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83화
83. 야차(夜叉)(3)
“후예?”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김수민을 바라봤다. 그러나 김수민은 그저 박한별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들어와.”
빤히 박한별을 바라보던 김수민은 우리를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그러고는 악마들의 세계에서 꽤 인기가 좋다는 차를 우려낸 후 우리 앞에 내려놨다.
“디아블레라는 차야. 한번 마셔 봐.”
김수민은 악마들과 더불어 사는 생활은 모조리 거지 같지만 이 차 하나만은 기가 막힌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그녀의 설명에 따라 차를 천천히 들이마시자, 그녀의 말대로 매력적인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첫맛은 씁쓸한 듯하다가, 끝 맛은 꿀을 먹은 것처럼 달콤한 느낌. 그녀가 왜 이 차를 칭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오, 맛있네요.”
어느새 차를 홀짝인 박한별은 눈썹을 치켜올린 채 감탄했다.
“그쵸? 나중에 싸 줄 테니, 가지고 올라가세요.”
“정말요? 저야 감사하죠. 그런데…… 음…….”
간단한 인사치레가 끝나자마자, 박한별은 슬슬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도 궁금했을 터였다. 악마들이 사는 세상을 통치하는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인지.
김수민도 이를 눈치챘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아, 일단 제 소개부터 하죠. 저는 40층의 지배자 김수민입니다. 직업은 영혼 수리공이에요.”
“도윤 씨와 같은 팀으로 일하고 있는 박한별입니다. 영혼 수리공…… 특이한 직업이네요. 무슨 일을 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하하, 생소하시죠? 영혼을 고치고 강화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뭐…… 지금은 사업의 기초가 되는 령수라는 물질을 누군가 다 빨아들여서 강제 휴업 중이지만.”
김수민은 나를 가리키며 심술궂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고, 박한별은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제가 당신을 어떻게 알고 있나 궁금하셨죠?”
“네.”
박한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드디어 원하는 대답이 나올 것 같아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거요.”
김수민은 박한별의 몸 주위로 일렁이는 푸른 불꽃을 가리켰다.
“도깨비불이 그렇게 선하게 타오르는 것은 처음 봤거든요. 게다가 그 정도의 농도는 아무나 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후예를 제외한다면 말이에요.”
“후예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요?”
박한별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수민을 바라봤다.
“말 그대로예요. 당신은 도깨비의 후예입니다.”
김수민의 황당한 말에 나와 박한별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박한별이 미간을 와락 구기며 물었다.
“너무 억지 아닌가요? 저는 인간입니다.”
그녀의 말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박한별이 어딜 봐서 몬스터라는 말인가.
“어렸을 때부터 힘이 세지 않으셨나요?”
“그건 그렇지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박한별은 끝말을 흐리며 대답했다.
“자, 잠깐만! 그건 그냥 박한별 씨의 특성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끼어들자, 박한별 역시 맞장구를 치며 나섰다.
“맞아요. 제 특성은 괴력이에요. 그러니, 그게 이유가 될 순 없어요.”
우리의 반발에도 김수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하나에 꽂히면 주변 말은 절대 듣지 못하는 고집불통이시고…….”
김수민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의 동상을 우마로 바꾼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게 아니지라며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는 와중에도 대화는 진행 중이었다.
“그건…….”
박한별의 얼굴이 더욱 달아올랐다.
“한별 씨, 도깨비는 몬스터가 아니에요.”
김수민의 말에 박한별의 눈이 커졌다.
“그럼요……?”
“음,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도깨비는 몬스터보다는 악귀…… 그러니까 악마에 더 가까워요. 그런데…… 또 악마는 아니고…… 음,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요괴예요.”
김수민의 설명을 들은 박한별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거 아니야?”
김수민은 나를 흘겨보며 대답했다.
“달라.”
“뭐가?”
잠시 뜸을 들인 김수민이 대답했다.
“요괴는 인간과 악마의 사이쯤 되는 종족이라고 보는 게 좋아.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종족. 그마저도 개체에 따라 극명하게 나뉘긴 하지만.”
김수민의 설명에도 나는 인상을 펴지 못했다.
“그러니까, 한별 씨가 인간이 아니라고?”
“피가 옅어지고 옅어져 지금은 인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말하면 조상은 요괴인 셈이지.”
김수민의 대답에 박한별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놀라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다고 생각했는지, 기분이 상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한별 씨는 요괴와 인간의 혼혈이야. 더욱 정확히 말하면 혼혈의 오랜 자손 중 하나겠지.”
“그게 가능해?”
“종종 있어. 인간 친화적인 요괴의 후손들이.”
나는 김수민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요괴의 후손이라니…… 그러나 믿기지 않는 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단번에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오래전, 내가 이곳에 온 이유도 도깨비를 찾기 위해서였어. 영혼의 맹세로 가슴에 새긴 언약이 깨지려 했기 때문이었지.”
“그게 무슨 말이야?”
미간을 찡그리며 묻자, 김수민은 심각한 말투로 대답했다.
“대대로 물려받던 물건 중 하나가 사라졌어.”
나는 김수민이 말했던 물건 중 하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물었다.
“도깨비거적?”
“응, 정확히 말하면 팬…… 아니다. 아무튼 그 물건을 대체할 다른 거적을 찾기 위해서였지.”
“이곳에 도깨비가 있다는 말이야?”
“그래.”
김수민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어디에?”
검지를 쭉 편 김수민은 그대로 자신의 발아래 쪽을 가리켰다.
“아래.”
당연하게도, 인버스 타워는 40층이 끝이 아니었다. 심해처럼 깊은 인버스 타워는 어디까지 그 뿌리를 펼치고 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나는 도깨비의 존재가 아래에 있다고 확신하는 그녀에게 물었다.
“몇 층?”
“몇 층인지는 몰라, 도깨비들의 성격상 한 층을 지배하며 살고 있지는 않을 거야, 어디선가 자신들의 아지트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겠지.”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걸 알아?”
“말해 줄 수 없어.”
김수민은 도깨비를 찾아내는 법이 마치 금기라도 되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나 역시 꼬치꼬치 캐물을 것은 아니라고 느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신기하네. 네가 찾던 사람을 내가 데려오다니…….”
“그러게, 내가 너한테 이렇게 또 빚을 지게 될 줄이야…….”
“빚? 아!”
갑작스레 축 가라앉은 김수민을 바라보며 나는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40층의 지배자가 바뀌는 과정에서 산 자 김수민의 존재를 알아차린 대악마 록스 대공이 강림할 때, 김수민은 나에게 목숨을 빚졌다. 그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나는 신경 쓰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김수민은 다시 한번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낯간지럽게, 고마운 건 내가 더 고맙지.”
나는 그녀의 령수를 모두 빨아드린 것과 퉁 치자고 그녀에게 제안했다. 김수민은 웃으며 이를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가문의 약속이라니 잘됐네. 우리의 목적도 네 감투를 잠시 빌리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나는 손뼉을 짝 치며 분위기를 전환 시켰다. 그러고는 어서 빨리 그 탐나는 가면을 내놓으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줘야지…… 줘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뜸을 들였다. 마치 걸리는 것이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막상 주려니 아까워?”
내가 놀리듯 묻자,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라…….”
그녀의 머뭇거림에 나는 의아함을 느끼다, 나는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
“미안하다.”
그러고는 재빨리 사과를 건넸다.
이곳은 예전 그녀의 집처럼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녀가 가면을 몸에서 떼어 내는 순간, 산 자임이 들통나고 말 터.
산 자의 형태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던전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인 30층 밖으로 그녀를 추방할지도 몰랐다.
“나는 도깨비들을 찾아야 해.”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박한별이 입을 열었다.
“음…… 도윤 씨, 저희가 같이 찾아 주는 건 어때요?”
“같이요?”
“네, 같이 던전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도깨비도 찾고, 거적도 얻어서 올라와요. 그러면 수민 씨는 가문의 숙원을 이룰 수 있어서 좋고, 저는 아이템이 생겨서 좋고, 또 도윤 씨는…….”
박한별은 뒷말을 흐렸다.
아무리 봐도 내게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커다란 오해이자, 괜한 걱정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얻는 게 제일 많은 사람은 저일 겁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박한별의 성장은 곧 천외천의 성장이다. 게다가 도깨비방망이와 도깨비감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김수민은 강한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였다. 숙원을 이룬 김수민을 잘만 꼬드긴다면 밖으로 내보낼 수도 있을 터.
새로운 동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마다할 리가…….
“그럼…….”
“가시죠!”
내 대답에 박한별은 기쁜 듯 손뼉을 치며 펄쩍 뛰었다. 그러고는 김수민에게 엉겨 붙어, 같이 가자며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언니, 가실 거죠? 네?”
“그, 그게…….”
‘언제 봤다고 언니래…….’
저것이 친화력인지, 아니면 새로운 아이템을 얻기 위한 노력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확실히 효과는 있어 보였다.
김수민의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의외로 김수민은 애교 있는 여자에게 약한 타입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작게 미소 지으며 거들기 시작했다.
“그래, 가자. 어차피 만나야 한다며.”
“나야 가고는 싶지만…….”
“여기에 미련 있어?”
“그게 아니라…….”
김수민은 인버스 타워를 내려가다가 자신을 탐내하는 록스 대공을 마주칠까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나는 이를 눈치채고 그녀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녀는 내가 괜히 헛바람을 집어넣지 말라고 따지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 내 눈빛을 봤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 눈빛에 담긴 의지를 그녀가 조금이라도 느꼈다면 내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절대 그녀가 대악마 록스 대공에게 당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살려 준 은인이자, 나의 격을 몰라볼 만큼 성장시켜 준 귀인이었다.
결코 이런 지하세계에서 죽을 인물이 아니라는 소리다. 만약 그녀가 위험에 처한다면, 나는 반 페르데이스를 꺼내는 것도 망설이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를 믿어.”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이전만큼 약하지 않았다. 아마 그녀의 상상 이상일 터.
그녀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복잡한 심사가 그대로 느껴지는 눈빛. 어울리지 않는 그 눈빛을 놀리기라도 하듯, 나는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내가 아주 복덩이지?”
김수민은 나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