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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76화 (76/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76화

76. 정상회의(1)

며칠간의 상담을 통해 팀 편성을 모두 마친 나는 만족스러운 알림음을 받아 낼 수 있었다.

[‘활력’에 새로운 속성을 추가하겠습니까?]

[추가 가능한 속성 – 염화(炎火)]

나는 입가에 걸린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꽤 고된 일이었지만, 그만큼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정말 이걸로 된 거야?”

미심쩍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천진오에게 나는 웃어 보였다.

“……크윽. 네.”

몸 전체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온몸이 천근만근 늘어지다 못해 정신줄을 놓아 버리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이왕이면 한 번에 끝내고 싶었으니까.

“아버지 좀 불러 주시죠.”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굳은 손으로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천진오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저게 인간이냐, 라고 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천진오를 재촉했다.

죽을 만큼 힘들고 또 죽기 직전인 것은 맞지만, 한 번에 끝내는 게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내 눈빛을 바라보던 천진오는 이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안 돼.”

이미 예상했던 반응인지라, 준비해 뒀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제가 걱정되는 거라면…….”

돌연 천진오가 내 말을 툭 끊고 들어왔다.

“그게 아니라.”

“그럼……?”

잠시 망설이던 천진오는 몸에 잔뜩 낀 염화의 기운을 모두 푼 채 나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떠나셨어. 일정에 맞춰 미국으로 오라더구나, 소원은 다음에 들어 주겠다고.”

“미친…….”

“뭐라고?”

“아, 아닙니다.”

나는 무심코 툭 튀어나온 말을 애써 가렸다. 그러고는 천진오를 빤히 바라봤다. 이미 아버지를 불러들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그럼 한 번만 더 신세 지겠습니다.”

“그게 무슨…….”

툭.

나는 그대로 기억을 잃었다.

* * *

정신을 차린 것은 꼬박 하루가 지난 다음 날 밤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여기저기 쑤시는 곳을 확인하며 반쯤 몸을 일으켰다.

“크윽.”

역시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표정만은 숨기지 못했다. 내 입꼬리는 귀에 닿을 것처럼 올라가 있었다.

“아버지의 능력을 훔치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화륵-!

손바닥 위로 일렁이는 불꽃이 피어올랐다. 모든 것을 태워 버린다는 염화(炎火)의 불꽃. 천진오의 자랑거리이자 필살기가 내 손안에서 피어올랐다.

“일단은 이것만으로 만족해야지.”

손바닥을 움켜쥐자 불꽃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손바닥을 바라보며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벌써 다섯 개다.

만년설, 서리 불꽃, 뇌, 흑운, 염화.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귀중한 능력들이었다.

한층 더 강해졌다는 생각에 뿌듯해하며 미소 짓고 있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훌륭한 불꽃이구나.

반 페르데이스였다.

혹한의 군주의 목걸이에서 새어 나오는 음성에 씁쓸함이 묻어 나왔다.

나는 그것이 무엇에 기인한 감정인지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하다.”

-사과받을 일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알고는 있었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활화산에서 목욕할 만큼 열을 좋아했다던 반 페르데이스에게 정반대의 속성을 부여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신경 쓰지 마라. 단순히 오랜만에 보는 질 좋은 화염에 감탄한 것뿐이니.

내 감정을 느꼈는지, 반 페르데이스는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착잡한 감정에 입맛을 쩝 다신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꼭 갚을게.”

반 페르데이스는 그것까지 말리진 않았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게 있다.

“뭐지?”

-요즘 나는 왜 부르지 않는 것이냐?

나는 빤히 목걸이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진짜 몰라서 물어?”

지금껏 계속 봐 왔던 놈들은 모두 악마와 관련 있는 녀석들이었다. 반 페르데이스의 말에 따르면 용과 악마들은 앙숙의 관계라고 했다. 만약 내가 어린 용인 반 페르데이스를 불러들였다면 악마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터. 반 페르데이스가 이 점을 모를 리 없었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눈치 보인다. 내가 막내지 않은가.

“…….”

나는 반 페르데이스의 말을 무시한 채, 방문을 나섰다.

* * *

천가의 전용기를 타고 내린 곳은 미국의 마이애미였다. 드넓게 펼쳐진 해변을 바라보며 나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세계 헌터 정상회의.

각국을 대표하는 길드 혹은 가문의 대표들이 모여, 앞으로의 진행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여기인가?”

아버지가 자리 잡은 호텔에 도착하자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나를 가로막았다.

“출입할 수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이곳에 아버지와 철용이 있었다. 분명 내 이름으로 예약된 방도 있을 터.

이유를 물었다.

“왜요?”

“기밀입니다. 이곳은 허가된 자들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동양인이라 그런지 제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본 듯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호위도 없이 혼자 왔으니, 주변을 둘러보다 들어온 관광객으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예약되어 있습니다. 한국 천가의 천도윤입니다.”

가드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개를 갸웃거리던 가드는 무전기를 통해 누군가와 대화를 한 뒤, 깜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정말 천가이십니까?”

“예.”

“죄송했습니다.”

가드는 정중히 사과하며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나는 괜찮다고 한 뒤 로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흠…….”

그곳에는 수많은 강자가 있었다. 스치듯 바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흘러나오는 기운을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는 자도 있었고, 과시하듯 뽐내는 자도 있었다. 반대로 숨기는 자도 있었다.

내 이목을 끈 것은 힘을 숨기는 자들과 체내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숨김없이 내보내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척 보기에도 굉장한 실력자임이 분명했다.

대충 실력을 파악한 나는 체크인을 하기 위해 프론트로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려 할 때였다.

“이젠 개나 소나 다 오는군.”

신경을 거스르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처음 호텔로 들어왔을 때부터 느껴지던 노골적인 시선의 주인공이 틀림없었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커다란 키에 다부진 체격.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강대한 기운. 이것은 그가 만만치 않은 강자라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나한테 하는 소린가?”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지?”

녀석은 대놓고 나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개 이런 상황을 만드는 부류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족한 자신의 무위와 지위를 남을 짓밟음으로써 채우려고 하는 부류. 다른 하나는 싸움에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쳐 있는 부류였다.

녀석은 후자에 가까워 보였다.

녀석은 허연 이를 내보이며 웃고 있었다. 마치 빨리 자신의 시비에 응하라는 듯이.

그러나 나는 받아 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아, 그렇구나.”

그대로 몸을 돌려 프론트로 향했다.

녀석은 잠시 벙쪄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황급히 나를 멈춰 세웠다.

“자, 잠깐!”

나는 녀석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체크인을 진행했다.

“네, 예약했습니다. 예. 아, 네네.”

프론트 직원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우악스러운 손이 내 어깨를 감쌌다.

나는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은 채 녀석을 바라봤다.

“뭐 하는 짓이지?”

“미쳤구나? 이 몸의 말을 무시하다니.”

녀석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시비를 일일이 받아 줘야 하나? 너무 친절한 사람들만 만나 왔나 보군.”

내 말을 들은 녀석은 조금씩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표정을 바꾸고는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하긴, 이 몸도 못 알아볼 정도면 변방 국가의 다 쓰러져 가는 나라 소속이겠군. 대체 어떤 나라길래 이런 핏덩이를 대표로 내세운 건지 원.”

녀석의 말에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반면 녀석은 이제야 내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었다.

나는 녀석의 유치한 도발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차갑게 내려앉은 시선으로 녀석을 향해 말했다.

“바가렐라가 녀석들은 첫 만남에 시비 거는 게 취미인가?”

녀석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를 알아?”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아는데 그런 행동을 보였다는 말이지?”

녀석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본인이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었으면서 가문이 무시받는다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쯤 되면 최악의 첫인상이었던 안토니오 바가렐라가 천사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 녀석은 같이 레이드할 팀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시비를 걸었지만, 이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미친놈.”

“뭐?”

녀석은 당장이라도 나를 칠 것 같은 표정으로 기운을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모든 이들의 이목이 끌렸다.

“동생이 내 이야기를 하지 않던가?”

“그게 무슨……!”

“천가의 천도윤이다.”

녀석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바가렐라가의 첫째이자, 가주 쟁탈전을 놓고 끝없이 안토니오 바가렐라와 경쟁 중인 다니엘 바가렐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럼…… 동생을 레이드에서 구해 줬다는 놈이…….”

금빛 머리칼을 찰랑이는 녀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다.”

“크핫. 크하하하하!!”

녀석은 로비가 떠나가라 웃기 시작했다.

몇몇은 인상을 찌푸리며 이쪽을 보고 있었고, 몇몇은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무엇이 됐든, 모두가 이곳을 주목하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시비 걸지 마라.”

나는 녀석을 매섭게 쏘아본 뒤, 숙소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할 때였다.

“동생도 많이 죽었군. 이렇게 약해 보이는 녀석에게 목숨이나 빚지고 말이야.”

오는 싸움은 마다하지 않는 것을 넘어 시비를 걸고 다니는 것이 바가렐라가의 성향인 건지, 아니면 녀석의 개차반의 성격인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유치한 장단에 맞춰 주지 않으면 평생 나를 따라다닐 거라는 것…….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다니엘 바가렐라를 살폈다.

다니엘 바가렐라는 자연스레 나오는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고 흘려보내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녀석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또 그가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내 잘못이었네.”

“뭐?”

“내가 힘을 숨겨도 너무 숨겼어.”

“뭐라는 거냐?”

녀석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조금은 보여 줄 필요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이야.”

화악-!

순식간에 흑운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흑색 구름이 다니엘 바가렐라와 내가 서 있는 공간을 외부와 단절시키기 시작했다.

돔 형태의 흑운이 완성되고, 그 안에는 나와 다니엘 바가렐라만이 서 있었다.

녀석은 내 능력을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능력이지?”

“별거 아니야, 밖과 이곳을 단절시키는 용도일 뿐이지.”

“신기한 능력이군.”

녀석은 내가 생성한 막 쪽으로 다가가 주먹을 내질렀다.

바람을 매섭게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흑운과 마나를 잔뜩 머금은 주먹이 부딪혔다.

“……소용없어.”

녀석은 콰앙-! 소리가 나며 흑운이 부서지길 원했겠지만, 내가 펼친 흑운은 그런 류의 성질이 아니었다.

흑운은 물처럼 일렁이며 녀석의 모든 데미지를 흡수했다.

녀석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제 대화 좀 나눠 볼까?”

그런 모습을 재밌다는 듯 바라본 나는 우득 소리를 내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 역시 바라던 바라며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먹잇감을 앞둔 맹수의 모습처럼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동생이 하도 호들갑을 떨어 대는 통에 뭐 대단한 녀석인가 기대했는데, 고작 이런 능력으로 녀석들을 감싸준 거였어?”

시시하다는 듯 비아냥대는 다니엘 바가렐라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아주 약간의 힘을 개방했다.

화악-!

녀석의 눈이 조금 커졌다.

“……아주 쭉정이는 아니었군.”

다니엘 바가렐라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힘을 더 개방해 녀석을 찍어 누를까 아니면…….

고민하고 있던 그때.

찌이이이익!

귓가를 울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난생처음 보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렁이던 흑운을 누군가 찢고 있었다!

마치 칼로 썰 듯 정교하게!

이리도 맥없이 흑운이 잘리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럴 수가…….”

나는 놀란 눈으로 그쪽을 바라봤다. 갈라진 틈 사이로 옥구슬이 굴러 갈 것만 같은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놀랐나요?”

갈라진 틈 사이로 누군가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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