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86화
86. 도깨비들의 왕(1)
두 마리의 도깨비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자신의 앞에서 바짝 굳어 있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은 아니다. 그쪽인가?”
“모르겠다. 이쪽은 확실히 이상하긴 한데…….”
눈앞에 드래곤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도, 외눈박이 도깨비는 ‘후예’라는 한마디에 박한별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잔뜩 긴장했던 근육들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반 페르데이스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나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을 우려해 녀석을 목걸이 안으로 돌려보냈다.
-후회하게 해 주마,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들.
이리저리 둘러보며 본격적으로 그녀를 살피기 시작한 외눈박이 도깨비의 곁으로 길쭉하고 깡마른 도깨비가 도착했다. 그러고는 턱에 손을 괸 채 말했다.
“확실히 아기 도깨비들이 사용하는 도깨비불과 비슷하긴 한데…….”
“작고 초라하긴 하지만, 확실히 동족의 느낌은 나지?”
“그래.”
고개를 끄덕인 외눈박이 도깨비가 나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지 설명하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김수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드래곤과 자신을 위협하던 기운이 사라지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는 눈을 몇 번이고 껌뻑이고 나서야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선 저는 백의(白衣)의 일족입니다.”
김수민의 소개에 도깨비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명맥이 끊긴 줄 알았는데…….”
“간신히 살아남아 근근이 명을 잇고 있었습니다.”
놀란 눈의 도깨비들은 그제야 그녀가 도깨비감투를 지닌 것도 이해가 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박한별을 바라봤다. 처음으로 그들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드리웠다.
“백의의 일족이 데리고 왔다면 도깨비의 후예가 맞겠지.”
도깨비는 손주라도 보는 듯한 미소로 박한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대한 손이 다가와 움찔하던 박한별은 이내 무엇인가를 느끼고는 자연스레 손길을 받아들였다.
박한별이 외눈박이 도깨비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이건……?”
“진정한 도깨비불이다.”
짧은 대답.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할지 단번에 느낀 박한별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진짜 도깨비불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 밖으로 작게 일렁이던 도깨비불이 타올랐다. 어느새 더욱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고, 그 불꽃은 더욱 거대하고 은밀해졌다.
눈에 띄는 변화를 목격한 우리는 작게 감탄했다. 아름다웠다.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을 만큼.
“이런 타이밍에 후예를 보다니…….”
그때, 씁쓸한 음성이 들려왔다.
도깨비들은 박한별의 변화를 대견하게 바라보면서도 무언가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나는 조용히 그들에게 물었다. 잠시 뜸을 들인 호리호리한 체형의 도깨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일족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
“도깨비 쉼터 안, 도깨비들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은 확인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조심스럽게 묻자, 도깨비들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일단 같이 가지. 후예를 이런 곳에 재울 수는 없다.”
자신을 가비라고 소개한 외눈박이 도깨비는 우리를 자신들의 쉼터로 안내했다.
* * *
“대장의 명령 못 들었나?”
잔뜩 인상을 찡그린 도깨비가 가비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
“당분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장난 금지, 외출 금지라고 했을 텐데.”
“특별한 경우다.”
가비의 대답에 유독 거대한 방망이를 든 도깨비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기념품 상점에서 보던 귀신 탈과 같이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엄청난 위압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가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거대한 방망이를 든 도깨비에게 말했다.
“백의의 일족과 도깨비의 후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도깨비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거대한 가비의 뒤에 숨어 있는 우리를 향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직접 봐라.”
가비는 뒤를 돌아 양손의 검지로 각각 박한별과 김수민의 등 뒤를 조심스럽게 떠밀었다.
쿵-!
자세를 낮추다 못해 바닥에 털썩 앉은 도깨비는 유심히 박한별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피식 웃더니, 일대가 떠나갈 듯 소리쳤다.
“집합!!”
그의 외침에 순식간에 스무 마리의 도깨비가 모여들었다.
“뭐야, 뭔데!”
“후예와 백의의 일족이 찾아왔다!”
“뭐? 그 말로만 듣던 후예?”
모여든 도깨비들은 동물원의 앵무새를 구경하는 듯한 태도로 우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빠 죽겠는데 왜 부르냐는 듯 와락 구겨져 있던 인상이 박한별의 불꽃을 확인하고 나서는 환하게 웃는 상이 되어 있었다.
그 미소가 어찌나 익살스럽던지, 하나같이 장난기를 가득 머금은 얼굴이었다.
그제야 나는 김수민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 그들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예상할 수 있었다.
“우와! 이렇게 조그만 녀석이…… 혼혈이라고?”
“혼혈이라고 하지 마, 기분 나쁠 수도 있어.”
“후예가 옳은 표현이다.”
“아, 그래그래. 미안! 근데 너 씨름은 잘해?”
“못하겠지. 몸집을 봐.”
“하긴, 힘이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치?”
막상 도깨비들은 순식간에 자신의 상황을 잊은 듯 보였지만…….
‘여기도 참 단순하네.’
호기심 많고 장난기 가득한 종족이라는 것은 김수민을 통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건드리기만 하면 산산이 찢을 듯한 흉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면서도 지금은 다섯 살짜리 아이같이 활짝 웃고 있었다.
손바닥 뒤집듯 달라진 태도에 나는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이놈은 뭐지?”
“그러게…… 이 녀석도 백의의 일족인가?”
“이 녀석은 아무것도 아니야.”
호기심 많은 일족은 이번에는 나를 바라보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 페르데이스의 충고에 따라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이쯤 되니 긴장이 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작게 미소 지으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천도윤이라고 합…….”
“그런데, 이 녀석 뭔가 이상하지 않아?”
“맞아, 이상해.”
녀석들은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지만, 도깨비들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저들끼리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특히 저 녀석이 찬 물건. 귀한 것들이야.”
“맞아. 하나는 영험한데 하나는 불길해. 또 하나는…… 으흠, 신기하네.”
호기심 많은 도깨비는 내가 지닌 반지와 목걸이에 큰 관심을 표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놀랐다. 지금껏 반지와 목걸이 안에 들어 있는 존재를 눈치챈 존재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새삼 그들의 강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또, 그들의 태평함의 원인이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도깨비들은 확실히 강해 보였다.
악마는 물론, 드래곤조차 쉬이 건드리기 힘들 만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다시 긴장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호기심으로 인해 분위기가 많이 풀어졌지만, 언제 다시 돌변할지 모르는 그들이었다. 한순간도 긴장을 풀어선 안 된…….
“괜찮아. 긴장 풀어. 도깨비는 원래 인간들에게 호의적이니까.”
내 생각을 읽었는지, 김수민이 뒤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도깨비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황한 나와 박한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둘 중 누가 더 힘이 강해?”
그녀는 도깨비들을 도발하고 있었다. 미친 짓 하지 말라며 그녀를 만류하려 했지만, 이어진 대답에 나는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나지!!”
“이 몸이다!!”
도깨비들은 서로 자신이 강하다며 우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허탈함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에이, 이쪽이 더 강할 것 같은데?”
김수민은 멈추지 않고, 도발을 이어 나갔다. 설전을 벌이는 두 도깨비의 옆에 있던 다른 도깨비를 가리킨 것이다.
지목당한 도깨비는 콧김을 뿜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 못 한다. 이 녀석이 제일 약하다.”
“아니다. 내가 제일 강하다.”
지목당한 도깨비가 발끈했다.
“워, 워. 진정들 하시고 그럼 씨름으로 대결하는 거 어때?”
“좋다!”
“바라던 바다.”
동조하는 도깨비들을 바라본 김수민은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한 가지를 더 제안했다.
“그럼, 재밌게 내기할까?”
“당연하다! 도깨비들은 내기 없인 못 산다!”
“좋다!”
김수민은 순식간에 도깨비들 사이에 끼어들어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었다.
도깨비의 성격을 잘 알아서 그런 것인지, 아기 다루듯 자연스럽게 그들을 다루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순식간에 관심이 김수민에게 쏠렸다.
“이 여자 재밌다!”
“역시, 백의의 일족이다!”
나는 도대체 백의의 일족이 무엇이냐 그녀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어 보였다. 김수민은 순식간에 몰려든 도깨비들 사이에 갇혀 있었다.
“도깨비들…… 생각보다 단순하네요.”
어느새 관심이 끊긴 ‘후예’ 박한별은 내 곁으로 와 속삭였다.
“그러게요.”
나도 이 어이없는 상황을 지켜보며 박한별의 말에 공감했다. 도깨비들은 단순하고, 무식했으며, 강력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세상 거리낌 없이 낙천적이고 놀기 좋아하는 저 녀석들을 이리도 화나게 만들었던 사건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 생각은 비단 나만의 걱정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걱정스러운 박한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르겠습니다. 이제 알아봐야죠.”
무거운 마음으로 대답하고 있을 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들어 보니, 외눈박이 도깨비 가비와 그와 잠시 반목했던 거대한 도깨비방망이의 주인 다로가 서 있었다.
그들은 씨름판으로 달려가는 도깨비들을 보고는 작게 고개를 저은 뒤, 말했다.
“금세 저렇게 풀어져서야…….”
“오 일 밤낮을 일했으니,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그래도 걱정된다. 곧 시작인데…….”
그들은 몰려가는 도깨비들이 걱정된다는 듯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다행히 아예 생각 없이 행동하는 도깨비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두 도깨비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들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젊은 도깨비들이 당했다.”
“젊은 도깨비라면……?”
나와 박한별은 도깨비에 대한 지식이 전무 한 상태라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외눈박이 도깨비 가비가 입술을 움직였다.
“말하지 않았었나? 우리는 고대의 도깨비다. 쉽게 말하면 일선에서 물러난 녀석들이지.”
“그렇다면 당했다는 도깨비들은…….”
“그래, 이제 막 쉼터를 짓고 힘을 키우고 있는 녀석들이었지.”
그의 대답에 나는 짐짓 심각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에게 당한 겁니까?”
가비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그러고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니.”
“네? 오니라면…….”
“오니와 도깨비는 달라요, 도윤 씨.”
박한별이 끼어들었다.
“그래, 오니와 도깨비는 다르다. 오니는 더러운 잡종일 뿐이지.”
가비의 설명이 이어졌다.
“도깨비들은 인간과 도깨비의 혼혈을 ‘후예’라 부르며 귀히 여기지만, 도깨비와 악마의 혼혈은 반대다.”
“그럼 악마와 도깨비의 혼혈이…….”
“그래, 오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비는 오니들의 성정이 워낙 사나워 배척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맞지 않는 성격으로 끊임없이 반목하는 사이라고…… 분노를 머금은 눈빛을 내비친 가비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오니들의 수장 염비와 그들의 부하들이 젊은 도깨비들의 쉼터에 침투했다. 젊은 도깨비 대부분을 죽이고, 납치했지.”
“…….”
나는 여실히 느껴지는 가비의 분노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계속해서 가비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깨비들은 자식이 귀하다. 천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어느 자식이 귀하지 않을 수 있겠냐마는 도깨비들의 일족에 대한 사랑은 더욱 짙어 보였다.
“젊은 도깨비들은 장구가 이끄는 녀석들이 전부였어.”
그제야 나는 가비의 ‘귀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도깨비들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개체 수가 적어 보였다.
“그럼……?”
“녀석들은 도깨비의 씨를 말리려는 셈이다.”
“나쁜 놈들이네요.”
“개자식들이지.”
가비는 말을 하면서도 분노를 삭히지 못하겠는지 푸른 불꽃을 드세게 흩뿌리며, 도깨비방망이를 내리쳤다.
쿵-!
거대한 소리가 쉼터를 가득 메웠다.
“우리는 전쟁을 준비 중이다. 미안하지만, 원하는 것을 말하고 가거라. 더 이상 개입하면 위험해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