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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88화 (88/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88화

88. 도깨비들의 왕(3)

박한별의 상태는 척 보더라도 정상이 아니었다. 눈을 완전히 까뒤집은 채 정신을 잃은 모습.

마고의 압도적인 기운에 한눈이 팔려 있던 나는 깜짝 놀라 박한별에게 다가갔다.

쿠웅-!

“껴들지 마. 애송이.”

마고의 거대한 도깨비방망이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이면 당장이라도 공격할 듯한 마고의 기세에 주춤하며 뒤를 돌아봤다. 어떻게 좀 해 보라는 눈빛으로 가비를 바라봤지만, 가비는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도깨비가 각성할 때는 그 누구도 건들지 않는 것이 법칙이다.”

“각성이요?”

어느새, 도깨비들을 따라온 김수민이 가비와 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 재밌는 아가씨. 저 여자는 지금 각성 중이다. 진정한 도깨비가 되는 과정이지. 아, 진정한 후예라고 해야 하나?”

가비의 말을 들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반대로 도깨비들의 왕 마고는 놀란 눈으로 박한별을 바라봤다.

“후예였어? 어쩐지 인간치고는 강하고 도깨비치고 나약하게 생겼더라니.”

마고는 박한별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그녀가 내뿜는 도깨비불을 만져 보면서 그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히시시시시.”

익살스러운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마고!! 진지하게 받아들여라. 그녀는…….”

“개소리하지 마. 가비. 이 나약한 녀석은 적임자가 아니야!”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봐라.”

“보고 있는데?”

마고는 박한별을 인정할 수 없다며 돌아섰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파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말하는 투로 보아, 분명 박한별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만든 천외천의 첫 번째 단원이었다. 괜히 내 가족이 욕먹은 느낌이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전쟁 준비나 잘해. 놀고 있을 시간이 있나 봐?”

그러거나 말거나 도깨비들의 왕이라 불리는 마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른 도깨비들을 비아냥대고 있었다.

“정말 참가 안 할 거냐?”

“안 해.”

전쟁마저 참여하지 않겠다고 못 박는 도깨비들의 왕.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도깨비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참가하지 않겠다니!”

어떤 도깨비들에게는 금시초문이었는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망할 왕 녀석이!”

“갈아치우자! 저딴 망나니 녀석은 왕의 자격이 없다!”

노발대발하는 도깨비들은 모두 악귀와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불길하고도 위협적인 표정을 마주하면서도 마고는 전혀 위축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히시시시시. 해 보든가.”

오히려 웃으며 그들을 도발하고 있었다.

“저, 저……! 망나니가!”

“도깨비방망이를 뺏읍시다, 형님. 저놈은 도깨비방망이만 아니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자세를 취하는 도깨비들을 보며 마고가 말했다.

“나는 분명히 명령했어. 가지 말라고.”

“젊은 도깨비들을 버리라는 말이냐!! 아무리 쉼터가 다르다곤 하지만, 그들은 도깨비의 명맥을 이을 귀한 자손들이다!”

“내 말을 듣지 않은 병신들이기도 하지.”

“지금, 명령 한 번 어겼다고 복수하는 거냐! 그렇다면 너의 명령을 매번 어기는 우리도…….”

“아, 시발. 자랑이야? 쫑알쫑알 말 많네.”

“뭐, 뭐라……!”

화악-!

그 순간, 마고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시발, 뭐? 도깨비방망이만 뺏으면 별 볼 일 없어?”

지옥에 떨어진 악귀처럼 변한 얼굴이 공기를 뒤바꿨다.

동시에 나는 느꼈다.

‘위험하다!’

경박스러울 정도로 웃는 상을 고집하던 도깨비들의 왕이 인상을 구기자, 세상이 멸망이라도 할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푸른 불꽃이 눈부실 정도로 거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은 시야에 보이는 모든 곳을 덮으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풍경은 그대로였지만, 그 속에 갇힌 나는 속이 메스꺼웠다. 마치 앞뒤가 뒤틀리고 상하가 반대된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달리는 기분이었다.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군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느낌.

-정신 똑바로 차려라, 주인.

반 페르데이스의 조언조차 어그러져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주…… 인!

…….

-정…… 신…… 차…… ㄹ.

반 페르데이스의 음성이 점차 흐릿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미쳐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었다. 그러고는 비릿한 피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조금 돌아온 정신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흐릿한 시야 속으로 김수민이 들어왔다.

나는 허벅지를 강하게 내리친 후, 달리기 시작했다. 흑운을 끌어 올려 몸 전체를 보호하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힘들었다. 그러나 불완전한 힘일지라도 정신을 유지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김수민은 반쯤 넋이 나가 침을 흘리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심각해 보이는 상태.

‘나는 버틸 수 있겠지만, 저 녀석은 아니다!’

꺼져 가는 불꽃처럼 위태해 보이는 김수민은 당장이라도 정신줄을 놔 버릴 듯한 상태였다.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다.

“김수민! 정신 차려!!”

다급히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물에 잠긴 듯 소리는 작았고, 세상은 흔들렸다.

“감투를 사용하지 마라! 인간들이 위험하다!”

“알 바야? 도깨비 쉼터에 쳐들어왔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마고!!”

가비의 거센 외침이 들려왔지만, 어지러움은 더해질 뿐이었다.

“나는 분명히 너희들에게 말했다. 전쟁은 없다고.”

“웃기지 마라! 대를 끊기게 할 셈인가?”

“다시 말한다. 전쟁은 없어!”

“이건 도깨비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겁쟁이처럼 뒤로 내뺄 일이 아니란 말이다!!”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추방이다! 꼬우면 힘으로 해 보든가!”

“좋다. 바라는 바다!!”

수십의 도깨비들이 일제히 불꽃을 일으켰다. 동시에 머리에 올려 두었던 갓, 가면, 키 등 다양한 감투를 착용했다.

화륵-!

갇힌 세계가 다시 한번 회전했다.

“이 미친 새끼들이!”

또 한 번 뒤섞인 세계에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앞을 바라보니, 김수민의 상태가 심각했다.

“으…… 어!”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상황. 나는 다급한 마음에 전력을 개방했다.

모든 힘을 끌어 올렸고, 조금이나마 면역이 있어 보이는 반 페르데이스와 암살이를 불러냈다.

“암살아, 김수민을 보호해!”

암살이는 고개를 끄덕인 뒤, 조금도 지체하지 않은 채, 흑마를 타고 달렸다.

해골의 형상을 띄고 있어 그런 것인지, 암살이는 감투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흑운으로 김수민을 감싸!”

[죽음의 군주 ‘암살이’가 주인의 명령에 따릅니다.]

흑운의 기운으로 김수민을 감싼 암살이는 그녀의 앞에 섰다. 누가 오더라도 베어 버릴 듯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구구구구.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소리쳤다.

“반 페르데이스!!”

[드래곤 ‘반 페르데이스’가 드래곤 피어를 준비합니다.]

“빨리!”

“쿠워어어어어!!”

공간을 찢을 듯한 포효가 공간을 메웠다. 돌연 나타난 죽음의 기사와 냉기를 내뿜는 작은 드래곤.

도깨비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쏠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김수민에게 달려갔다.

“김수민, 괜찮아?”

쓰러지는 김수민을 낚아챘다. 그녀는 여전히 정신을 완전히 놓아 버린 상태였다.

“젠장!”

드래곤 피어로 인해 잠시 도깨비감투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나는 마고를 노려봤다.

마고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깨비 쉼터에 도마뱀 새끼를 데려오다니, 간덩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었구나?”

“저와 제 동료의 몸을 지키려던 것뿐입니다.”

나는 우악스러운 마고의 기운을 정면으로 받아 냈다.

“핑계가 되진 않는다.”

“도깨비들의 왕은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합니까?”

“손님? 네놈이 누구의 초대로 왔지?”

“그건…….”

“말할 수 없겠지. 초대한 도깨비가 없을 테니. 감히, 도깨비를 기만하려고 든 것이냐?”

마고의 음성이 낮아졌다. 정제되지 않은 살기가 거칠게 살갗에 와닿았다. 오싹하며 뒷골이 빳빳이 굳는 느낌이었다.

‘젠장.’

감정을 애써 억누른 채 말했다. 아니,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의(白衣)는…… 언제나 도깨비가의 손님입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긴장감이 팽배했던 상황이라 그런지 김수민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마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백의? 네년이 말이냐?”

“……예.”

미약하지만, 또렷한 목소리.

순식간에 세계를 뒤틀던 어지러움이 사라졌다.

“후…….”

애써 도깨비감투의 영향력을 막아 낼 필요가 없어지자, 피로감이 한 번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상황.

나는 최대한 긴장감을 끌어 올린 채, 마고를 바라봤다.

“정말이냐?”

“네, 제가 백의입니다.”

마고는 천천히 누워서 간신히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김수민을 향해 걸어왔다.

척-!

“잠깐!”

나는 반 페르데이스와 암살이 그리고 내 육신을 모두 동원해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마고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뒤질래?”

천박한 언행. 그러나, 그의 위압감만큼은 진짜였다. 온몸이 경직되는 듯한 느낌을 간신히 떨쳐 낸 나는 이를 악물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 미친 도깨비가 김수민에게 어떤 위협을 끼칠지 몰랐다. 쉽게 접근시켜서는…….

“괘, 괜찮아.”

그때 등 뒤에서 힘겨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김수민이 숨을 몰아쉬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비키라잖아, 새끼야!”

도깨비의 우악스러운 손이 내 몸을 밀쳤다.

단순한 밀치기였지만, 결과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콰앙-!

나는 몇십 미터나 날아간 후, 바위에 처박혔다.

다행히 빠르게 반응해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손을 막아 낸 팔은 화끈거리다 못해 아려왔다.

새삼 도깨비의 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느낄 수 있었다. 벌떡 일어나, 미친 도깨비들의 왕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몰랐으므로.

다행히도 김수민과 마고는 대화 중이었다.

“감투는 네년이 쓰고 있고…… 도깨비방망이와 거적은 어디 있지?”

마고는 백의의 의무를 알고 있는지, 김수민에게 물었다.

“도깨비방망이는 저쪽에, 거적은 잃어버렸습니다.”

김수민은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폭주하고 있는 박한별을 가리켰다.

“흠……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진짜입니다.”

김수민은 확실하다고 말하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저고리처럼 생긴 작은 물건이었다. 이를 본 마고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군.”

“죄송합니다. 거적은…….”

“되었다. 네 진짜 역할은 그것이 아니지 않느냐.”

난데없이 날아드는 인자한 음성.

나는 깜짝 놀라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고는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더없이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

수십의 도깨비와 대립할 때도 보이지 않던 얼굴이었다.

그가 내뱉는 말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마고는 김수민을 걱정하고 있었다.

“얄궂은 운명이군. 하필 이런 순간에 와서.”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미안하다. 백의여. 차마 거절하지 못하겠구나.”

“아닙니다. 저희의 약조이자, 명예입니다.”

그녀는 마고와 진지한 얼굴로 알아듣지 못할 대화를 한참이나 나누고 있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다른 도깨비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대체 뭐라는 거냐?”

“백의가 뭔데?”

“백의도 모르냐? ‘백의의 친구’노래도 몰라?”

“그건 알지, 등신아. 근데 대체 우리랑 무슨 관계냐고.”

“그건…….”

“어휴 말을 말자.”

“이게……!”

“아, 조용히 좀 해 봐!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다들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며 김수민과 마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화를 엿듣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은 외눈박이 도깨비 가비와 거대한 방망이의 주인 다로뿐이었다.

이들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 겁니까? 운명은 뭐고, 백의의 진짜 역할은 또 무엇입니까?”

내 질문을 들은 가비는 짐짓 심각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건…….”

가비가 대답하려는 순간, 뒤를 돌아본 마고가 소리쳤다.

“모두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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