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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73화 (73/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73화

73. 혼돈(1)

눈앞에 천지훈이 서 있었다.

그의 팀 천파(天破)와 함께.

“너희도 알고 있었나?”

나는 천지훈을 무시한 채 천파의 일원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이미 파악한 듯, 품속에서 조용히 무기를 꺼내거나 기세를 끌어올리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네놈들이 그 많은 시신을 옮겼나?”

“안에서 뭘 봤지?”

천지훈의 싸늘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내 물음에는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싸늘한 태도로 대답했다.

“네가 걱정하는 것은 전부 다.”

천파의 기세가 더욱 타올랐다.

나는 그 모습을 천천히 살펴봤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자세히 보니 그 모습에 이질감이 들었다.

천파의 인원 대부분은 천가의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천가의 피’ 특유의 힘이 흘러나오기보다, 탁한 기운이 그들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천지훈뿐만 아니라 천파 놈들 전부가 푸르푸르와 모종의 계약을 맺은 거라고.

“미친 짓거리들을 하는구나.”

나는 분노에 찬 모습으로 녀석들에게 말했다.

그 모습에 천지훈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려는 순간.

“입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천가의 흑운이다.”

지휘를 밝히자, 천파의 몇몇이 움찔했다.

흑운의 위치는 가주의 바로 아래. 하는 일은 가문을 수호하고 지키는 일이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가문 전체의 질타는 물론, 엄청난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당연히 사실이었고, 나조차 그 사실을 인지하라고 말한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쫓겨난 이력이 있고 선망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다지만, 대외적인 명분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으니까.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싸늘한 음성이었다.

“미친놈. 거저 얻은 자리로 거들먹거리다니.”

멸시와 분노가 가득 담긴 음성이었다.

녀석은 이미 선을 넘기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천지훈은 한참이나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크크큭. 여기를 아는 자는 천진오밖에 없었는데, 벌써 첫째 형이랑 손을 잡은 거야?”

그 간교한 웃음에 속이 끓는 기분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내 대답에 녀석은 어깨를 올려 보이더니, 궁금했던 점을 묻기 시작했다.

“안에서 무슨 짓을 한 거지?”

태평해 보이는 태도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저 녀석의 속이 얼마나 타고 있을지.

“이제 곧 알게 될 거야.”

나는 입꼬리를 올린 채 뒤를 돌아봤다.

구구구구.

그 순간 게이트가 클리어됐음을 증명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닫히기 시작하는 게이트.

천지훈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이런 미친!”

녀석은 여전히 믿기 힘든 표정이었다.

“왜? 안에 보물이라도 숨겨놨나?”

무미건조하고 냉랭한 물음을 날렸다. 녀석은 입을 벙끗거리다 넋이 나간 얼굴로 말했다.

“베르보브님을 어떻게 한 거지? 베르보브님은 어디 갔냔 말이다!!”

녀석은 악을 쓰듯 소리쳤다.

“베르보브님이라…….”

나는 녀석의 말을 곱씹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 보려 해도…….

“가문의 이인자에게는 욕설을, 악마 새끼에게는 존칭을 붙이는구나.”

분노만 쌓일 뿐이었다.

“닥쳐라!”

악에 받친 비명. 나는 녀석을 바라보다 시선을 옮겼다.

“너희 모두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냐?”

천파의 녀석들을 훑어봤다. 가문에서 힘깨나 쓴다는 방계의 자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둘이었다. 천정일과 박혁진.

천정일은 작은아버지의 둘째 아들이자 가문에 다시 들어온 나를 괴롭히다 철용 아저씨에게 된통 당한 녀석이었다. 천정일은 이번에 새롭게 합류한 모양이었다.

또 눈에 띄는 것은 고모의 외동아들인 박혁진이었다. 내가 가문에서 처음 대련을 할 당시 심판을 봤던 인물이었다.

나는 둘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이번 일이 알려지면, 작은아버지와 고모가 어떤 일을 당할지 알고 있는 것이냐?”

자연스러운 하대에 녀석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동시에 심사가 복잡해진 얼굴이었다.

만약 내가 이곳에서 벗어나, 가문에 이 사실을 고한다면 얼마나 큰 파장이 일어날지 예상한 탓이리라.

“죽여야겠습니다, 마스터.”

말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박혁진이었다. 우람한 체격에 말수가 적었던 그가 이리 나오는 것은 꽤 놀랄만한 일이었다.

“맞습니다. 저 건방진 새끼의 입을 지금 막지 않으면 분명 후환이 생길 겁니다.”

역시나, 천정일이 맞장구를 쳤다. 저놈은 애초에 나를 싫어하다 못해 증오하던 녀석이었으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박혁진은 의외였다.

조금 다른 방법을 생각할 줄 알았는데…….

나는 실망 섞인 눈초리로 녀석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내 결심을 굳혔다. 부모님을 생각해 내린 결정이라 이해는 할 수 있겠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봐준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말했을 텐데. 입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고.”

콰르르릉.

천정일과 박혁진의 머리 위로 낙뢰가 떨어졌다.

흙먼지가 흩날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천지훈의 모습이었다.

녀석이 천정일과 박혁진을 대신해 나의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천정일은 더 이상 장난이 아니라고 느꼈는지, 잔뜩 굳어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넌 그런 표정이 어울려.’

녀석의 장난에 휘둘리는 천도윤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녀석도 이젠 그 사실을 깨달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똑똑히 보여 줘야지.”

“무슨 개소리를……!”

“흑운의 실력.”

나는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느낄 터였다. 흑운의 힘이 몸 전체를 덮기 시작했으니까. 기운을 완전히 죽인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뭐야! 갑자기 어디 갔어!”

호들갑을 떠는 천정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들갑 떨지 마라.”

단 한마디로 천정일의 입을 다물게 만든 천지훈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뱀과 같이 쫙 찢어진 눈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저건가……?’

천진오의 화안을 꿰뚫어 봤다는 눈. 포식자와도 같은 거친 눈이 나의 몸을 훑고 있었다.

그 더러운 느낌을 애써 참은 채, 나는 걸어갔다.

검은 먹구름 속에 모습을 숨긴 채 녀석들을 향해 낙뢰를 내리쳤다.

콰르르릉!

고막을 울리는 무수한 낙뢰가 이번에도 천지훈의 손에 의해 막혔다.

검은빛이 감도는 불길한 기운의 낙뢰.

그와 융합된 뇌전이 공중에서 공멸했다.

녀석은 놀라는 눈치였고,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천진오의 말은 진짜였다.

녀석은 내 상상 이상으로 강해진 것이 분명했다.

천지훈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소리쳤다.

“다들 악마화를 진행해라!”

“뭐?”

나는 놀란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천지훈의 명령을 들은 천파는 하나같이 어둠의 기운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경악했다.

하나같이 인간의 무력을 초월하는 수준의 경지였다. 나의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천정일마저 흑운 속에 몸을 감춘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눈빛이 붉게 물들고, 혈색이 창백해진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르기 힘든 형태였다.

개중에는 작게나마 뿔이 돋아난 자도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흑운의 힘을 완전히 풀었다. 더 이상 흑운에 몸을 숨기는 짓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느낀 탓이다. 모습을 드러내자 녀석들은 더욱 노골적인 살의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버린 느낌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본래 가지고 있던 악함이 극대화된 모습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 추악한 모습을 바라보다 녀석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미쳤군. 너희들은 더 이상 천가가 아니다.”

“크르르르.”

“크흐흐.”

싸늘한 음성에도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뿐이었다.

“누구 맘대로? 여기서 너를 죽이면 아무도 모를 텐데 말이야.”

검게 변한 흰자위와 노란색으로 변한 탁한 눈동자. 뿔은 물론 날개까지 돋아난 천지훈이 말했다. 나는 완전히 인간의 모습을 벗어난 천지훈을 안타까운 모습으로 바라봤다.

무엇이 저 녀석을 저리도 추악하게 만들었을까.

연민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재빨리 뿌리쳤다. 녀석은 결국 가문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존재. 어쩌면 그것을 넘어 인류 전체의 재앙이 될지도 모르는 존재였다.

손속에 사정을 두는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맘대로!”

나는 녀석을 향해 뇌전을 머금은 흑운의 탄환을 쏘아 댔다.

퍼버버벙!

녀석은 검은 번개를 이용해 탄환을 모두 제거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수를 늘려 갔다.

퍼버버버엉!

“그깟 잡기술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악마화를 마친 천지훈은 한껏 여유 넘치는 모습이었다.

“응.”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녀석의 발을 가리켰다.

만년설로 인해 얼어붙기 시작한 녀석의 발. 만년설은 내 의지에 따라 발을 타고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종아리를 넘어 무릎, 무릎을 넘어 허벅지까지. 빠르게 그 세력을 넓혀가는 중이었다.

그때.

서걱.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스산한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미친놈.”

나는 녀석을 향해 욕을 내뱉었다. 자신의 손으로 얼어붙기 시작한 다리를 잘라 냈다. 그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이어진 놀라운 현상에 모든 것을 납득할 수 있었다.

다리가 돋아나고 있었다.

인생의 순리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하는 듯이!

떡 벌어진 입을 다물기도 전에, 녀석의 사악한 웃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놀랐나? 놀랄 만도 하지. 나도 처음엔 믿지 못했으니까.”

녀석의 간사한 웃음이 더욱 농도를 더해 가고 있었다.

“크흐흐. 동생아, 인간이 아닌 신을 마주한 느낌이 어떠냐?”

녀석은 개소리를 잘도 지껄이고 있었다.

나는 천지훈을 향해 말했다.

“악마의 부하 주제에 신을 언급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한껏 골려 주는 듯한 말투의 비아냥에 녀석의 미간이 급속도로 구겨졌다.

“버러지 새끼가!!”

검은 뇌룡이 나를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평소 천지훈의 뇌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었다.

나 역시 손을 뻗어 뇌룡을 만들었다. 녀석과 정확히 같은 크기와 동급의 기운을 머금은 뇌룡을.

두 마리의 용이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천지훈의 얼굴에 당혹감이 물들었다.

내가 이 정도의 수준인지는 몰랐겠지.

한순간에 시전자와 정확히 같은 수준의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시전자보다 몇 단계는 위의 실력을 가져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천지훈은 입이 떡 벌어진 상태였다.

“어떻게……?”

“놀라긴 일러.”

나는 녀석을 향해 다시 한번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때! 등 뒤로 무엇인가 날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죽어!!”

익숙한 목소리였다.

어렸을 적부터 숱하게 들어왔던 목소리. 바로 천정일의 목소리였다.

나는 손에 낀 반지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스산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서걱-!

“끄아아아악!!”

비명이 들리고 나서야, 나는 뒤를 돌아봤다.

천정일이 자신의 손을 감싸 안은 채, 나뒹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검을 쥔 녀석의 팔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가문의 인간들 중 검을 사용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에 하나였기에, 검을 쥔 손이 괜히 생소하게 느껴졌다.

“주, 죽여 버릴 거야!!”

녀석은 핏발 선 눈으로 나를 향해 악을 쓰기 시작했다. 천지훈과는 다르게 녀석의 팔은 재생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의 상처를 서리 불꽃으로 지져 버렸다.

다시는 재생할 수 없도록.

만년설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힘인 서리 불꽃은 녀석의 상처 부위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나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던 녀석들은 갑자기 나타난 죽음의 군주 ‘암살이’를 바라보고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게 대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암살이를 향해 말했다.

“쓸어버려.”

고오오오.

암살이는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불길한 기운을 흩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서걱.

거대한 낫으로 단숨에 천파 두 명의 몸을 양단했다.

몸이 썰린 동료를 보고 나서야, 천파 녀석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발! 고, 공격해!”

하지만 아쉽게도, 녀석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새 암살이의 낫이 녀석들의 목 위에 드리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갑자기 붕 떠오른 시체 한 구.

생기를 되찾은 시체의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 종들을 더 이상 잃지 마라. 천지훈.”

분노에 찬 푸르푸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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