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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80화 (80/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80화

80. 정상회의(5)

“밀러!!”

“호들갑 떨지 마! 안 죽었으니까.”

나는 깜짝 놀라 시체처럼 축 늘어진 밀러의 육신을 바라봤다.

가슴이 뚫린 채 힘없이 떨궈진 얼굴. 그 파리한 몰골에 미소가 깃들고 있었다.

“놀랐어?”

기괴하고 음침한 음성. 그 목소리를 들은 나는 소름 끼치는 감각이 들어 재빨리 손을 떨쳐 냈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밀러. 그는 등에 실이라도 달린 듯 물리적 법칙을 깡그리 무시한 채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검붉은 피가 진득한 녹색으로 변하더니, 서서히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보고도 믿기 힘든 회복력. 나는 거리를 벌렸다.

긴장한 채로 거리를 두는 모습을 확인한 잭은 빙긋 미소 지으며 자신과 조금 떨어진 나를 바라봤다.

“호오, 저것도 네가 한 짓인가?”

자신의 광선을 모두 얼려 버린 범인이 나냐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녀석은 확신한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적어도 반절은 뒤질 줄 알았는데 너희들은 운이 좋군.”

벌레를 바라보듯 쏘아지는 시선에 각국의 대표들이 움찔거렸다. 마치 포식자를 앞에 둔 사슴처럼 잘게 몸을 떠는 이도 있었다.

그 한심한 자태를 바라보다, 녀석을 향해 눈을 돌렸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

“악마와 손을 잡는다고 너희에게 이점이 있나?”

“이점? 크하하하하!”

“…….”

“아주 많지. 이점.”

“잭!”

어느새 완전히 회복한 밀러가 소리쳤다. 그러자 잭은 알고 있다 대답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소리친 밀러를 바라봤다. 금빛 머릿결을 뚫고 솟아 나온 뿔이 보였다.

‘눈치챘나?’

맹금류처럼 쭉 찢어진 그의 눈은 이미 주변을 훑고 있었다. 회의에 들어오기 전, 나는 바가렐라가의 녀석들과 아버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아드리안 길드 녀석들이 도망갈 낌새를 보이거든 최선을 다해 막아 달라고.

녀석들의 시선을 피해 빙 돌아 녀석들을 포위하던 바가렐라가와 아버지 그리고 은밀한 유혹자라 불린 장웨이가 밀러의 눈에 들어왔다.

“쥐새끼 같은 놈들.”

밀러의 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러고는…….

콰과과광-!

붉은 화살이 그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족히 수천 개는 되어 보이는 마법 화살이 우레처럼 하늘을 덮었다.

척 보기에도 가공할 만한 위력이 화살 한 발 한 발에 담겨 있었다.

“악마가 되면 죄다 강해지는 건가?”

이미 천파의 악마화를 봤던지라, 알고 있긴 했지만, 눈앞에 서 있는 녀석들은 차원이 다른 강함을 뽐내고 있었다.

각국의 대표들을 한방에 전멸시키려 들질 않나, 저 조그만 화살에 담긴 강대한 위력은 나조차도 쉽게 막을 수 없는 정도였다.

‘위험하다!’

위력으로 보아 아버지와 로시 바가렐라는 어찌 저 상황을 벗어날 수 있어 보였지만, 다니엘은 아니었다.

분명 많이 다치거나, 죽을 터.

나는 가장 위험해 보이는 다니엘을 향해 달려가려다 멈칫했다.

‘다니엘 바가렐라를 구하면 저 여자는…….’

은밀한 유혹자라 불리는 장웨이는 필시 위험해질 터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하게?”

잭의 비릿한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동시에 엄청난 크기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콰아아앙-!

굉음을 낸 주먹은 내 뒤에 서 있던 맥시코의 대표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단순한 풍압만으로 가한 공격이라기엔 심히 위협적인 것이었다.

“미친!”

인간의 한계, 아니 플레이어의 한계마저 넘어선 녀석을 앞에 두고 여유를 부릴 새는 없었다.

나는 흑운의 힘을 감싼 주먹을 내질렀다. 빠르고 은밀하게 회전하는 흑운의 힘은 당장이라도 녀석의 살갗을 갈아버릴 기세로 파고들었다.

녀석 역시 맹렬한 기세로 다시 한번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앙-!

주먹과 주먹이 맞부딪치며 굉음을 만들어 냈다.

주변에 있던 가주들이 충격파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며 눈가를 막아 내고 있었다.

태풍처럼 흩날리는 먼지가 가시기도 전에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하군.”

녀석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악하고도 광기 어린 눈을 마주하자, 초조함이 온몸을 덮었다.

잭에게 질 것 같아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저놈의 뒤에 있는 녀석.

금빛 머리칼의 백인 밀러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버지와 로시는 녀석의 마법을 잘 흘린 듯 보였다. 다니엘 바가렐라 역시 내 명령에 따라 튀어나온 암살이와 우마에 의해 무사히 지켜졌다. 문제는 장웨이. 은밀한 유혹자이자, 세계 헌터 기구의 간부인 그녀였다.

나는 시선을 돌려 그녀가 서 있던 곳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녀는 밀러의 공격을 모두 막아 낸 것뿐만이 아니라, 밀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허, 뭐 저런!”

그녀는 믿을 수 없는 무위로 밀러에게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마법과 마법이 뒤엉켜 폭죽이 터지듯 공중에서 거대한 빛이 발하고 있었다.

“한눈팔지 마라!”

콰아앙-!

잭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나는 녀석에게 주먹을 날렸다.

“흥.”

다시 한번 녀석과 내 주먹이 맞닿았다. 하지만 결과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 있었다.

녀석의 주먹이 우뚝 멈춰 섰다.

주먹에 두른 만년설의 기운이 녀석에게 옮겨 간 것이다.

빠르게 세력을 넓혀 나가는 만년설을 바라보며 나는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그 많은 인간을 죽였으면 죗값을 받아야지.”

“……?!”

자신들이 힘을 키우는 방법을 어찌 아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부릅뜬 눈을 마주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한테 들었거든.”

“그 버러지 새끼가!”

역시, 아드리안 길드의 녀석들은 천지훈을 알고 있었다.

정보를 얻어 낸 나는 그대로 발을 뻗었다.

퍼석-!

흥분과 당황이 뒤섞인 녀석은, 반응이 한 박자 늦어졌고,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만년설로 얼어 버린 녀석의 발이 과자처럼 바스러졌다.

“끄아아아악!!”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동시에, 분노에 찬 공격이 날아들었다. 입을 쩍 벌린 녀석은 나를 향해 용의 브레스를 연상시키는 광선 포를 쏘아 댔다.

쩌저저적.

그러나 그마저도 막혀 버렸다.

나 역시 비슷한 것을 할 수 있었으니까.

벌어진 내 입에서는 차갑게 식은 불꽃이 쏘아져 나갔다. 일명 서리 불꽃. 반 페르데이스를 손에 넣으며 얻은 속성이었다.

얼어붙은 광선을 바라본 녀석의 눈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나는 녀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녀석은 분명 천지훈보다도 악마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지금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 악마와 지구의 접점을 끊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 두 녀석은…….

“밀러!!”

그 순간, 두 다리를 잃은 잭이 소리쳤다. 고막이 찢어질 듯 나아간 외침은 주변 일대를 가득 채웠다.

그와 동시에 잭이 쓰러진 자리에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땅 아래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넌 내가 내장까지 씹어먹어 줄 테니.”

가뜩이나 붉던 녀석의 눈알이 더욱 붉어졌다. 그 원한 섞인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손을 뻗었다.

“그럴 일은 없어.”

나는 짧은 대답과 함께 손끝을 통해 염화의 불꽃을 쏘아 댔다. 완전히 떨어져 나간 녀석의 한쪽 팔과 두 다리를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게 할 셈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예정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녀석의 왼쪽 팔은 염화의 불꽃으로 넝마를 만들었으나, 다리는 녀석이 끝끝내 지켜 냈다. 절반의 성공.

만족할 수 없는 결과였다.

만약 녀석이 밀러처럼 상식을 뛰어넘는 회복력을 가졌다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일 테니까. 나는 녀석의 목숨을 끊기 위해 다시 한번 공격을 날렸다.

그러나, 내 공격은 애꿎은 땅을 얼어붙게 할 뿐이었다.

한참이나 녀석들이 사라진 땅바닥을 보고 있는데…….

“개자식들이……!”

“이봐! 정신 차려!”

“산체스!! 눈을 좀 떠 봐!”

여기저기서 절규에 가까운 비명과 안타까운 탄식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짧은 싸움이었지만, 그로 인해 죽은 이가 세 명이었고 부상자는 10명이 넘었다.

각국을 대표하는 대표가 모인 자리인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피해인 것만은 확실했다.

나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적들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강했고, 이들은 너무나도 나약했다.

이대로라면 위험한 것을 넘어 완전히 잡아먹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슬픔과 패닉에 빠진 녀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건가?”

“…….”

원망 섞인 시선, 자신들을 지켜 준 것에 대한 고마움, 놀람, 비탄, 황망, 두려움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날아들었다.

그 모든 시선을 감내하며 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조금 냉정해 보이고, 잔인해 보일지도 모르는 말이었다.

“그렇게 있다가는 너희들도 모두 같은 꼴을 당할 거다.”

“…….”

고인 앞에서 너무한 언사가 아니냐고 묻는 듯한 시선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살고 싶다면 강해져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술렁이던, 녀석들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동료의 죽음을 욕보이려는 나를 향한 분노로 입술을 짓씹는 녀석도 있었고, 상황을 직시하고 눈빛을 뒤바꾼 이도 있었다.

이번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동료가 적에게 넘어갔다면 죽여라.”

“……저, 저!”

“오랜 친구가 넘어가도 죽여라. 가족도 마찬가지다.”

“…….”

냉정할 정도로 차갑게 내려앉은 시선에 모두가 집중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적이 흘렀다.

나는 마지막 말을 위해 그 불편한 침묵을 억지로 깨뜨렸다.

“그것이…….”

“…….”

“그것만이 인류가 살길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 * *

“대단한데, 애송이?”

현장 수습이 한창인 사건 현장에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등 뒤에서 흘러나온 소리였지만, 뒤를 돌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이는 그리 흔하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그 정도로 편하게 말할 사이였나요?”

심사가 복잡한 얼굴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는 뒤를 돌아봤다. 어수선한 내 감정과는 달리, 그녀는 웃고 있었다.

은밀한 유혹자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매력적인 웃음을 보이며.

“나한테 빚도 있는 녀석이 쩨쩨하기는.”

미간을 찡그린 채 말하는 그녀를 바라봤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웃어 보였다.

“우리 통화도 한 사이인데, 잊었어?”

“통화라니, 그게 무슨…….”

“너…… 체육관에서 얻어터질 때.”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대체 무슨 개소리를…… 아!

일순 스쳐 가는 희미한 기억.

스승님과의 첫 만남에서 주변의 감시를 걱정하던 나에게 확인이랍시고 걸었던 그 어이없던 통화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믿기 힘든 소리였다. 주변의 감시자들을 모조리 찾아내 환각을 걸다니…… 그만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말도 안 되는 실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이제야 기억났나 보네.”

싱긋 웃는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저 여자는 분명 스승님과 인연이 깊은 사이였다.

“그럼 스승님이 말한 믿을 만하다는 동료가……?”

“어머, 동료? 그 할아범이 그래?”

장웨이는 조금 기쁜 듯이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 모습이 퍽 매력적이라, 정신이 어질러지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뒤, 그녀에게 말했다.

“흑운은 동료 없이 혼자 활동한다고 하시긴 했지만…….”

“흥, 분위기 깨는 건 스승이랑 똑같네.”

순식간에 입술을 삐죽 내민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우리, 흑운 고치러 가자.”

충격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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