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74화
74. 혼돈(2)
“푸, 푸르푸르님!”
전투 중임에도 불구하고, 천지훈은 떠오른 시신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 어이없는 모습에 나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분노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천지훈. 자리를 피해라.”
“하지만……!”
“명령을 어길 셈이냐!”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한 천지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천파에게 소리쳤다.
“흩어져라!”
“옙!”
당장이라도 공격을 날리기 위해 힘을 끌어올렸던 이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누구 맘대로!”
나는 암살이를 바라봤다. 녀석은 단숨에 내 의도를 파악하고는 낫을 크게 휘둘렀다.
“끄아아악!”
가까이 있던 자의 목이 떨어져 나가고, 그보다 멀리 있던 자는 팔이 떨어졌으며, 그 옆에 있던 자는 복부에 깊은 상처가 아로새겨졌다.
그와 동시에 검은 뇌룡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대수롭지 않게 공격을 쳐 낸 나는 멀어져 가는 천파와 천지훈을 바라봤다.
‘절대 잊지 않으마’라고 소리치며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던 천정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이젠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저들은 도를 지나쳐도 한참이나 지나쳤다. 나에게도, 천가에게도. 그것을 넘어 인류 전체에게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죽은 자의 몸을 빌린 것이긴 하지만 조금 전 푸르푸르는 분명 지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는 곧, 언제 저들이 넘어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식은땀이 죽 흘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위험할지도 몰랐다.
“대책을 세워야겠어.”
중얼거린 나는 바닥에서 무엇인가를 집어 든 뒤, 가문으로 향했다.
* * *
“건방지게 누구를 오라 가라야!”
“뉴스에 얼굴 좀 실렸다고, 지가 진짜 가문의 이인자라도 된 줄 아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귓가로 들어왔다. 흑운에 몸을 숨긴 나는 조용히 그들을 바라봤다.
실망스러웠다.
그들의 태도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그때와 똑같은 수준의 흑운을 사용한 상태였다. 하나, 전혀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천파에 새롭게 합류한 신입 천정일마저 간파한 힘을 말이다.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나는 발걸음을 옮겨 원로들이 오고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들 역시 불평을 가득 머금은 얼굴이었다.
원로들을 향해 조금 더 다가갔다. 다행히 그들은 나를 느끼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이질감을 느낀 정도부터, 고개를 돌려 빤히 나를 바라보는 모습까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침하게 뭐 하는 짓이지?”
고개를 돌려보니 불만이 잔뜩 담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작은 아버지가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에 다부진 체격, 아버지와 끝까지 대척점에 섰던 인물이었다.
나는 다가오는 손길이 내 몸에 닿기 전에 흑운의 힘을 풀어냈다.
“가문의 상태 좀 점검했습니다.”
“뭐라?”
천태수의 미간이 꿈틀댔다.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조카 녀석의 버릇을 고쳐 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 나를 본 원로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전혀 놀라는 기색을 비치지 않는 것은 내 정체를 정확히 파악한 몇몇의 원로에 불과했다.
“쯧, 이래서야…….”
“설마, 원로들을 테스트한 것이냐!”
천태수의 노호가 가문을 울렸다. 일순 광장으로 모이고 있던 가문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집중되었다.
“예.”
나는 짧게 대답했다.
“네놈이!!”
분노에 휩싸인 천태수가 기운을 끌어올렸다. 아버지와 끝까지 반목했던 상대. 그 기운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힘을 거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네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당장이라도 나를 칠 것처럼 굴던 천태수가 멈칫한 건 어깨에 올려진 손을 확인하고 나서였다.
“그만하고 앉아라.”
아버지였다.
“혀, 형님이 여긴 어떻게……?”
천태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가문에서 원로 이상의 지위를 가진 이가 긴급상황으로 호출하면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이들에 해당할 뿐, 가문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가주는 누구의 부름을 받고 움직이는 위치가 아니었다.
“흑운이 불러서 왔다.”
아버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를 본 원로들의 눈이 커졌다. 천태산이 흑운의 요청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은 그만큼 흑운을 인정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이제 갓 팀을 창설한 놈을…….”
한 원로가 말을 내뱉다 입을 틀어막았다. 매섭게 날아든 아버지의 눈빛을 느낀 탓이리라.
나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광장에 모인 가문의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리에 착석하도록!!”
불만 섞인 탄식과 일렁이는 매서운 눈빛들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내가 느끼고 있는 분노와 한탄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모든 것을 힘으로만 판단하려 하니 이 모양 이 꼴이 나지.’
나는 원로들을 쭉 훑어봤다.
힘깨나 쓴다는 방계의 대표 원로들, 천태수,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고모 천진화.
이들은 자신의 자식들이 인간이길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나는 마지못해 자리에 참석한 녀석들을 확인하고는 그들을 향해 거침없이 외쳤다.
“이대로 가다간 천가는 망한다.”
장내가 술렁였다.
“아니, 이미 망해 가고 있다!”
“저런 미친!”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천가의 막내아들이 미친 거라고, 위대한 천가를 욕보이고 있다고,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는커녕, 더욱 망쳐놨다고. 그리 말하고 있었다.
“천가가 망한다면, 그건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네놈 때문일 것이다!”
천태수의 분노 어린 외침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조금 전 앙금이 풀리지 않았는지, 전혀 살기를 거두지 않은 채였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아니, 잘못짚었어. 천가가 망해 가고 있는 건.”
그러고는 원로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눈을 마주쳤다.
“자식 농사를 잘못 지은 당신들 때문이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곳곳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공격을 내뿜을 것처럼 흉흉한 기운이었다.
심지어 이미 일어나 있는 자도 있었다.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끝까지 나를 쓰레기 취급이다.
힘을 전혀 쓰지 못하던 그때의 천도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인식 속 깊게 뿌리박힌 이미지를 탈바꿈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이후론 그들은 좋으나 싫으나 내 명령을 따르게 될 테니까.
나는 끝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라고 예외일 순 없었다. 아니 어쩌면 가장 큰 문제였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아버지의 아들인 천지훈으로부터 시작한 것이었으니까.
자식 농사를 가장 잘못 지은 것은 다름 아닌 천가의 가주였다.
내 시선을 느낀 천태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문의 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천지훈!”
돌연 날아든 외침에 광장에 모인 자들이 한 곳을 바라봤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천지훈을 포함한 천파가 앉던 자리였다.
“천파가 레이드 중이었나?”
“몰라. 오늘 일정 없었던 걸로 아는데.”
“그럼 왜 오지 않은 거지? 설마 천도윤의 긴급 소집에 모이기 싫어서……?”
“에이, 설마.”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혁진!”
멀리서 이 상황을 재밌다는 듯 지켜보던 고모 천진화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외동아들의 이름이 호명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해서 이름을 불렀다.
“천정일!”
이번에는 작은아버지 천태수의 얼굴이 굳었고.
“천성진, 천승현, 천소진.”
아들과 딸의 이름이 호명된 방계의 대표 원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들 천파 소속이잖아!”
“그러니까…… 대체 뭔 말을 하려고.”
어느새 광장에 모인 이들은 내 입술을 주목하고 있었다.
나는 천파의 모든 일원을 일일이 호명한 뒤 말했다.
“이들은 더 이상 천가가 아니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하지 못한 탓이리라.
하지만 침묵이 오래갈 리 없었다.
“저 미친놈이!!”
자리를 벌떡 일어난 천지훈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모 천진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 지금 뭐라고 했니? 우리 혁진이가 뭐?”
표독스러운 얼굴로 다가오는 녀석들을 바라보다 소리쳤다.
“흑운이자 가문의 이인자로서 말한다. 닥치고 앉아라!!”
패륜적인 언사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기로 마음먹은 상태였으니까.
흑운과 이인자를 언급하며 소리치자, 녀석들은 멈칫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물러나지도 않았다. 잠시 멈칫했던 그들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닥치라고? 너 지금!!”
“아무리 흑운이라도…….”
“가문의 존폐가 걸린 일이다. 앉아라!”
나는 찍어누르듯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제야, 녀석들은 발걸음을 멈췄다. 가문의 존폐까지 거론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천태수와 천진화는 서로를 바라봤다.
한참이나 서로를 바라보던 천태수와 천진화는 이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야.”
만약, 가문의 존폐를 거론하고 이인자의 지위를 이용해 가문 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인 일이 별것 아닌 이유라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거라는 눈빛이었다.
자리에 돌아간 그들을 확인한 나는 그들을 불러들인 진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넘겼다.”
여기저기서 조소가 날아들었다. 어디서 뜬구름 잡는 소리냐며 날아드는 비웃음. 형제를 까 내리고 싶은 거라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하라며 질타의 시선들이 날아들었다.
천태수와 천진화는 그런 나를 보며 한결 누그러진 얼굴을 내비쳤다.
그럼 그렇지, 라며 내 의도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단순히 자신의 입지를 올리기 위해 천지훈의 팀 천파를 까 내리려 한다고만 생각했다. 동시에 별것도 아닌 일에 자신들을 불러들인 책임을 어떻게 물을까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
그 같잖은 생각이 눈에 훤히 보여 속만 끓어 올랐다.
상황의 심각성을 받아들인 것은 오직 천태산뿐이었다. 인버스 타워를 경험한 천태산만이 악마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것이 정말이냐!”
돌연 날아든 가주 천태산의 외침에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갑자기 왜 저러셔?”
“나도 몰라…….”
“예,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짧게 대답하자,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고해 보라!”
가주의 명령에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은 빼고, 어떤 부분은 더했지만, 녀석들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를 전했다. ‘악마들이 지구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천파다.’라는 사실을 가감 없이 말했다.
내 말을 모두 들은 천태산은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나머지는 웃기지 말라며 여전히 조소를 흘려보내는 상황이었다.
뭐가 되었든 내 말을 온전히 믿는 이는 없었다. 멀리서 천지와 함께 내 말을 전해 들은 천진오와 천우진을 제외하고는.
“소설 쓰지 마라! 그리도 형의 입지를 좁히고 싶거든…….”
천태수의 벼락같은 호통이 이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당신은 가문을 지키는 검의 말도 믿지 못한다는 것인가?”
“증거를 대라, 증거를 대야 믿을 것이 아니냐! 누가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믿는다는 말이냐!!”
악을 쓰듯 외치는 천태수에게 나는 조용히 물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
“후회는 무슨.”
무시하듯 내뱉는 비틀린 입매. 무시가 여실히 느껴지는 태도를 마주하고는 결정했다. 보여 주겠노라고.
“분명히 말했다. 후회하지 말라고.”
나는 품속 아공간 마법이 걸려 있는 외투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녀석에게 던졌다.
툭.
바닥에 볼썽사납게 떨어진 것은 잘린 팔 한 짝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악마화가 진행된 사람의 팔이자, 녀석의 둘째 아들, 천정일의 팔.
그가 애용하던 검까지 손에 쥐여 있었으니, 그의 아버지가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이 개새끼가!!”
그때, 팔을 본 천태수가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