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75화
75. 혼돈(3)
나는 적지 않은 힘을 끌어올린 뒤 분노에 휩싸여 달려드는 천태수의 얼굴을 바닥에 처박았다.
콰과과광-!
천태수의 얼굴이 바닥을 몇 번이나 갈아엎고는 마침내 멀리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 모습을 보고는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미친……!”
흑운이 나타나기 전만 하더라도 가문의 이인자 자리를 차지하던 인물.
그런 자를 한 방에 제압했으니, 놀랄 만도 했겠지.
나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천태수를 바라봤다. 놀랍게도 천태수는 아스팔트 더미를 훌훌 털고 일어나고 있었다. 얼굴에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은 모습.
역시 아버지와 끝까지 가주 자리를 놓고 대립했던 인물다운 실력이었다.
그는 여전히 분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정일이를 어떻게 한 것이냐!!”
분노 섞인 원망이 날아들었다.
나는 조용히 바닥을 구르고 있는 팔을 가리켰다.
“보시다시피.”
천태수의 기운이 폭발하듯 확장했다. 그러고는 눈을 반쯤 까뒤집은 채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천태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천태수를 막아선 것은 다름 아닌 철용이었다.
“비켜라!! 내 저놈의 팔을 잘라 씹어먹을 것이야!!”
“그만하시지요.”
딱딱하고 사무적인 철용의 태도에 천태수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
“뭐라?”
“가주님의 명령입니다.”
그제야, 천태수의 기운이 조금 사그라졌다. 이성이 조금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분노를 담은 눈빛만은 더욱 타오르고 있었다.
천태수는 제 아들을 감싸는 거냐며 위협적인 눈빛으로 가주 천태산을 노려보고 있었다.
“앉아라! 명령이다.”
아버지의 덤덤한 목소리가 광장 안을 울렸다. 하지만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에게 어떻게 해서든 복수를 하고 말겠다는 눈빛으로 광장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품속에서 몇 가지를 더 꺼내 보였다.
툭. 툭. 툭.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몰골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작은 뿔이 나 있었고, 눈은 새빨갛게 충혈됐으며, 송곳니까지 돋아나 있는 추악한 몰골이었다.
“몬스터……!?”
“대체 뭔데 그래?”
갑자기 나타난 물건에 쑥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원로들이 모여 있던 자리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성진아!!”
“승현아!!”
자신의 자식들의 비참한 죽음을 마주한 원로들은 나에게 살기를 가감 없이 내비쳤다.
세 명의 부모 중 자신의 자식을 확인한 두 명이 나를 향해 쌍심지를 켜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식을 죽인 원수를 대하듯 나를 향해 이빨을 들이민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으나, 받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새 나타난 암살이와 우마가 그들을 저지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정신 차리고 똑바로 봐라!!”
이 추악한 모습을 보라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당신들의 자식을 보라고, 그리 소리쳤다.
그들은 격을 높인 내 기운을 받아 내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피눈물을 머금은 원한 섞인 눈빛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증거다!”
나는 천정일의 팔을 들어 올렸다.
그토록 자랑하던 희귀한 검을 꽉 쥔 채, 잘려 나간 팔을 모두에게 내보였다.
인간의 살갗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검푸른 색의 피부와 날카롭게 자라난 손톱. 이것이 내가 말한 증거였다.
세 구의 머리통과 하나의 팔을 확인한 가문의 사람들은 눈을 부릅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내가 내민 증거는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므로.
“저것이…….”
“그럼 진짜로…….”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중얼거리는 가문의 원로들과 직원, 생도들을 바라보며 나는 소리쳤다.
“이제부터 가문 내의 모든 인원을 감시할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외침에 정신을 번쩍 차린 몇몇이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나는 반발하려 나서는 원로들을 똑바로 바라봤다. 저들 중 모두가 정말 몰랐을까?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분명 연관되어 있는 인물들도 있을 터.
나의 시선에 움찔거리는 몇 명의 원로들을 머릿속에 각인시킨 뒤,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또, 앞으로는 모든 팀과 단체에 원로들을 배치할 것이다. 절대 혼자 움직이는 일이 없도록!”
“말도 안 됩니다. 가주님!”
여전히 반발의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그 반발은 내가 아닌 가주로 향하고 있었다. 나와 아무리 이야기해 봐야 타협점을 찾을 수 없다고 느낀 탓이리라.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가주 천태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흑운의 말대로 하도록!”
“가주니임!!”
“오빠!!”
너무 놀란 나머지 천진화는 공식 석상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의 호칭을 불러 댔다.
그러나 천태산은 일말의 미동도 없이 외쳤다.
“더 이상 천파에 소속된 인간들은 천가가 아니다!”
이름 그대로 태산과도 같은 태도로 확실히 못을 박는 모습이었다.
천태산의 묵직한 음성이 계속해서 광장을 울렸다.
“천가의 자격을 박탈함은 물론, 천파의 모든 인원은 적으로 간주한다. 만나는 즉시 사살하도록!”
천금과도 같은 무게감이 광장을 짓눌렀다.
자신의 자식마저 적으로 돌리고 있음에도, 천태산의 표정은 놀라우리만큼 덤덤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던 건지, 찢어지는 마음을 애써 숨기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확실해졌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반발할 수 없을 거라는 것.
자신의 자식은 아니라며, 아닐 거라며 반박하려던 이들도 이번만큼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만큼 천태산의 기운은 흉흉했다. 마치 툭 건드리면 터져 버릴 것 같은 시한폭탄처럼…….
“더해, 흑운의 명령에 복종하라! 조금이라도 흑운의 명령에 불성실하게 임하는 자가 있다면 그 누구라도 배신자로 간주할 것이다!”
아버지는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 채 엄포를 놓았다. 예외 없이 뜻을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그대로 느껴져서인지, 그 누구도 반발하는 자가 없었다.
“앞으로는 기약 없는 전쟁이 될 것이다. 단단히 맘먹도록.”
천가의 주인 천태산의 외침이 광장을 가득 울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가문의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에 맞춰, 가문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 상황이 얼마나 긴박한 상황인지.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작게 경탄했다.
‘저것이 가주의 모습인가?’
엄청난 카리스마였다.
나에 대한 반발심을 가졌던 이들이 가주의 한마디에 찍소리도 못한 채, 명령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걸핏하면 주먹부터 내지르는 녀석들이 가주가 내뱉은 말에는 죽는시늉이라도 할 기세였다.
나를 대놓고 적대하던 시선이 가주의 말 한마디에 사그라졌다.
허울뿐이긴 하지만 가문 내 이인자라는 누구와는 완전히 다른 반응이었다.
‘나는 아직 멀었다.’
가주가 대놓고 나에게 힘을 실어 주고 나서야, 반응을 기대해 볼 만한 정도라는 것이 씁쓸했다.
쓰게 차오르는 입맛을 쩝 다시고는 상념을 털어 냈다.
어쨌건, 지금 이 권한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더 이상 가문 사람들과 쓸데없는 감정과 힘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온전히 원하는 구상을 짤 수 있는 기회였다.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다시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게 된 나는 가문의 사람들에게 외쳤다.
“앞으로 모든 팀을 재편성하겠다. 모두 가문 내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 * *
“어쩔 셈이냐?”
나는 가주전에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는 여전히 몸을 치료하고 있는 나의 스승 천태백과 차기 가주 천진오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부담되어 헛기침을 몇 번이고 내뱉었다.
“커흠, 일단 팀을 재편성할 생각입니다.”
“서로를 견제할 수 있게 말이냐?”
“예. 한데 정보가 부족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눈앞에 앉아 있는 자들은 가문 내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틀림없이 가문 내 믿을 만한 사람과 아닌 사람들을 추려낼 수 있을 터.
나는 적절히 천지훈의 사람들을 분산시켜 그들의 힘을 약화시킬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천지훈과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던 천진오였다.
“천지훈의 입김이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자들은 확실해.”
천진오는 테이블 위에 펼쳐진 이름과 얼굴이 박혀 있는 카드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7명의 얼굴이 내 눈앞에 놓였다.
그중 가장 영향력이 강력한 인물은 고모 천진화였다.
나는 카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상을 넘어 확신했던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던 탓이다.
“작은아버지는?”
“중립.”
“뭐?”
나는 놀란 눈으로 천진오를 바라봤다.
“첫째 딸 천설아가 우리 팀이라 그런지 작은아버지는 항상 중립이었어.”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천진오는 한숨을 푹 내뱉으며 말했다.
“우리 쪽에 더 편의를 봐주면 봐줬지 절대 천지훈의 편은 아니었어.”
나는 확신에 찬 천진오의 대답에 놀라고 말았다.
예전에 아버지가 넘겨줬던 인물 관계도에서도 천태수의 관계는 중립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잘못 파악한 거라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와 끊임없이 반목하던 성향으로 보아 적통 천진오 보다는 천지훈 쪽에 붙는 것이 현실적이라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의문을 갖고 있을 때, 천태백이 거들었다.
“그놈이 태산이를 싫어하긴 해도, 은근히 가문을 생각하는 녀석이다.”
스승님까지…… 의외의 정보였다.
이쯤 되면 다시 생각하는 것이 옳았다.
그간의 치료로 샐쭉해진 흑운 천태백은 나를 무심하게 바라보다 책상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손을 움직여 카드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이놈과 이놈도 천지훈 쪽이다. 아, 이 녀석도!”
조금 떨리는 손이 카드를 힘겹게 밀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나는 쓸쓸하게 바라봤다.
그 꼬장꼬장하던 인간이 어쩌다…….
왠지 내 탓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연민의 감정이 차오르고 있을 때 아버지도 말없이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어느새 눈앞에 11명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 얼굴을 머릿속에 하나하나 새겼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도록.
“이들을 모두 분산시켜 팀을 만들겠습니다.”
한참을 회의하고, 또 토론한 뒤에야 팀 편성이 모두 끝났다.
“후, 이제 시작인데…….”
벌써 진이 빠진 느낌이다.
급한 과제를 처치한 우리는 조금 풀어진 채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때, 돌연 심각해진 얼굴로 아버지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남지 않았구나.”
“무엇이 말입니까?”
내가 묻자, 아버지가 대답했다.
“세계 회의.”
세계 각국의 대표 가문이나 길드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같이 가겠느냐?”
아버지의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천진오를 바라봤다.
의외로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감정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는 것인지, 정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천진오는 싱긋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갔다 와! 이번 사안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너잖아.”
“……!”
그제야 나는 아버지와 천진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공론화시킬 셈인 것이다.
이번 사건은 돌연 우리 가문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분명히 맞는 말이었다. 악마들이 지구에 침략하기 시작하면 어느 한 곳도 안전한 나라는 없을 테니까.
전 세계가 힘을 합쳐 논의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면 일단은 여기까지 하지. 팀 편성은 도윤이 네가 사람들을 불러들여 직접하고.”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런데…… 한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해라.”
“세계 회의가 열리는 시간이 언제입니까?”
“약 한 달 뒤다.”
“한 달 뒤라…….”
잠시 머리를 굴리던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충분하겠네요.”
“무엇이 말이냐?”
“시간이 남았으니 한 가지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말하라.”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잠시 뜸을 들인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 좀 죽도록 패주십시오.”
“뭐라?”
황당해하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나는 천진오를 바라봤다.
“아, 다 나으면 형도 좀 부탁해!”
아버지와 천진오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친 사람을 쳐다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찌 된 일인지 말해 줘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돌연 옆쪽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끌끌.”
고개를 돌려보니, 천태백이 웃고 있었다. 내 능력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천태백이 나를 바라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욕심도 많은 제자군.”
도무지 아픈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사악하고도 익살스러운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