 했지만,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헛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으…… 어…….”

    그저 목이 타 보이는 듯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노인.

    이를 바라본 박한별은 인상을 구겼다.

    “나쁜 놈들! 왜 인간을 여기에 묶어 두고…….”

    “…….”

    “도윤 씨, 빨리 물건 찾고 어르신 구해 드려요.”

    박한별은 다 죽어 가는 노인을 한시라도 빨리 구해 주고 싶었는지, 나를 다그쳤다.

    “저희가 찾으러 온 것은 물건이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분명 오니들의 왕이 금기를 완전히 깨 버리기 전에 물건을 빼돌리려는…….”

    “저희가 빼돌리려는 것은 바로 이분입니다.”

    박한별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충격을 받을 것을 대비해 박한별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진실이 내 눈앞에 있었다.

    “저희가 얻으러 온 것은 금기 그 자체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금기 그 자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박한별에게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피는 요기를 끝없이 강해지게 만들고, 뼈는 거인 같은 괴력을 사사하며, 살은 명석한 두뇌를 지니게 해 준다는 명약.”

    “그게 뭔데요? 자꾸 말 돌리지 말고 빨리 찾고 나서 이분을…….”

    “백의.”

    “네?”

    잠시 할 말을 잃은 박한별의 눈동자가 멈칫하더니,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불안한 느낌을 애써 숨기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는 그녀에게 나는 진실을 말해 주었다.

    “백의는 요괴들이 가장 탐내하는 영약이자, 도깨비와 오니 간에 절대 깨지 말자고 약속했던 금기입니다.”

    “그럼 이분이…….”

    “예, 이분이 바로 김수민에 이은 또 다른 백의입니다.”

    박한별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노인의 팔에 꽂혀 있는 수많은 바늘구멍. 이는 끝없이 피를 갈취당했다는 뜻이었다.

    흔들리던 그녀의 동공이 분노로 휩싸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죽어 있던 노인의 눈동자가 미약하게 흔들렸다. 분노에 휩싸인 박한별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또한, 백의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반응을 보인 것은 ‘김수민’이라는 이름을 말할 때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에게 손을 뻗기 시작했다.

    “도우러 왔습니다. 김덕환 씨.”

    덜덜 떨리고, 앙상하다 못해 곧 명을 다할 것 같은 미약한 손길이 내 손을 우악스럽게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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