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79화
79. 정상회의(4)
나는 아버지의 공격을 목격하고는 재빨리 흑운의 힘을 사용해 회의장 안을 둘러쌌다.
콰앙-!
테이블이 산산조각 부서지자, 살벌한 기운이 흩날렸다. 위협을 느낀 회의장 안의 인원들이 나와 아버지를 향해 기운을 쏘아 댄 탓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를 봐라.”
이글이글 타오르던 그들의 눈이 일제히 돌아갔다. 정제되지 않은 흉흉한 살기가 회의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표독스러운 기운은 모두가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레게머리를 한 흑인이자 아드리안 길드의 수장 잭의 기운. 녀석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짓이지?”
사납게 날아든 물음에 아버지가 대답했다.
“무슨 짓인지는 네놈이 더 잘 알겠지.”
“죽고 싶은가 보지?”
“할 수 있으면 해 보도록.”
스파크가 튀는 것처럼 서로를 노려보던 아버지와 잭 사이를 가로막은 것은 아드리안 길드의 밀러였다.
“회의 중 소란을 피우는 녀석에게 어떤 제재가 가해지는지 알고 계실 텐데요.”
잭의 옆에 있던 날렵한 인상의 백인 밀러가 경고성 짙은 말투로 끼어들었다.
“네놈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쿠구구구.
회의장 안의 공기가 무섭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모든 회의장의 인원들이 아버지를 향해 공격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룰을 지키시오. 천가!”
“맞소, 더 이상 소란을 피웠다가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당신을 처리하겠소.”
다소 위협적인 협박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조금의 위축도 없이 기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 당황하면서도 각국의 대표들은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아버지를 제압할 것처럼.
일촉즉발의 상황!
아버지가 소리쳤다.
“네놈들은 정말 저것이 안 보인다는 말이냐!”
아버지의 맹수와도 같은 포효에 몇몇이 움찔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들은 어떤 영문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잭과 밀러를 바라보다가 다시 전투태세를 갖췄다.
“머저리들.”
발끈하는 대표들을 무시하고, 아버지는 계속해서 아드리안 길드 녀석들을 노려봤다. 그 와중에 오히려 기운을 거둔 것은 가장 지척에서 아버지를 압박하던 실력자들이었다.
“예민한 녀석들은 이미 눈치챘겠지. 저 녀석이 풍기는 기운이 어떤지 말이야.”
아버지의 말에 몇몇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인 것만은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확실히 아드리안의 잭과 밀러의 기운은 심상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라는 겁니까?”
아버지의 옆에 있던 프랑스의 대표 가문 르페브가의 에릭이 검을 늘어뜨리며 물었다.
“저들은 악마들과 손을 잡았다.”
“악마라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에릭이 물었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진짜 악마를 말하는 겁니다. 악마는 존재해요. 크윽!”
나는 아버지 대신 대답하며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 냈다.
아드리안 길드가 아닌 중국의 왕웨이가 날린 공격이었다. 왕웨이는 어느새 아드리안 길드의 옆에 서 있었다.
“너희는 룰을 어겼다.”
날아든 호통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왕웨이의 발언이 모순이라 느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지, 녀석의 공격에 담긴 미세한 기운. 그 사납고도 불길한 기운이 내 감각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중국 네놈들도 넘어간 상태였군.”
내 발언에 왕웨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재빨리 정신을 차린 그가 조소를 머금은 채 말하기 시작했다.
“위기에 몰리니 개소리를 다 하는군. 너희는 그저 국제 헌터 기구의 룰을 어긴 버러지일 뿐이다.”
“개소린지 아닌지 볼까?”
점점 살벌해지는 분위기를 중재한 것은 다름 아닌 사회자였다.
“그만들 하시죠.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킬 경우…….”
콰과과광-!
그 순간 아드리안 길드의 잭, 밀러 그리고 왕웨이의 머리 위로 낙뢰가 내리쳤다.
세 마리의 작은 용이 녀석들의 머리 위로 내리꽂힌 것이다.
결과를 확인한 나는 조금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나름 위력적인 공격을 했음에도 잭과 밀러는 그 어떤 외형적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악마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정도의 공격쯤은 가볍게 받아 낼 수 있다는 소리였다.
문제는 왕웨이었다.
“크윽.”
공격을 받아 내기 조금 버거웠는지, 왕웨이의 머리 위로 작은 뿔이 돋아나 있었다.
일순 장내가 술렁였다.
“저, 저게 뭐야?!”
나와 아버지를 제압하기 위해 움직이던 각국의 대표들은 작은 외침에 왕웨이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뿔?”
“저게 대체…….”
갑작스러운 왕웨이의 외형 변화에 혼란스러움은 느낀 사람들은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내 아들 뇌룡 역시 악마에게 넘어갔다.”
돌연 날아든 아버지의 외침. 회의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혈통을 중요시하는 명문가에서 아들까지 내걸었다. 이는 더 이상 거짓말이라고 치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진짜로…….”
악마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각국의 수장들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왕웨이를 바라봤다.
순식간에 상황 파악을 끝낸 몇몇 가주들은 아드리안 길드와 왕웨이를 향해 검을 빼 들었다.
갑자기 날뛰는 우리를 제지하려는 쪽에서 적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 방향으로 상황이 뒤바뀌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천가의 말이 맞는 듯하군.”
“이야기는 들어 봐야 알겠지만, 확실히 저 불길한 기운, 심상치 않아.”
각국의 대표들은 흉흉하게 피어오르는 자신들의 기운에 반응해 조금씩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는 왕웨이의 눈빛을 마주했다.
“자세하게 설명해야 할 거야. 잭.”
평소 미국과 교류가 활발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대표 에릭은 날카롭게 날이 선 장도를 잭을 향해 겨누며 말했다.
그 순간 회의실을 가득 메울 듯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핫! 크하하하!”
사람의 머리만큼 거대한 팔뚝을 자랑하는 잭의 웃음소리였다. 그의 풍채만큼이나 거대한 웃음이 사람들의 고막을 찢을 듯 날아들었다.
“버러지 새끼들.”
“뭐?”
“알았다 한들,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으드득.
으득!
순식간에 잭의 외형이 기형적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팔뚝은 더욱 굵어지고, 키가 자라기 시작했다.
몸집이 더욱 비대해졌다.
검은 피부가 더욱 검게 물 들으며 강대한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푸슉.
아드리안 길드 가까이서 도끼를 겨누던 한 가문의 대표가 절명했다.
사라져 버린 머리통과 허물어지는 몸체.
그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각국의 대표들은 기운을 끌어올렸다.
더 이상 회의의 룰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전무후무한 적이 게이트 안이 아니라 밖에서 나타난 것이다. 거기에 적은 단숨에 일국의 대표를 쓰러뜨릴 만한 무위를 갖추고 있었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바짝 긴장한 각국의 대표들을 바라보던 잭은 다시 한번 웃기 시작했다.
“언젠가 들킬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너무 빠르군. 역시 네 녀석 때문인가?”
잭의 손이 나를 가리켰다.
그 모습에 나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녀석은 무엇인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내가 천지훈을 발견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한패였나?’
뭐가 됐든, 녀석이 이번 사건의 실마리인 것만은 확실했다.
“지구에서 무슨 짓을 할 셈이지?”
“크흐흐흐. 주인님은 너희 지구인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개소리!”
“지구인들 모두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쾌락에 눈이 멀기를 원하시지.”
어이가 없을 정도의 궤변에 속이 더부룩해지는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그냥 지구를 지배하고 싶다는 거네.”
“주인님의 뜻은 그리 단순한…….”
콰과과광-!
나는 녀석이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게 낙뢰를 퍼부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저것이 악마들의 계획이고, 우리가 앞으로 당면한 과제다!”
나의 외침에 각국의 대표들은 각자의 무기를 빼 들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잭과 밀러, 왕웨이와 그의 수하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잭, 일단 물러나자.”
“이딴 쓰레기들을 상대로? 왜?”
밀러의 만류에도 잭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점점 더 외형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으드드득.
뼈가 갈리고 변형되는 듣기 싫은 소음이 회의실 안을 가득 채웠다.
이제는 회의실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 되어 버렸지만…….
“잭!!”
“나도 돌아갈 생각이다. 하지만 이왕 들켰으니, 녀석들에게 선전 포고는 해야 하지 않겠나?”
즐거운 듯 킬킬거리는 잭을 바라보며 밀러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고는 허공에 무엇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화에서나 보던 기괴한 모양의 문양을 섞어 만든 마법진.
빠르게 채워 나가는 마법진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저 날카로운 인상의 백인이 무엇을 할지야 뻔했다. 그가 저것을 완성하기 전에 공격해야만…….
“끄아아악!!”
나보다 빠르게 생각을 마쳤던 다른 가문의 가주가 바닥을 굴렀다.
몸 안에 악마라도 들어간 듯 울룩불룩 튀어나오는 피부를 감싸 쥔 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버러지 새끼가 어디서.”
싸늘한 시선이 바닥을 기는 사내에게 날아들었다. 마법진을 그리고 있던 밀러의 손가락이 위를 향했다.
그와 동시에 위로 불쑥 올라가는 육신.
붕 떠오른 육신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움찔거리던 그의 몸이 축 처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힘도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죽은 가주를 바라보며 다른 대표들은 긴장감을 바싹 끌어올렸다.
“다들 긴장해!”
르페브가의 에릭이 소리쳤다.
“워워, 진정해. 긴장할 것 없어. 어차피 이곳에 있는 녀석 중 절반은 죽을 테니까.”
“그게 무슨…….”
“조금만 기다려 봐.”
사악하게 웃은 잭은 몸집을 더욱 키우기 시작했다. 기괴하게 솟아난 날갯죽지에서는 거대한 날개가 튀어나오고, 왕웨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뿔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악마 그 자체의 모습.
천지훈의 악마화를 경험했던 나조차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외형 변화였다.
얼마나 영혼을 팔아넘겼으면…….
반 페르데이스를 통해 악마들의 정보를 전해 들은 나는 녀석이 얼마나 많은 인간을 희생시켰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수천, 아니 수만의 인간들이 저 힘에 미친 녀석에 의해 살해당했으리라…….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은 곱게 죽지는 못할 거야.”
“큭, 뭐라는 건지…… 그냥 죽어.”
쿠와와악-!!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녀석이 입을 쫙 벌림과 동시에 그 안에서 섬광과도 같은 공격이 뿜어져 나왔다. 모든 것을 양단할 듯 날카롭게 날아드는 광선.
녀석의 비릿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절반이 아니라 다 죽을지도 모르겠네.”
콰아아앙-!
고막을 찢을듯한 굉음과 함께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이미 회의실은 그 용도를 상실한 지 오래였고, 광포한 웃음은 연기가 걷히기 전까지 유효했다.
“크핫. 크하하하!”
“병신.”
“…….”
녀석의 웃음이 거짓말처럼 뚝 멈췄다. 그래, 뭔가 이상함을 느꼈겠지.
먼지가 모두 걷히고, 잭의 눈에 들어올 것은 수많은 시체가 아닌 아름답게 빛나는 얼음이리라.
나는 조용히 녀석을 관찰했다.
역시나, 내 예상은 적중했다.
녀석은 놀라 자빠질 것처럼 입을 떡 벌린 채 서 있었다. 마치 세상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듯이.
“내가 말했지. 너는 곱게 죽지는 못할 거라고.”
잭의 거대한 머리가 휙 돌아갔다. 돋아난 두 개의 뿔과 빨갛게 변한 그의 눈동자가 눈에 담겼다.
그는 다시 한번 입을 떡 벌렸다.
“너의 미래야.”
내 손에는 흑운의 힘으로 걸레짝이 되어 버린 밀러의 육신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