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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92화 (92/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92화

92. 이매망량(魑魅魍魎)(2)

펑!

새하얀 연기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퍼버벙!!

거대한 폭음이 연달아 터졌다. 이내, 호탕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히시시시시.”

“그갸갸갸갸갸!”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단번에 파악한 붉은 악령들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었다. 그러나 그 현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붉은 악귀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온전한 의도를 지녔다기에는 무리가 있는, 괴이하고도 비틀어진 웃음이었다. 50층 내부에 일그러지고 광기에 사로잡힌 웃음과 유쾌한 웃음이 뒤섞이고 있었다.

쿵!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거대한 도깨비방망이를 들고 있는 고대의 도깨비였다.

분위기에 심취한 붉은 악귀 하나가 침을 질질 흘리며 언덕 위에 나타난 도깨비를 바라봤다.

“고, 고대의 도깨비방망이!!”

시선을 느낀 고대의 도깨비 다로가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하찮은 것이 과한 것을 탐내는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니의 몸뚱이가 허물어졌다.

쿵-!

거대한 그의 방망이가 붉은 악귀를 단숨에 짓누른 탓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오니들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퍼버버벙!

수많은 폭음이 터져 나왔다.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고대의 도깨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머저리들이 많이도 모여 있구나!”

“목은 깨끗이 닦아 놨느냐?”

수십 대 수천.

메우기 힘든 수적 열세를 지녔으면서도 도깨비들은 전혀 위축됨이 없었다.

오히려 거만하고 장난기 넘치는 웃음으로 모여든 오니들을 기만하듯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무던한 시선에 열받은 오니 하나가 고개를 쳐든 채 소리쳤다.

“이 숫자가 안 보이느냐? 이 머저리들아!”

“흥, 개미가 아무리 많아 봐야 개미일 뿐이지. 도깨비의 발 구름 한 번이면 모두 나가떨어질 터. 무엇을 겁내야 한다는 말이냐!”

자신의 발아래 깔린 오니를 짓밟은 다로가 소리쳤다. 그러자 언덕 아래 모여든 오니들이 광분하기 시작했다.

“네놈은 내가 찢어 죽여 주지!”

“네놈의 방망이로 너를 몇 번이고 유린하다 죽여 주마!!”

“할 수 있으면 해 보거라, 잡종들아!”

“잡종……!?”

잡종이라는 말에 오니들은 치부를 들킨 인간마냥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개새끼가!”

“넌 내가 죽인다!!”

광분, 멸시, 모멸, 긴장.

다양한 감정들이 전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뒤섞이기 시작했다.

이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오니들의 왕 염비는 입이 찢어져라, 웃기 시작했다.

“크큭, 크하하하하!”

언덕의 가장 꼭대기로부터 쇠를 긁는 듯한 불길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를 긴장케 하는 광기에 사로잡힌 웃음의 대상은 서로를 죽일 듯 바라보고 있는 도깨비들과 오니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드디어 왔군.”

드디어 나타난, 기다리고 기다리던 존재.

“이번에는 살아갈 생각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마고.”

“히시시시. 너야말로 그때처럼 꽁무니 빼고 도망가지 말라고.”

염비의 등 뒤로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그러고는…….

콰앙-!

방망이가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가가가가각-!

“여전히 야비하구나. 마고!!”

“너만 할까.”

도깨비들의 왕 마고와 오니들의 왕 염비는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마고였다.

“오니가 방망이라니, 자존심도 없는 건가?”

“이게 아직도 네놈 아비의 방망이처럼 보이나?”

염비의 저열한 도발에, 마고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네놈……!”

염비는 원하던 반응이 나왔는지, 비틀어진 미소를 보이며 자신의 방망이를 들어 올려 보였다.

둥그런 모양에 원뿔 모양의 돌기가 달린 마고의 방망이와는 달리, 염비의 방망이는 괴이한 모양을 띠는 형태였다.

무뎌지고 부러진 돌기 위로, 날이 선 철사와 못이 잔뜩 박혀 있는 모양.

마고는 염비의 방망이를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옛 생각이라도 나나?”

“네놈…….”

“돌려줄까? 네놈의 방망이만 넘겨준다면 돌려주지 못할 것도 없는데 말이야. 크큭.”

“곱게 죽지는 못할 거다.”

퍼벙-!

마고가 방망이로 바닥을 치자, 다시 한번 하얀 연기가 주변을 메우기 시작했다. 연기 속에 몸을 숨긴 마고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젊은 도깨비들을 납치한 이유가 무엇이냐!”

“이유? 당연히 도깨비들의 씨를 말리고, 네 녀석을 죽여 도깨비방망이를 뺏기 위해서지.”

염비는 새삼스레 뭘 묻느냐는 눈빛으로 안개 속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금기를 어긴 대가는 톡톡히 받아 주마!”

“크큭. 네놈이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는 더 이상 네 녀석에게 농락당하던 염비가 아니란 말이다!”

“그건 두고 볼 일이지.”

마고의 외침에 염비는 기운을 끌어올렸다. 아무리 자신이 금기를 어기고 힘을 끌어 올렸다고 한들, 적은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염비는 욱신거리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일전에 벌였던 전투에서 마고에게 당한 상처였다.

과거를 회상한 염비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안개 속을 주시했다.

안개를 부리고 다양한 물건들을 만들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와는 달리, 오니들은 그런 기술들을 사용할 수 없었다.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오니들에게 도깨비방망이는 단순한 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니들이 방망이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강한 도깨비들을 죽였다는 과시욕.

대부분의 오니들은 도깨비들에게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염비 또한 마찬가지.

염비는 늙은 마고의 아버지로부터 빼앗은 도깨비방망이를 꽉 움켜쥔 채 마고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단번에 녀석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 놓을 생각이었다.

금기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자신의 새로운 힘으로 마고를 굴복시킬 생각이었다.

“…….”

“…….”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녀석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마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오해라!”

염비는 다시 한번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한껏 살기를 흩날리던 염비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염비는 그대로 자신의 방망이에 튀어나온 못으로 손등을 긁었다. 찌릿한 느낌이 들며 새빨간 피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혼란스럽던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염비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환각……!”

도깨비감투로 인한 허깨비. 마고가 자랑하는 기술 중 하나였다.

기운을 끌어 올려 안개를 모두 걷어 내자, 비로소 온전한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히시시시시.”

멀리서 이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마고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마고는 젊은 도깨비들을 감시하고 있는 간수 녀석들을 모두 때려눕힌 뒤, 도깨비들에게 채워진 족쇄를 풀어 주는 중이었다.

염비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죽여 주마.”

소리치며 도깨비들의 왕 마고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흉흉한 기운을 흩뿌리던 염비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환각, 괴력, 마술을 고루고루 사용하는 도깨비에 비해 오니들은 오직 단 하나만의 강점만을 가지고 있었다.

괴력.

동족과 악마들을 포식하며 쌓아 올린 힘은 도깨비와 비견해 봐도 전혀 꿀릴 것이 없는 힘이었다. 염비가 불끈 솟아오른 팔을 휘두르자, 공간을 가를 듯한 바람이 날카롭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마고님! 뒤에!”

마고에 의해 자유를 되찾은 젊은 도깨비 하나가 소리쳤다.

“나도 알아.”

작게 미소 지은 마고는 뒤를 돌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가는 공격.

공격을 받아 낸 마고는 그대로 가면을 뒤집어썼다.

화륵.

화륵.

그의 주위로 수십 개의 도깨비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반쯤 홀린 영혼은 허깨비에 갇혀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리.”

나직한 그의 외침에 일순, 세상이 뒤집혔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갸갸갸갸!!”

“난장이다!!”

수백 대 일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고대의 도깨비의 얼굴에 웃음이 깃들었다. 동시에 머리 위에 올려 둔, 갓과 가면, 키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얼쑤!!”

굵직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리고.

푸른 도깨비불을 두른 도깨비들의 신형이 사라졌다.

화륵.

“크악!!”

화륵.

“으악!!”

작은 도깨비불들이 신출귀몰(神出鬼沒)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몇 차례.

전장에는 오니의 비명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또 잡기술을!”

오니 중 계급이 높은 녀석은 열심히 도깨비불을 눈으로 좇으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갸갸갸갸. 도깨비불이다. 눈으로 따라올 수 있을 듯싶으냐!”

또 한 명의 오니가 명을 달리하고…… 우후죽순으로 당하기만 하던 오니들을 바라보던 염비가 소리쳤다.

“저 녀석들은 고작해야 수십이다. 공중을 물어뜯어라! 허공을 갈라라!! 고대의 도깨비방망이는 너희들의 것이다!!”

염비의 외침에 오니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방망이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이 그들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고대의 방망이…….”

“죽여!!”

“잘근잘근 씹어 주마, 고대의 도깨비들이여!”

광기에 사로잡힌 오니들이 허공을 향해 조잡한 방망이와 이빨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장에 울려 퍼지던 비명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던 것이다.

반면, 별 성과 없이 계속해서 몸을 내빼야 하는 고대의 도깨비들은 죽을 맛이었다.

* * *

‘이런 무식한 방법을 사용할 줄이야…….’

‘고대’의 취급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도깨비는 벌써 요기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긴박한 긴장감과 도깨비불의 난무가 그 원인이었다.

“가비님!!”

푸른 도깨비불로 전장의 부대장 가비에게 다가가던 도깨비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왼쪽 발목이 허전한 느낌.

뒤를 돌아본 고대의 도깨비의 눈에 기뻐하는 오니들이 들어왔다.

“어떤 놈 발목을 뜯어냈어!!”

“와아아!!”

“쩌접, 고대의 놈이라 그런지…… 쩝, 졸라 맛있다.”

“야! 나도 한입만 줘 봐!”

붉은 악귀들은 전쟁 중임에도 욕망을 참지 못하고 손에 든 물건을 뜯어먹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손에 들린 것은 분명 자신의 것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도깨비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뒤늦게 찾아온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건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이었다.

“잡았어!!”

우악스러운 손이 그의 몸을 감쌌다.

목덜미로 날카로운 이빨이 들어오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순식간에 몸의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넌 뒤졌다.”

“우선 한 마리!!”

광기에 사로잡힌 붉은 악귀들이 그의 얼굴 위로 다가오고 있었다.

* * *

“나가요! 저러다가…….”

“안 됩니다. 작전 잊었습니까?”

“그래도…… 정구가…….”

“약속했잖아요. 무슨 일이 생겨도 돕지 않기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저겁니다.”

나는 멀리서 오니들에게 당하고 있는 고대의 도깨비 정구를 바라보면서도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두 달,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나와 박한별의 성장을 많이 도와준 도깨비였지만, 우리는 움직일 수 없었다.

만약 우리가 저기에 끼어드는 순간, 모든 계획은 망가지고 만다.

“참아야 합니다.”

나는 부르르 떨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빌어먹게도……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박한별이 만든 하얀 안개와 내가 만들어 낸 흑운으로 몸을 숨긴 나와 박한별은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문 채, 악마들의 산으로 이루어진 언덕의 꼭대기를 넘기 시작했다.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저 반대편에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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