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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85화 (85/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85화

    85. 야차(夜叉)(5)

    “들어…… 갈까요?”

    침을 꼴깍 삼킨 박한별이 우리에게 말했다.

    “아니, 잠깐만!”

    발걸음을 옮기려는 나와 박한별을 막아선 것은 김수민이었다. 가장 먼저 달려갈 줄 알았던 김수민이 앞길을 막아서자, 우리는 의아한 표정을 내비쳤다.

    “왜 그래, 지금 당장 들어가서…….”

    “안 돼!”

    단호한 그녀의 음성.

    무언가 심각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 의문이 일었다. 대체 왜? 대대손손 염원하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기회인데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러냐며 그녀에게 물으려 할 때였다.

    쿠웅-!

    갑자기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이 울리더니.

    크르르르-!

    눈앞에 거대한 생명체가 나타났다. 고개를 들어 그 존재를 눈에 담았다. 거기에는 치솟은 태산을 바라보는 느낌처럼 거대한 존재가 서 있었다. 강철처럼 두꺼워 보이는 표피를 지닌 존재는 우리를 한껏 내려다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내가 잘 아는 녀석과 굉장히 흡사해 보이는 외형을 지닌 존재였다.

    -저 건방진 녀석들이……!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뇌리에 박혀 들었다.

    동시에, 가슴 언저리가 차게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목걸이로부터 새어 나오는 차가운 냉기.

    목걸이가 부르르 떨리며 극한의 한기를 내뱉고 있었다. 반 페르데이스의 분노를 고스란히 느낀 나는 그저 환영일 뿐이라며 반 페르데이스를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제발, 진정해!’

    -주인, 나를 밖으로 내보내라. 내 당장 저 망나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지 않으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으니.

    눈앞에 나타난, 온몸을 사로잡는 포악스러운 포식자의 외형을 한 존재는 다름 아닌 드래곤이었다. 그것도 반 페르데이스의 원래 종족이자, 그의 아픈 손가락인 레드 드래곤. 반 페르데이스가 분노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진정하세요. 한별 씨! 환영일 뿐입니다.”

    박한별을 진정시키는 김수민의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드래곤은 그 존재를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패닉에 빠질 만한 강대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사실 환영이라는 것을 파악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어, 어쩌죠?”

    떨리는 박한별의 물음에 김수민이 대답했다.

    “일단 벗어나야 합니다. 도깨비가 이렇게 저희를 내쫓으려는 건 오히려 저희를 배려해 주고 있는 겁니다.”

    “배, 배려요?”

    나와 박한별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김수민은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드래곤에 겁먹고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이는 눈빛. 우리는 일단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김수민의 강경한 태도에 일단 자리를 옮긴 우리는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배려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너희도 봤지, 도깨비 한 마리가 우리를 보고 있던 거.”

    나와 박한별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깨비 쉼터 안에서, 거대한 몸집의 외눈 도깨비가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화나 보였어요.”

    “그게?”

    나는 화들짝 놀라 박한별을 바라봤다. 내가 녀석을 봤을 때 느낀 느낌과는 너무나도 다른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외눈 도깨비는 분명 아무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인상을 찡그리지도, 미간에 주름을 잡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저 평온한 듯 일상적인 표정. 그런데 그게 화나 보였다니,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소리였다.

    김수민은 내 반응도 이해가 된다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도깨비는 웃지 않으면 화난 거야.”

    극단적인 그녀의 판단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너무…….”

    “……도윤 씨.”

    박한별은 일단 그녀의 말을 들어 보자며 나를 만류했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녀를 바라봤다.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우리를 보고는 김수민은 무겁게 입술을 움직였다.

    “장난을 좋아하는 도깨비들은 항상 웃고 있어. 평상시에도 말이지. 우리의 무표정과 도깨비의 무표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거야.”

    김수민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 것이다.

    내 표정을 살핀 김수민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그런 도깨비들이 표정이 없다는 건 상당히 기분이 안 좋다는 거야. 그러데…….”

    잠시 뜸을 들인 김수민은 한층 더 심각해진 표정으로 우리에게 물었다.

    “안쪽의 도깨비들 봤니?”

    김수민의 물음에 박한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어요.”

    “그래, 도깨비들이 단체로 인상을 구겼다는 건…….”

    그 순간 목걸이를 통해 반 페르데이스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드래곤도 못 말린다는 뜻이다.

    그 생생한 목소리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고고하고 콧대 높은 드래곤이 본인들조차 말리지 못한다고 말하다니…….

    반 페르데이스는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한마디를 덧붙였다.

    -용들에게도 대대손손 전해 내려오는 구전이 있다. 일종의 노래 같은 것인데, 첫 구절에 나온다.

    뭐냐고 묻자, 잠시 뜸을 들인 반 페르데이스가 말했다.

    -화난 도깨비와 맞서지 말지니, 무슨 일이 벌어진 지도 모른 채 육신이 찢길지어다.

    반 페르데이스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용들조차 한 수 접고 들어갈 때가 바로 도깨비들이 화났을 때란다. 이해하기 싫어도 단숨에 이해할 수밖에 없는 구절이었다.

    짐짓 심각해진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대체 왜 화난 거야?”

    “나도 몰라.”

    김수민 역시 심각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그럼 우리는……?”

    “잠시 지켜봐야지. 멀리서.”

    나는 박한별의 물음에 유독 ‘멀리서’라는 말을 강조하며 대답했다. 반 페르데이스의 설명을 듣고 나서도 조심하지 않는다면 그건 스스로 위험에 빠지겠다는 소리와 같은 말이었으니까.

    모두 내 말에 동의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도깨비 쉼터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미리 챙겨 놨던 텐트를 치고, 말린 육포를 뜯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캠핑용 의자에 풀썩 주저앉은 박한별이 조심스럽게 운을 떼기 시작했다.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언제 풀릴 줄 알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왜 그들이 그렇게 화났는지 알아봐야지.”

    “아니야. 기다려야 해. 절대 도깨비들의 심기를 건들지 마.”

    김수민의 단호한 대답에 반 페르데이스 역시 동조했다.

    -그녀의 말이 옳다. 괜히 건드려서 피 보지 마라. 주인.

    나는 알겠다 대답하고 김수민과 반 페르데이스의 말대로 며칠 대기하기로 했다.

    우리는 쉬는 동안 교대로 도깨비 쉼터가 있는 곳을 관찰하기만 했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일이 지루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괜히 화난 녀석들을 건드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아 보였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는 것. 도깨비들은 그마저도 거슬린 모양이었다. 우리가 지켜본 지 삼 일째가 되던 날, 도깨비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자기 전 침구류를 정리하던 나는 우리를 향해 빠르게 접근해 오는 기운을 눈치채고 언덕 위에서 도깨비 쉼터 쪽을 지켜보던 김수민의 곁으로 뛰쳐나갔다.

    쿠웅-!

    거대한 도깨비불이 화륵 소리를 내며 나타나고, 눈앞에 거대한 존재가 자리했다.

    드래곤 형상의 환영을 만들어 내 우리를 쫓아낸 외눈박이 도깨비였다. 그 옆에는 길쭉하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도깨비가 서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두꺼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자꾸 쳐다보는 거지?”

    심기가 불편한 상태인지 그들은 표정이 없었다. 아니, 표정이 없다기보다 오히려 미간을 작게 찡그린 상태였다. 이는 즉…….

    -조심해라.

    반 페르데이스의 경고에 나는 언제든 힘을 끌어올릴 준비를 마쳤다.

    긴장하는 우리를 향해 다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다. 빨리 말해라, 인간들이여.”

    외눈박이 도깨비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현재 사념의 망토를 이용해 망령화를 한 상태였고, 김수민 역시 도깨비감투를 이용해 악마의 형상으로 외형을 바꾼 상태였다. 그런데 눈앞 녀석들은 단번에 우리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 예리한 감각에 나는 혀를 내두르며 황급히 대답했다.

    “당신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화나 보여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를 왜 보려 한 것이지? 이곳은 인간들이 있을 자리가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외눈박이 도깨비의 옆에 있던 호리호리한 체형의 도깨비가 우리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잠깐!”

    그러고는 뚫어져라 김수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도깨비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미간의 주름이 점점 짙어지더니, 이내 와락 구겨졌다.

    “너 지금……!”

    호리호리한 체형의 도깨비는 어느새 도깨비방망이를 꽉 그러쥐고 있었다.

    “무엇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냐!!”

    우레와 같은 호통이 황무지를 찢을 듯이 울렸다.

    이어 따라 나온 박한별에게도 시선이 꽂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등 뒤에 달린 도깨비방망이를 향해!

    “더러운 인간들이 감히……!”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도깨비들은 내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눈박이의 도깨비는 화륵 소리를 내며 어느새 박한별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그는 거대한 원뿔 모양의 돌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그것은 호리호리한 체형의 도깨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수민을 향해 길쭉한 방망이를 거침없이 휘두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

    나는 온 힘을 끌어 올려 반 페르데이스와 암살이 그리고 우마를 불러냈다.

    “막아!!”

    다급한 소리에 부합이라도 하듯 반 페르데이스는 박한별을, 암살이와 우마는 김수민을 지키기 위해 달려들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내 소환수들에 의해 공격이 막힌 도깨비들은 자신의 공격을 막은 존재들을 바라봤다.

    “새끼 도마뱀이 왜 여길?”

    “죽은 자의 지배자?”

    버겁게라도 그들의 공격을 막은 소환수들을 칭찬할 새도 없이, 도깨비들의 표정은 더욱 구겨졌다.

    “너희들도 그 더러운 변절자들과 손을 잡은 것이냐!”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외침. 그에 맞서기라도 하듯, 반 페르데이스는 거대한 목청을 열어 울부짖기 시작했다.

    “쿠롸와아악!!”

    같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빳빳이 경직된 김수민과 박한별은 멍하니 반 페르데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래곤 피어.

    아직 작은 드래곤에 불과했지만, 포식자의 외침은 한동안 그들을 얼어붙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반면, 도깨비들은 잠시 움직임만 멈췄을 뿐, 좀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이득이었다.

    적어도 대화를 할 만한 최소한의 시간은 벌은 셈이었다.

    나는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큰소리로 외쳤다.

    “저것들은 당신들에게서 억지로 뺏은 것이 아닙니다!”

    “개소리! 우리는 방망이를 목숨처럼 여긴다! 네 말은 우리가 목숨을 인간들에게 넘겨줬다는 말이냐?”

    분노한 외눈박이 도깨비가 소리쳤다. 그러고는 자신이 맞서려는 존재가 용이라도 상관없다는 듯 당장이라도 방망이를 휘두를 듯한 자세를 취해 보였다.

    다급해진 나는 계속해서 외쳤다.

    “그녀는 당신들의 후예입니다!”

    순간, 다시금 전투를 준비하던 도깨비의 방망이가 우뚝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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