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90화 (90/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90화

90. 도깨비들의 왕(5)

나는 아직 가시지 않는 술기운에 헛것을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뭐라고?”

“미안하다.”

“미안하고 자시고, 뭔 개소리냐고!”

나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깜짝 놀란 몇몇 도깨비들이 이쪽을 쳐다봤지만, 별 관심이 들지는 않았는지, 다시 눕거나 술을 기울였다.

마고는 점점 잦아들고 있는 박한별의 불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여자를 도깨비들의 왕으로 만들 생각이다.”

나는 마고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술기운이 완전히 달아났다. 흐릿하던 시야가 똑바로 돌아왔다.

“뭐?”

“듣지 않았나, 그녀를 도깨비들의 왕으로 만들겠다고.”

“그녀는 도깨비가 아닙니다!”

“푸른 불꽃을 사용하는 도깨비의 피이기도 하지.”

“후…… 당신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나약하다고. 그런데 왜!”

황당한 선언. 나는 드래곤만큼이나 영험한 존재 앞에서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술기운이 모두 달아나고, 마고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지껄이던 반말도 어느새 고친 상태였다.

“그녀는 적임자다.”

“대체 적임자가 무엇입니까?”

“진짜 불꽃을 사용할 수 있는 녀석이지.”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나불대는 도깨비들의 왕에게 욕지거리를 날리고 싶었지만, 한층 진지해진 그의 태도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도깨비가 웃고 있지 않을 때는 언제나 조심해야 할 때라고 반 페르데이스가 경고하고 있었다.

숨을 깊게 내뱉은 나는 그것이 대체 무엇이냐 물었다.

“푸른 불꽃을 지배하는 힘이다.”

여전히 뜬구름 잡는 말. 나는 들려오는 반 페르데이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 녀석이 말하는 힘이 청화(靑火)를 이야기하는 거라면, 그것은 레드 드래곤조차 탐내는 힘이다.

‘청화?’

-그래. 가장 밝게 타오르는 불꽃이자, 불꽃이 아닌 힘.

도통 추상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반 페르데이스의 말에 나는 인상을 팍 구겼다.

가뜩이나 심란한 상황인데…….

나는 마고를 향해 물었다.

“당신이 계속 왕의 자리를 이어 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지켜보니, 그 자리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

“듣지 않았나, 우린 오니와 전쟁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도깨비 대부분은 전쟁에서 죽을 것이다.”

마고는 주먹을 말아 쥐고 있었다. 덤덤한 듯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사무치도록 안타까운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오만방자해 보이던 왕의 진지함은 나를 숙연해지게 만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앞뒤 돌아보지 않고 따지기보다는 방법을 물색하는 것이 옳다 느껴졌다.

“당신도?”

마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의 행동에 나는 잘게 몸을 떨었다. 용조차 두려워하는 존재를 감히 누가 이리도 몰아칠 수 있다는 말인가.

새삼 오니라는 종족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자신마저 죽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마고에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방법이 없는 겁니까?”

“현재로서는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금기를 푸는 것 외에는.”

“금기가 대체 무엇입니까?”

“…….”

입을 열지 못하는 마고를 바라봤다.

그 답답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구겨졌다. 그러고는 자극적인 말을 내뱉었다. 이야기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박한별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녀가 내 소유는 아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리 도깨비의 피가 섞였다 한들 그녀는 인간. 이런 삭막한 곳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지구에서 사는 것을 더 좋아할 것.

“그렇게 생떼를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생떼는 지금 도깨비들의 왕. 당신이 부리고 있는 겁니다. 다짜고짜 동료를 내놓으라니.”

“우리의 후예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무런 희생 없이 이러는 줄 아느냐?”

그의 진중한 태도에 나는 약간 위축되었다. 도깨비의 생존이 달렸다고 생각했는지, 마고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모습이었다.

쿠오오오.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그의 기세에 잠시 주춤거렸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박한별을 잃을지도 몰랐다. 무언가 방법을…….

“끝났군.”

그 순간, 마고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박한별의 불꽃이 모두 사그라지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도착과 동시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박한별.

나는 그녀를 조심스레 둘러업고는 마고에게 말했다.

“그녀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죠.”

“……좋다!”

* * *

이리저리 몸을 둘러본 박한별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도깨비방망이뿐만 아니라, 감투와 거적을 얻게 되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 썩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고의 입가에도 미소가 드리웠다.

“히시시시. 마음에 드느냐?”

“예, 감사합니다.”

“한별 씨, 앉아 보세요.”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들의 대화를 끊고는, 그녀를 평평한 바위 위로 안내했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바위 위로 털썩 내려앉았다.

“도윤 씨, 왜요? 안색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었어요?”

“잘 들으세요, 한별 씨.”

나는 마고에게 들었던 정보를 가감 없이 그녀에게 전했다. 박한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러니까…… 내가 왕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적임자인가 뭔가 하는 거고…… 전쟁으로 도깨비들이 죽으면 살아 있는 도깨비들을 수습해 이끌고 나가야 한다. 뭐, 이런 말인가요?”

“네.”

“그렇다, 후예여.”

옆에서 나와 박한별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마고가 끼어들었다.

도깨비들의 왕은 마음 약한 그녀가 당연히 제안을 승낙할 거라, 생각했는지 한껏 의기양양한 태도였다.

박한별은 그런 마고를 바라보며 미안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감투와 거적을 내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그건 곤란하네요. 제가 이곳에서 평생 살 순 없어요.”

단호한 박한별의 대답. 마고의 얼굴에 당혹이 물들었다.

그러나 박한별은 마고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내뱉었다. 조금은 기분이 나빠 보이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런 고민을 하는 거죠? 전쟁에서 당신이 이기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쉽게 말할 일이 아니다.”

“당연히 쉽지 않겠죠. 그래도 노력은 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머리 맞대고 전략을 짜고, 합을 맞춰도 모자랄 판에…… 뭐? 술판을 벌여요? 당신 제정신이세요?”

“그건 내가 벌인 게…….”

“말렸어야죠!! 당신 왕이잖아요!”

막 눈을 뜬 박한별은 겁도 없이 도깨비들의 왕을 향해 독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당신이 대체 무슨 노력을 했냐부터 전략이 어떻게 되냐 등등. 실질적인 고민들을 쉴 새 없이 늘어트렸다.

마고의 얼굴에 다시 한번 당혹이 물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큭 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박한별은 누가 봐도 맞는 이야기들만 늘어놓고 있었다. 아무리 천방지축의 모습을 보이던 도깨비일지라도,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한참을 듣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마고가 변명을 시작했다.

“너는 모르겠지만, 오니는 강하다.”

“이긴 적 있다면서요.”

“녀석은 금기를 어기고 더욱 강해졌다. 내가 손쓰기 힘들 만큼 녀석은 강해졌어.”

“전투는 힘만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그녀의 대답에 마고는 이상한 눈으로 박한별을 바라봤다. 힘이 아니면 대체 무엇으로 싸우냐고 묻는 듯한 얼굴.

박한별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힘만으로 전투의 승패가 결정됐다면, 저는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박한별은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전투를 하나하나 나열하며 불리한 상황에서 지혜와 전략을 통해 이긴 경험을 하나하나 나열했다.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듣던 마고는 계속해서 감탄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런……!”

“…….”

“히시시시시. 인간들이 단체로 미친 짓을 했군.”

“…….”

“그때는 더 시원하게 욕을 날렸어야지!”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돌아간 마고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심각해 보이는 눈빛에서, 조금씩 희망을 엿보는 눈빛으로. 작은 희망을 품은 눈에서 어떤 결심이 선 눈빛으로.

실시간으로 변한 마고는 끝내, 그녀가 탐이 난다는 눈빛까지 내비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박한별을 더욱 탐내하기 전에, 다급히 말을 끊으며 들어갔다.

“한별 씨의 생각이 옳아요. 저희가 돕겠습니다. 무위는 떨어질지 몰라도 저희에게는 이게 있으니까.”

나는 검지로 머리를 툭툭 쳐 대며 자신 있는 모습으로 말했다.

흥이 깨져 버린 마고는 나를 쌀쌀하게 노려보고는 말했다.

“흥미롭긴 하지만, 여전히 힘든 것은 사실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정도는 알겠어요.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을 것 같지도 않은데요?”

박한별의 대답에 마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했다.

“방법이 있느냐!”

마고는 몸을 앞으로 들이밀며 다그치듯 물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말씀하셨던 오니의 습성을 이용하는 것인데…….”

박한별은 계속해서 자신이 생각했던 전략을 막힘없이 읊어 대기 시작했다.

박한별의 전략을 모두 들은 마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군.”

“어떤 게 더 나아 보이세요?”

조심스러운 물음에, 마고는 거대한 손가락을 펴 보였다.

“두 번째. 충분히 해 볼 만한 것 같다.”

“제 생각도요. 몇 가지의 조건은 맞춰 봐야겠지만, 충분히 연습만 하면…….”

“지금 상황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두 번째는 너희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수준으로는 시도해 보기도 전에 오니들에게 죽을 것이 뻔해.”

“그게 무슨…….”

“강해져야 한다. 지금보다 훨씬.”

마고의 단호한 대답에 우리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마고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사라진 모습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도깨비의 표정만 봐도 심각함을 느낄 수 있었던 우리는 그의 말이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흠, 그럼 불가능하겠네요. 지금은 시간이…….”

조금 긴장한 박한별의 물음에 마고가 대답했다.

“아직 시간은 있다. 녀석은 내가 나타나기 전까지 젊은 도깨비들을 살려 둘 거다. 녀석이 가장 원하는 것은 내 목일 테니까.”

“만약 아니라면요?”

나는 물었다. 지금까지 전해 들은 오니들은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녀석들이었다. 그런 녀석들이 포로로 잡은 도깨비들을 멀쩡히 살려 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가능성이 희박한 말이었다.

참을성마저 없어 보이는 녀석들은 분명 무슨 짓을 해 놨어도 단단히 해 놨을 터. 그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었다.

마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떠올리기 싫었던 생각을 억지로 끄집어낸 나를 원망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잠시 말이 없던 마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네놈 말대로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능성은 적어. 분명 녀석들을 살려 뒀을 것이야. 우리를 유인해야 할 테니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입장에서도 고대의 도깨비들을 불러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마리의 도깨비를 살려 두는 것이 바람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고 녀석이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우리가 상대하려는 적들의 습성.

내가 들은 녀석들의 습성이 맞다면, 악마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악랄한 녀석들이 맞다면, 그들은 결코 포로로 잡힌 도깨비들을 온전히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터였다.

적어도 도깨비 대부분은 복구하기 힘들 정도의 상처를 입었을 터.

나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애써 삼켰다.

“……그렇군요.”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직 시간은 있다.”

마고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차마 머릿속에 스치는 가장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으니까.

만약 도깨비들의 왕이 조급함을 가지기 시작하는 순간, 짜 놓았던 전략은 모두 엉망이 되고 만다.

차오르는 말을 겨우 삼킨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흡족한 미소를 짓는 마고. 박한별로 인해 희망을 되찾은 도깨비들의 왕 마고는 우리들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

“히시시시. 따라와라, 내가 너희를 강하게 만들어 주지.”

“…….”

“…….”

그의 희망찬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와 박한별의 시선은 철근처럼 무거워져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