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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72화 (72/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72화

72. 파동(4)

악마의 뇌전은 천지훈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가가가각.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며 계속해서 내지르는 전격은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정신 나간 악마 새끼!”

악마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나는 인간들이 쌓여 있는 시체를 향해 눈을 고정했다.

“저게 대체…….”

시체가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면 타오를수록 저 녀석의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었다.

“천가의 녀석들은 각각 다른 능력을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천가의 피를 말하지 않은 것을 보면 스킬을 말하는 듯했다.

녀석은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전격을 흩뿌리면서도 재밌다는 듯 날뛰는 중이었다.

나는 머리 위로 날아든 검은 쇠꼬챙이를 피하고는 물었다.

“너는 누구지?”

“크큭. 벌레가 알 필요가 있을까?”

입꼬리를 올린 괴이한 자태의 사슴은 사그라지지 않는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살육. 혹은 피를 보고 말겠다는 녀석의 의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원색 그대로의 본능이었다.

그 거리낌 없고 허기진 욕망을 마주하자 속이 더부룩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알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나 역시 입꼬리를 올렸다. 나선처럼 꼬인 녀석의 뿔을 가리키며.

“말하지 않으면 너는 죽어.”

녀석은 가소롭다는 듯 말하면서도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뿔을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그러고는 이내 경악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찾을 수 없겠지.”

내 손에는 어느새 녀석의 한쪽 뿔이 들려 있었다. 전투 중 불러들인 암살이의 작품이었다.

마치 적장의 목이라도 되는 듯 악마의 뿔을 공손하게 바치는 암살이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한 단면. 뿔을 이리저리 살펴본 나는 여전히 목걸이 안에 들어가 있는 반 페르데이스에게 물었다.

‘뭐 좀 아는 거 있어?’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부위이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녀석은 만물의 근원을 꿰뚫는 존재이자, 지혜의 상징 아닌가.

역시나, 녀석은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골치 아프게 됐군.

왜냐고 묻자, 녀석의 웅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약하지만 지하세계의 왕의 힘이 느껴진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하세계의 왕이라니. 그럼 저 녀석이 왕이라는 소리야?’

-아니다. 저 녀석은 왕을 지키는 72마리의 악마. 그중 하나인 푸르푸르의 수하처럼 보인다.

“왕이라…….”

나는 길길이 날뛰는 녀석의 공격을 쳐 내며 고민에 빠졌다. 녀석은 왕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를 지키는 72마리의 악마도 아니었다. 그보다 아래.

겨우 수하1 정도의 위치인 것이다.

그런 녀석이 천지훈을 쥐락펴락하고 있으니…… 새삼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느껴졌다.

‘적어도 이런 녀석이 지하에는 몇 백은 있다는 소리다.’

일순 압박감이 몰려들어 왔다. 그리고 지구가 얼마나 나약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공간인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돈 혹은 명예에 취해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헌터들. 배부른 돼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대다수의 헌터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래서야…….’

그때.

“이…… 찢어 죽일 놈이!”

녀석은 괴이한 음성을 내지르며 분노한 얼굴로 달려들었다. 잡념이 너무 많았다고 생각한 나는 이내 손을 뻗으며 녀석의 다리 쪽을 가리켰다.

얼마 전 새롭게 얻은 속성 만년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스슥.

스산한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녀석의 발이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었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였다. 녀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봤다.

드래곤조차 수십 년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힘이었다. 일개 악마 따위가 어찌해 볼 수 있을 리가……

녀석의 발부터 시작한 만년설은 점차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고통조차 느낄 수 없을 거야.”

녀석의 동공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경고했잖아. 말하지 않으면 죽을 거라고.”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녀석은 시체가 쌓인 산을 바라봤다.

“이…… 이!!”

시체들이 모두 타올라 자신의 힘이 강대해지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시체가 타는 속도보다 만년설이 녀석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시간이 더 빨라 보였다.

무차별하게 흩뿌리는 전격을 모두 받아 내고 꼬챙이처럼 생긴 악마의 무기를 모두 쳐 냈다. 그제야 녀석은 현실을 자각했는지, 비굴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원하는 게 뭐냐!! 아니, 뭡니까!!”

악을 쓰듯 지르는 녀석을 빤히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무엇을 질문해야 할까? 무엇을 얻어 내야 천지훈을 저지할 수 있을까?

짧은 시간.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천지훈은 물론, 척 봐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다른 세계의 계획까지 저지해야만 했다.

영혼 수리공 김수민이 했던 경고.

‘마계가 지구를 노리고 있다.’

그 진행 상황이 눈앞에 있었다. 녀석을 그냥 몬스터로 분류하기엔 너무나도 의심되는 상황이 많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녀석에게 물었다.

“일단, 이름!”

“베르보브.”

녀석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쳐 댔다. 여전히 칠판을 긁는 듯한 듣기 거북한 목소리였지만, 초조함만큼은 여실히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만년설은 어느새 녀석의 무릎을 지나,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너의 주인은 푸르푸르인가?”

“그걸 어떻게……?”

녀석의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천지훈에게 무슨 짓을 했지?”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천지훈과 녀석의 접점 관계. 녀석은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계속해서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내가 한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주인님의 명령에 따라 말과 물건만을 전했을 뿐이다.”

“천지훈은 너와의 수족 관계가 아니었나?”

“나는 힘을 부여할 수 있는 품위 높은 악마가 아니야! 모든 것은 푸르푸르님이…….”

“잠깐, 힘을 부여해? 그렇다면…….”

“그래, 푸르푸르님이 천지훈에게 힘을 내려 주셨다. 나는 그 중간다리 역할을 한 것뿐이야!”

녀석의 황급한 말을 들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정리해 보자면, 천지훈은 지하세계의 왕을 모시는 녀석 중 하나인 푸르푸르와 모종의 계약관계를 맺었다는 소리였다.

“대가는?”

나는 싸늘해진 목소리로 베르보브에게 물었다.

녀석은 이번에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내뱉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목숨이 날아간다는 것을 느낀 탓이리라.

녀석은 사람과는 달리 사족 보행을 하는 악마였다.

허벅지 끝에 다다른 만년설이 곧 도달할 장소는 다름 아닌 녀석의 심장.

초조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성대를 손톱으로 긁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구에 마계의 악마들이 강림하도록 돕는 것.”

강림이라는 단어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인버스 타워에서 만났던 록스 대공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강력했던 녀석. 강림 중이라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음에도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던 녀석이었다.

그 소름이 끼치는 장면이 다시 한번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던전에 강림하는 것도 아닌 지구에 직접……?”

“그렇다. 머지않아 지구는…… 아니, 그 전에 이것 좀.”

녀석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웠다.

만년설은 어느새 발의 경계를 넘어 녀석의 배를 덮고 있었다.

베르보브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면 풀어 주지.”

녀석은 오히려 물음을 재촉했다.

그 모습에 나는 역겨움을 느꼈다. 인간이나 악마나 힘에 굴복하는 모습이 꼭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애써 구역감을 참은 채 물었다.

“천지훈이 받은 힘이 무엇이지?”

“천지훈이 푸르푸르님께 물려받은 힘은…….”

후두둑.

그 순간 엄청난 악취가 코끝을 자극했다.

얼굴 곳곳 끈적한 액체와 파편이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다.

퍼엉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간 녀석의 육신.

나는 그 모습을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신체 중 온전한 것은 오직 사슴 모양의 얼굴뿐이었다.

황당한 일이었다. 갑자기 몸이 터져 나가다니.

또 몸이 파편이 되어 흩뿌려졌음에도 얼굴 하나만큼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하다는 것이 기괴하다면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때.

생기 잃은 사슴의 얼굴이 붕 떠올랐다. 그러고는 이내 눈이 번쩍 뜨였다.

“네놈이군. 록스가 말한 녀석이.”

머리를 뒤흔들 정도로 불길하고도 깊은 목소리. 섬뜩한 목소리가 사슴의 얼굴을 통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지금 말하고 있는 녀석이 베르보브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녀석은 아마도…….

“지구에 침략해 무엇을 할 생각이냐? 푸르푸르.”

“크크큭. 지구는 참 재밌는 녀석이 많단 말이야.”

“대답해라.”

“벌레가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벌레라, 제 부하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군.”

“크크크.”

녀석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그나저나 천지훈의 동생이라고?”

무미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이 흥미로운 제안을 해왔다.

“강해 보이는데 나와 계약을 하는 것이 어떻겠나?”

“계약?”

관심을 보이자, 녀석은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훑기 시작했다.

“그래, 천지훈이 했던 계약보다 더 좋은 조건을 내걸어 주지.”

“일단 들어 보고. 그 후에 결정하도록 하겠다.”

나는 녀석을 경계하면서도 푸르푸르의 압도적인 힘에 억눌려 살길을 찾으려 하는 불쌍한 헌터의 모습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정보를 모을 수 있다.’

지금은 최대한 정보를 끌어모아야 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좋았다. 언젠가 필요한 날이 올 테니.

“크흐흐흐. 네놈의 형이 나를 처음 마주했던 때와는 완전히 반대의 모습이군.”

녀석은 재밌다는 듯 나와 천지훈을 비교했다.

나는 조금 놀란 눈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천지훈은 결코 모르는 존재에게 예의를 갖춰 말할 녀석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겁먹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푸르푸르의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인해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베르보브에게 이미 굴복당한 상태였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천지훈이 어떤 힘을 얻었고 계약 내용은 어떤 것인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이젠 대놓고 트롤짓을 하려는 천지훈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계약의 조건이 무엇이지?”

“크흐흐.”

나의 물음에 갑자기 푸르푸르가 웃기 시작했다.

“노골적이군. 그리고 너무 어설퍼. 연기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녀석은 나를 더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물었다.

“내가 정말 그런 어설픈 연기에 속을 거라 생각했나? 정말?”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 채 입꼬리를 미친 듯이 들어 올리는 사슴의 얼굴.

그 모습을 본 나는.

퍼엉!

그대로 녀석의 머리를 터트렸다.

녀석의 태도로 보아 절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도, 이야기할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그 기운…….

반 페르데이스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그 공포와 맞먹는 수준의 존재감이었다.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의 존재감이라니…….

모르긴 몰라도 성체가 된 드래곤과 맞먹는 수준의 격을 가진 존재임이 분명했다.

내가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있던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계속 대화를 나눴으면 뱀 같은 혓바닥에 정보만 넘겨주는 꼴이 됐으리라…….

녀석에 관한 대답은 반 페르데이스를 통해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72악마는 하나같이 다 괴물들이다. 성인식을 치른 드래곤과도 맞먹을 정도지.

콧대 높고 자긍심이 강하다고 소문난 드래곤이 인정하는 것을 보면 녀석은 확실히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너보다도 강하다는 소리네?”

-……그렇다.

녀석은 차마 부정은 못 하겠는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심각한 얼굴로 인상을 구겼다.

‘생각보다 더 사안이 심각하다.’

아무리 내가 강해진다 한들, 제대로 된 드래곤을 뛰어넘는 무력을 갖추기 위해선 수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더해 단순히 시간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였다.

“……젠장!”

그런 복잡한 심사에 반응이라도 하듯.

쿠구구구구.

제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푸르게 타올랐던 불꽃은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고, 이끼 낀 기둥은 무너졌다.

이것은 전조였다.

게이트가 곧 닫힐 거라는 전조.

아무래도 시스템은 이 베르보브를 던전의 보스로 인식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강해졌다고 한들 던전 안에서 뻐대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게이트의 문이 닫히고 나면, 누구든 이곳에 고립되고 만다.

나는 아직 다 타 버리지 못한 시체를 바라보며 짧게 묵념한 뒤 날 듯이 던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또 한 번 예상치도 못한 장면을 목격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오지?”

싸늘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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