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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84화 (84/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84화

    84. 야차(夜叉)(4)

    인버스 타워 50층에 위치한 붉은 안개 언덕.

    혈향이 진하게 풍겨 나오는 희미한 언덕에는 악마들의 시체로 만들어진 거대한 산이 존재했다.

    언덕의 가장 꼭대기.

    치가 떨릴 만큼 끔찍한 풍경을 자아내는 그곳에는 형형한 눈빛으로 한 곳을 바라보는 새빨간 피부의 악귀가 앉아 있었다.

    “그륵. 영 시원치 않아.”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지자, 언덕 아래에서 대장을 바라보는 붉은 피부의 부하들은 온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어떤 명령이 내려질지 걱정이 되었던 탓이었다.

    우적.

    그들의 걱정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꼭대기의 악귀는 영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씹어 대고 있었다. 곧 뼛조각으로 보이는 잔해물을 툭 내뱉은 악귀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록스나 마고 녀석이 덤비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그 혼잣말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컸는지, 악귀의 말을 들은 부하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갸갸갸갹!! 역시 대장!”

    “마고의 심장은 내 거다!”

    “병신, 대장님이 그걸 너한테 양보하겠냐?”

    “갸갸갸갹. 그럼 그 녀석의 무기! 대장님의 무기가 마고 녀석의 것보다는 더 거대하고 흉악하니, 녀석의 무기는 양보하지 않으실까? 다른 건 몰라도 녀석의 무기는 꽤 쓸 만하다고!”

    “그건 내 거야!”

    언제 움츠러들었냐는 듯, 호탕하고도 악랄한 대화.

    부하들은 대악마 록스 대공의 침략보다는 그 후에 언급된 ‘마고’라는 녀석을 반기는 눈치였다.

    “그런데 녀석이 오긴 할까?”

    “새끼, 초 치기는…….”

    언덕 아래에 서 있던 부하들은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부하를 노려봤지만, 맞는 말이라 생각했는지 금세 눈빛을 거두고 있었다.

    “하긴, 이 상황에 쳐들어오면 그게 병신이지.”

    “그갸갸갸갹!”

    부하들의 눈이 일제히 한 곳을 향했다. 그들이 낄낄대며 바라본 곳은 철창 안에 갇힌 요괴들이었다.

    악마라고 보기엔, 볼품없어 보이는 작은 뿔을 가졌고, 인간이라고 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몸집을 지닌 존재.

    콰앙-!

    여러 개의 철창 중 가장 거대한 철장 안에 있던 요괴가 철문에 강하게 부딪치며 으르렁거렸다.

    “당장 풀어라!!”

    철창에 갇힌 그 누구보다 거대한 몸집을 지닌 그는 반 전라에 누더기 하나만 걸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몰골이었으나, 그에게 풍겨 나오는 기운은 촌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더없이 정갈하고 정돈된 기운.

    “승부를 보고 싶거든,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붙어라!”

    “그갸갸갸갹!!”

    “병신.”

    “일대일이래 그갸갸갸갹!!”

    “그러니까 너희 종족들이 그 꼴인 거다.”

    낮게 으르렁거리던 철창 안의 존재는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이를 바득 간 그는 붉은 피부색의 악귀들을 노려봤다. 그러나 철창 밖의 악귀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이었다.

    “뭘 꼬라 봐. 너도 이 꼴로 만들어 줘?”

    낄낄대며 그들이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가자, 축 늘어진 동족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잔뜩 유린당하고 망가져 버린 육신.

    분노에 휩싸인 그는 언덕 위에서 관망하듯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악귀에게 소리쳤다.

    “염비!! 당장 내려와라! 내려와서 나랑 싸우자!”

    악을 치듯 소리치는 그의 외침에도 염비는 별 감흥이 없다는 듯 턱을 괸 채 무심한 듯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너희들의 왕을 데려와.”

    “내가 왕이다. 이 장구가 도깨비들의 왕이란 말이다!”

    “아니야.”

    염비는 손을 푼 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고는 번쩍 뛰어, 순식간에 철창 앞에 떨어졌다.

    쿠웅-!

    순식간에 대지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러나 염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장구의 앞으로 다가가 칠판을 긁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마고야. 진짜 도깨비들의 왕. 그러니…….”

    “내가 왕이다. 도깨비들은 모두 내가…….”

    “닥치고 있어.”

    “끄아아아악!!”

    오니들의 붉은 언덕에.

    “너희들은 마고가 올 때까지만 살려 주마.”

    “끄윽! 내, 내 눈!!”

    “아까운 시간, 입 다물고 소중히 만끽하고 있어. 이 버러지들아.”

    진한 혈향이 더해지고 있었다.

    * * *

    전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간 다음 뉴스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세계 헌터 기구가 천가의 천파(天破)와 미국의 아드리안 길드를 공적으로 선언했습니다. 공식적인 이유는 밝혀진 바 없는 가운데, 신고포상금 5억과 생포 포상금 10억. 그리고…….”

    뇌룡이 운영하는 팀 천파. 그리고 미국의 자부심이라고 불리는 아드리안 길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이 두 집단이 동시에 인류의 적으로 돌아선 사건은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가짜 뉴스에 세계 헌터 기구가 놀아나고 있다느니, 세계적 헌터 명가들의 위상을 잠재우기 위해 헌터 기구가 만들어 낸 만행이라느니 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진실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포상금을 얻겠다며 천가의 문을 두드리는 자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다.

    각종 유튜버와 신문사들 역시 너도나도 앞다투어 이 사건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현 상황을 관찰하던 천우진은 미간을 구기며 포털 사이트의 창을 닫았다.

    “심각한데…….”

    미래를 알고 있던 천우진의 기억 속에 이런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순히 천지훈이 가문을 배신하고 중국에 넘어가 애먼 짓을 꾸미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 악마의 존재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다.

    “미래가 너무 바뀌었다. 대체 왜……?”

    아무리 천도윤이 미래에 개입하고, 그동안의 일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은 도가 지나칠 정도의 변화였다.

    “아무리 빨리 잡아도 미래에 악마가 등장하는 것은 우리가 죽은 후였을 텐데…….”

    속사정은 모르는 아드리안 길드를 제외하고서는 악마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 것은 최소한 7년 이상이 지나고 나서일 터였다. 그런데 벌써부터 이렇게 이빨을 내밀다니…….

    아무리 고민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현 상황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무언가 있다! 세상을 크게 바꾼 사건이.”

    짐짓 심각해진 얼굴을 한 천우진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과연 무엇일까? 지하세계의 악마들이 지구에 빠르게 세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도운 사건이.

    “천외천이 가나로 갔던 사건? 아니야 그건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던 천우진은 도무지 나지 않는 결론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고는 이내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돌연 천도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처럼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잡생각 하지 말고 강해지기나 해. 조금이라도 도움 되고 싶으면…….

    “건방진 놈. 형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고개를 흔들며 상념을 떨쳐 낸 천우진은 그대로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그래, 소원대로 해 주마.”

    신호음이 울리고, 곧 건조한 목소리의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천우진입니다.”

    -그런데요?

    여전히 퉁명스러운 목소리.

    그러나 천우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하하, 딱딱하시기는…… 도윤이 없어서 심심하시죠?”

    -……네.

    의외로 솔직한 대답에 천우진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은 채 말했다.

    “저랑 같이 어디 좀 가시죠.”

    -어디요?

    “아이템 맞추러.”

    천우진은 또 다른 천외천의 멤버 천지현을 불러들였다.

    “제가 강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강해진다는 말에 천지현은 단숨에 가겠다 대답했고, 천우진은 자신의 기억이 빼곡하게 적힌 수첩을 꺼내 들었다.

    * * *

    “이래도 돼?”

    “안 될 건 또 뭐야.”

    나는 41층으로 내려오자마자, 주변에 널린 악마들을 공격했다.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악마들이 불쌍하게 느껴질 법도 했지만,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탑을 통과해야 김수민이 말하는 도깨비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대악마 록스 대공이 김수민을 발견하기 전에 도깨비들을 만나 거적을 얻어 내는 것.

    그것이 이번 임무의 핵심이라 할 수 있었다.

    “주변에 가면 분명히 느낄 수 있다고 했지?”

    “응.”

    “이 주변에는 없어?”

    “없어. 네놈이 죽이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김수민은 주변에 널브러진 악마들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 어이없는 대답에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서 김수민을 바라봤다.

    “…….”

    “크크. 농담이야, 농담. 멀리서부터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안심하고 쓸어버려.”

    김수민은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킬킬 웃으며 내 등을 팡팡 때렸다. 나는 별 시답지 않은 농담에 정색하며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김수민은 아니꼬운 눈빛을 정면에서 받아 내면서도 어쩐지 설레 보이는 느낌을 내비치고 있었다.

    ‘하, 이해해야지. 오랜만에 40층을 벗어나서 기쁠 텐데.’

    어딘가 들떠 보이는 김수민. 그녀를 이해하겠다고 다짐한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 그럼 간다!”

    뇌룡을 불러일으킨 나는 주변에서 달려오는 악마들을 향해 손가락을 쭉 뻗었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주변에 울려 퍼지고, 악마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 * *

    “느낌이 이상하네요.”

    46층까지 내려온 시점. 광활하게 넓어진 층을 거닐고 있을 때, 박한별이 말했다.

    “뭐가요?”

    “제가 인간이 아니라니…….”

    “아니, 그건…….”

    나는 뒤를 돌아 김수민을 노려봤다. 괜한 말을 해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 김수민을 나무라는 눈빛이었다.

    김수민은 오히려 ‘뭐, 어쩌라고!’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나에게 쏘아 댔다.

    “괜찮아요. 옛날부터 조금 이상하긴 했으니까.”

    박한별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상당히 침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마음을 풀어 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김수민이 소리쳤다.

    “잠깐!”

    그녀의 외침에 우리는 우뚝 제자리에 멈춰 섰다.

    “왜 그래! 혹시……?”

    김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한쪽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광활하게 펼쳐진 삭막한 광야뿐이었다.

    “대체 뭐가……?”

    “보이시죠, 한별 씨?”

    “어머, 네!”

    “아니 그러니까 뭐가 보인다는…….”

    “아, 입 좀 다물어 봐.”

    김수민의 짜증에 나는 입을 벙끗거리다 애써 입술을 꾹 다물었다.

    화악-!

    어느새 박한별의 눈은 도깨비불로 일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김수민과 박한별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기예요.”

    박한별은 확신하며 한 곳을 가리켰다.

    거대한 바위와 바위 사이.

    평범하게 보이는 그 바위 사이 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메마른 풀과 쩍 갈라진 흙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대체 뭐가 있다는……?”

    김수민은 듣기 싫은지, 단숨에 내 말을 자르며 대답했다.

    “도깨비 쉼터.”

    “도깨비 쉼터?”

    “그래, 도깨비 외에는 누구도 찾을 수 없다는 미지의 공간.”

    “너는 찾았잖아?”

    “말했잖아, 나는…….”

    내 물음에 나를 향해 쏘아붙이려던 김수민은 어느새 우뚝 멈춰 서 한 곳을 응시했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박한별이 나와 김수민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박한별의 손이 내 몸에 닿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흐릿한 안개 사이로 펼쳐진 또 다른 공간.

    그곳에는 상체를 탈의한 채 하반신에는 호피 무늬의 거적을 두른 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쟁이라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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