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91화
91. 이매망량(魑魅魍魎)(1)
탐욕이 깃든 눈빛이 날아와 온몸을 훑고 있음을 느낀 젊은 도깨비들의 왕 장구는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붉은 피부의 요괴들은 천천히 그가 들어 있는 철창을 두드리며 히죽 웃었다.
“도깨비도 별거 아니네. 괜히 쫄아 가지고는.”
“도깨비들은 거적이 없으면 힘도 제대로 못 쓴다며? 순혈이니 뭐니 하는데, 알고 보면 도태된 거나 다름없다니까?”
“크크, 그러니까 말이야. 그래도 저 녀석 방망이는 쓸만해 보이던데.”
“나중에 저 녀석 죽이고 뺏자.”
“좋지! 아 맞다. 염비님이 도깨비 한 마리 더 데리고 오라던데.”
“그래? 크큭, 누가 좋을까나?”
철창 주변에서 수다를 떨던 오니들은 길게 늘어선 감옥을 두드리며 그 속에 갇힌 도깨비들을 바라봤다. 도깨비들의 눈빛에는 하나같이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처음 보이던 패기와 적개심은 사라진 지 오래. 단지 그들은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지 않길 기도하며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크크크. 그래, 이렇게 쫄아 있어야 맛이 나지.”
“병신들. 그런 눈빛을 하고 있으니까 더 괴롭히고 싶어지잖아, 응?”
“야, 저 녀석 어때!”
“오! 좋은데?”
오니들은 입맛을 다시며 오른쪽 구석, 가장 공포에 질려 있는 도깨비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아~ 이번 녀석은 어디가 병신이 되어서 돌아오려나?”
“아,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너희들이 그동안 우리를 멸시하고 조롱한 건 괜찮고?”
“그건…… 내가 한 게 아니야. 제발 살려 줘! 제발!”
“크크크, 천하의 도깨비가 추태를 보여서야 쓰나. 나와 이 새끼야!”
간수들은 철창의 문을 열고는 쪼그려 앉아 있는 도깨비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양손이 묶인 채 힘없이 끌려 나오는 도깨비를 바라보던 장구는 한쪽 눈을 매만졌다. 있어야 할 자리에 존재하지 않은 신체가 영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를 바득 간 젊은 도깨비들의 왕 장구가 소리쳤다.
“그 손 놔라!”
울분에 찬 목소리가 50층을 가득 메웠다.
“크큭, 뭐라는 거야, 저 병신이.”
“나로, 나로 족하지 않느냐! 차라리 나를 죽여라!”
“등신아, 내가 말했지. 네놈은 그저 인질일 뿐이라고.”
“다시 말하지만, 마고 녀석은 오지 않는다! 내 목숨을 거두고 저들은 살려 보내라!”
“우리가 왜?”
“너희는 같은 핏줄로부터 내려온…….”
“그 입 다물어라. 찢어 버리기 전에.”
돌변한 간수가 장구가 갇힌 작은 감옥으로 달려왔다.
그러고는 누런 이를 들이밀며 말했다.
“네놈들이 언제 우리를 같은 종족이라 여긴 적이 있어?”
“그건, 네놈들이 말도 안 되는 천인공노할 패악질을 저질러서가 아니냐!!”
“크크큭, 고작 그런 이유로 같은 핏줄을 내쳤단 말이지?”
“고작? 네놈들이 한 행패를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꾸짖듯 외치는 장구의 일갈에 오니들은 웃기 시작했다.
“아, 동족 포식? 도깨비들이 맛있는 걸 어떡하냐? 크큭, 응? 맛있게 태어나질 말던가.”
“찢어 죽일 새끼들!”
장구는 욱신거리는 눈을 감싸 쥔 채 소리쳤다.
“너무 열 내지 말라고. 마고 녀석이 오면 너도 맛있게 먹어 줄 테니까! 아, 물론 네놈의 방망이로 걸레짝을 만들어 둔 뒤 말이야.”
“할 수 있으면 해 보거…….”
열을 내던 장구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 때문이었다.
“끄아아아악!! 제발!! 제발 그만해!!”
“끌끌, 뭐? 저렇게 해 달라고?”
멀리서 들려오는 도깨비의 비명. 끔찍하리만큼 고통에 찬 도깨비의 비명에 장구는 생각했다.
‘나 때문에…….’
장구는 절망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이 모든 일은 자신이 초래한 결과였다. 오만했고 방자했으며 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결과, 부족의 대부분이 잡혀 들어오거나 죽었고, 고문을 받는 중이었다.
반대편 감옥에 갇힌 녀석들은 이미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에 불편할 정도로 신체가 훼손되어 있었다.
모두 자신의 탓이었다.
오니들의 습격조차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신 같은 판단으로 억지로 부족의 도깨비들을 대동해 50층으로 내려온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크큭, 병신.”
오니들의 비아냥거림에 장구는 이를 갈았다. 만약…… 아주 만약, 고대의 도깨비 마고였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했을까?
평소 끔찍하리만큼 싫어했던 녀석을 생각하며 방법을 찾는 것이 자존심 상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무엇보다 동료들을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일단, 이 족쇄부터 풀어야 한다.’
도깨비의 힘을 봉인하는 특별한 재질로 만든 이 수갑은 잡혀 온 모든 도깨비의 손과 발에 묶여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힘을 봉인하고 있는 한, 살아나갈 기회는 없었다. 최소한 녀석들에게 대항할 힘을 얻기 위해서는 수갑을 벗어던져야 했다.
“일단…….”
듣기 힘들 정도의 비명이 난무하는 감옥 안에서.
“끄아아아악!!”
장구는 입술을 짓씹었다.
* * *
“지루하군.”
두 달이 지나도, 마고는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포로로 잡혀 있던 도깨비 중 절반을 죽여 각층 중심지에 매달아 놔도, 고대의 도깨비들은 쉼터에 숨어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녀석, 진짜 일족을 버린 것인가?”
항간에 떠도는 도깨비들의 소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마고는 고대의 도깨비들을 데리고 부족을 버렸다고.
데리고 간 고대의 도깨비들마저 버리고 혼자 잠적하고 말았다고…….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마고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염비는 커다란 악마들의 시체 산꼭대기에서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상하단 말이야…… 마고 녀석은 둘째 치더라도 분명 고대 도깨비들은 움직임을 보여야 정상인데 말이지. 너무 조용하단 말이야.”
마치 태풍이 몰아치기 전, 일말의 소음조차 허용하지 않는 고요한 바다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분명 무엇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평화.
생각을 마친 염비는 끌끌 웃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
악마의 시체를 열심히 나르고 있는 오니 하나를 불러 세웠다.
“네, 염비님, 부르셨습니까?”
달려온 오니를 빤히 바라본 염비는 쇠를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각 층을 관리하는 오니들에게 전해라.”
다가온 오니는 쇠를 긁는 듯한 소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전하면 될까요?”
“각층에 널리 소문내라 전해라! 일주일 안에 고대의 도깨비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포로로 잡아 둔 도깨비들을 모조리 쳐 죽이겠다고.”
염비의 말을 들은 붉은 피부의 오니의 입꼬리가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재밌겠다는 듯 킬킬거리며 대답했다.
“바로 전하지요.”
* * *
“겁먹었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오니들의 왕 염비는 일주일간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고대의 도깨비들을 보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흥이 깨져 버린 듯, 무료한 미소를 지어 보인 염비는 소리쳤다.
“도깨비들을 모두 불러와라!”
언덕 아래서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포로로 잡혀 있던 도깨비들이 모두 도착했다. 하나같이 정상적인 녀석이 없었다. 어딘가 부러지고, 뜯기고, 훼손된 모습.
개중에는 정신줄을 완전히 놓아버린 녀석도 있었다.
당당히 걸어오는 것은 젊은 도깨비들의 왕 장구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쪽 눈을 잃은 모습이었다.
“너희들의 왕은 너희를 버렸다.”
거칠고 탁한 음성이 도깨비들을 꿰뚫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마고에게 실망하는 기색을 내비치는 이는 없었다.
“……그런 거였나?”
젊은 도깨비와 고대의 도깨비들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 그 소문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기다림을 했다는 생각에 짜증이 난 염비는 가장 근처에 있던 부하를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염비님.”
“저 녀석의 팔을 뜯어 와라, 저 녀석은 다리, 저 녀석은 심장이다.”
염비는 차례차례 도깨비들을 가리키며 가져올 부위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염비가 말하는 모든 부위는 도깨비들의 발화점이 포함된 부위였다. 푸른 불꽃의 시작점이자, 가장 맛있는 부위.
눈을 붉게 빛낸 염비는 우악스럽고도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인내하던 미식의 순간이 왔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고대의 도깨비들이 오지 않는다면 찾아 나서면 그만. 지금은 참아왔던 식욕을 돋을 생각이었다.
“맛있게 먹어 주지.”
소름 돋게 거친 음색이 내리꽂히자, 공포에 질린 도깨비들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염비의 명령을 모두 기억한 오니는 빠르게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장구는 그대로 가져오도록!”
“예, 염비님.”
뒤를 돌아 고개를 푹 숙인 부하는 가장 왼쪽에 서 있던 자신의 부하에게 말했다.
“야! 저 녀석 팔 뜯어.”
명령을 받은 오니는 그러겠노라 대답한 뒤, 가장 왼쪽에 서 있던 도깨비에게 다가갔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어? 살려 줘! 내가 잘못했어. 살려…… 끄아아아악!!”
무심하게, 그리고 무자비하게 도깨비의 팔을 뜯어낸 오니는 거대한 자루에 팔을 툭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무심한 표정으로 옆에서 공포에 질려 있는 도깨비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갔다.
“선배님, 이놈은……?”
“심장이다!”
“자, 잠깐! 끄윽!”
순식간에 한 마리의 도깨비는 팔을 잃었고, 다음 도깨비는 목숨을 잃었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도깨비들은 패닉에 빠졌다. 맥도 못 써 보고 죽거나 병신이 되는 것. 그것이 곧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장구님! 어떻게 좀…….”
위기에 몰린 도깨비들은 장구를 향해 울부짖었다. 도와달라고, 어떻게 좀 해 보라고. 그렇게 애원했다.
장구는 밀려오는 후회와 죄책감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자신을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도깨비들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장구의 대답이 힘없이 떨어지고, 도깨비들의 눈에는 절망이 서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장구는 생각했다.
‘내가 모든 것을 짊어지마.’
이젠 살아나간 도깨비들이 잘 숨어 지내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장구는 이를 악문 채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영혼을 태우고 태워 마지막 발악을 해 볼 생각이었다.
자신은 이곳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따랐던 도깨비들은 살려 줄 생각이었다. 장구의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몸 안에 숨겨 두었던 두 개의 발화점이 폭발하듯 부풀어 올랐다.
몸 안에 도는 요기가 충만해졌다.
이 정도의 힘이면 단숨에 수갑을 깨뜨린 후, 자신의 방망이를 장난감처럼 휘두르고 있는 저 녀석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터.
도깨비방망이를 되찾은 후, 영혼을 불태워 휘두른 도깨비방망이로 일족들을 모두 50층 밖으로 날려 보내면 끝나는 일이었다.
발화점을 폭발시킨 대가로 자신은 죽고 말겠지만, 상관없었다. 도깨비의 멸망을 두고 볼 수는 없었으므로.
머릿속으로 모든 상황과 변수를 끊임없이 돌리던 장구는 이내 눈을 부릅떴다.
“지금이다!”
소리치며 속 안의 발화점을 모두 터트리려던 때였다.
“지금은 무슨.”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구구구구.
“뭐지?”
“땅이 갑자기 왜 흔들려!”
갑작스러운 변화에 오니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대기가 흔들렸고, 마침내 공간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응, 맞아!”
뿌옇게 물든 공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하얀 안개가 점점 공간 전체를 덮기 시작했다.
“히시시시.”
익살스러운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퍼져 나왔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도통 보이지 않았다. 존재감 또한 없었다. 오니들은 안개 속에 홀린 느낌이었다.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너희는 상대를 잘못 골랐어.”
이번에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여전히 목소리의 주인공은 찾을 수 없었다.
“아주 난장을 만들어 주지!”
이번에도.
“준비됐냐, 얘들아!”
이번에도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그제야, 오니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목소리의 정체를.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붉은 귀신들에게 하나로 뭉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